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삼위일체 신관(요14:16-17)-목사 주바나바

주 바나바 2022. 7. 24. 11:57

삼위일체 신관(14:16-17)

 

목사 주바나바

가끔 우리는 신관에 대하여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믿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인가? 예수님인가? 성령님인가? 구약 성경에는 예수님이란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에는 오직 한분 하나님 곧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면 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 믿는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 하나님 이외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은 결코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에 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신약성경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신약성경은 증언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의롭다하심을 얻게 된다.

 

그러면서 성령님의 역사도 소개합니다. 이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고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심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 역시 하나님 자신임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신의 존재를 믿을 때에 하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믿는 것, 그리고 성령님을 믿는 것은 동등한 내용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내용인가? 어떻게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표현해야 바른 표현인지 기독교 신관에 대하여 혼돈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을 가장 당혹케 하는 교리가 삼위일체신관입니다. 세 분 하나님이 한 분이 되고, 한 분 하나님이 세 분이 되는 이 교리는 많은 사람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다가 포기하기도 하고, 또 세 분 하나님을 하나님의 세 가지 존재양태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는 어떤 신비일까? 삼위일체하나님이란 도대체 어떠하신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일까? 삼위일체신관에 대한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삼위일체신관은 삼위가 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삼위일체신관에서 중요한 내용은 삼위라는 말의 뜻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라는 말은 말 그대로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뜻입니다. 대한민국 내의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은 하나님의 삼위 되심의 삼위를 세 분으로 생각하지 않고, 셋이긴 하지만 세 분이 아닌 다른 어떤 형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 빨리 버려야 할 사고입니다. 많은 경우에 삼위는 한 분 하나님이 세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 어떤 형태로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은 초대 교회가 이미 이단으로 규정한 양태론 이단으로 흐르는 사고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 되심을 세 분 하나님으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삼위일체론을 바르게 이해하는 첫 단추를 잘못 꿰고 있는 분들입니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은 세 분입니다.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말할 때 그것이 성부 하나님을 지칭하는 말일 때는 정확한 말이지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삼위를 지칭하는 말로서는 지극히 부적절한 표현이 됩니다. 구약성경에 기술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성부 하나님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6:4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에서 표현되고 있는하나라는 표현은 삼위일체론에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시고 참 신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중동 지방에는 수많은 숭배의 신들이 있지만 그 모든 신들은 다 거짓 신들이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참 신이시고 유일한 하나밖에 없는 신이라는 표현으로서의 하나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 때문에 하나님의 세 분 되심을 이해하는데 장애가 발생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열게 되면 세 분 되신 하나님의 모습은 너무나 뚜렷하게 등장합니다. 3:16이하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장면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성경에 계시된 대표적 장면 중 하나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성령님이 강림하고 있고, 하늘로부터 성부 하나님의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선언이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이시고 하늘이 열리면서 성령님이 예수 위에 강림하셨습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세 분 하나님의 모습을 뚜렷이 인식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 기자들은 한결같이 세 분 하나님을 나란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28:19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신약성경은 아버지 하나님만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아들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고, 성령이신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가르침에 따라 세 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고, 바로 이 세례를 베푼 자리가 삼위일체신관이 형성된 삶의 자리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세 분 하나님의 모습이 자세히 기술되고 있습니다. 복음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술이고,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의 사도들과 교회의 역사 속에서는 성령의 활동이 자세히 기술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성부 하나님 외에 다른 두 하나님을 명백하게 경험하고 있었고, 다른 두 분 역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하나님”(20:28)이라고 기술했고, 사도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의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라고 세 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도들과 교회를 축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삼위가 되신 하나님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다른 하나님이심을 말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흔히 발생하는 큰 오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동일한 하나님으로 생각하라는 이해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다른 하나님이십니다. 성부는 성자가 아니시고, 성자는 성령이 아니시고, 성령은 성부나 성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 요14:16-17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이 본문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보혜사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와는 다른 분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또한 성자께서 성부 하나님께 구하겠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성자와 성부 역시 다른 분이심을 말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에서 밝히 볼 수 있듯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는 다른 분이십니다. 예수께서는 끊임없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성부와 성자가 동일하다면 성자께서 성부께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기도할 때는 자신 곧 성자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기도는 성부 하나님께 성자의 이름으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성령이신 하나님은 끊임없이 우리의 기도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위해 대신 간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8:26~27입니다.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하시느니라.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이 본문에서도 밝히 알 수 있는 것은 성령은 성부가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성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성부와 성령이 같은 분이시라면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성부께 기도한다는 이 본문의 내용은 너무나 이상한 내용이 됩니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의 기도는 성부와 성자가 전혀 다른 분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잘 나타내 줍니다.

