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선교강의록

아라비아반도지역 기독교선교-교수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7. 31. 11:59

아랍선교강의록(7) : 교수 - 주태근

 

2부 이슬람세계 초기기독교선교

 

1. 아라비아반도지역 기독교선교

 

1) 아라비아반도 지리

 

아라비아 반도는 북서단~남동단 약 2,200 km, 동서 너비 약 1,200 km, 면적 약 300동쪽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인도양이 있으며, 서쪽은 홍해, 남쪽은 아라비아해와 아덴만에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은 사막지대로 중앙아시아에서 아프리카의 사하라로 이어지는 대()사막지대의 중앙부를 차지한다. 이 지역은 비옥한 초생달 지역으로서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및 팔레스타인과 이에 부속된 사막이 있다. 예멘의 서남 지방에는 물이 많은 산악 지방이어서 일찍부터 농업이 발달되어 정착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라비아반도의 나머지 부분은 물 없는 스태프(Steppes)나 사막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간혹 그 속에 오아시스가 있을 뿐이다. 거주민의 대다수는 유목민이어서 목축을 하거나 주변의 오아시스나 경작 지역의 정주민을 습격하여 생계를 꾸렸다. 정치적으로는 중앙의 사우디아라비아, 북동쪽의 쿠웨이트, 남쪽의 예멘, 남동쪽의 오만, 동쪽의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 그리고 카타르의 7개국으로 나누어져 있다.

 

아라비아반도 자연은 홍해 연안을 따라 산맥이 이어져 있으며, 남쪽에 이를수록 고도가 높아져 예멘에는 3,760m의 높은 봉우리도 솟아 있다. 이 산맥과 홍해 사이에는 티하마라고 불리는 좁은 대상의 저지가 이어져 있으며 혹서(酷暑)와 서열(暑熱)로 알려져 있다. 인도양 기슭에도 하드라마우트산맥이 동서로 달리고 있으며, 남동쪽 오만에도 아하다르산맥이 달리고 있는데 해발고도 3,000m를 넘는다. 오만과 하드라마우트 사이의 내륙이 룹알할리(Rub' al-Khali: 공허지대)라고 불리는, 면적 약 65에 이르는 대사막이 생물의 생존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전개되어 있다. 반도 전체가 큰 대지이며 북동쪽을 향하여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아라비아반도의 중앙지역과 북쪽을 아랍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세 지역으로 나눈다. 북쪽은 구릉지대로 옛날 히브리 성서에 나타나는 미디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지방이며 다음은 히자즈지방으로 옛 이름을 야스리브(Yathrib)로 칭한 메디나와 예언자 무함마드의 탄생지인 메카 그리고 이슬람교도 순례자들의 상륙지인 제다(Jeddah)항구가 있는 곳으로 수에즈운하로부터 인도양에 이르는 산맥과 홍해와의 중간을 남북으로 잇고 있다. 아라비아 반도의 남서 지역은 예맨(Yemen)으로 불리며, 히자즈 및 예멘의 양저지는 티하마(Tihamah)라고 불려진다. 예멘 동쪽에는 하드라마우트(Hadramaut) 지방이 인도양에 닿아 있으며 멀리 동쪽으로는 오만(Oman)만이 있다. 히자즈 산맥으로부터 동쪽 페르시아만의 알바하라인 사막에 연하는 고원을 나지드라 칭하는데 이곳은 사막으로 오아시스가 다수 존재하고 있는 대평원이다.

 

남서부는 예로부터 행복한 아라비아라고 불리던 곳으로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몬순의 영향으로 비가 많다. 오만 지방도 이에 버금간다. 지중해의 습기는 봄 과 가을 두 계절에 북부에도 영향을 미쳐 약간의 비를 몰고와 곳곳에 오아시스를 만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은 극도로 건조하여 고대부터 사막의 아라비아라고 불렸다. 여름은 혹독한 더위로, 이따금 50가 넘는 곳도 있다. 사구(砂丘)의 광야도 있고 돌덩어리가 넓게 펼쳐진 들이 있는 등 전체 사막이 똑같지는 않으며, 서부의 산맥에는 사화산(死火山)이 여러 개 있고, 헤자즈 지방에는 분출된 용암의 황야가 적지 않다.

