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 설교원고

새 언약의 주님(창15:1-17)-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2. 11:32

새 언약의 주님(15:1-17)

 

 

목사 : 주태근

 

아리따운 소녀가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소녀는 혼자서 산책하다가 그만 길을 잃고 어느 우물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갈증이 심하여 두레박줄을 타고 내려가 물을 마셨는데, 다시 올라가려고 하니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합니다. 때마침 그곳을 어떤 청년이 지나다가 울음소리를 듣고 그녀를 구해 주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을 맹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청년은 다시 길을 떠나게 되어, 소녀와 작별을 하기 위해 다시 만났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사랑을 성실히 지킬 것을 약속하였고 결혼할 수 있는 날까지 언제까지라도 기다리자고 굳게 언약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자기들 약혼의 증인이 되어 줄 누군가를 찾아보자고 이야기하고 있을 때 족제비 한 마리가 나타났다가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금 지나간 저 족제비와 우리옆에 있는 이 우물이 증인입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믿고 서로 헤어졌습니다. 그 후 몇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녀는 서로의 약속을 지키며 그 젊은이를 기다렸지만 그녀를 떠난 젊은이는 딴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도 낳고 약속을 잊은 채 즐겁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아이가 풀밭에서 놀다가 그만 잠이 들었는데 그때 족제비가 나타나 그 아이의 목을 물어 죽였습니다. 부모들은 매우 슬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 그들 사이에는 또 아이가 태어나 옛날처럼 행복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걸어 다닐 수 있을 만큼 자랐는데 우물에 비친 갖가지 그림자들을 들여다보다가 그 아이마저 그만 우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젊은이는 그때서야 문득 옛날 그녀와의 언약이 생각났고, 그때 두 사람의 증인이 족제비와 우물이었다는 사실도 생각해 내었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하고는 헤어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는 약속한 소녀가 있던 마을로 돌아왔는데, 약혼녀는 그때까지 약속을 지키며 혼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약속은 중요합니다. 약속에 의해 국가와 사회가 구성되고, 약속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입니다. 만약 약속이 없다면 세상의 질서는 엉망이 될 것입니다. 국가와 국가가 약속에 의해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사회는 기본적인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약속은 지켜지기도 하고 또 어떤 약속은 깨지기도 합니다. 대체로 우리는 약속을 얼마나 신실하게 지키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과 사람됨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대할 때 늘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에 따라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이 그돌라오멜의 동맹군을 다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엄청난 승리였고 그 승리로 인하여 아브람은 무명의 시골 농부에서 이제 모든 사람이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는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에게는 큰 걱정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불안이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오십니다. 본문 1절을 봅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이 처음 아브람을 부를 때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처음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이 그에게 약속하신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신 기업의 약속과 '너의 자손을 땅의 티끌처럼 하늘의 별들처럼 셀 수 없을 만큼 번성케 하시겠다'는 자손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에 나타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우시며 그 약속을 확증하십니다. 옛날 아브람이 살던 당시에는 언약을 세우는데 특별한 의식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것을 사고 파는 거래가 있었을 때 마지막에 그 두 사람은 산 동물을 잡아 그 몸통을 둘로 쪼개어 놓고 그 쪼갠 고기 사이, 피가 가득한 곳을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걸어갑니다.

 

