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반도 고대기독교선교-교수 주태근
아랍선교강의록(8) : 교수 - 주태근
2) 아라비아 반도 기독교선교
중동지역에서 선교활동은 아라비아반도에 영향을 끼친 고대기독교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아랍교회를 이해함으로 무슬림들에게 선교하는 전략에 유익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⑴ 아라비아반도 고대기독교선교
전승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 중 하나였던 바돌로매가 최초로 아라비아로 가서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한다. 또한 성령강림으로 기독교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 중에 아랍인이 포함되어있었다(행 2:11). 그리고 바울은 다마스커스에서 회심하고 아라비아에 3년 동안 지냈다고 전해지고 있다(갈 1:17-18).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책에 따르면 사도 바돌로매가 그곳에 전하여준 마태복음서가 4세기 중엽까지 보존되었다고 한다. 시리아 교회 문서에도 바돌로매의 아라비아 선교 기록이 있다. 바돌로매는 예멘의 왕 폴리미우스(Polymius)의 딸의 마귀 병을 고쳐주고 호의를 사고 큰 사례금을 받았으나 그 돈을 사사롭게 쓰지 않았다. 그는 26년이나 되는 옷을 입고 소매 없는 흰 두루마기를 걸치고 다녔다. 바돌로매는 그 나라의 미신과 마귀와 계속 싸우면서 전도하고 왕과 그 백성이 그리스도를 믿게 만들었다. 그런데 희랍인들이 왕의 형인 아스트레게스에게 바돌로매 때문에 재래의 신들과 마술이 망해버렸다고 호소하여 바돌로매를 목 베어 죽여버렸다. 12,000명이나 되는 군중들이 몰려와서 바돌로매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의 시체를 리파리스(Liparis)섬에 묻었다. 그리고 폴리미우스 왕은 바돌로매의 명령에 따라 감독 안수를 받고 20년 동안 감독직에 있었다. 또한 225년경에 예멘의 카타스(Katas) 지방에 감독교구가 있었다는 것이 230년에서 250년경에 쓰인 「사도교훈」(Didascalia Apostolorum)이란 책에 나온다. 이 책의 기록에 따르면 그 지역의 많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살았고 집사 두 사람이 보스트라(Bostra)에 있는 한 교회를 다스리고 있었고 교인들은 대체로 중산층이고 소수의 부유한 사람이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을 교회에 나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부정한 돈으로 내는 헌금은 교회가 받지 않았고 헌금을 받아서는 안 될 사람들의 명단이 교회에 비치돼 있었다. 명단의 사람들은 채무자를 투옥시킨 채권자, 노예를 학대한 주인들, 간음한 자, 부정직한 상인들, 범죄자들, 불의한 행정관들, 편파적인 판사들, 우상을 위한 기물제작자들과 보석상들, 점치는 자들, 물탄 술을 파는 자들, 불한당 같은 폭력적인 병사들, 고리대금업자 등등이었다. 이렇게 헌금 관리를 엄격하게 하면서 만일 교회를 돈이 없어 유지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문을 닫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고 교회사가 하르낙(Harnack)이 초대교회의 확장 역사에서 진술하였다. 아라비아 지방이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있었으므로 유대교적 그리스도인들이 많았고 325년 니케아회의 때 아라비아 교회의 대표가 참석하였다.
