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다양성(2)-교수 주태근
설교학 강의록(3) : 교수 - 주태근
2) 설교의 전개형태
종교개혁의 샛별들이었던 타울러나 위클리프와 같은 설교자들이 등장하였던 시기인 1322년, 지금도 미지의 인물로 알려진 베이스본의 로베르토(Robertof Basevorn)에 의해 최초로 『설교의 형식』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1230년경 파리대학에서 있었던 설교의 전개형태에 대한 기록들을 참고 하여 설교의 구성형식을 다루었다. 이 책은 설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설교의 형식을 연구하는데 원조의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책에서는 설교의 전개 방식은 주제를 세 가지의 주안점(대지)을 설정하고 진행함이 유익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유는 “삼위일체의 관점에서 메시지를 조명할 수 있으며 세 겹으로 된 줄이 가장 끊기 어렵다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정해진 설교시간에 3개의 주안점이 전달이나 기억에 적절하다는 말을 첨가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후대의 설교가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3대지 설교’라는 틀이 고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출발한 설교의 형식은 3개의 주안점(대지)을 만들고 거기에 적절한 자료와 예화를 첨가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설교의 전개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그 형태마다 각각 다른 이름을 붙여 설교자들이 혼돈을 가져오기도 한다. 설교학의 발전이 가장 활발한 북미설교학회에서는 새로운 전개형태의 개발에 대단한 관심을 보인다. 누구인가 새로운 전개형태를 연구 발표하면 그것이 새로운 이슈가 되어서 귀를 기울인다. 그러한 과정에서 어떤 전개형태는 메시지의 발굴과 전달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형태는 비성경적인 설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살펴본 설교의 기본유형에 따라 본문을 떠나지 않고 전개할 수 있는 설교형태에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여기서 제시하고자 하는 8가지 전개형태는 대지설교, 분석설교, 상관설교, 서사체설교, 예화설교, 인물설교, 대화설교, 독백설교 등이다.
① 대지설교
설교의 역사에 오랫동안 자리잡아온 대지설교는 설교의 기본유형 중에 본문설교나 주제설교를 전개하는데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는 전개형태이다. 이 형태를 빌려 전개하는 설교의 대지(major points)는 설교의 본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는, 본문설교의 유형에 따라 대지설교로 전개를 하는 경우에 설교의 대지는 본문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이 때 유의해야 할 것은 대지의 문장이 일반적으로 설교자가 제시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설교의 핵심이 되는 대지의 표현은 성삼위 하나님이 주어로 등장하는 문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전 13장 4절의 ‘사랑의 실상’을 본문으로 했을 경우를 본다. “첫째, 사랑은 오래 참아야 합니다.”라는 본문을 그대로 옮겨왔지만 설교자의 주장처럼 보일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첫째,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사랑은 오래 참아야 함을 가르치십니다.”로 표현을 정확하게 함으로 회중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게 된다.
둘째는, 대지마다 거기에 해당하는 본문을 제시해야 한다. 본문이 없는 대지는 자칫 설교자의 이론과 지식으로 일관하게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오래 참음’의 근거를 본문으로 제시함이 바른 절차이다. 흔히들 설교자가 ‘오래 참음’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한 다음에 성경으로 보충하는 경우를 본다. 이것은 실은 자신의 말을 입증시키는 ‘각주-footnote’로 본문을 이용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러기에 설교자는 대지에 해당되는 ‘오래참음’의 핵심단어를 제시함이 마땅하다.
셋째는, 핵심단어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그 뜻을 원어를 중심하여 정확히 밝히는데 깊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오래참음의 원어를 찾아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기본 의미를 설명해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회중들이 더 정확하게 접근하게 된다. 이 단어가 사용되었던 그 시대의 환경과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까지 설명해 줄 수 있다면, 말씀의 이해는 훨씬 더 정확하게 이어지게 된다. 이제는 우리의 설교자들이 히브리어나 헬라어에 능숙하지 못하더라도, PC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많은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지식과 유익한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넷째는, 해석된 말씀을 가지고 회중들의 삶에 적용시키는 단계이다. 말씀을 풀어주는 것으로 설교가 끝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설교는 회중들의 삶에 그 말씀이 현장화 되도록 설교자가 효율적인 적용을 할 때에 설교가 발생된다. 설교자가 가장 손쉽게 진리의 적용을 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로 예화나 간증을 생생한 예증으로 활용할 수 있다. 회중은 말씀의 선포와 해석의 단계 보다는 예화로 엮어진 적용의 단계에서 훨씬 더 흥미를 보인다. 여기에 설교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그것은 설교자가 회중들의 흥미를 위주로 예화를 남발할 때이다. 예화의 나열은 그 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감추어지고 인간의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회중들이 본문을 통하여 주신 메시지보다 흥미로운 예화만을 가슴에 안고 돌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설교자가 깊이 성찰해 보아야할 심각한 문제이다.
