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지역 초기선교단체들-교수 주태근
아랍선교 강의록(10) : 교수 주태근
2. 중동지역 초기선교단체와 사업
1) 중동지역 초기의 선교단체들
말타섬(Malta)이 1799년에 영국의 소유가 되었다. 영국과 미국의 선교단체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이 전략적인 섬에 교두보를 확립하였다. 1815년까지 ‘런던선교협회’, ‘영국성서협회’는 ‘미국 외국선교위원회’와 더불어 말타섬에서 스스로 강화하였다. 이 외에 다른 네 선교단체들이 그곳에 있었다. ‘교회선교협회’, ‘기독교지식향상협회’, ‘외국복음전도협회’, ‘런던유대인협회’ 등이다. 선교단체들의 첫 사업은 탐사하는 일이었다. 영국교회의 감독이었던 ‘윌리엄 조웨트’ 목사가 1818년에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을 방문하였다. ‘런던 유대인협회(Church Missions to Jews)’의 ‘죠세프 월프’목사는 1821년에 의의 깊은 여행을 하였다. ‘미국 위원회’의 ‘플리니 피스크’와 ‘레비 파킨스’는 1819년에 도착하여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광법위하게 여행하였다. 이 두 개척자의 선교생애는 불과 수년 만에 끝났다. ‘피스크’는 베이르트에 묻혀 있고, ‘파키슨’의 묘는 알렉산드리아에 있다. 이렇게 금세기의 첫 20년 동안의 선교활동은 주로 여러 나라들을 탐사하는 일이었다.
이란의 개척 선교사는 1934년 ‘미국 선교위원회’에서 파송한 ‘저스틴 퍼킨스’목사이다. 이란에서의 선교활동은 주로 네스토리우스교회로 하여금 아시아의 영혼들이 거듭나는 일을 돕는 사역이었다. 서로의 경쟁이 아닌 협력사역이었다.
터키는 ‘미국복음회(The American evangelical Church)'가 1846년에 조직되어, 1847년에는 터키 황제로부터 중동에서의 최초의 선교단체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서방 선교단체들은 하나씩 차례로 그들 스스로의 교회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복음주의 교회들로 알려지게 되었다. 처음부터 중동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 단체 상호 간에 우의와 예양이 두터웠다. 미국 위원회는 터키의 미국인과 이란에 있는 네스토리우스 교도들을 책임졌다. 미국 장로교회는 레바논에 있는 마론 교도들과 이란의 같은 교도들을 책임졌는데, 이란에서는 미국 위원회가 하던 사업을 1870년에 인수하였다. 미국 연합장로회(The United Presbyterian)는 1854년 이래 이집트에 들어와 있는데 현재 그 나라에서 가장 큰 선교단체가 되었다.
미국개혁교회(The Reformed Church of America)는 이 중동 지역에서가장 어려운 곳인 아라비아를 택하였다. 영국교회(the Church of England)는 중동에 여섯 감독 관구를 가지고 있으나 큰 단일 선교기관은 조직하지 않았다. 반면 영국의 사적 선교단체는 교회 선교협회(The Church Missionary Society), 성경 교인 선교협회(The Bible Churchmen's Missionary Society), 복음 전도협회(The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기독교지식 향상협회(The society for the Promotion of christian Knowledge), 대 유대인 선교회(The Church Mission to Jews; 전 런던 유대인협회), 교회 선교협회는 이란,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에서 사업을 함으로서 중동지역에서 일하는 모든 선교단체 가운데서 가장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중동 지역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선교단체는 다음과 같다: 레바논과 시리아에서 사역하는 '영국 및 시리아 선교회'(The British and Syrian Mission; 현재 '레바논 북음주의 선교회'), 팔레스틴에서 사역하는 '기독교인 선교 연합회'(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 이집트에서 사역하는 '이집트 총 연합회'(The egypt General Mission; 현재는 'The Middle East General Mission')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