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에 대한 이해(2)-교수 주태근
선교학 강의록(3) : 교수 - 주태근
4. 전도(Evangelism)와 선교(Mission)의 차이
선교와 전도의 의미를 규명하는 데 있어서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그것은 지리적인 측면과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측면이다. 먼저 지리적인 측면에서 데이비드 보쉬는 서구 교회 역사에 있어서 선교와 전도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서구 교회는 20세기 초엽까지만 하더라도 선교의 의미를 서구 지역에서 비서구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요, 전도는 서구 교회 내의 명목 신자나 이웃 불신자들에 대한 복음 증거의 운동으로 해석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이 1928년 예루살렘 국제선교협의회대회에서 미국측 대표로 참석했던 루푸스 존스에 의해서 의문시되었고, 그는 서구의 세속주의를 일종의 인본주의적 종교로 보아서 서구 지역도 선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예루살렘 대회에서 선교와 전도개념의 코페르쿠스적 인식전환은 그 후 계속해서 오대양 육대륙에서의 선교 개념으로 바뀌어 왔고, 이것은 지금까지 보편적인 선교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선교와 전도에 대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측면에서 선교는 하나님의 주재권과 그분의 구속 의지, 그리고 구원의 대상이 되는 전 세상을 내포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며, 전도는 그 기원이 성경의 ‘유앙겔리온’으로서 기쁜 소식을 의미한다. 즉 ‘유앙겔리온’은 항상 ‘기쁜 소식을 전한다’ 혹은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용어는 ‘유앙겔리조’이다(마 11:5; 행 8:25; 롬 10:15). 데이비드 헤셀그래이브는 전도의 용어가 성경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기에 지금까지 선교의 실재적이고 협의적인 의미와 부합되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존 스토트도 마찬가지로 이런 의미로 전도를 사용하는데 그는 전도의 세 가지 특성을 논하고 있다. 그것은 성경이 전도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첫째는 결과를 논하지 아니했고, 둘째는 방법적인 면을 논하지 않았고, 세 번째는 복음 메시지 측면만 논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복음 메시지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복음적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승귀이며(행 2:23; 행 5:30; 갈 3:10; 행 2:32-33), 둘째는 복음적 증거로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증언 즉 성경의 증거이며(행 2:25; 3:18; 고전 15:3-4), 셋째는 복음적 약속으로서 죄사함과 성령의 강림과 그의 자녀 됨이다(행 2:38). 네 번째는 복음적 요구로서 회개하라는 것이다(행 3:19; 10:43).
칼 크로밍가는 전도에 대한 성경적 기초를 논하면서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 나타난 초대 교회의 전도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이를 입증하려 시도하고 있다(행 6:7; 9:31; 11:24; 16:5; 살전 1:8). 맥가브란은 전도에 있어서 교회와 교인들의 책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제자화 세 번째 단계를 논했고, 완전케 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복음주의 진영의 선교 학자 중에 랄프 윈터는 선교 개념을 전도라는 용어로 사용하는데 그는 전도의 네 단계를 논한다. 첫 번째 전도의 단계는 ‘전도 0’(Evangelism 0)라고 부르는데 교회의 내적 성장으로 회심성장이라고도 한다. 그는 이 단계에서는 교회의 영적인 성장, 즉 교회가 영적으로 각성되어 있고 성숙한 모습으로 성장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전도 1’(Evangelism 1)인데 이 단계에서는 교회의 구조적인 성장과 지 교회를 세우는 민족 복음화 차원의 선교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는 이런 성장을 가리켜서 팽창 성장과 확장 성장이라고 한다. 세 번째 단계는 ‘전도 2’(Evangelism 2)인데 이 단계는 모국문화권을 뛰어넘은 교차 문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복음증거의 운동으로서 유사문화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교이다. 즉 이 단계서부터 본격적으로 타문화권에서 외국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이루어진다. 네 번째 단계는 ‘전도 3’(Evangelism 3)인데 이 단계도 타문화권에서 외국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단계로서 완전히 이질적인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다.
데이비드 헤셀그래이브는 선교와 전도 용어를 동시에 사용하여 선교개념을 정립하고 있다. 즉 그에 의하면 ‘선교적 전도 1’(Mission-Evangelism 1)과 ‘선교적 전도 2’(Mission-Evangelism 2)와 ‘선교적 전도 3’(Mission-Evangelism 3)이 있다. 그의 선교적 전도 1은 같은 동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상황이요, 선교적 전도 2는 유사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선교적 전도 3은 완전히 이질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헤셀그래이브는 여기서 지리적인 구별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선교적 전도 1의 단계를 선교학자들은 또한 세부적으로 나누어서 ‘국내선교 1’(Home-Mission 1)과 ‘국내선교 2’(Home-Mission 2)와 ‘국내선교 3’(Home-Mission 3)의 단계로 구분한다. 국내선교 1은 모국에서 동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상황이요, 국내선교 2는 모국에서 유사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상황이요, 국내선교 3은 모국에서 완전히 이질적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상황이다. 또한 외국에 있는 동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상황을 구별하여 ‘외지선교 1’(Foreign Mission 1)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디아스포라 선교사를 가리킨다.
