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및 기념 예배 설교

천국과 어린이(마 18:1-6)-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6. 16:46

천국과 어린이(18:1-6)

 

 

목사 - 주태근(어린이주일)

 

20세기 문명인에 의해 은밀하게, 그리고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이루어지는 범죄적인 만행이 있습니다. 매년 20만 명 내외의 아이들이 자신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어머니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있습니다.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들 가운데 74.2%가 살아 있는 부모로부터 버려진 '고아 아닌 고아'라는 통계입니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어린이를 폭행하는 사례가 해마다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 어머니의 72%가 어린이에게 매질을 한다고 합니다. 태국 23%, 미국 26%, 일본 33%, 영국 28%, 프랑스 30%에 비하면 엄청 높은 수치입니다. 어린이 폭력 중에도 가장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성폭력입니다. 어린이 성폭력은 한 해에 무려 10만 건에 달하고 있습니다.

 

유흥접객업소, 숙박업소, 안마시술소 등 41만개 유흥업소에서 80-120만 명의 여성들이 일하는데, 이 가운데 20-30%가 미성년자, 어린이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어린이 유괴, 자살 사건도 흔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 헨리(O. Henry)의 작품 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한 남자가 아내를 잃고 어린 딸만 데리고 살았는데, 직장에 갔다 오면 신문만 보고 딸아이가 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있어서 물어 보면 가르쳐 주지도 않고, 함께 놀자고 해도 놀아 주지도 않고 무관심하게 대해 주니까, 그 소녀가 점점 자라서 불량한 짓을 하고 거리의 깡패가 되고 말았습니다.

 

후에 그 소녀가 죽어서 천당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가 너 같은 사람은 여기에 못 들어온다고 말하니까, 이 때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니다. 그 소녀를 들어오게 하라. 그러나 너무 바쁘다고 해서 자기 자녀를 돌보지 않은 이 소녀의 아버지 같은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하라고 말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18세기는 민중을 발견한 세기요, 19세기는 여자를 발견했고, 20세기는 어린이를 발견한 세기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동인식에 대한 가치변화입니다. 바른 아동관의 발견입니다. 어린아이의 귀중성, 가치성을 바르게 평가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벌써 A. D. 원년에 어린아이를 천국운동의 표본으로 삼을 정도로 평가하고 계셨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위대한 역사의 선구자였는가를 가히 알 수가 있습니다.

 

고대부터 어린아이들은 단지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이의 존재를 새롭게 재인식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존귀히 여기고 사랑해 주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만 해도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 있고, 마음대로 버릴 수도 있고,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5000명을 먹이셨을 때도 여자와 어린 아이를 뺀 남자 장정만을 헤아린 것만 보아도 그 당시 어린이의 위치라고 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잘못된 사상을 말씀과 행동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18:16)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허용하고 그들을 영접하시면서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사랑의 대상으로 알고, 관심을 가지고, 보살필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외교관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늘 일에 쫓겨서 외국에 출장도 잦고 모든 일이 너무 바빠서 가정과 아이들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모처럼의 휴일이 되어서 그는 오늘은 낮잠이나 좀 실컷 자고 미루었던 책이나 보면서 하루를 쉬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의 아내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러지 말고 아이들과 바람이나 쐬고 오라.”고 남편에게 닦달을 하는 겁니다. 남편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집에 있었다가는 아내 등살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부득이 아이들과 같이 낚시질을 함께 나갔습니다. 아이들은 좋아서 마구 뛰면서 한껏 즐거워했습니다.

 

그날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아빠는 집에 돌아왔는데, 이 외교관의 남자는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오늘은 아이들과 낚시를 다녀왔다. 그러나 참으로 소중한 하루를 낭비해 버렸다.”그러나 외교관 아들 중에 하나는 커서 역사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지난 날 어린 시절을 회고하면서 그는 옛날 일기장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옛날 일기장에 이 아들은 당시의 느낌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아버지와 함께 낚시를 다녀왔다. 나의 일생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다.”

 

주님은 어린이를 실족케 하지 말라고 교훈하십니다. 어린아이를 타락하게 하는 것, 즉 어린아이를 잘못 키운 것을 죄악 중에서 가장 큰 죄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를 실족시키는 것이 아이를 죽이는 것보다 더한 행동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아이에게 죄짓게 하느니 차라리 목에 연자 맷돌을 매어 깊은 바다에 자신이 빠져 죽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서울 시립 아동병원에는 어머니에게 버려진 어린이가 언제나 평균 3백여 명이 수용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의 90%이상이 불구의 어린이들이라고 합니다. 키워보아야 아무 쓸모가 없는 무생물과 같은 아이를 위해 내 청춘을 바쳐가며 투자하고 싶지 않아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진찰하겠다고 데려왔다가 병원에다 마치 쓰레기를 버리듯 놓고 사라져 버립니다.

 

시립 아동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원들이 그 병원에 근무함으로 해서 크게 우는 일이 두 번 있다고 합니다. 한번은 발령을 받아 처음으로 이 병원에 들어섰을 때, 수용되어 있는 어린이들을 보고 하도 기가 막혀서 한번 울고, 이 병원에서 그 아이들을 위해 봉사하다보면 어린이들과 정이 들어 병원을 떠날 때에 또 한번 운다고 합니다. 어린 생명이 소중한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에 있어서 여러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그 중에 위협형이 있는데, “한번만 더 그런 짓을 했다가는 어떻게 되는지 알지,” 하고 아이들을 위협하는 유형입니다.

