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시대의 예배-교수 주태근
예배학 강의록(2) : 교수 - 주태근
B. 신약시대의 예배
구약시대의 예배가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것으로 믿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였다면 신약시대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예배에로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1. 예수시대의 예배
기독교 예배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이 나사렛 예수를 통해 나타났다고 믿고, 또 유대민족의 대망하던 바가 이제 다 이루어졌다고 믿었던 일개 소집단의 경건파 유대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예수님 당시의 예배는 회당에서 거행됨과 동시에 성전에서도 거행되었는데, 유대인이었던 초대교인들은 전혀 새로운 예배를 창시하지 않았고, 예수님 자신도 형식의 예배를 만들지 않으셨으며 그의 제자들과 함께 성전과 회당에서 예배하였다. 사도행전 2:42-47은 성전예배가 계속되고 있으며(눅 24:52-53),(행 3:1), 예배와 함께 떡을 떼며(행 2:42-46),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행 4:24-30) 같은 명백한 기독교적 관습을 위해서도 성전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회당에 예배와 성전예배가 양립하는 시기에 기독교 예배가 자라왔다 할지라도 이것이 그리스도교 예배에 아무런 특색이 없다는 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Segler 교수는 말한다.
예수님 당시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이중적이었는데 그는 자신 안에서 결국 의식적 제사들과 유서 깊은 예배의식을 대신하게 될 새로운 질서를 구현하고 있었다. 요한복음 4장 21절 -24절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자들에게 개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도 가능한 예배의 실재와 본질에 대한 가르침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예배를 드림에 있어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함을 강조하셨으며(요 4:23-24) 오순절로 시작되는 신약시대의 교회 예배의 기초를 다음과 같이 하셨는데, 예수님은 구약의 의식적 예배를 폐지하고 새로운 영적 예배에 대하여 예언하였다(요 4:24). 그리고 신약의 예전과 성찬식(마 26:26-29,고전 11:22-29)과 세례식(마 28:19-20)의 제정을 이루었다. 예수님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구약의 예식적 예배가 실제로 완전히 성취된 것이다.
예수님 시대의 예배에 대해 정장복 교수는 예수님에 의하여 새롭게 제정된 성례전을 말하면서 “세례와 성만찬을 지칭하는 성례전은 구약성전 예와 내용을 지닌 예배의식으로서 이 의식은 기독교 예배의 이 천년 동안 변함없는 예전이 되었고 예배의 구심점으로서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고 성례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 사도 시대의 예배
예루살렘에서 최초로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이었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서 교회가 성장하여 예루살렘 밖에까지 기독교 공동체들이 확장되어감에 따라 회당에 의해서 자신의 종교적 문화적 배경이 이뤄진 사람들이 그 교제 속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행 2:46, 5:42) 성전예배에 참석했지만 희생제물을 드렸는지에 대한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모이는 시간에 있어서도 원시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와 구별하기 위해서 일주일의 첫째날을 주님의 날로 정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었고 제자들이 식사하러 모였을 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날도 바로 이날이기 때문이다.
사도시대 교회의 예배에 있어서 두 가지 요소가 불가분리의 관계로 연합되었던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 :42).”,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쌔”(행 20:7) 즉 매주일 예배를 위하여 모인 그리스도인의 회합은 성찬식이었고 여기서 기도와 찬미에 관한 교훈이 주의 만찬이라는 비의적 교제와 함께 불가분리적으로 연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사도시대의 예배에 관해 비교적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곳은 고린도전서인데 여기에 나타난 두 가지 예배를 살펴보면, 첫째로, 비교적 개방적이고 비현실적인 전도형식의 예배이었다. 이 예배에는 불신자가 참석했다가 개종하는 경우와 결신하는 일이 있었다(고전 14:23-25). 이것은 오늘날 부흥 전도집회와 비슷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배의 방식은 주로 회당예배의 형식을 채택하여 제물을 사용하지 않는 특징을 가졌고, 즉석기도와 같이 응답이 있는 단순한 예배를 위한 장소가 마련되어 사도적 교회의 예배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순서는 기도, 찬송, 가르침, 예언, 방언과 축도로 끝난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기도, 찬송, 성서낭독과 성서해석은 기독교 예배의 토대가 되었다. 둘째로는, 통상적으로 밤에 행하여진 예배였다. 사도시대에는 예배가 매일 밤 어느 가정집에서 모여 거행되었다. 이때 제자들이나 성도들이 한 장소에 모이면서 각자가 음식을 가지고 와서 주의 만찬을 겸한 아가페(agape)라고 하는 식사를 함께하는 일이 있었다. 이것은 사랑의 축제 혹은 사랑의 식사라고도 하는데, 이 사랑의 식사는 순수한 식사로서 기도와 찬송 간증이 동반되었다. 이 식사는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거룩한 교제를 뜻하는 것으로 행하여졌다(고전 11:17-34).