② 분석설교
분석설교는 대지설교보다 몇 가지의 단계를 더 첨가하여 보다 더 논리적이고 지성적인 현대인들을 향한 설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설교는 현대인들의 사고 구조에 본문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운반할 것인지를 깊이 연구하여 내놓은 선교전개의 한 형태이다. 그리고 분석설교는 본문을 한 절 한 절 풀어가는 주해설교를 제외하고는 어떤 설교의 유형에서도 사용 가능한 상태로서 현대의 지성인들에게 많은 환영을 받을 수 있다.
(1) 본 설교의 주제는 설교자의 지식이나 생각에서보다는 봉독한 본문이 가지고 있는 기본 메시지에서 주제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언제나 본문을 벗어난 주제의 선정은 설교자의 견해가 중심이 되기에 종교수필로 변질할 위험성이 있게 된다.
(2) 전하고자 하는 말씀에 회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본문의 정황(context)’을 이야기체로 쉽게 알려준다. 여기서 그 말씀이 있게 된 시대적인 환경이나 동기와 반응 등을 알게 된다면 본문과의 대화가 쉽게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다음에 이어질 본문의 해석 역시 더욱 선명해질 수 있다.
(3) 본문을 설교자가 쉽게 풀어 쓰거나 또는 현대어로 쉽게 번역한 것을 다듬어 다시 읽어준다. 그 이유는 회중들의 언어로 본문을 ‘재경청’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회중들이 어느 부분 보다 깊은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는 것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대지설교에서도 서론 다음에 본문 접근과 본문의 재경청의 부분은 필히 제시해야 할 단계로 본다.
(4) 주제에 대한 정의를 정확히 내린다. 여기서 정의는 한 문장으로 단순하게 내리지 않는다. “사랑은 단순한 눈물의 씨앗이 ‘아닙니다.”와 같은 부정적 표현을 세 번 정도하면서 회중의 관심을 먼저 끌도록 한다. 그런 후에 문학이나 철학 또는 사전에서의 정의를 나열하고 성경으로 최종적인 정의를 맺는다.
(5) 자극과 동기유발을 시도한다. 사랑이 주제라면 사랑이 결핍되거나 없어서 당하게 되는 비극적인 사례를 들려준다. 이 단계가 필요한 이유는 회중들이 오늘의 주제를 수용하고 실천하지 못하면 동일한 불행을 당할 수 있다는 개연성을 깨닫게 하는데 있다.
(6) 설교의 본론으로서 주제실천 방안의 제시이다. 분석설교는 앞에서 제시한 주제와 그 필요성을 인식시키는데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랑이 필요함을 느낀 회중들이 그 사랑의 ‘실천 방안’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묻고 찾는 단계까지 회중을 이끌고 왔다면, 이제는 사랑의 실천 방안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한다. 여기서는 대지설교의 주안점 전개와 동일한 표현과 방법을 적용한다. 주안점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또는 ‘주님’이 주어로 등장되도록 함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주안점마다 해당된 본문과 그 말씀의 해석, 그리고 적용이 제시되어야 함은 기본이다. 특별히 적용에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흔히들 설교자들이 자신의 견해로 적용을 이어간다. 그 대표적인 예를 들면, “여러분이……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경우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모두가 ……하게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는 하나님이 원하고 계심을 알리는 적용의 표현이다. 설교자가 조금만 주의하면 앞 문장의 주어는 설교자이고, 뒷 문장은 하나님이 주어가 되어 있음을 바로 알게 된다. 설교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되지만 메시지의 주인은 언제나 하나님이심을 설교자는 깊이 인식해야 한다.
