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전도자와 기쁨(눅10:17-21)-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12. 09:02

전도자와 기쁨/10:17-21

 

 

목사 주태근

 

1999년 투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한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랜드 암스트롱이라고 하는 청년입니다. 경기에는 언제나 그 누군가가 금메달을 얻겠지요마는 이 이야기는 그러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는 3기 암 환자로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이 엄청난 일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25세에 고환암이라고 하는 사형선고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생존 가능성까지도 희박했습니다. 폐와 뇌에까지 전이되어서 너무나 쑤시고 아파서 식사도 잘 못하고 신문은 물론 텔레비젼도 마음대로 볼 수가 없을 만큼 그렇게 머리가 터지게 아프고 괴로웠답니다. 그러나 그는 사이클 경기에 나갔습니다.

 

물론 실패했죠. 어머니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라고 권면했습니다. 열심히 사이클을 훈련을 했습니다.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있었던 세계선수권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 왕을 알현하는 그런 기쁨과 영광도 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너무 힘이 들어서 선수생활을 접어 두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에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하는데 자기가 가는 길에 환한 빛이 나타나면서 길에 글이 쓰여 졌습니다. 그 글은 역시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과 똑 같은 말씀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그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뒤에 이어서 계속되는 글의 내용입니다. "장애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이 되라." 그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다시 자전거를 열심히 탔습니다. 그리고 1999년 프랑스에서 금메달을 얻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환영했고 그리고 20015월호 가이드포스트에 대대적으로 이 사실을 발표해서 모두가 다 같이, 세계 사람이 축하했습니다마는 본인은 1등이냐 2등이냐 금메달이냐 그것에는 흥미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 그는 암 투병에서 승리했다고 하는 것,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하는 것, 불행과의 싸움에서 이겼다는 그 사실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만이 가지는 기쁨이 있습니다. 남이야 무어라고하든 나만이 가지는 나만이 아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성도의 삶은 기뻐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전 5:16-18절에 이르기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우릴 택하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빌립보서에 보더라도 그 짧은 4장 가운데 '기쁨'이라든지 '기뻐하라'는 말씀이 무려 16번이나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형편과 처지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감옥에 갇혀있는 자리에서 "내가 기뻐하니 너희도 기뻐하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기뻐하는 삶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우리의 삶에 기쁨이 없는 경우를 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데도 기쁨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이들은 예수믿는 자의 기쁨이 무엇인지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누리지는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제로 그런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확실한 이유가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대로, 전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성경에 나오는 기쁨이나 기뻐하는 삶은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은 전도하고 돌아온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대화입니다. 제자들이 처음에는 매우 무거운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전도하러 가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 라고 하셨으니, 전도하러 가는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또 예수님이, 그들이 전도하러 나가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핍박을 받으리라는 말을 듣고 근심과 걱정의 두려움 속에 전도를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전도하고 돌아왔을 때는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7절에는 제자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20절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뻐하라는 말씀을 하셨고, 그리고 21절에는 예수님도 기뻐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전도하면 내가 기쁘고, 남들도 기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전도한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면 전도할 때, 어떤 기쁨이 생기게 됩니까?

 

먼저, 전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본문 17절을 보십시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전도하다 얻은 능력의 체험입니다. 전도하는 자에게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전도하다가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귀신이 그들 앞에 항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전에는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이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을 보기만 했습니다. 그랬을 때에도 그들은 감탄을 하면서 저가 누구시기에 귀신들도 복종하는가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기들도 전도 현장에 나가보니 복음과 전도자 앞에서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보니 마음속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와서 그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도 전도하러 갈 때, 하나님이 이런 능력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당시 제자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전도하러 갈 때, 우리도 이런 기쁨을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권세를 보통 때는 잘 체험하지 못하다가 전도 현장에 나가보면 우리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얼마나 권세가 있는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체험하게 되고 이때에 참된 기쁨이 생기는 것입니다.

 

빅토 프랭클(Victor E. Frankl)이라고 하는 심리학자의 The Doctor and the Soul 이라고 하는 유명한 책에서 인간 실존의 필수조건을 말합니다. 현대인으로서 인간실존의 필수조건 세 가지입니다. 첫째가 영성입니다. 우리들은 영원한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대 이 순간만 가지고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영원 지향적으로 살 것이고, 초월적인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살아야 됩니다.

