구약 역사서 설교원고

여리고성 정탐(수2:1-7)

주 바나바 2019. 10. 12. 10:22

여리고성 정탐(2:1-7)

 

주 바나바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관문에 있었던 여리고성은 막강한 위용을 자랑했던 철옹성과 같은 도시입니다. 여리고는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B.C. 7,500경부터 존재했던 역사상으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에 하나입니다.

 

영국의 두 저명했던 고고학자인 가스텡(John Gastang)케년(K.M Kenyon)은 각각 여리고를 발굴하면서 역사 속에 감추었던 성경의 여리고가 실재했음을 밝혀냈습니다. 가스텡1930-1936년 사이에 여리고를 발굴하면서 여리고의 멸망이 B.C. 1,400년경이라고 밝혔습니다.

 

케년1952-58년까지 여리고를 발굴하면서 B.C.1,300 경에 있었음을 주장했습니다. 비록 두 고고학자가 100의 시간적 차이를 두고 있으나 분명한 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여리고 성의 멸망이 고고학적인 뒷받침을 받고 있습니다.

 

여리고는 비옥한 넓은 평원을 가지고 있었고, 여리고의 뜻 종려의 성읍처럼 여리고 주변에는 종려나무와 발삼나무가 가득했고, 오아시스가 많이 있었고, 여리고에서 약11Km 정도 떨어진 곳은 요단강으로 물이 풍부했던 비옥한 곳입니다.

 

그리고 여리고를 정복하는 순간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는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리고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으며, 번성한 곳이었습니다. 이 도시로 여호수아는 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정탐꾼을 보내는 여호수아는 전략가임을 보여주는 기사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무턱대고 주먹구구식으로 덤벼드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과 준비가 필요할 때도 있고, 현장에 나가 사전조사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전쟁은 승리를 위한 전쟁이기에 적의 정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적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白戰百勝)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의 전쟁에서 백 번 다 승리할 수 있다라는 중국 병법가 손자모공 편에 나오는 병법 중에 한 방법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첫 성인 여리고를 공격하기 전 미리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 조사를 하게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준비나 노력은 우리들이 감당해야합니다.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보내는 일을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스스로 내린 결단입니다.

 

지난 날 여호수아는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 중의 한 사람으로 파견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정탐꾼이 겪는 위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이 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조차 알지 못하게 추진한 것은 그들이 좋지 못한 보고를 하게 되면 모세 때처럼 백성들이 쉽게 낙담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고 지시했습니다. ‘엿보다는 말라아주의 깊게 보다’, ‘조심스럽게 관찰한다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적을 정탐하라는 말입니다. 왜 곧바로 가나안 땅을 쳐들어가지 않고 정탐꾼을 보냈을까? 여기에서 여리고 정탐이 주는 의미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전쟁의 승패를 쥐고 계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을 분명하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관해서는 명확한 지시 없이, 구체적인 것은 여호수아의 손에 맡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의 지도자로서 여호수아는 올바른 전략을 수립해야 했고, 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비서관 격이던 여호수아는 스승 모세120세 나이로 죽은 후 후계자로 세움 받았습니다.

 

그가 맡은 과제는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무려 40년 세월을 시나이 광야에서 방황하였던 백성들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나안 땅이 비어 있는 땅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많은 숫자, 더 좋은 무기, 더 좋은 방비를 갖춘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땅이란 점입니다.

 

더욱이 가나안 땅에는 일찍이 철광산이 개발되어 당시로는 신무기였던 철제 무기들과 철전차까지 갖춘 원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청동제 무기들과 원시적인 수준의 무기들을 갖추었을 따름입니다. 그러기에 특별한 전략이 없다면 가나안 땅 정복은 불가능한 꿈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수아 장군의 전략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전략의 첫 번째가 여리고성 함락전략입니다.

