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예기치 못했던 은혜(눅 9:28-36)-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2. 11:22

예기치 못했던 은혜(9:28-36)

 

 

설교:주태근 목사

 

한 청년이 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대학의 신학과정을 마친 후 선교사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 청년은 너무 기뻐서 당장 옷과 구두를 준비하려고 시장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자동차 사고를 당해 부득이 한쪽 다리를 자르게 되었습니다.

 

의족을 하게 된 그는 크게 낙망하여 "하나님! 제가 선교사로 나간다는데 어찌하여 다리를 자르시는 겁니까?" 라고 울부짖으며 괴로워하였습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낙심해 있던 그는, 어느 날 아프리카로 갈 선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설마 나 같은 사람도 받아주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신청을 하였으나, 놀랍게도 합격을 하여 마침내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그는 어느 날 식인종들을 만나게 되어 죽음의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식인종들이 빙 둘러싸고는 이 백인을 잡아먹겠다며 축제를 벌입니다. 그 때에 이 선교사는 의족인 자기의 한쪽 다리를 뚝 떼어서 저들에게 던졌습니다. 고무다리를 받아 든 식인종들은 이것을 먹어보더니 질겁을 합니다.

 

"이것은 신이다!" 라고 하면서 이 선교사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을 쉽게 전도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선교사는 그때에 가서야 자기의 다리 하나가 잘린 이유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친구가 복권을 사는 모습을 보고 생전 처음으로 산 복권 한 장으로 억대의 상금을 받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 삶 속에는 기대하지 못하던 일들이, 기대하지 않던 장소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을 통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종종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디안 선교에 실패하고 본국에 귀환해 실의에 빠져 런던 거리를 배회하던 요한 웨슬리는 어느 날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노방 전도를 마치고, 어는 기도회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도회 모임은 경건한 모라비안 형제단들의 기도회 모임이었습니다. 그는 그 기도회에 우연히 참석했다가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는 성령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감리교를 일으킨 유명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가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많고 가고 싶지 않은 곳도 많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그 곳에 갔다가, 또는 마지못해 그 곳에 갔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을 경험하며, 또 은혜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도 계속되는 여행 중에 제자들은 몹시 피곤했을 것이고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너희들은 여기에서 좀 쉬고 있어라.” 피곤한 제자들의 마음을 아신 것인지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뻐한 순간도 잠깐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지명하시며나하고 좀 갈 곳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피곤은 더 몰려 왔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것은 정말 싫었고 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몸은 물먹은 솜처럼 천근만근이어서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은 심정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잠이나 한숨 푹 자고 내려오지 하는 맘으로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곳에 그렇게 엄청난 은혜가 예비 되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언제나 그러신 것처럼 산 정상에 오르시자 예수님께서는 너희들은 저기에서 기도하라고 하시고 한쪽에서 자리를 잡은 다음, 그 곳에서 기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이 기도하시는 동안 그래도 체면은 있어서 잠깐 건성으로 기도하고 애당초 올라올 때 마음먹은 것처럼 그들은 한숨 푹 자고 내려가기 위해 자리를 잡고 누웠습니다.

 

너무 피곤하면 잠이 안 오는 것인지 그날따라 몸만 피곤했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고 있었습니다. 한잠 자려고 안간힘을 쓰다보면 잠은 더 오지 않는 법.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면서 한참을 보내다가 눈을 떠보니 굉장한 사건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산 정상이 찬란한 빛과 하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고, 예수님께서 입으신 옷은 눈부실 만큼 희었으며,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두 사람과 말씀을 나누고 계시는데, 그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았더니 그들은 바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요 신앙의 거성으로, 늘 생각하고 흠모하던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순간적으로 그들은 감격과 기쁨에 가득 차서,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이런 감격스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모세와 엘리야도 부복하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다니. 예수님께서 그렇게 놀라운 분이셨다는 말인가? 그들이 존경하는 신앙의 위인들과 이 권능의 예수님이 함께 모인 이 산 정상이야말로 그들이 거하고 싶던 바로 천국, 그 자체임을 깨닫게 되면서 제자들은 감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입도 제대로 다물지 못하고 있던 제자들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에 그들이 들어섰음을 생각하면서 이제까지의 피곤과 혼동과 고통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곳은 그 어느 자리보다 감격스러운 자리였습니다. , 이런 영광의 주님이라면 목숨을 드리고 생명을 다해 일생을 섬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주님을 우리가 모시고 있다니 `이 감격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 감격스런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영광에 흠뻑 취했던 베드로는 그 감격과 영광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주님, 이 영광의 자리에서 살고 싶습니다. 이 영광의 자리에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영광의 세 분을 모시고 살다 죽는 것이 저희의 소원입니다. 저 복잡하고 문제 많은 세상, 이 영광의 주님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대적하는 곳에 구태여 내려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감격에 겨워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갔니다. 그러나 그 영광의 주님이 원하시면 그리하고 싶다는 소원을 아뢰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영광의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겠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초막 셋만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들은 어디에 거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저 놀라우신 주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모세에게서 직접 율법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축복의 사건인가?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대해 듣는 것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그들이 들떠서 주님께 자신의 생각을 아뢰고 있을 때, 온 산이 구름으로 뒤덮이기 시작하더니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들려 오는 음성을 들으면서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옛적에 선지자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에 대한 일말의 의심도 모두 사라지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하는 확실한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놀라우신 주님을 온 정성과 마음 다해 섬기겠다고 결심하며 주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생명 다하는 그 날까지 주님만 섬기겠습니다.”그런 결심과 고백을 가지고 세 사람은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들의 심령에는 기쁨이 넘쳤고, 그들의 감격은 벅차올랐습니다. 그들이 처음 주님 만났을 때, 그 기쁨과 그 감격이 그들의 심령을 채웠습니다. 그 영광의 한복판에 서 있을 때 그들은 깊은 공포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누가 감히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 생명을 지킬 수 있을까? 그들은 깊은 공포감에 사로잡혔지만 그들은 더욱 하늘 음성에 사로잡혔습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오직 예수님 외에는 보이지 않더니 그들은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영광스러운 감격에 사로잡혀 떨면서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 때, 그들을 부드럽게 만지는 손길이 있어 그들이 눈을 들었을 때 모두 다간 곳 없고 오직 예수님만 그 곳에 서 계셨습니다. 우리 곁에 부드러운 손길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님만 거기에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려가자. 이제 가서 복음의 역사를 이루자. 말로 할 수 없는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을 뒤따라 내려오는 그 길엔 아침 해가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행상의 아들로 태어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에 한을 품고 무섭게 일했습니다. 야심찬 사업가로 변신한 그의 인생철학은 `나를 위해, 돈을 위해'였습니다