 

동부 페르시아만의 연안지대는 원래 바다였던 곳으로 그 시대의 식물과 동물이 수km의 깊은 층을 이루며 침전되어 세계 제일의 유전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이 발견되고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의 일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해안선은 아주 단조로워 좋은 항구는 극히 적다. 인도양에 면한 아덴은 천연의 양항이며, 이에 버금가는 항구는 오만의 무스카트이다. 중부 네지드 고원을 둘러싸듯, 사구가 줄지어 있는 사막이 전개되고 있는데 네푸드 또는 라믈라로 불리고 있다. 사구는 높이 1m 정도의 것부터 200m에 이르는 것까지 있다. 남서부나 오만 지방에는 연중 물이 흐르는 하천이 있으나 반도 전체를 통하는 대하천이나 호수는 없고 강우 때만 일시적으로 물이 흐르는 와디(wadi)가 적지 않다. 대삼림은 전혀 볼 수 없으나 오아시스에는 대추야자가 많다. 대추열매는 주민의 주식이며 잎이나 나무껍질은 여러 가지 생활용구로 이용되고 있다. 곡물은 보리, , 조 등이 주종이며, 그 밖에 목화, , 잎담배 등도 다소 산출된다. 예멘 지방은 커피와 잎에 약간의 마취성이 있는 카트라는 식물이 산출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남부 인도 양안의 유향(乳香)은 고대부터 유명하였다. 또 남빛 물감의 원료가 되는 쪽이나 황색염료인 와루스, 적색염료의 헤너 등도 산출된다. 과실류로는 포도, 석류, 무화과, 복숭아, 바나나 그 밖에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를 즐기는 것은 정주민뿐이며 유목민은 우유나 대추야자 등을 상식(常食)으로 한다. 동물 중에서 가장 긴요하게 쓰이는 것은 낙타이며 양과 산양은 그 다음으로 꼽는다. 유명한 아라비아말은 아주 소수만 보존되어 있다.

 

아라비아 반도에는 각 시대에 따라 여러 부족이 거주했다. 최초의 거주민은 고대 칼라디(Chalaean)인과 동계의 인종이라고 전해진다. 이 민족은 위대한 문명을 구축하여 그 유적이 현재에도 남부 아라비아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그 영향은 이집트 및 메소포타미아 지방까지 미쳤다고 상상되고 있다. 그들은 대궁전이나 대사원을 건축한 것 같으며 지금도 아덴 부근에 남아 있는 유명한 물탱크의 유적은 그들이 건조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고대주민은 유프라데스강 동쪽 어디에선가 나온 셈족계의 일족에 의해 멸망되었고, 이 일족이 예멘지방 및 하드라마우트(Hadramaut)의 여러 곳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들은 카탄(Chatan)의 후예로 그 자손의 한 사람인 야래부(Yalab)의 이름을 국명으로 하였으며 야래부의 자손으로 이 왕조의 군주가 된 사람을 사바(Saba)왕조의 군주라고 칭하였다. 카탄카의 군주들은 위대한 정복자인 동시에 위대한 도시 건설 자들이었고 예멘 및 기타 여러 지방은 그들의 지배가 서기 7세기까지 계속 되었다. 아라비아 남부의 예맨 지방은 예로부터 향료의 생산지인데 인도와의 무역 중계지로 번창했다. 헬레니즘 시대로부터 각 왕국들은 관개 농경에 의한 향료 생산이나 교역 활동으로 생활했다.

 

아라비아반도의 역사는 적어도 B. C. 10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남서부지역, 현재 예멘의 오지에 미나 ·사바 등의 왕국이 일어나 거대한 돌을 쌓아올려 댐을 만들고 관개를 해서 농경을 영위하였고, 독특한 문자를 사용하였으며 훌륭한 신전이나 왕궁 등을 세웠던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양 방면과 지중해 및 비옥한 초승달지대 방면과의 통상로(通商路)를 차지하여 번영을 이루었다. 아라비아의 북부, 특히 지금의 시리아 사막이나 요르단 방면에 걸쳐서 페트라의 나바타이 왕국(B.C. 4세기A.D. 1세기)이라는 아랍 국가가 번영하였으며 얼마 후에는 팔미라 왕국도 발흥하였다. 가산 왕국이나 라흠 왕국 등은 그보다 후에 아라비아 북변에서 일어난 아랍 국가인데 모두 그리스도교를 신봉하였고 그리스나 페르시아 문화를 아라비아에 도입하는 역할을 하였다.

