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학 강의록

설교자와 영성-교수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14. 10:47

설교학 강의록(9) : 교수 주태근

 

3. 설교자와 영성

 

 

영성이라고 용어는 기독교회 안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신학사에서 다양한 명칭으로 표현되고 사용되어져 왔다. 영성은 영성신학(spiritual theology), 영적생활(spiritual life), 신심생활(devout life), 내면생활(interior life), 신비적 수련(mystical evolution)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영성이란 말은 5세기경에 주로 성직자나 수도사들의 전유물로 간주되면서 대두되었다. 영성은 가톨릭교회를 통해 여러 모양으로 지속되어 왔다. 기독교회는 1960년부터 본격적으로 영성과 영성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설교에서 영성이란 성령의 체험을 말한다. 설교의 영성, 즉 설교가 영적이라는 것은 설교의 효력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상에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는 방식을 반영한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적 영성은 성경의 진리에 근거한 삶의 방식으로 구체적인 삶 속에서 성경 말씀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경 말씀을 이해하는 것과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하려면 우리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성령의 조명과 도우심이 필수적이다. 이런 의미 에서 설교자에게 영성 훈련으로서의 설교가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설교자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을 자신의 마음에 심고 그 분을 닮아 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사는 것이다. 그리고 설교는 기교나 예술이나 수사학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설교란 근본적으로 설교자와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체험적 관계에서 형성된다. 그러므로 설교로서의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설교자의 영성이 필요하다.

 

 

1) 지성의 영성

 

지성(intellect)개념들과 정보들을 이해하거나 혹은 처리하는 능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개념인 이성(reason)판단이나 결론, 혹은 추론을 내리는 데 필요한 개인의 능력으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지성은 인간이 자기 외부의 사물에 대하여 비물질적인방법으로 이해하는 영적 기능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지성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인식의 방법 곧 감성적 지식과 구별된 영적 지식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지성은 모든 사람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에도 지성의 사용은 불가피하게 포함되어 있다. 성경은 우리의 합리적인 반응을 요청할 뿐만 아니라, 올바른(proper) 반응을 요청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지성을 올바르게 혹은 선하게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경건의 생활과 학문의 삶과는 서로 상치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탁월한 설교자들은 대부분이 최고 수준의 지성과 영성을 겸한 분들이다. 루터, 칼빈, 스펄전, 에드워즈 조나단, 최근에 이르러는 마틴 로이드 존스나, 존 스타트 등은 빛나는 지성과 불붙는 영성을 가진 분들이었다. 킬린저(John Killings) 교수는 현대교회의 취약점 가운데 하나는 학자-설교자를 겸한 목회자들이 많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프레드 크레독은 설교자가 자기의 서재에서 공부하는 시간은 목회현장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 아니고 목회사역에 뛰어드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즉 목회자가 서재에서 연구한다는 것은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 랍비들이 말하는 것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연구하는 한 시간은 기도의 한 시간이며, 바로 예배의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설교자의 자기 개발을 위한 독서는 신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 되어야 한다. 신학교 재학 중에는 골고루 모든 신학분야의 기초 공부를 하느라고 어느 것 하나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분야의 지식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자기의 신앙과 신학성숙을 위한 것으로 소화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따라서 본격적인 신앙성숙과 설교목회를 위한 독서는 신학교 문턱을 나서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 신학교 졸업은 목회자의 독서의 출발점이 되어야지 종착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목회자의 자기 성장을 위한 평생공부는 졸업하면서부터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신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 목회자들은 평생의 자기 개발과 성장을 위해서 나름대로 자기에 맞는 평생 독서 계획표를 세우는 것이 좋다. 설교 전문가는 독서를 통한 지성의 계발이다. 올바른 지성을 통해 탁월한 설교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2) 기도의 영성

 

설교자에게 있어서 기장 근본적인 영성은 기도의 영성이다. 기도의 영성은 기도의 일상화이다. 기도가 매일의 일상이 되어야한다. 기도가 모든 생활의 우선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기도는 설교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기도는 그 자체가 막강한 힘으로서 모든 것에 생명과 힘을 불어넣는다. 참된 설교는 골방에서 만들어진다. 사람, 곧 하나님의 사람도 골방에서 만들어진다. 하나님의 사람이 지닌 생명과 깊은 신념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에서 생겨났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지극히 중요한 메시지를 받을 때나 지극히 감미로운 메시지를 받을 때는 모두 하나님과 홀로 있을 때였다. 기도는 사람을 만들고 기도는 설교자를 만들며 기도가 목사를 만들어 낸다. 오늘날의 강단은 기도가 약하다. 학식을 자랑하는 마음은 겸손히 의지하는 기도의 정신에 어긋난다. 기도가 강단에서 늘 행해지는 예배 의식의 형식적인 공연이 되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오늘날의 강단에서는 기도가 바울의 생애나 사역에서처럼 강력한 힘이 되지 않는다. 생활이나 사역에서 기도를 강력한 힘으로 삼고 있지 않는 설교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사역에서 연약한 도구이며, 이 세상에 하나님의 목적을 실현하는데 무기력할 뿐이다.

설교자의 권위는 말씀에 있다. 말씀은 살아있고 능력이 있다. 그래서 성도의 심령 골수까지 쪼개는 역사를 이룬다. 그러나 기도가 없는 말씀은 그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기도는 영적 에너지이다. 기도는 성령의 역사를 이루는 도구이다. 그래서 설교자는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강단은 기도에 약하고 많이 배운 데에 대한 자랑과 교만은 독자적인 기도의 겸손에 대항한다. 현재 기도는 강단과 함께 형식적이며 예배의 한 행사로만 끝나는 적이 너무나 많다. 설교자에게 있어 기도는 생명이다. 설교자가 설교의 기교, 지식으로 인해 좋은 설교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기도가 설교자의 가장 큰 무기가 될 때, 그 안에 있는 전능한 힘이 함께해 생명과 힘을 모든 이에게 준다. 가장 날카롭고 가장 강한 설교는 설교자 자신에게 먼저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깊은 기도이다. 자신에게 있어 강력한 설교, 가장 무겁고 가장 포근한 설교는 나 홀로 하나님과 있을 때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