(7) 분석설교의 또 하나 특징은 주제의 실천방안을 따랐을 때에 경험하게 되는 ‘주제실천의 결과’이다. 회중들은 설교의 전개가 이어지는 가운데 제시된 말씀대로 실천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에 매우 민감하다. 이 부분은 그날의 메시지가 주는 ‘복된소식-goodnews’이다. 이 복된 소식은 어떤 이론적인 전개보다 모두가 공감하는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앞에서 본 주제의 필요성에서는 주제를 실천하지 않아 당하게 되는 부정적 사례였다면, 여기서는 제시된 주안점대로 실천했을 때 얻게 되는 긍정적 사례이다. 예를 들면, 사랑이 가득하여 문제가 해결되고 새로운 세계가 전개된 개인이나 가정의 실례들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분석설교는 메시지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하여 현대인들의 사고 구조를 십분 활용하는 전개형태이다. 이 설교는 다른 설교 형태보다도 설교자의 준비와 자료와 전개에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설교자의 노력이 조금만 부족해도 비성경적 설교로 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설교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설교자가 자기 설교의 기본 틀로 분석설교를 갖추고 있다면 설교의 작성이나 메시지의 전달에 큰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③ 상관설교(Then-Now Preaching)
상관설교는 성경에 나타난 이야기들이나 사건을 본문으로 하고, 그 본문이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를 오늘의 삶으로 현장화시키는 매우 평범한 전개형태이다. 이 설교는 본문설교나 주제설교보다는 강해설교의 틀 안에서 쉽게 전개할 수 있다. 이 설교는 설교자들이 쉽게 접근하여 전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중들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설교라 할 수 있다.
상관설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틀은 ‘그때(Then)’의 사건이나 이야기를 ‘지금(Now)’의 사실로 도입하는데 그 특성이 있다. 설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과거형으로 그 시제를 언급하지 않고, 현재형으로 하는 이유는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오늘을 위해 있기 때문이다. 본 설교는 이러한 원칙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Then-Now설교」라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설교를 성공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길은 다음의 몇 가지 원칙에 설교자가 충실할 때 이룩될 수 있다.
첫째는, 본문은 역사적인 사건이나 줄거리를 갖춘 이야기 형태로 기록되어진 내용을 본문으로 해야 한다. 이 설교는 설교자와 회중이 함께 진리를 찾아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본문설교나 주제설교의 유형에서는 적응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제한점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설교자는 선택한 본문의 내용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 본문 내용의 배경이 되는 역사와, 시대적 사화상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분석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 기록된 내용만을 가지고 설교자의 견해로 일관하는 것은 삼가야 할 문제이다.
셋째는, 성경에서 보여주는 사건이나 이야기는 반드시 깊은 뜻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오늘의 회중들이 듣고 깨달아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본문과의 깊은 대화(Conversation with Text)와 연구를 통하여 찾아내야 한다. 본문에서 사용한 핵심적인 단어의 깊은 뜻을 파악할 때 메시지의 선명함이 나타나게 된다.
넷째는, 이야기의 전개에 회중들이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문학적 수식이 더해지면 보다 더 효율적이다. 같은 사실이라도 문학적 감각과 표현이 가미될 때 회중들의 관심과 경청하는 열기가 달라진다.
다섯째는, 본문의 길이의 문제이다. 가령 탕자의 비유를 가지고 상관설교를 하려고 할 때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15:11~23) 모두를 본문으로 할 수 있다.
④ 인물설교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가장 많이 듣고 배우는 것들 중에 하나는 훌륭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자신들의 선조 가운데 남다른 삶과 기록을 남긴 분이 있으면 그 분에 관한 이야기를 대를 물려 들려주면서 교육을 시킨다. 학교 교육의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에서부터 현존하는 인물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의 애기를 들려주고 따르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교육 방법이다. 그래서 위인전은 시대와 상관없이 필독 독서의 으뜸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경향은 설교의 세계에서도 일반화되어 있다. 그래서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설교자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실질적으로 인물설교가 바르게 전개될 때 회중은 일반 설교보다 더 진지하게 가슴에 품게 된다. 그래서 모세나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신약의 사도들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과 신앙적 특성에 관한 기록은 소중하게 기억되는 메시지로서 성도들의 가슴을 점유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거의 모든 설교자들은 인물설교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설교자들이 인물설교에 대한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자신들의 독창적 방법으로 설교를 진행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다른 설교의 전개형태와 마찬가지로 인물설교 역시 지켜야할 원칙이 있다. 설교자는 회중들의 흥미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다음의 몇 가지 원칙을 지키면서 인물설교를 효율적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다.