 

아라비아에는 상당히 일찍부터 유대교나 그리스도교가 퍼져 있었으나 중부 네지드나 서부 헤자즈 지역 주민의 대부분은 다신교도로 메카에 있는 카바 신전은 신들을 모시는 곳이었다. 메카에서 태어난 무함마드(570~632)에 의하여 유일신 알라의 가르침인 이슬람교()가 확립되자 카바는 알라 신전이 되었고(630), 아라비아 전역은 처음으로 종교적 ·정치적으로 통일되었다. 무함마드가 죽은 후 아라비아인에 의하여 아시아 ·아프리카에 걸친 대정복이 이루어지고 이슬람제국이 출현하기에 이르렀는데, 처음 약 30년 간 그 수도는 무함마드의 묘지가 있는 메디나였다. 그러나 우마이야왕조 때(661750) 수도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옮겨지자 메카와 메디나 2성시(聖市)와 그곳으로 향하는 순례로(巡禮路)를 제외하고는 점차 역사의 진전에서 뒤떨어지게 되었다. 900년 무렵부터 이슬람의 별파(別派)인 카르마트파()가 동부를 중심으로 일종의 공산제도 국가를 세웠으나 12세기 이래 이집트의 지배를 받았으며, 16세기부터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 하에 놓였다. 18세기 중엽 중부 네지드에 와하브파()의 종교운동이 일어나 새로운 시대에 들어갔다. 이븐사우드가()가 와하브파의 옹호자가 된 뒤 거의 모든 반도를 통일하려는 듯 강세를 보였으나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충돌하여, 이집트의 번왕 무함마드 알리가 파견한 군대에 의하여 수도 다르이야는 파괴되었다(1818). 그러나 와하브 왕국은 부흥하였고 몇 차례의 변천을 거쳐 제1차 세계대전 후 현재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되었다.

 

예멘 지방도 오랫동안 이집트나 터키 등의 지배를 받아왔으나, 이 지방에는 예로부터 이슬람교 시아파의 지파(支派)인 자이드파를 믿는 사람이 많았고, 야파 하미드 딘이 1904년부터 그 교주(이맘)가 되어 제1차 세계대전 때 터키 세력을 물리치고 전 영토의 지배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629월 야파의 아들 아하마드의 죽음과 함께 혁명이 일어나 공화정부가 수립되었다.

 

아라비아반도에서 가장 일찍 고도의 문화가 발달한 곳은 예멘을 중심으로 하는 남서부지방이다. 이 지역은 B. C. 수백 년 무렵 이미 상당히 진보된 고층건축을 비롯하여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석조댐 등을 축조할 정도였다. 이에 반하여 중 ·북부는 유목민이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원시적인 생활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오아시스에는 도시와 촌락이 발달하였고, 그 중 하나인 메카에서는 이슬람교가 일어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가 되어 세계 문화사상 매우 큰 역할을 해왔다. 또 이들 유목민 사이에서 발달한 아랍어()는 이슬람 시대에 들어온 뒤 페르시아만에서 대서양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 퍼졌고 이는 토착 제민족(諸民族)을 서서히 아랍화하여 아랍 민족을 형성하는 주요소가 되었다. 또한 메카와 메디나는 이슬람교도의 성지가 되어 해마다 열리는 메카제()에는 전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신도들이 모이고 있다. 반도 동부의 유전개발로 인한 부의 축적과 생활양식의 변화로, 고유의 생활관습 등도 점차 소멸되어가고 있다. 사막을 관개하여 유목민을 농경민으로 정착시키려는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

 

아라비아 반도의 인구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실제 인구통계를 내본 일이 없다. 1990년의 국제연합(UN) 통계를 바탕으로 추산하면 약 2000만 내외로 짐작된다. 정치적으로는 많은 국가로 나누어져 있다. 그 중 가장 넓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인데 주민의 5/6 이상이 유목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예멘에는 농민이 많다. 쿠웨이트는 인구 약 140만의 작은 나라이지만 영국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가 유전을 개발하여 현재 세계적인 생산액을 올리고 있다. 그 밖에 페르시아만 연안에는 오만 ·카타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가 있다. 이들 나라들은 인구에서도 오만 89, 아랍에미리트 80만을 제외하면 총 30만에 이르지 못하는 나라이지만 유전의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