전통적으로 개혁주의 교회 진영에서는 선교라는 용어보다 전도라는 용어에 선교의 의미를 포함시켰다. 미국 칼빈 신학교의 학장을 역임했던 카이퍼(R.B. Kuiper)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인 『하나님이 중심이 된 전도』(God-Centered Evangelism)에서 선교를 외국에서의 복음증거요 전도를 국내에서의 복음증거라고 하는 것이 성경적인 근거가 없음을 분명히 지적하면서 전도라는 용어로서 선교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청교도 신학을 전공하고 캐나다를 중심으로 전 세계에 개혁주의 청교도 신학을 확산시키고 있는 패커는 그의 명저인 『전도와 하나님의 주권』(Evangelism and the Sovereignity of God)에서 카이퍼와 동일한 의미로서 전도에 선교의 개념을 포함시켜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교와 전도를 이해할 때 교회의 선교사명이 광의적이고 실제적인 선교사명으로 인식하여 이 모든 과정이 교회의 선교를 가능케 한다는 총체적인 차원에서 선교를 이해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선교는 일반적이며 또한 특수한 사명이요 광의적이며 또한 협의적인 복음증거의 사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균형 있게 총체적인 복음(Whole Gospel)을 전 세상(Whole World)에 전 교회(Whole Church)가 증거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로잔 언약문은 세계 복음화를 성취하기 위해서 전 교회(Whole Church)가 총체적인 복음(Whole Gospel)을 전 세상(Whole World)에 전해야 한다고 진술한다.
5. 선교학의 정의
선교학자 요한 바빙크(J. H. Bavinck)에 의하면, 선교학은 사도학이라고도 불리고 증가학이라고도 불리었다. 사도학(Apstolics)이라고 한 것은 교회가 보냄의 사명을 감당한 것과 관련이 있다. 선교학을 사도학이라고 부르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학자는 아브라함 카이퍼인데, 그것은 사도학이 예수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사도, 예언자, 전도자 및 사역자들의 일을 포함하여 “선교활동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빙크는 사도학도 12제자들이 가졌던 사도직(apostolate)과 혼동하지만 않는다면 12제자들의 사후 교회에 맡겨진 선교적 사명을 지칭하는 데 큰 문제점은 없다고 평가한다. 더 나아가 바빙크는 증가학(prosthetics)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카이퍼는 사도학보다는 증가학을 선호하였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교회에 증가시켜 준다는 단어 prostithenai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행 2:41에 보면,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47절에도 보면,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행 11:24에도 보면,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라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바빙크는 사역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교회에 사람들을 더해주시는 이는 인간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힘주어 강조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바빙크는 선교학을 칭하는 데 있어서 증가학이 사도학보다는 덜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선교학은 “증가”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세대를 거듭하여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름 받은 “우리의 소명”에 더욱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항들을 고려해 볼 때, 바빙크는 “선교학”(the science of missions), 즉 “선교에 관한 과학”이 가장 적당한 명칭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선교학은 선교활동의 모든 점들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강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교학은 선교의 개념, 성경에 나와 있는 교회의 사명, 선교의 역사와 문제들에 관하여 다룬다. 특히 선교학은 선교활동(missions)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데, 고국이나 해외나 유대인이나 무슬림에서나 모교회(older church)에서 이루어진 것이나 신생교회(younger church)에서 이루어진 것이나 어떤 조건이나 상황 가운데서 이루어졌든 구체적인 선교활동에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바빙크는 “사도학”이나 “증가학”보다는 “선교학”이란 용어를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요한네스 베르카일은 “선교학은 하나님의 나라를 실제화시키는 것과 맞물려 있는 전 세상에 걸친 성부, 성자, 성령의 구원 활동에 관한 연구이며,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활동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온 세계 교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임명령에 대한 연구이다”라고 정의하였다. 그 위임명령은 모든 족속에게 나아가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라는 전도명령이다(마 28:18-20; 막 16:15; 눅 24:47-48; 행 1:8). 베르카일은 위와 같이 선교학을 정의하면서 선교학의 과제를 제시하였다. 즉 선교학의 과제는 세계선교의 실천, 세계적인 봉사, 성경의 기준에 반하는 개발사업과 계획의 검토이다. 다시 말해서 선교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집회의 구조, 서구교회와 신생교회의 관계, 교회 선교의 성격, 미래 사업들을 위한 계획들을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복음주의 선교신학자이며 교회성장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도날드 맥가브란은 선교학을 교회성장학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교회성장학은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것과 관련하여 교회의 성격, 확장, 개척, 증가, 기능, 그리고 건강을 조사하는 학문이다.” 위의 베르카일의 정의와 비교할 때,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맥가브란은 “교회”라는 단어를 중시하는데, 베르카일은 “세상”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베르카일은 교회보다는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선교의 주체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그는 하나님이 교회에 위임하신 전도명령과 교회가 그 전도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한편 맥가브란은 그의『현대선교신학(1983)에서 선교를 “지구상 모든 민족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선교학을 이 활동에 관한 학문이라고 규정한다. 이 두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할 때, 베르카일은 광범위한 정의를 내렸으며 맥가브란은 협소한 정의를 내렸다고 본다. 이 두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하여 선교학의 정의를 내린 학자는 알란 티펫이다. 티펫은 선교학을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는 세계도처에서의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구원활동에 관한 학문이다”라고 정의하면서, 선교학의 과제는 “교회가 수행하는 선교의 전제, 동기, 구조, 방법, 협력형태, 그리고 리더십을 과학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위와 같은 선교학의 정의들을 고려할 때, 선교학은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따라 교회가 수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적 활동을 사회과학의 도움을 받아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규명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선교학은 기독교 선교의 성서적 기원, 역사, 문화인류학적 원리, 전략, 그리고 신학적 기초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고, 기록하고, 적용하는 학문적 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