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주님의 교회(엡 4:11-16)
건강한 주님의 교회(엡 4:11-16)
주태근 목사
유명한 인도의 정신적, 민족적 지도자였던 간디는 독실한 예수 숭배자라고 자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기독교인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 숭배하면서 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고, 교회에 나가지 않습니까?”
그는 그때마다 입버릇처럼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는 좋으나 교회는 싫습니다.”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간디가 교회에 안 나가는 이유 가운데 이런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친구 중에 안두루스라고 하는 영국 선교사가 있었는데 간디는 그와 인간적으로 매우 친했고, 그에게 전도를 받고, 설교도 듣고, 성경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간디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예배당에서 일어 났습니다. 예배당 문지기가 그를 유색인종이라고 해서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후로 그는 교회에 다시 나가지 않았답니다. 왜 현대교회가 사회를 통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신앙인 이라면 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바른 실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를 일컬어 주님의 몸이라고 칭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 공동체로 실존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 하셔서 그래서 교회입니다.
주님의 몸인 교회가 건강하면 반드시 성장하는 교회가 됩니다. 한국교회가 현재 정체현상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건강한 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교회로 교회 되게 하면 교회는 부흥합니다.
아이가 건강하면 자라는 것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신 생명체와 같은 이 교회는 건강해야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반드시 자라나게 됩니다. 건강한 교회가 되면 교회는 부흥하게 됩니다.
본문 16절에서 건강한 교회원리를 발견합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 함을 따라 그 몸을 자라게 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교회’란 건물이 아닌 모인 회중을 의미합니다. 교회란 용어 ‘에클레시아’는 세상으로부터 빼낸 부름 받은 백성을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개개인이 하나의 교회란 의미이기도 하며 교회공동체의 한 일원이라는 의미이기도 됩니다 공동체 일원인 우리들이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특별히 본문 11절에 교회에 속한 직분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왜 교회 공동체에 직분자를 세우셨습니까? 12절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사람들의 외적 조건에 따라 나보다 나은 사람과 못한 사람 등의 평가를 하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팀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들을 성경적 방식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은사에 따라 사람 바라보기’ 있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각기 다른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의식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지체라는 의식이 요구됩니다. 우리들의 손과 발 중에 어느 지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손과 발은 비교되는 지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능을 위해 존재하는 상호 보완적인 지체입니다. 이 같은 지체들의 각기 다른 역할을 존중하는 순간 우리는 피차에 비교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의 몸인 교회에 각기 서로 다른 다양한 다른 은사를 지체들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먼저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열된 직분자들이 하는 일-즉 교회 리더의 역할이 무엇입니까?--12절이 그것을 설명합니다.
피상적으로 읽으면 리더의 역할이 세 가지인 것으로 보입니다. 즉,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몸을 세우는 일 모두 세 가지라고 되어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두 가지 일을 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하나는 사역의 분야인 봉사의 일과 다른 하나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표준 새번역 성경은 이 부분을 정확히 번역했습니다."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사역의 주체가 바로 성도들이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목사의 역할이 성도들이 사역을 하도록 도와야 하는 사역임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전통적 인식에 의하면 교회에서의 사역은 목사가 하는 것이고, 평신도는 목사를 돕는 자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만일 성도들에게 목회 잘 할 수 있도록 잘 도와달라고 하면 비 성서적이라는 성경의 교훈입니다. 성도들이 목회 하는 것을 돕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가 성도들이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성경의 본래적 의미입니다.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 미국 새들백 교회의 릭 워렌 목사가 쓴 책이 있는데 그 책의 원제가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입니다. 그 책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어떤 교회는 조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있습니다.
또한 전통이 이끌어 가는 교회도 있고, 헌법이 이끌어 가는 교회도 있고, 위원회가 이끌어 가는 교회, 목사가 이 끌어 가는 교회, 장로가 이끌어 가는 교회도 있지만 건강한 교회는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그렇습니다. 목적을 망각하면 공동체는 방황할 수밖에 없고 비본질적인 것이 교회를 지배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섬김이 바로 목적이라는데 있습니다.
본문에 따르면 우리의 봉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12절) 직분자들이 하나 같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나갈 때에 교회는 활력을 얻게 됩니다.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이 또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13절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숙한 인격을 닮아 가는 생활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한사람 한사람의 인격이 성숙하도록 돕는 생활입니다.
교회는 조직 이상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섬겨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하는 모든 봉사의 초점은 일 자체가 아닌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로 이웃을 어떻게 유익 되게 할 것인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이들이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을 더 닮아 가는 사람이 되도록 섬겨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사역의 두 가지 섬김의 방편에 균형이 있을 때에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이 두 가지 방편은 바로 “진리와 사랑”입니다. 진리 없는 사랑은 감상적인 사랑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사랑이 없는 진리는 결코 상대방을 감화시킬 수 없습니다.