 

청년은 미국 석유업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적인 대부호로 성장 했습니다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심하게 착취했습니다. 사람들은 존경심이 아닌 돈 때문에 그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나이 쉰 셋 몸과 마음은 심하게 망가져 있었습니다. 심한 노이로제와 소화불량, 무력감과 악몽….의사는 죽음을 준비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그 때 신앙의 눈을 뜬 대부호는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로 인생관을 바꾸었습니다.

 

거액을 쾌척해 시카고대학을 설립했습니다. 리버사이드교회도 세웠습니다. 여생을 `교육'`선교'`사랑실천'에 쏟았습니다. 그는 베푸는 삶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그가 바로 98세까지 장수한 록펠러입니다

 

이철환 님의 '연탄 길'에 이런 미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음식점에 여자아이가 동생 둘을 데리고 들어옵니다. 누나와 동생들입니다. 누나가 동생이 원하는 자장면을 시켜줍니다. 누나는 점심 먹은 게 체했나 보다고 못 먹겠다고 답합니다. 동생은 그래도 맛있다고 먹으라 말합니다. 동생에게 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사실은 동생 생일이니까 없는 돈에 동생이나 먹이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때 주방에서 아주머니가 나옵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아는 사람처럼 인사합니다. "너 혹시 인혜 아니니? 인혜 맞지? 엄마 친구야. 나 모르겠니? 영선이 아줌마....... " 잘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라서 기억에 안나는 모양이라면서 "인정이도 많이 컸구나. 그땐, 걸음마도 못하더니..." 이렇게 말하면서 그들에게 엄마친구시구나 하는 마음을 줍니다. 그리고 자장면 세 그릇과 탕수육을 가져다줍니다. 언제든지 자장면 먹고 싶으면 오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은 떠나고 남편이 묻습니다. "누구네 애들이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안 나는데......." "사실은 나도 모르는 애들이에요. ...... 엄마 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 또 올 수도 있고 해서.......... " 아이들의 이름을 부른 것은 그들이 부르는 이름을 기억해서 반복했을 뿐입니다. 가난으로 주눅든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그녀의 모습에서 남편은 깊은 감동을 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소리 없이 아픔을 감싸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나루터에서 읽었는데 참 감동적이어서 요약했습니다. 이 정도로 마음씀씀이만 조금 변화하여도 아름다운데, 천국 영광의 형체로 변화되는 일은 얼마나 놀랍겠습니까? 예수님의 변화는 도덕적 변화 이상입니다.

 

예수님의 변화는 인격적 변화 이상입니다. 예수님의 변화는 하나님 형상을 회복한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변모는 본질적인 변모입니다. 번데기가 나비로 변화하는 것 이상으로 완전한 변모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이렇게 변화할 것입니다.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천국 주인으로의 변화입니다.

 

우표를 최초로 만들었던 로우랜드 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전목마는 조금도 전진하지 못하는 기독교 신자와 비슷하다' 한 발자국씩이라도 앞으로 전진해야 하는데, 1센티라도 믿음이 자라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조금씩이라도 좋은 쪽으로, 긍정적인 쪽으로, 죽지 않고 사는 쪽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단 한 발자국이라도 세상 쪽으로 가지 말고 주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쓸모 없는 휴지나 폐지들도 제지 공장으로 들어가면 얼마 후 멋진 새 종이가 되어 나옵니다. 쓸모없는 쇠붙이들이 용광로 속에 들어가면 값비싼 철강재가 되어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믿고 그 안에 있으면 내가 변하고 새사람이 되는 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내가 변하여 새사람 되면 가정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