이상에서 살펴볼 때 사도시대의 예배의 성격은 구속주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 행위로써의 예배보다는 복음전파의 과정에서 흔히 병행되는 비예전적(Informal liturgy) 형태를 지속해 나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중심적 위치에 서있는 부활해서 현재하는 교회의 주님이 언제나 뒤를 향해서는 과거에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한 역사적 예수를, 그와 동시에 앞을 향해서는 미래에 도래할 그리스도를 지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사도시대 예배의 중요 요소라 할 수 있다.
이상으로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배를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성전 예배, 회당 예배, 다락방 예배 요소들이 서로 용해되어 새로운 예배의 규범이 만들어지는 시기인 것을 알 수 있으며 예수께서 이 모든 예배가 하나님과 동등하신 자신을 향한 예배이어야 함을 주장하면서 유대민족 예배의 대상과 예배에 관한 사고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내려주었던 시기였다(막 2:27-28).
C. 초대교회의 예배
사도시대를 계승한 초대교회의 예를 살펴볼 때 사도시대 이후 몇 세기에 기독교 예배의 발전에 참고할 만한 문학적인 원전이 거의 없다. 50) 그것은 로마의 박해 속에 교회가 지하로 들어가게 됨으로써 성도들은 그 속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초기 기독교인들이 어떤 내용으로 예배를 드렸는지의 기록은 매우 궁색한 형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남겨진 다섯 개의 문헌은 예배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 문헌들을 종합해서 본 이때의 예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들의 예배에서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써 먼저 예배자들의 마음을 주께 드렸다.
둘째로 구약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읽고 그 말씀의 뜻을 강해하면서 신앙과 행위에 대한 설교를 했다.
셋째로, 그들은 기도에 대해서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주님의 기도를 비롯하여 주님의 재림을 소원하는 기도를 드렸고 아멘의 응답을 활용했다.
넷째로, 예물의 봉헌으로써 감사와 헌신의 표현을 계속했는데 이 예물은 주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웃을 돕는 성도의 관심을 나타낸 것이다.
다섯째로, 이들은 공동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고백과 신앙의 고백을 하였으며 용서를 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끝으로는, 이들의 예배의 극치를 이루었던 성만찬 및 예수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세례를 베풂으로써 예수의 구속 사건의 새로운 다짐과 은총의 경험적 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곧 자신들이 특수한 공동체임을 재인식하는 기회가 되었고, 이 예배 속에서 다져진 신앙은 성령의 역사와 함께 복음전파에 역동적인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이러한 예배 내용의 증언은 예수의 등장과 함께 신약시대의 예배가 새로운 양상을 띠면서 핍박을 가져오게 되었다. 새롭게 노출된 예배의 내용이나 형태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연히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집중적인 노력과 정력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예배를 통하여 그들의 생명이 결속되었고 주님의 명령에 따라 가졌던 성만찬 속에서 새로운 신앙의 활력소를 찾았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자연적으로 이들 예배의 내용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새로운 사명을 재확인하는데 역점을 둔 예배 분위기를 형성해 나갔다.
이상과 같은 예배이 내용에서 볼 때 당시의 예배가 회당예배와의 절충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로마의 핍박 속에서도 이들의 예배는 기독교적 순수성을 지니 예배로서 새로운 의미와 결속을 갖게 되었고 교회의 조직과 예배의 형태를 더욱 굳힐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핍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피로 뭉쳐진 예배하는 공동체 의식이 날로 더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