본문 14절은 진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섬기는 사람들이 진리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설 수 있도록 세워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직분자로서 바르게 섬기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를 게을리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웃을 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주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위한 유명한 기도의 장 요한복음 17장에서 "저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곧 진리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무장이 지체인 성도들에게 있을 때 건강한 교회의 비전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바울 사도는 이어지는 말씀 15절에서 사랑의 균형을 강조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 없이는 어떤 사역도 열매 맺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을 변화시킨 리빙스턴의 전기를 쓰던 전기작가가 리빙스턴이 가르친 설교말씀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무엇이냐? 고 물었을 때 한 추장이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가 무엇을 가르쳤는지는 다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그는 우리를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정말 한번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면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이웃을 치유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우리를 통해 민족이 치유되고 세상이 변화됨을 볼 것입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면서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12명의 제자들이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주님은 너희가 온 인류를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12명만이라도 사랑한다면 세상은 변화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12명에 대한 사랑의 연습 그것이 바로 건강한 교회가 되는 훈련입니다. 그 중에는 사랑하기 어려운 가롯 유다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 때문에 여러분은 기도할 것입니다. 기도하며 원수도 사랑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교회의 모습은 완성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넌 참 나의 제자야! 내가 너에게 이 세상을 맡기노라"하고 말씀하심을 반드시 듣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4장 1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 이르리니”
여기서 '온전한 사람'은 도덕적 흠이 없이 완벽하게 성결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이 된 상태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에서 보듯이 원줄기인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거하고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가 온전한 줄기가 되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온전함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저절로 이루어지는 온전함입니다. 그의 생명의 풍성함이 우리 안에 부어지므로 우리가 참으로 온전해 지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고 믿으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을 이루게 되기에 나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때 나 자신만을 생각하면 안 되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온전함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온전한 사람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 있을 때만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어성경 번역에는 훨씬 이해가 잘 되도록 번역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은 자가 되어야 한다고 번역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머리가 있는 자리에 올라가서 몸 전체를 보고 생각하고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 전체를 조정하고 운영하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우리도 자신만을 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생각할 줄 아는 자리에 이름을 뜻합니다. 동시에 몸 전체를 보시는 그리스도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을 받아드리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휘를 따라서 온 몸이 서로 완전히 어울려서 일치를 이루고 통일성을 회복하며 균형을 잡게 되면 그리스도의 몸인 우주적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며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교회의 목적이며 사명입니다.
어떤 팀에 뛰어난 실력을 지닌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믿고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게을리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경기에 출전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결과는 보나마나 뻔합니다.
백 번을 싸우면 백 번 다 패할 것입니다. 감독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선수들을 훈련시켜 뛰게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감독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아! 내가 혼자 잘해도 소용이 없구나. 선수들이 잘 뛰지 않으면 나 혼자 잘하는 것 가지고 안 되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경기에 내보냈는데 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을 제쳐두고 자기가 뛰기 시작했다고 해 보십시오. 물론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가정해 보십시오. 그 팀이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이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감독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선수들의 협력이 없이는 뜻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경기를 마친 감독이 패인을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훈련을 시켜서 경기에 출전시켰습니다.
이번에는 선수들의 실력은 뛰어났는데 서로 사인이 맞지 않았습니다. 서로 골을 넣으려고 다투는 바람에 번번이 공을 빼앗겼습니다. 자기가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려고 하다 보니 패스도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기분에 맞지 않으면 경기장 밖으로 퇴장하기 일쑤였습니다. 여러분, 그 팀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보지 않아도 그 결과는 뻔한 것입니다.
경기를 마친 감독과 선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습니다. 우리가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반성을 하고는 각자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했습니다. 감독은 선수들을 열심히 훈련시켰습니다. 선수들은 열심히 훈련받고 경기장에 나갔습니다.
감독의 사인에 따라 선수들은 열심히 뛰었습니다. 서로 공을 세우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위치를 지켰습니다. 공이 오면 적절한 자리로 패스를 해 주었습니다. 마침내 그 팀은 그 경기에서 승리하게 되었고 감독과 선수들 모두가 영광과 기쁨을 누렸습니다.
주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경기를 하려고 출전한 선수단(team)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가 그 팀의 감독이라면, 성도들은 경기에서 직접 뛰는 선수들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저와 여러분은 **교회라는 주님의 몸에 소속된 한 팀이 되었습니다. 감독이 제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혼자서 경기를 승리로 이끌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목회자가 아무리 능력이 있고 탁월한 실력이 있어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목회자가 아무리 설교를 잘 해도 혼자서 교회를 부흥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선수 개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다 해도 감독이 없는 팀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선수들이 서로 공을 세우겠다고 다툰다면 결코 승리를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인들 개개인의 면면이 뛰어나다 해도 목회자와 성도들, 그리고 성도들 상호간에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한국교회는 목회자 중심의 교회를 유지해 왔습니다. 성도들은 그저 배우기만 할 뿐 어떻게 일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저 하는 일이 있다면 몸으로 뛰는 봉사에만 전념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구조에서 전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목회자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열심히 배우고 훈련받은 대로 남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봉사하는 일에 은사가 있는 분은 봉사해야 할 것입니다. 전도하는 일을 위해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분은 가르치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목회자 혼자 뛰는 교회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함께 뛰는 교회가 될 때 건강한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가 역할을 분담해야 됩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 가르침을 따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몸 된 교회를 자라게 하고 세우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는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실 것입니다. 풍성한 복과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 을 충만케 하라"
아멘. 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