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하는 성도들(눅 8:1-3)
동역하는 성도들(눅 8:1-3)
목사 주태근
지난번 우리나라에서 열린 88올림픽 때에 3만여 명의 자원 봉사자가 있었습니다.그 당시 올림픽 준비 위원장이 하는 말씀이,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에게 일을 맡겨야 자율적인 기초위에 올림픽이 치러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원리를 두고 자원 봉사자를 찾았을 때,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했습니다.그러나 그러한 반대를 무시하고 처음에 계획했던 원칙대로 추진 했는데,약 12만 명이 자원 봉사자로 나섰습니다.많은 봉사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은 한국 사람의 섬김의 정신을 말해 줍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섬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입니다. 미국의 씨어즈라는 회사는 손님이 물건을 사서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교환해 줍니다. 손님들에게 왜 바꿔 달라는지 물어 보지도 않습니다.그냥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바꿔 줍니다. 싫다면 돈으로도 돌려줍니다.
주위에서 “그렇게 장사하면 어떻게 장사가 되냐고 묻습니다. 안 되는 것 같아도 지난 100년 동안 그렇게 했기 때문에 장사가 더 잘 된다고 말합니다.이것이 섬기는 정신입니다.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섬김은 위대한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섬김을 받고 통치를 하는 것보다는 섬기는 자가 더 위대한 사람이라는 말합니다.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0장에서 “내가 섬기러 왔노라”고 하셨는데,그것은 “내가 종이 되러 왔다”는 말입니다.섬김은 삶의 가장 고상한 삶의 스타일입니다.
찰스 셀돈이 쓴 실화 소설인 『주의 발자취를 따라』란 책에 보면 미국 레이몬드라는 한 도시에 있는 교회에서 헤니 막스웰이라는 목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놀라운 사회변화가 그 도시에 어떻게 파급되어갔는가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레이먼드 메일리 뉴스’라는 신문의 발행인 겸 편집자인 에드워드 노만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과 함께 그 신문을 제작하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만약 이 신문사의 편집인이라면 어떻게 하실까?’하고 스스로 물으면서 매일 아침 기도로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그 도시의 화제 거리였던 프로권투 기사를 한 줄도 다루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광고란에서 술과 담배의 광고를 모두 빼어 버렸습니다. 그 회사들이 내는 광고료가 그 신문사의 주 수입원이어서 그 타격은 막대했습니다. 그러나 노만씨는 계속 밀고 나갔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일요판 신문 제작도 중단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일요일 하루를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신문이나 뒤적거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구독자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신문이 지향하는 건전한 뉴스와 사설과 해설들은 레이먼드 사회에 새로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전보다 더 많은 구독자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고전 3장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도와서 일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일은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는 단순히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르치고 심방하고 돌보는 것은 물론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생명이 인간의 심령 속에서 자라나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동역자로 일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농사를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싹이 나고 자라고 꽃이 되고 열매 맺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농사짓는 것만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만사가 가만히 보면 모두가다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실상은 하나도 없습니다. 시편 127편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의미 깊은 말씀입니다. 서양 속담에도 '싸움은 사람이 하지만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이 결정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동양에 내려오는 말에도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이라' 했습니다. 성경 잠언 16장 1절에도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에만 성공할 수 있고 승리를 거둘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은 노벨이 어느 날 아침, 신문을 펼쳐들고 깜짝 놀랐습니다. 조간신문 1면에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하다"는 제목의 큰 기사가 나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사의 내용은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다이나마이트의 왕이 죽다"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 기사는 불란서의 한 기자가 동명이인의 죽음을 잘못 알고 보도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노벨은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을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로서 끝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거대한 재산을 바쳐 평화와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노벨상"을 마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을까,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까 생각하면서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주님을 위해서 생명을 바쳐야 합니다. 이것이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삶 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어떤 젊은 여자가 과부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자녀 여섯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 여인은 너무나 기가 막혀 얼마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 많은 울음 끝에 그녀는 결정을 했습니다.
자기는 남들처럼 노동은 못하겠고,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취직도 못하겠고, 할 수 있는 일은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고 기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 없는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양어머니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이 여인은 자기 집을 아이들을 양육하는 가정으로 만들고 부모 없는 어린아이들을 맡아 길러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고아를 양육하는 가정에 정부에서 한 아이에게 400불 정도씩 지급합니다. 이 과부는 자기의 6남매 이외에 1백여 명의 어린이들을 맡아 길러내었습니다.