 

가나안 땅은 길쭉한 고구마 형상으로 남북으로 이어진 지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리고성은 가장 가운데 위치합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의 중앙부에 위치한 여리고성을 공략하여 점령한 후, 내륙으로 진격하여 가나안 땅을 남북으로 분리시켜서 북쪽 세력과 남쪽 세력이 연합하지 못하도록 차단시킵니다. 그리고 남쪽을 먼저 점령한 후 다시 북쪽을 도모하여 가나안 정복을 완수하는 전략입니다.

 

결국 이 전략대로 이루어져 이스라엘 군대가 가나안 땅을 정복합니다. 전략을 통하여 승리한 가나안 정복기사입니다. 이런 여리고 전략을 가장 잘 활용한 장군이 나폴레옹입니다. 그는 여호수아 장군의 여리고 전략을 체득하여 연전연승 할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포병장교 출신입니다.

 

적을 공략할 때에 먼저 적진의 중앙부에 포격을 맹렬히 가하여 혼란에 빠뜨린 후 기병대가 돌격하여 중앙을 돌파하여 적 진영을 둘로 가릅니다. 그리고는 30% 정도의 병력은 한편을 막기만 하고 70%의 병력으로 다른 한편을 공격하여 무너뜨린 후 합하여 나머지 한편을 공략하곤 하였습니다.

 

바로 여호수아 장군의 여리고성 함락 전략입니다. 또한 한국전쟁 때에 여호수아의 여리고 전략을 활용하여 전쟁을 역전시킨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입니다. 북한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밀어 닥쳐 부산까지 위협하던 때에 맥아더 장군은 한반도의 중앙인 인천에 상륙하여 인민군을 괴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인천이 가나안 땅으로 말하자면 바로 여리고 성입니다. 지혜로운 전략이 점점 지고 있던 전쟁을 승리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략으로 싸우라고 말합니다. 전략이 우수하면 양이 코끼리를 넘어뜨릴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이 탁월한 전략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 같이 지혜로우라하셨습니다. 뱀 같은 지혜는 남 다른 전략을 말합니다. 잠언서24:6의 말씀은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인 이스라엘의 모사드(MOSSAD)의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이스라엘은 자기들보다 수십 배의 영토와 인구를 가진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탁월한 전략으로 나라의 존영을 유지하고, 나아가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의 국가경영전략의 중심에 세계적인 정보기관 모사드가 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1909-2005)박사는 전략과 전술의 차이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략은 어느 길을 갈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고, 전술은 선택한 길을 어떤 방법으로 갈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라고 쉽게 정의해 줍니다. ‘붉은 나폴레옹이라고 불리는 베트남의 보 구엔 지압(1911-2013)장군은 미국 언론이 20세기 최고 명장으로 뽑는 전략가입니다.

 

그는 160Cm의 조그만 키에 전직 교사로 군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최고의 전략가였습니다. 지압 장군이 치른 전투 중 디엔비엔푸 전투는 세계 전사에 남는 전투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베트남을 계속 식민지화하고 싶었던 프랑스베트남 독립동맹을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1953 북부 국경 도시 디엔비엔푸15천명의 군대를 파병하고, 전차와 야포와 군용활주로까지 건설했습니다.

 

프랑스군은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확신하였으나 19543부터 시작된 전투에서 상상할 수 없는 기습을 당한 프랑스군3,000이 죽고, 12,000이 포로가 되고 지휘관마저 포로가 됨으로서 패배를 인정하고, 프랑스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전투를 지휘한 장군이 보 구엔 지압입니다.

 

전쟁사에 나타난 장개석 군대와 모택동 군대와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모택동의 군대는 장개석 군대에 비하여 상대가 되지 못하는 열세였습니다. 더욱이나 장개석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정통군인이었고, 모택동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북경대학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군대가 싸우는 동안에 장개석 군대가 항상 승리합니다. 그러나 장개석 군대는 전투에선 승리하였지만 전쟁에서 패배하여 대만으로 밀려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 대답은 간단 명확합니다. 모택동전략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탁월한 전략으로 열악한 조건을 승리로 바꾼 사람입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군사학을 가르치는 파리스 커크랜드 중령은 그가 들은 놀라운 강의를 한편 소개하였습니다. 어느 교수가 지금까지 최고의 군사전략가가 누구인가?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시저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나폴레옹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를 최고의 군사 전략가는 여호수아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여리고 사람들은 요단강이 홍수가 나서 건널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의 심장부를 둘로 나뉘었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전술이고 승리의 관건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두 명의 정탐꾼들이 살펴본 정보내용은 여리고성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심리적 상태였습니다.