 

비교형도 있는데, “그 애는 안 그러는데 너는 왜 그 모양이냐하고, 야단칠 때마다 남과 비교합니다. 나열형도 있습니다. “언제는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은 또 언제 잘못했다고 하면서,” 잘못한 것들을 모아뒀다가 줄줄이 나열하는 형입니다.

 

조소형은 잘못한 것을 보면서, “잘 논다, 그래 어디 두고 보자,” 하면서 아이들을 비웃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변덕형으로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일관성 없게 언제는 꾸짖고, 언제는 그냥 넘어가고 해서 아이들로 하여금 갈팡질팡하게 만듭니다. 이상의 유형들은 다 좋지 못한 유형들입니다.

 

유대인들의 어머니는 "쥬이쉬 마더"라고 해서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유명합니다. 그들의 교육방법과 교육철학은 전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교육학 석학들이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연구해도 다 이해하지 못하며, 흉내도 낼 수 없습니다.

 

쥬이쉬 마더의 교육방법 중에 보면, 그들은 아이들을 서로서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아이들을 절대로 비교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시기, 질투, 경쟁심 같은 것들이 생기지 않도록 키웁니다.

 

그런 교육을 받고 성공한 대표적인 사람이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입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얼마나 공부를 못했던지 성적표에 "이 학생은 앞으로 무슨 공부를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음" 이라는 평가가 기록되었습니다.

 

그때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걱정할 것 없다. 남과 같아지려고 하면 결코 남보다 나아질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너는 남과 다르기 때문에 기필코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하고 그를 비교하지 않고 그의 특별한 점을 발전 시켰습니다.

 

결국, 그 어머니가 말한 대로 아인슈타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적 물리학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구보다도 우리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셨고 인격적으로 이들을 대우해 주셨습니다. 어린이들도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꽤 오래된 사건입니다만, 한때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라고 있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는 그런 사건입니다. 그 지존파의 대부가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는 옛날을 회고했습니다.

17년 전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의 선생님께서 호되게 그를 꾸지람했습니다. “왜 너는 그림 그리는 걸 알면서도 크레용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왜 번번이 가져오지 않았느냐? 무슨 일이냐?”아무리 야단을 쳐도 그는 말이 없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가져왔습니다.”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가 반항하는 것처럼 생각을 해서 아주 충혈 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면서 마구 때렸습니다. 때리면서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이 녀석아!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될 것 아니냐. 준비물을 왜 안 가져오느냐?” 그 순간 이 아이는 빗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훗날 사형장에서 최후 진술을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그 말 한 마디가 내 일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훔쳤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오늘의 내 운명은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한 말 한마디, 내가 불쑥 내뱉은 말 한마디, 잠깐 보여준 사건 하나가 어린아이의 일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 되신 여러분, 말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내 아이라고 해서 내 입에서 나오는 데로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절제할 수 없는 감정에 치우쳐서 내뱉는 말 한 마디에 아이들의 영혼은 병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름지기 부모는 입 조심을 해야 합니다.

 

더구나 행동도 조심해야 합니다. 행여나 꿈속에서라도 막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이 불씨가 되고, 행동이 뿌리가 됩니다. 천에 하나라도 믿음이 없는 사람과 같은 행동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어린이를 천국의 어린이로 키우라고 교훈하십니다. 어린이들이 잘할 때는 잊지 말고 사랑해주고 칭찬해 주어야 하지만 사회의 법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면 고통이 있음을 깨닫도록 벌을 가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어린이로 자랄 수 있도록 키워야 합니다.

 

죠나단 에드워즈처럼 살 수는 없을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죠나단 에드워즈의 자서전입니다. 그는 나이 20세에 결심문을 쓰고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미국의 제1차 영적 대각성 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그는 경건한 목사님의 딸인 사라 피에르 폰트와 결혼하였습니다. 그녀는 거룩한 열정을 가진 경건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죠나단 에드워즈는 그의 아내와 별다른 일이 없는 한 매일 합심기도를 하였고, 11명의 자녀들에게 경건 훈련을 시켰습니다.

그는 목사로서 그의 설교로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는 신실한 신앙인요, 학자였습니다. 유명한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을 지냈습니다. 죠나단 에드워즈의 족보를 연구했습니다.

직계 후손 873명중 대학 총장이 12교수가 65의사가 60목회자가 100군인이 75저술가가 85변호사가 100판사가 30공무원이 80하원의원이 3상원의원이 2, 미국 부통령이 1그리고 260명은 평범한 신앙인으로 지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 죠나단 에드워즈의 어린 시절 친구요 함께 주일학교에 다녔던 맥스 쥬크가 어느 날 교회를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하다 신앙이 없는 여자와 결혼해서 자녀들을 두었습니다. 그의 족보를 연구했습니다.

그의 후손은 1,292명인데 그 가운데 유아로 사망한 자가 309직업이 거지로서 310불구자가 440매춘부가 50도둑이 60살인자가 70별 볼일 없이 산 사람이 53명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두 가문의 대조는 자녀에게 미치는 부모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부모가 경건한 삶을 살 때자녀들이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우리들은 예수님처럼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를 실족케 하지 말고, 그들을 신앙의 길로 이끌어주는 부모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복되게 성장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