이런 의식은 우리가 맺은 약속이 결코 변할 수 없다고 하는 표로서, 만일 우리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언약을 어길 때는 이 짐승이 죽어 피를 흘린 것처럼 죽음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을 의미하는 언약식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역시 사람들이 행하는 것처럼 아브람에게 짐승을 잡도록 명령하셨습니다. 3년 된 암소와 3년 된 암염소와 3년 된 수양을 잡아서 그것을 반으로 쪼개어 서로 평행이 되게 마주 대하여 놓았습니다. 집비둘기와 산비둘기도 잡아서 마주 대하여 놓았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손을 맞잡고 지나면서 서로의 약속을 결코 변치 않기를 다짐하며, 만일에 그 약속을 한 사람이라도 어기는 경우에는 이 짐승이 피를 흘리고 죽은 것처럼 그런 죽음을 당하리라는 것을 맹세했던 것처럼 하나님이 아브람과 그 언약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피로 맺는 언약체결입니다. 아브람은 짐승을 잡아 놓고 하나님이 나타나시기를 기다립니다. 피 냄새를 맡고 솔개가 그 짐승들 위로 내려오려고 합니다. 아브람은 그것을 쫓으며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밤이 깊어 갑니다. 그러다가 아브람이 깜박 잠이 든 사이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그 후손들에게 앞으로 있게 될 일들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아브람에게 주시지만 지금 당장이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 이방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게 될 것이고 그 후에 해방되어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땅의 주인이 될 것이며 아브람은 장수하다가 죽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표시로서 하나님 혼자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십니다. 사람들의 언약은 언약의 당사자 두 사람이 피 흘리고 죽은 짐승 사이를 지나면서 피를 보며 그 언약을 지키기로 맹세를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함께 그 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연기 나는 풀무와 횃불로 하나님 혼자서 그곳을 지나가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아브람과의 이 언약을 깨트리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아브람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잊고서 그 언약을 어긴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 언약을 잊지 않고 지키시겠다고 하는 맹세의 의식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아브람과의 약속을 어기신다면 하나님께서 그 쪼개놓은 짐승들처럼 피 흘려 죽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한 그 약속도 결코 깨뜨려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실히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심을 두고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생명을 걸고 아브람과 맺은 언약을 지키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람들 간의 언약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도 있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눌러 힘으로 그 약속을 깨뜨려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강하시고 가장 위대하신 하나님은 결코 그 약속을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들은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하나님은 그에게 하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것이 바로 이 언약에 들어있는 깊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이 어떻게 성취 되었습니까? 아브람에게 그 생명을 걸고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게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바쳐 죄인 된 인간들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약속하신 하나님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후손으로 보내셔서 후사를 삼으시고 약속을 성취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31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증언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 언약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민수기23:19에서는 언약의 하나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합니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도 살아있는 약속이 됩니다. 그렇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어야 합니다.

 

원래 언약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베리트입니다. 이것은 영어의 ‘cut’(커트)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짜르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이 언약의 피라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는 자리에게 포도주 잔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언약을 이루기 위해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에 어떻게 죄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의 대상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을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기 위해 대신 피흘려 죽은 짐승이 필요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짐승의 피를 뿌림으로 피의 언약이 이루어졌듯이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에 들어가기 위해 짐승이 아니라 구원자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들은 부족합니다. 죄인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대자로 턱도없이 모자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가능해졌습니다.

 

새언약의 은총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을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들을 새언약의 주님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시고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세상에 세우셨습니다.

 

세계 제 2차대전,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은 이런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신심을 강화시켰습니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리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 늦게 오십니다." 그즈음 젊고 유능한 외과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가스실과 실험실을 향하여 떠나는 동족들의 죽음의 행렬을 보았습니다. 자신도 머지않아 가스실의 제물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동시간에 이 젊은 외과의사는 흙 속에 파묻힌 푸른 유리 조각을 몰래 숨겨 가지고 돌아와 날카로운 파편으로 면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속에서 아침과 저녁이면 으레 깨진 유리병의 파편으로 면도를 했습니다. 나치스들은 싱싱하게 면도질을 한 그 청년을 죽이는게 너무 아까워 매일 매일 죽음을 미루었습니다. 그는 결국 나치 패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그가 죽음의 수용소를 떠날 때 그의 소지품은 단 한가지, 깨진 푸른 유리조각이었습니다. 스웨덴에서 개업을 하고 성공한 그 외과의사는 유월절이 오면, "아니 마민"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약간 개조되었습니다. "신의 도움은 결코 늦는 법이 없다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이네."

 

우리들의 매일의 생활 속에서 걱정을 하거나 근심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자기의 의지로 이루려 하다보니 당연히 조급해지는 것입니다.

 

약속의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새언약의 주님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받으시고 복을 주시고 생명과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아멘.

새언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