첫째, 많은 설교자들이 주제로 삼은 인물에 설교의 초점을 두고, 그 인물을 중심으로 설교를 진행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을 가지고 설교할 때 그의 순종을 이야기 하면서 초점을 그 인물의 생각과 삶의 기록에 맞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교자는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아브라함을 통하여 무슨 메시지를 보여주시려고 하는지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 등장한 인물의 삶과 행위는 모두가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보여주신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설교를 이어가야 함이 정상이다. 즉, 인물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메시지를 찾고 전달해야 한다.
둘째는, 등장한 인물이 살았던 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과 실상을 먼저 찾도록 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그 시대에 그 인물을 택하여 어떤 도구로 사용했는지를 밝히도록 한다. 설교자는 여기서 성경에만 의존하지 말고 그 시대의 역사와 환경을 많은 자료들을 통해 찾아보는 노력이 매우 필요하다. 많은 경우에 인물설교가 설교자의 피상적인 해석에 의하여 손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부작용을 막는 길은 그 인물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하는데 있다.
셋째는, 설교자는 그 인물의 인격과 삶의 목표와 업적을 자세히 살펴 오늘, 여기 회중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찾는다. 주의할 것은 찾아진 메시지를 설교 준비의 전부로 알고 설교로 바로 진입하는 것은 설교자의 지식과 분석의 나열로 끝나기 쉽다는 점이다. 자신이 섬기고 있는 회중들에게 필요한 메시지인지를 재점검해야 한다. 메시지가 설교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되지 않도록 설교자는 준비된 자료를 앞에 놓고 성령님의 조명(illumination)을 구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넷째는, 그 인물이 활동했던 시대에 있었던 가치관과 그 시대만이 가능했던 사실을 오늘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무리는 범하지 말아야한다. 실현이 불가능한 것을 믿음을 앞세워 무리하게 강조하는 설교는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많기 때문이다. 적용은 설교자 자신에게 먼저 묻고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는 것이 정상이다. 설교자가 현장화 할 수 없는 메시지를 회중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매우 크나큰 모순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인물설교에서 설교자가 가장 범하기 쉬운 문제점은 과장이다. 과장이란 언제나 말하는 사람의 풍부한 상상력이 발휘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이 문헌을 비롯한 각종자료에서 사실로 입증될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값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설교자의 구상이나 상상력에 의존하여 표현되는 서술이라면 그것은 진리의 왜곡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상상력이 때로는 필요하고 유익한 것이지만 그것이 어느 범위를 벗어날 때 메시지에 손상을 입히게 된다.
끝으로, 설교자의 과다한 욕구가 문제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정한 인물을 통하여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한편의 설교에서 모두 다 전하겠다는 그러한 의욕은 삼가야 한다. 그 의욕은 그 인물을 일회용 설교의 인물로 끝내려 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준비의 과정에서 그 인물을 통하여 전해야 할 메시지가 몇 항목이 되는지를 섬세하게 분석해야한다. 그리고 그것을 몇 회로 나누어 전달함으로써 설교의 폭과 깊이를 이어가게 된다.
⑤ 서사설교(敍事說敎)
1980년대 초반 북미 설교학회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토론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설교를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개혁교회의 신학은 어거스틴의 은총론을 기반으로 하면서, 설교의 내용이나 표현과 전개는 펠라기우스(Pelagius)의 도덕률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다. 설교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고 들려지도록 하는 은혜의 방편(Means of Grace)으로서의 설교보다, 윤리 도덕 위주의 설교가 주종을 이룬 현실에 대한 성찰과 비판이었다. 이 토론에서는 대부분의 현대 설교들이 명령적 무드(The Imperative Mood)로 가득 차 있음이 지적되었다. 그러면서 설교는 사실적 무드(The Indicative Mood)로 전환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바 있었다. 이러한 논쟁은 후에 설화체 설교(Narrative Preaching)와 이야기체 설교(Storytelling Preaching)와 같은 전개형태들을 개발하는데 새로운 시동을 걸게 되었다. 이러한 형태들의 설교연구가 등장하자 많은 설교자들이 관심을 기울인 바 있다. 그러나 큰 진전을 보지 못한 현실이다.