신문기자가 와서 그 부인을 인터뷰하면서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슨 비결로 그 많은 아이들을 맡아서 훌륭하게 길러내었습니까?" "함께 일한 것입니다." "함께 일하다니요? 누구와 함께 일했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하나님과 함께 일했습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할 때 저는 하나님과 약속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 근심 걱정을 맡아 주십시오. 그러시면 저는 일만 하겠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저는 근심걱정은 하나님께 맡겨두고 일만 했습니다.
내가 약속한 대로 일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제 부탁을 받으시고 근심 걱정을 맡아주셨습니다. 그것이 제 비결입니다." 이 과부와 같이 모든 근심걱정을 하나님께 맡겨두고 우리는 일만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 증거를 위해서 많은 동역자를 얻으셨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보니 1절에서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쌔 열두 제자가 함께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혼자서 다니지 아니하시고 열두 제자를 택하셔서 그들에게 천국복음전파를 맡기셨습니다. 또한 2절∼3절 이하에서는 마리아와 요안나, 그리고 수산나와 다른 여러 제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들을 섬기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동역자의 두가지 표본이 재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처럼 말씀을 전파하는 전임사역자, 즉 열두제자이고, 또 한 종류는 그들의 필요를 따라 소유로 섬기는 평신도사역자들입니다.
주님의 동역자들은 물론 열두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동역자들은 더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2,3절의 기록입니다. "2)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오늘 본문에 열거된 예수님의 동역자들은 바로 모두가 다 여성들입니다. 이 여자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사실 오늘 등장하는 여성들은 열두 사도들 못지 않게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열두 사도들에게는 사도직을 임명하셨습니다만 초대교회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수산나, 요안나, 마리아와 같은 여인들이 뒤에서 막강한 일들을 감당하여 주었기에 초대교회들이 설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들이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여인들을 분석해 보면 일곱 귀신 들렸다가 회복된 막달라 마리아가 있습니다. 마리아라고 하는 이름은 우리나라에서 김집사 만큼이나 흔한 이름입니다.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 요안나는 남편이 헤롯왕의 재정 담당관이었기에 굉장한 가정의 부인입니다.
또 수산나가 있습니다. 수산나에 대해서는 자세하지는 않지만 그 이름이 백합화라고 하는 뜻인데 백합화 같이 아름다운 여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여인들이었습니다.
귀신에 들렸었거나 중병에 걸렸다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아 감격하고 감사하여 주님의 사역에 헌신적으로 도운 여인들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입술로만 감사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주님 가시는 곳마다 따라 다니며 주님과 제자들을 섬기고 수종들었습니다.
이 여인들은 주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난도 기꺼이 견디겠다고 하는 각오가 되어 있는 여인들이었습니다. 이 여인들 중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을 갔던 제자들처럼 비열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은 삼십에 스승을 팔아먹은 가롯 유다 같은 자도 없었습니다. 이들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실 때에 슬퍼하며 울며 따라 갔던 여인들입니다. 또 십자가 밑에서 기도함으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킨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장사지낸 후에 공동묘지에 새벽 일찍이 무덤가로 달려갔던 여인들이 바로 이 여인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제일 먼저 만나 본 사람들도 바로 이 여인들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여자라고 해서 모두가 다 나약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이 같은 여인들이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임을 받고 있으며 주의 종들이 주의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물질로, 기도로, 봉사로 은사를 따라 수종드는 여인들이 있었기에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 줄 믿습니다.
섬김의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물질로 주님을 섬길 수 있으며, 재능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으며, 기도사역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섬김은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사역입니다. 전도는 주님을 위한 가장 큰 섬김의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사람을 통하여 이 땅에 이루어 나가십니다. 주님은 그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일꾼을 부르십니다. 주님은 오늘도 주의 나라 동역자를 부르고 계십니다.
전도는 우리의 할 일이요. 우리의 과제입니다. 금년도에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153명 영혼구원의 비전을 가집니다.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3명의 태신자를 품고 기도하고 도전하여 전도하면 놀라운 일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명하셨습니다.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가득한 고기를 세어보니 153마리 였습니다.
153은 기적의 숫자요, 영혼구원 생명의 숫자요, 우리교회 전도비전의 숫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확신을 가집시다. 예수님 명령에 따라 전도하면 기적을 체험합니다. 구원방주를 가득히 채우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