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설교

루스드라 전도(행14:8-10)-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15. 11:38

루스드라 전도(14:8-10)

 

 

목사 주태근

 

900년경 중국 땅은 의화단 운동으로 188명의 서양 선교사와 2만여 명의 중국 기독교인이 살해당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50년 동안 더욱 많은 서양 선교사가 중국으로 찾아가서 13개의 대학과 6,000여 개의 초중등학교, 900여 개의 병원을 세웠으며, 그러므로 중국 기독교인들도 10배 정도 증가하여 70여 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1949101일 중국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중국 공산정부는 기독교를 문화침략의 결과로 간주하고 약 6000여명의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기독교 지도자들을 감옥에 가두며, 대대적인 무신론 교육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리고 중국 안에 죽의 장막이 형성되어 중국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는 철저한 중국 공산정권하에서 도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1978년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이후 197911일 중국과 미국이 수교하고, 1992824일에는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중국교회의 사정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핍박가운데서 중국교회는 오히려 엄청난 부흥과 성장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 된지 약 50여년이 지난 2000년경 중국 기독교인은 대략 7,000여 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었습니다.

 

이는 공산화되기 전과 비교하면 약 100배의 성장을 한 통계입니다. Asia Harvest Report에 따르면 중국에 크리스천들이 1350만 명 가까이 되며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있음을 전합니다. 공산당보다 숫자가 더 많고 가장 급성장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여기에 더 이상 이렇게 우리가 허락하지 않은 건 하지 말라고 막고 있지만 계속 복음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6년 오픈도어선교회는 ‘2016년도 세계 기독교 박해 순위’(World Watch List, WWL)를 발표하며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전년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박해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겪는 모든 종류의 적대적 경험을 말합니다.

 

오픈도어에 따르면 지난 1년 간 전 세계 기독교인 중 7000여명이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 때문에 살해를 당했습니다. 이는 전년도와 비교해 3000명 이상 증가한 수치로, 여기엔 북한 시리아 이라크처럼 정확한 기록을 알 수 없는 나라들은 제외됐습니다. 따라서 실제 사망자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회를 향한 공격이나 피해도 커서 2300개의 교회가 파손을 입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기독교복음의 역사는 핍박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초대교회 때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로 복음의 결실이 맺혀지자 여기에 못지않게 유대인들의 핍박도 더욱 거세어 갔습니다. 당시 분위기를 본문 145절에서 증언합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러므로 바울 일행은 도망을 칩니다. 박해를 피해 옮겨진 장소가 루스드라 지역입니다. 기대 이상으로 루스드라에서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박해의 연속이지만 이런 박해의 물결 속에서도 선교의 부흥의 불길은 계속 타올랐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박해 중에서도 부흥의 불길을 소개합니다.

 

먼저 신앙을 통한 기적의 불길입니다.

 

사도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적이 없는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사도바울이 한참 동안을 복음을 전하다가 이 사람을 주목하여 보니, 성령의 은사로 그 속에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를 향하여 명령합니다. “네 발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걸었더라증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능력이 있습니다. 질병의 치유와 더불어 모든 흉악의 결박에서 우리들을 자유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앉은뱅이는 자신이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성령의 역사로 바울의 눈에 보이게 되었고,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의 선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한 성령 안에서 한 믿음 구원받을 믿음을 갖게 되었고, 그 믿음에 복음이 역사하여 평생한번도 걸어 본적이 없는 앉은뱅이는 벌떡 일어나서 뛰며 걸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예배를 통해서 아~~하 그렇구나. 내게도 그 은혜를! 라는 믿음의 거룩한 욕심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그 믿음 위에 역사합니다. 보혜사 성령은 지금도 우리를 도우시며, 감찰하시고, 우리의 변호사가 되시고, 하나님의 깊은 생각까지도 다 아시는 성령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이전에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위로할 자 위로하시고, 병든 자 치료하시고, 배고픈 자 먹이셨고, 죄인을 용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따르는 모든 백성들의 아픔과 고통과 얽매임에서 풀어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주님은 당신을 찾는 모든 백성들에게 이전과 동일하게 살아 역사하십니다. 고후6:1-2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성경은 말씀했습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 너의 말을 듣고, 내가 구원 베풀 때에 너를 구원하니, 지금이 그 때다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간, 은혜 주실 이 시간, 구원 베풀어 주실 이 시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실 이 시간을 놓치지 말아야합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이 복음을 들으면서 복음을 수용하는 믿음이 일어났습니다.