서사(敍事)라는 의미는 “어떤 일을 사실 그대로 이야기식으로 나타내거나 서술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서사설교라는 큰 표현 속에 설화체(Plot Method) 설교와 이야기체(Retelling story) 설교를 포함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을 한다. 본 설교의 특징은 줄기가 이어지는 인물이나 사건 또는 비유를 본문으로 정하고, 설교자가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과 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언어로 그림을 그리듯이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이 설교는 덤덤한 언어의 나열이나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감성적인 표현과 함께 회중의 이목을 집중시켜 나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중요한 것은 설교자가 본문의 이야기 속에 깊이 몰입하여 그 세계 안에서의 눈을 떠 핵심적인 진리와의 만남을 가져와야 한다. 단순한 지성의 감각이 아니라 감성이 수반된 감성의 움직임이 매우 중요하다. 서사설교의 특징 중의 하나는 설교의 결론이 좀처럼 노출되지 않고 진행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아하!”의 탄성과 함께 결론에 도달하도록 하는 방법을 취한다.
그러나 서사설교에서 주의를 요하는 부분이 있다. 그 하나는, 다른 형태의 설교에서처럼 적용에 설교의 주안점을 두지 않는다. 일반설교는 설교자가 설교의 주안점들이 회중들의 삶에 맞도록 적용을 시킨다. 그러나 본 설교는 회중들이 전개되는 이야기에 몰입해 가다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부분에서 자신에게 적용을 하게 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서사설교를 좀 더 수려한 시어와 문학적 수식을 첨가하여 진행하고 싶은 설교자의 의욕이 지나치게 되는 경우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럴 때 서사설교가 하나의 문학작품처럼 들리면서 진리가 허구(fiction)화 되는 실수를 범하기 쉽다.
이상과 같은 특성과 주의 점을 먼저 상기시키면서 서사설교로 분류된 설화체 설교와 이야기체 설교의 방법론을 찾아본다. 설화체설교의 방법론는 다음과 같다.
이 형태의 설교를 체계화 시킨 유진 라우리(E. L. Lowry)에 의하면 이 설교는 (1)모순점(Conflict)의 제기, (2)갈등의 심화(Complication), (3)문제의 해결이 제시되는 전환(Conversion), (4)확인 (Confirmation) 이상 네 단계의 구상(plot) 단계를 갖추게 하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첫째, 모순점의 제시에서는 일상적인 생각이나 판단을 벗어나서 모호함이나 갈등을 유발시키는 단계이다. 즉, 설교의 초반에 딜레마를 제시하여 주목을 받게 한다. 둘째는, 앞에서 제시한 모순점을 보다 더 구체화하여 갈등을 가져오게 한다. 이 갈등 속에서 긴장을 하게하고 복잡한 문제의 해결을 기대하도록 유도한다. 셋째는, 지금까지의 모순과 갈등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도록 한다. 여기서의 해답은 설교자의 견해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문에 나타난 메시지를 가지고 문제의 해결을 보여준다. 넷째는, 결론으로서 앞에서 가졌던 갈등과 모순점의 과정을 거쳐 문제의 해결로 전환된 뒤에, 회중이 전개된 내용을 확신하고 수용하도록 한다.