그런 사실은 기생 라합의 증언을 통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여리고 성의 백성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고 있지만 실제는 너무도 두려워한 나머지 간담이 녹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특히 일전에 홍해를 마르게 한 일과 아모리의 두 왕 시혼을 전멸시킨 일 등은 여리고 백성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정탐꾼들이 돌아와 보고한 내용도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고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아있습니다입니다. 이미 전쟁은 결판이 난 것입니다. 심리전에서 이미 이긴 전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무기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무기를 가지고 수적으로 우세하다 하더라도 그 병사들의 마음이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전쟁은 이미 끝난 상태입니다. 여호수아여리고성을 함락하기 전에 여리고 주민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하신 크고 놀라운 사건으로 인해 심리전에서 이미 지고 있었습니다.

 

사사기서에 나타난 기드온삼백 명 용사미디안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삼백 명을 선발하게 하여, ‘메뚜기 떼처럼 골짜기에 수없이 널려 있는 적군과 싸우게 하십니다. 그러나 전면전 전에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적군과 싸우기가 두려웠던 적진으로 내려가 적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면 용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드온이 적진에 이르렀을 때 적군의 한 병사가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 병사가 말합니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보리빵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들어와 장막에 이르러서 그 장막을 쳐서 뒤엎으니 그만 막이 쓰러지고 말았다네.”

 

그러자 그의 친구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인 기드온의 칼이 틀림없네.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넘기신다는 것일세.하고 대답합니다. 적군의 병사들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이미 심리전에서 졌다는 방증입니다.

 

나중에 기드온과 그의 삼백 용사들이 나팔을 불고 횃불을 감추었던 항아리를 깬 것은 이미 승패가 끝난 전쟁의 인증 샷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사건으로 인해 어둠의 권세 앞에서 승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종 눈에 보이는 상황으로 인해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마음으로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과 염려를 물리치시길 바랍니다. 마음의 전쟁에서 먼저 이겨야합니다. 우리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담대하게 세상 끝 날까지 이긴 싸움을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사람이 오해하기 쉬운 것 중의 하나는 계획 없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실 테니까 우리는 그저 믿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언뜻 듣기에는 신앙이 참 좋은 말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위험한 말은 없습니다.

 

신앙은 결코 인간의 계획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과 동시에 전략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성경적 전략은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내 중심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특정한 일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전략가이십니다. 다윗이 한 번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블레셋과 싸울 전략을 짜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전면적으로 공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략은 성공하여 다윗의 군대가 크게 승리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또 블레셋이 똑같은 장소에 진을 치고 다윗의 군대를 공격했습니다. 이때 다윗은 똑같은 대적이요, 똑같은 전쟁터요, 그것도 이미 한번 크게 승리한 경험이 있는 그리고 눈에 익숙한 전쟁터이지만 하나님께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하나님께서는 전략을 전수해 주시기를 이번에는 매복을 하였다가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날 때, 갑자기 습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이전에 성공한 경험만 믿고 전과 같은 전략으로 전쟁터에 나갔다면 틀림없이 다윗의 군대는 패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성도님들! 신앙이 있습니까? 당연히 믿음이 필수입니다. 그러나 믿음 위에 지혜를 건축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략입니다. 미래를 어떻게 승리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십시오.

 

여호와의 전쟁은 우리에게 승리가 보장된 싸움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승리는 우리들에게 맡겨져 있습니다. 지혜로운 전략을 세워 하나님의 승리를 우리의 것으로 삼는 여러분이 되길 축복합니다. 성경은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들에게 이렇게 권고하고 축복합니다.

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24: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