 

둘째가 자유입니다. 인간들에게는 물질로 욕심으로 명예로 시기 질투로 얼룩져있습니다. 진정한 자유가 없습니다. 무엇엔가 매여 있습니다. 게다가 교만, 고집, 욕심, 물질 등으로참으로 불쌍한 인생입니다. 자유한 삶을 체험해야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완전히 자유한 만큼 높은 가치의 생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가 책임입니다. 책임성이 있어야합니다. 내 책임 내가 지고, 남의 책임도 나에게 주어지면 내가 짊어지고, 그리고 모든 것에서 책임을 질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 그것이 실존가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쓰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고용하셨습니다. 나를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전도로 능력이 나타나도록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 거룩한 역사에 내가 조금이나마 보태며 살게 됐다는 말입니다. 영성, 자유, 책임이 모두 나타나는 삶의 모습입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삶의 모습입니까? 여기에 진정한 삶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이 전도하면 구원의 확신도 갖게 됩니다. 그래서 기뻐하게 됩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예수님이 또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되고 훌륭한 일을 많이 하고 업적을 많이 남긴다 해도, 그것은 이 세상의 몇 십 년의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내세가, 우리의 영생이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 땅에서 훌륭한 일 많이 하고 최고의 상을 받을 일을 했다고 해도, 나중에 하늘에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알지 못하다고 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너무 이 땅의 것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너무 부러워하지도 마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잠시 잠깐 뿐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영광을 한 몸에 다 가져도 이 세상에서 누릴 것 다 누리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다 이 세상을 한번은 떠나야 할 사람들인데 하늘나라에 이름이 있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잘하고 훌륭하게 살았어도 하늘나라에 이름이 있느냐 오늘 저녁에 우리들이 이 세상을 떠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확신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이지만 우리의 이름이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전도자는 이렇게 예수 믿는 것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생깁니다. 하늘나라의 영생과 상급을 바라보면서 나도 하늘나라에 이름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전도현장에서 체험하게 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인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명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백작 칭호까지 받은 특별한 신분의 사람입니다. 그는 모태신자로서 교회에 다녔지만 믿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자연히 많은 죄를 범하게 되고 절망에 빠져 기쁨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중년에 접어들었을 때에, 자신의 주위에 사는 돈 많고 세상향락에 빠져 부족함이 없이 사는 귀족들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와 반대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농노들 중에 무엇이 즐거운지 항상 얼굴에 기쁨이 충만하고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였을 때, 그들 모두가 예수님을 믿는 독실한 신앙인들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역전도의 열매가 맺혀지게 된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이때부터 신앙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깊은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 구원의 확신을 통해 그들과 같이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인물이 된 것입니다.

 

전도에는 반드시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전도하면 우리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고 우리의 이 땅에서의 수고와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으로 쌓이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전도하면 성령의 기쁨도 경험하게 됩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전도하고 돌아 온 이야기를 하실 때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 낸 이야기를 들으시고,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있는 것으로 기뻐하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주님 자신도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성령의 기쁨이었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왜 이런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물론 예수님이 하나님의 이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예수님 자신도 전도인 이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이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죄 많은 여인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이웃 마을로 먹을 것을 준비하러 갔다 왔습니다.

 

돌아와서 예수님께 음식을 잡수시라고 권하니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고 하시면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전도하시다가 잡수시는 것까지 잊어버리시고 자기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 때문에 말할 수 없이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기쁨은 이 세상의 물질로 인한 기쁨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육신적인 기쁨도 아니었습니다. 이 기쁨은 영적인 기쁨, 곧 성령으로 기뻐하신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에게서는 기쁨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혼자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동행하십니다. 성령님이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는 그런 기쁨이 충만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기쁨은 전도자 모두가 누리는 기쁨입니다. 전도하다 보면 육신적으로는 피곤합니다. 또 불편한 일도 만납니다. 때로는 어려움도 겪습니다. 그러나 전도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백은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기쁘더라는 고백입니다. 성령님의 기쁨 때문입니다.

 

이런 성령님의 기쁨을 가진 자는 다른 것이 부럽지 않습니다. 남이 돈 얼마 벌고, 남이 얼마나 출세하고, 남이 무슨 상을 받고 하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음식을 잡수시는 것까지 잊어버리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기뻐하는 삶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받는 사람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영생의 말씀을 전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도는 무엇보다도 전도하는 자신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한없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상급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 새생명 축제의 날이 약 한달 정도의 기간이 남았습니다. 오늘은 거리에 나가서 전도하는 날입니다. 근처에 나아가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거리 전도입니다.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15분 동안 맡은 지역에서 조별로 나아가 전도하면 됩니다. 우리 모두, 전도 현장으로 나아가 진정한 전도의 기쁨을 누리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내 구원의 확신을 경험하는,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는 전도의 기회가 되어서 우리 주님이 주시는 참다운 기쁨을 체험하는 축복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1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