사도 바돌로메가 아라비아, 특별히 아라비아 남부지방을 자신의 사역지로 삼고 일하여, 거기서 힘야르(Himyar) 부족을 복음화 시켰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A. D. 225년에는 아라비아의 남서부에 교구가 생겼고, 100년 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데오빌로(Theophilus)라고 하는 니코메디아(Nicomedia)의 한 부제(副祭)를 로마 대사 한 명과 함께 힘야르 지역으로 급파하였다. 데오빌로에게 감화를 받은 힘야르 왕은 그의 많은 신하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이어서 교회들이 다파르(Dafar), 아덴(Aden), 사나(Sana), 그리고 호르무즈(Hormuz)에 세워졌다. 교구는 4개로 늘어났고, 최소한 일곱 부족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또한 콘스탄틴 때에는 아라비아 감독들도 니케아 공회(The Council of Nicea)에 참석하였다(A. D. 325). 이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은 북 아라비아 지방에서 파견된 자들로 추정된다. 그때, 서남부에서도 기독교는 든든히 서갔고, A. D. 567년까지 200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 때 그리스도인 이었던 왕이 군대의 습격으로 진통을 겪게 되었고 회복 불능한 상태에 이르러 결국 그 다음 세기에 무함마드가 비교적 쉽게 정복하고 말았다. 아라비아 중앙 및 남부지역 교회들은 동방교회와 협력관계에 있었고, 셀루시아(Selucia)의 감독을 그들의 영적인 지주로 생각하였다. 네스토리우스 이후 아라비아 교회는 로마 교회와의 접촉을 가졌지만 굴복하지 않은 네스토리우스 교회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무함마드 정복 시 아라비아 반도내의 기독교도들은 예멘 북쪽에 위치하면서 남부지역이었던 나지란(Najran)은 대부분 단성론자들로 4만 명의 기독교도 아랍인들의 인구가 있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조공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강압적인 개종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마르 1세는 선언하기를 아라비아 반도에서 동시에 두 개의 종교는 있을 수 없으며, 이슬람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은 메소포타미아로 추방을 당했지만, 그들의 신앙은 유지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더욱이 예멘에 살고 있는 아랍인 기독교도들은 국외 이민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와 같이 이슬람교 전성시기의 기독교인은 아라비아에서 전혀 거주할 수 없었으며 다만 아라비아 본토 이외의 지역에서, 그것도 일정한 조건하에 신앙을 유지하며 지냈다. 말하자면 기독교인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이슬람정부의 지배하에 들어가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조건부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처럼 7세기의 이슬람교의 등장으로 아라비아 반도내의 기독교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이런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현존하고 있는 정교회는 현대 아라비아 반도선교에 큰 도움과 정보를 주고 있다. 오늘날 세계의 비기독교인들 중에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가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무슬림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현재 아라비안 반도 내에는 과거의 기독교교회 자취가 남아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바뀌어져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남아 있는 교회들은 소수의 가정교회들이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지하교회들이다.
4세기경에 아라비아 반도에 기독교가 유입된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아라비아에는 기독교가 전해졌고 유대인들 역시 아라비아 서부 지역, 특히 메디나에 살고 있었다. 무함마드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는 이미 토착화 된 유대교도들과 기독교인들이 상당히 있었다. 그 때 이미 소수의 아랍인 출신의 유대교도와 기독교도들이 있었지만 미미한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토착적인 다신교가 성행하였기에 기독교 또한 유일신의 개념이 아닌 다신교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졌다.
초기 기독교시대에 아라비아반도의 남부에 위치한 예멘의 일부지방은 에티오피아 기독교 왕국의 영향 하에 있었다. 사우디,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나라에는 초기 기독교 유적지인 교회, 수도원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도마는 아라비아반도 남부지역 예멘 국경 부근 Najran을 중심지로 하여 선교하여 고대 아랍인기독교가 그곳으로부터 크게 번성했다. 또한 초대기독교 네스토리안교회는 동부 아라비아 지역에서 크게 자리 잡았다. 아라비아반도 유적지 발굴 작업으로 기독교가 이슬람 이전에 아라비아반도에 전파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랍 베두인들이 거주했던 남부지역 이라크 Al Hira(al-kufah지역)에서 3세기경에 설립된 교회 건물이 발굴되었다. 쿠웨이트는 주후 5세기에서 9세기경 비잔틴 시대의 네스토리안교회가 번성한 Failika에서 야자나무 농장, 마을 그리고 2개의 큰 교회 건물이 발굴되었다. 아랍에미리트는 1993년부터 1996년 사이에 아부다비 근교 서부 해안섬 시르 바니 야스(Sir Bani Yas)에서 광범위한 수도원과 교회 건물, 석고 십자가 등을 발굴 및 출토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기독교 유적지가 1986년에 발굴되었는데 주후 4세기경에 세워진 네스토리안교회로서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주바일(Jubail)교회라고 말한다. 니케아 종교회의(325년)에 오만의 주교가 참석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이슬람 이전 시대의 기독교 발자취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발생한 이슬람은 622년부터 634년까지 반도 전역을 이슬람화했다. 이후 1885년까지 무려 1200여 년 동안 아라비아반도에는 기독교의 역사를 찾아볼 수 없고 찬란한 이슬람의 역사 속에서 영적인 암흑기를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