 

앉은뱅이는 아하 그렇구나, 나도 구원받겠다는 믿음으로 사모하고, 바울은 그 사람에게서 구원받을 믿음을 보았고, 사도바울은 일어나 네 발로 일어서라믿음으로 선포를 하면서 말씀이 이루어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박해 속에서는 신앙은 기적의 부흥을 일으킵니다.

 

또한 박해를 이기는 신앙 역시 바른 믿음임을 교훈합니다. 바른 믿음은 박해도 극복하고 박해를 이길 뿐 아니라 박해에서 기적의 부흥을 일으킵니다. 환난 중에서도 우리는 바른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바른 신앙은 적어도 2가지 은혜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첫째 치유와 회복입니다. 바른 믿음은 그 믿음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그 이전까지 해결할 수 없었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육체적인 질병이 치유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작은 일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른 믿음의 사람은 그 속사람이 치유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전혀 어떻게 해 볼 수 없었던 감춰 놓았던 아픔과 슬픔, 그리고 상처들이 치유됩니다. 약한 자는 강해지고 이미 받은 상처 때문에 계속해서 쉽게 상처를 받았던 사람은 상처에 강한 사람이 됩니다. 상처를 받아도 크게 요동하지 않습니다. 아주 건강하고 강한 영혼과 내면을 지닌 사람이 됩니다.

 

둘째, 그래서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본문의 주인공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일어서거나 걷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일어났고 또 걸었습니다. 이것이 은혜가 사람을 회복시키고 치유해 주기 때문에 일으키는 또 다른 기적입니다.

 

정말과 좌절, 그리고 열등감의 사람이 자신의 어떠함에 개의치 않는 사람이 됩니다. 못한다고 좌절하거나 포기하지도 않지만 할 수 있다고 교만해지지도 않습니다. 자신을 치유한 것이 은혜이고 그 은혜가 지금도 자신을 붙들어 주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서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눈에 보이는 문제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참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되면 그런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그런 문제에서 그만큼 자유를 얻게 됩니다. 이런 기적이 바른 믿음을 통해 여러분에게도 일어나길 축복합니다.

 

또한 박해 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로 아는 신앙의 불길입니다.

 

루스드라에는 쓰스와 허메라는 신과 관련된 전설이 있었습니다. 쓰스와 허메신이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그곳을 찾아갔을 때, 사람들은 그들을 신으로 알아보지 못하고 냉대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빌레몬이라는 사람과 그의 아내 바오시스만이 두 신을 자신들의 집으로 영접하여 대접했습니다.

 

그 이후 신의 저주로 홍수가 나서 그곳 사람들이 물에 잠겨 멸망당할 때, 신을 환영한 두 사람만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들이 살고 있던 집은 신전이 되었고, 그들은 제사장이 되었으며, 그들의 자손들이 그 마을을 지키게 됐다는 전설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러한 전설을 가진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던 중 나면서부터 걸어본 적이 없는 지체장애인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쳐주었습니다. 지체장애인이 일어나는 기적을 목격하고 놀란 그곳 사람들은 이러한 기적을 행한 바울과 바나바를 사람의 형상을 입고 강림한 쓰스와 허메로 보았습니다.

 

쓰스는 신들을 다스리는 신인 제우스를 가리키는 것이기에 풍채가 좋은 바나바를 쓰스라고 칭했고, 허메는 쓰스의 대변자로 언어를 발명한 웅변의 신이기에 말을 잘하는 바울을 허메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소와 화관을 가지고 와 그 앞에서 제사 드리려고 합니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의 행동에 옷을 찢으며 분격하며 만류했습니다.