이야기체 설교는 설화체 설교처럼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설교자의 창의성을 십분 발휘하여 본문을 풀어가면서 구성을 전혀 달리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요소를 갖추어야한다. (1)이야기의 때와 장소와 배경을 정확히 파악한다. (2)설교자의 통찰력과 상상력에 회중이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언어의 그림화가 필요하다. (3)단일 주제를 설정하여 지속함으로 메시지의 통일성과 선명성을 갖추도록 한다. (4)진부한 한편의 이야기 형태를 벗어나기 위해, 설교를 4~5개의 단계(Stage)를 설정하고 극적인 전개를 시도한다. (5)각 단계는 흥미위주의 목적을 위한 나열이 아니라, 도입과 내용 전개와 종결부 문을 분명하게 하여 회중의 참여를 불러 온다. 이상의 두 형태의 설교에 대한 효율적인 시도는 단순한 창작으로 출발하는 것 보다는 이미 나와 있는 샘플들을 먼저 읽고 분석하여 응용하는 것이 하나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⑥ 예화설교
예화설교는 주제설교와 본문설교에서 사용되는 전개형태이다. 이 설교는 설교자가 가장 힘들이지 않고 전개하는 설교로서 교인들의 지적 수준이 낮았던 시절에 많이 활용되었다. 구성은 본문을 3.4. 대지로 구분하여 설정하고 그 대지에 적절한 예화를 하나씩 나열한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첨가하고 마지막에 본문과 연관을 맺는다. 이때의 예화는 보통 3분이면 충분한 것을 10여분의 시간을 채운다. 회중들은 본문의 깊은 의미나 메시지보다 흥미를 이끈 예화에 관심을 기울인다. 냉정히 생각하면 그 날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설교자의 흥미진진한 예화에서 듣게 된다. 설교자는 본문에 대한 석의와 주해 작업이나 필요한 자료의 수집에 힘쓸 필요가 없이 적절한 예화의 구성으로 한편의 설교를 끝내게 된다. 예화설교를 즐기는 설교자마다 예수님께서 말씀마다 비유를 사용하시었다며 예화설교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혹자는 이것이 마치 설교의 전형적인 형태처럼 착각을 한다.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나 “예화 3개만 있으면 설교 한편은 무난히 해결할 수 있다”는 지극히 시대착오적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통하여 조사한 「설교사역자에 대한 평신도의 의식 구조분석」 에 나타난 결과에 의하면 회중의 교육수준이 향상될수록 예화일변도의 설교에 대한 반응이 매우 부정적임을 알게 된다.
⑦ 대화설교(Dialogue Preaching)
역사적으로 설교의 형태는 설교자 혼자 등장하여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끝나는 형태를 취한 것이 전형적인 설교형태이다. 특별히 설교는 하나님 말씀의 종, 대언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사역으로서 존엄한 권위를 지속하기 위한 당연한 형태로 지금까지 인정되어 왔다. 그러나 시대가 수직적 문화에서 수평적 문화로 바뀌면서 사회의 인식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일방통행(one way)의 구조에서 양방통행(two way)의 형태가 일반화 되는 현대문화에서 설교도 그 전달 형태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주장이 일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톰슨 (William Thompson)이 『Dialogue Preaching』(대화 설교)을 펴내면서 많은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의 책에서 대화설교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린 바 있다. “대화설교란 공중예배 가운데서 이루어진 설교행위로서 두세 사람이 설교자로 동시에 등장하여 설교의 내용이나 메시지를 구두로 교환하면서 진행하는 설교형태이다.” 이 설교의 전개는 설교자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설교의 내용을 다섯 정도의 질문이 수반되는 문답식으로 구성한다. 질문은 인도대에서 부목사나 평신도가 하고 설교자는 설교대에서 답하는 형태를 취한다. 설교자는 이 때의 질문을 회중의 입장에서 구상해야 한다. 이 질문은 설교자의 생각이나 경험, 시대적인 사건을 묻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이 본문을 통하여 주시는 메시지를 회중의 입장에서 좀 더 깊고 정확히 알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한다. 여기서 주의 할 점은 회중들에게 설교에 대하여 자유롭게 질문할 기회를 갖게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이다. 그 이유는 돌발적인 질문이 나와 설교의 내용과 방향을 훼손시킬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화설교가 성공적으로 이어질 때 설교자의 절대 권위가 사라진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설교자에게는 절대권위 보다 효율적인 메시지의 전달이 더 중요함을 인식한다면 이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오히려 대화설교는 회중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방적인 수신자의 입장에서 참여자의 위치에 있게 되는 새로운 설교환경을 조성하게 된다.
⑧ 독백설교(Monologue Preaching)
본 설교의 전개형태는 주로 인물이나 사건을 본문으로 한다. 비록 석의적 접근이나 신학적인 해석 등은 수반할 수 없으나, 등장인물이나 사건 속에 회중이 참여하면서 구체적이고 생생한 메시지를 경험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설교형태이다. 1970년대 미국에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일기 시작했던 본 설교의 특징은 설교자가 본문의 인물이나 사건을 홀로 드라마 형태를 빌려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설교자의 분장은 물론, 연출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심지어 간단한 무대 장치까지도 준비해야 한다. 한 때는 이러한 형태를 설교로 보지 않고 드라마로 취급하기도 하였으나 하지만 그 효과와 긍정적 반응을 경험한 설교자들은 계속 연구하며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변화를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원하는 젊은 세대에게 이 설교가 깊은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