 

26:39입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자신의 뜻을 아버지의 뜻에 복종시키는 비장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과 이 땅에 오셔서 구원 사역을 행하시는 성자는 같은 분이 아니라 다른 분이십니다. 마침내 성자께서는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라는 부르짖음을 남기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 성자의 부르짖음은 성부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입니다. 십자가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죽으신 것이 아니고, 성자 예수께서 고통을 당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성부 수난설은 고대 교회에서 처음부터 이단사설입니다. 삼위일체론을 잘못 이해해서 십자가에서 하나님 자신이 죽었다고 표현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데 이는 정교하게 가다듬어 다시 표현해야 하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 성자이시지 아버지 하나님 자신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죽음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 속에 나타난 제2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그래서 신학자 몰트만(J. Moltmann)은 저서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에서 이를 하나님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죽음으로 바로 표현했습니다. , 십자가는 성부와 성령의 가슴 한 가운데에서 죽으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었습니다. 십자가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성부께서 성자를 버리신 사건이었다면 부활은 성부께서 성령을 통해 성자를 살리신 사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죽었다면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은 어디에 있겠는가!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죽으신 아들을 다시 살리셨고, 다시 사신 성자께서는 승천해서 하나님 우편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성부 하나님이 아니시고,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까닭에 사도신경은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은 스데반이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라는 말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신경이 예수를 성부 하나님과 다른 분으로 정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셨고, 마침내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세상을 구원하는 성령의 시대가 태동하게 되었습니다. 14:26입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니라그렇습니다. 성령을 또 다른 형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매우 잘못된 표현입니다. 이와 같은 잘못은 삼위일체론에서 삼위 하나님이 각각 다른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데서 기인된 크나큰 오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각각 다른 인격체이십니다.

 

삼위일체 신관은 한 하나님(One God) 신앙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세 분의 인격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말과 세 하나님들이 있다는 말을 같은 말로 이해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말은 세 인격체를 지칭하는 말이지 삼신론을 의미하는 3()신들이나 3()하나님들이 아닙니다. 삼위일체론을 형성시킨 초대교회의 교부학자들은 하나님이 세 분이라고 언급했지만 세 하나님들이 있다고는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교회역사에서 아타나시우스와 캅파도키아 교부학자들은 3하나님들이 있다는 표현에 대해 한결같이 반대하면서 오히려 한 하나님(One God)이 있다고 언급합니다.

 

그러면 한 하나님이란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한 하나님이라는 말의 의미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상호침투와 공재(共在)를 통해 하나의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한 하나님이라고 지칭하게 됩니다. 즉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하나의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이 삶과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이 거룩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과 역사는 언제나 하나입니다. 그리고 한 분의 삶과 역사 안에 언제나 세 분의 삶과 역사가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은 성부의 영광인 동시에 성자의 영광이고 성령의 영광이다. , 하나의 하나님이란 하나의 거룩한 삼위일체 신 전체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10:30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성자 예수와 성부 하나님이 하나라는 이 말씀은 이미 삼신론이 잘못임을 드러내고 있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 14:9~10입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성부와 성자께서 하나라는 사실은 성부가 성자이고, 성자가 성부라는 말씀이 아니고, 성부는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는 성부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의 독특한 존재방식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성부께서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께서 성부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성자께서 행하시는 일은 성부께서 성자 안에서 자신의 일을 행하시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유념해야 할 것은 어느 곳에서도 성부가 성자이고 성자가 성부이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가 한 분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핵심은 성부가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가 성부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는 하나이다 라는 말입니다.

 

이와 같은 성부와 성자와의 관계는 성자와 성령과의 관계에도 해당됩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때부터 그를 잉태하신 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 안에서 성령을 통해 출생하셨고,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동안 그 분 안에 계셨고 그 분과 함께 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이렇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라는 삼위일체론은 성부가 성자가 되고 성자가 성령이 되고 성령이 성부가 되는 기괴한 사실을 설명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삼위일체신관은 한 분 하나님 안에 다른 두 하나님이 침투하여 거하시고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의 독특한 존재양태를 설명하는 교리입니다. , 한 하나님을 보면 그분과 더불어 다른 두 하나님의 모습과 영광을 함께 보게 되는 하나님의 독특한 존재양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신관은 삼위일체신관으로서 한 하나님 신관입니다. 이 같은 신관이 바로 기독교신관의 정통교리이며 정통신앙입니다. 우리들이 기독교인이라면 삼위일체신관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삼위일체신관으로 삼위일체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러한 삼위일체신관으로 나아가는 우리들 모두에게 성경은 요한서신을 통하여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12:22-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