 

그리고 소리 질러 말하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면서 헛된 일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루스드라 사람들에게 옷을 찢으며 소리를 외쳐 만류하는 바울과 바나바를 보면서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루스드라 사람들은 그들의 전설에 의한 잘못된 신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 곳의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전설을 승화하고 발전시켜 쓰스 신당의 부흥과 발전을 기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바울과 바나바가 지체장애인을 걷게 하는 기적의 사건을 일으키자, 그들은 두 사도를 쓰스와 허메라고 하며 제사하고자 했습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옷을 찢는 외침은 이들의 잘못된 신이해를 안타까워하며, 잘못된 신이해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하나님을 하나님 되도록 하라는 요청입니다. 우리들 가운데서 아직도 루스드라 사람들과 같은 잘못된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면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는 은총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이 임의로 만들어 놓은 하나님을 신앙하면서, 이 신앙을 어떠한 목적에 이용하는 현상들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는 인간이 만든 많은 이념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많은 업적성취의 능력자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념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또는 많은 업적을 이룬 능력자들의 영광을 위해 섬김을 강요하는 것을 봅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의 탐심을 승화시킨 탐욕의 형태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그 하나님께 나의 전제된 요구를 강요하는 거짓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옷을 찢으며 외쳐 막았던 것처럼,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참된 신앙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자기 목적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의 뜻과 목적에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이념이나 공적, 능력이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념이나 공적, 능력의 주인이십니다. 이렇게 박해 중에서 바른신관정립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박해 중에서의 선교의 부흥입니다.

 

사도행전 1420절 이하에서 21절에 말씀합니다.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전도단 일행이 돌에 맞아 죽을 뻔 한 그 루스드라에 다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다시 나와서 더베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그 다음에 다시 루스드라로 갔다가 또 다시 이고니온으로 갔다가 또 다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옮겨가며 복음을 전합니다.

 

사도바울은 어떤 환난의 핍박이 다가와도 복음을 전하는 걸 멈추지 않았습니다. 더베에서 루스드라로 루스드라에서 이고니온으로 이고니온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면서 계속 복음을 전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면서 환난이 함께 다가온다는 것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설명합니다.

 

사도행전 1422절에,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교회역사를 보면, 네로 황제 때 사도바울은 붙잡혀서 칼로 목배임을 당해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박해를 받으면 받을수록 교회가 더욱 부흥했습니다.

주의 복음이 더욱더 활발하게 증거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유대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증거 되었습니다. 복음이 온 유럽을 덮었고 이 복음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미국에서 다시 우리 한국 땅까지 와서 한국에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130년 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에 한국의 인구의 4분의 1이 크리스천이 되었고 교회가 55천개가 넘고 전 세계에 24천명이 넘는 선교사를 보낸 선교대국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복음의 역사를 그 누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구원의 역사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많은 환난과 핍박이 지금도 따라오고 있지만은 복음의 역사를 그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필리핀에 한 여성 목회자와 그 딸이 순교하고 난 다음 그 지역에 큰 부흥이 일어난 보고가 있습니다. 줄리엣 카탈란 목사와 그의 딸 쉘양이 필리핀 남부 무슬림지역 민다나오 섬에서 사역하다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서 비참히 순교를 했습니다.

 

저들이 도끼를 들고 와서 도끼로 사정없이 온 몸을 난도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핍박이 다가오고 순교의 피를 흘리고 교회가 폐쇄되는데도 성도들은 오히려 동요하지 않고 더 기도하고 더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한 성도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우리는 목사님이 하시던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 뿐 아니라 목사님의 피도 우리로 하여금 무슬림을 포함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도록 강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포기하면 안 됩니다. 뒤로 물러서면 안 됩니다. 어려움이 다가와도 문제가 다가와도 고통이 다가와도 환난이 다가와도 믿음으로,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용기를 내십시오.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절대긍정, 절대 감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강한 믿음의 용사가 되어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로마서 53절에서 4절은 말씀합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기독교는 박해 중에서도 부흥하는 능력입니다. 환난 중에서도 기적을 바라보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시고 선교의 부흥을 확신합시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을 향하여 이렇게 축복하고 권면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