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서 설교원고

찾아오시는 하나님(창18:1-10)-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24. 09:44

찾아오시는 하나님(18:1-10)

 

 

목사 주태근

 

어떤 여자가 극장에서 밤 프로를 보고 나올 때 실수로 그만 자기가 가장 아끼고 귀중이 여기는 수천만 원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떨어뜨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아침 집에 돌아와서야 그 사실을 알고 황급히 극장 지배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제 밤 프로를 본 사람인데요. 다이아몬드 목걸이 분실신고 들어온 것이 있나요?" 지배인은 없다고 말하면서 잠깐 전화를 끊지 않고 기다리면 앉았던 자리에 확인하러 갔다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배인은 그 여자가 어젯밤에 영화를 보았다는 자리로 급히 달려가 보았습니다.

 

반가운 사실은 컴컴한 극장 그 의자 밑에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습니다. 마지막 상영이라 청소도 아침에 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치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지배인은 기뻐하면서 급히 조금 전에 걸려온 전화통 앞으로 달려와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여보세요... 손님, 여보세요..." “손님!” 하고 불렀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만 전화기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극장 지배인은 전화가 다시 오기를 기다렸으나 그 이후 다시는 전화가 오지를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스피드시대입니다. 인스턴트 시대입니다. 광속의 시대입니다. 생각의 속도로 살기 때문에 느린 것은 가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입니다. 흔히 우리들은 조급증에 시달립니다. 너무도 흔히 우리는 기다림을 지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빨리 빨리 문화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만큼 빨리 빨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너 빨리 가서 두부 좀 사와라, 아저씨 여기 자장면 하나 빨리 갖다 주세요, 기사아저씨 빨리 좀 갑시다. 우리들의 대화 속에서도 좀처럼 빨리 빨리라는 말이 빠지지를 않습니다.

 

어느 식당에는 음식을 주문하고 15분이 경과하면 무료입니다 라는 글이 붙어 있습니다. 어떤 피자 가게에서는 주문 후 30분이 지나면 무료입니다. 사진현상과 인화도 20분이면 완성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티커 사진은 즉석사진입니다. 인간의 조급증을 이용한 세일문화가 많아 졌습니다.

 

미국 펜실바니아 대학교 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 아무도 없을 때는 26초가 걸린다고 말합니다. 다른 차가 주차하려고 기다리고 있을 때는 31초가 걸립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차가 서두르면서 경적을 울릴 때는 43초 걸립니다. 서둘 때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속담에는 "서두르면 망친다"(Haste makes Waste)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이런 조급함은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오랜 세월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들고 또 오랜 세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사람 보기도 어렵습니다. 조금 기도하다 응답이 없으면 기도를 포기합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아브라함이 자기 집 앞에 서 있는데 나그네가 지나갑니다. 나그네는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땀도 많이 흘리고 배고픔도 느끼는 듯 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나그네를 자기 집 안으로 불러 드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쉬고 가라고 권합니다.

 

아브라함은 부인 사라에게 부탁하여 시원한 우유와 막 구운 빵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그 나그네에게 대접합니다. 빵과 우유를 먹는 나그네에게 아브라함이 질문합니다. "선생님! 당신은 음식을 먹을 때 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감사의 마음이 없습니까? 나그네가 무뚝뚝하게 대답합니다.

 

"나는 페르샤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전혀 모릅니다" 이러한 답을 들은 아브라함은 그 나그네에게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믿기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전도하다가 그만 손님과 더불어 큰 논쟁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습니다. 그래서 나그네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당신 같은 사람은 우리 장막에 있을 자격이 없으니 당장 나가시오" 결국 이 소리에 나그네는 화가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떠나는 나그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아! 하나님은 저 사람을 위하여 50년을 참고 기다렸는데 너는 한 시간도 못 기다리는구나!" 이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너무나 부끄러워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기다리며 참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림을 대표합니다.

 

윌리암 말스톤(Dr. William Marston)이라고 하는 심리학자는 3천 명을 상대로 해서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사는 목적에 94%가 결국 기다리는데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 많은 시간, 또 그 많은 마음과 생각을 전부 기다리는 일에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다림으로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평가입니다.

 

한 수도원에 나이 많은 수도사가 오랜 세월 수도를 하며 지내오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젊은 수도사가 노인 수도사에게 오더니 당돌하게 질문을 합니다. "오랜 시절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절제하며 참회하면서 세월을 보내왔는데 아직도 뭔가 깨닫지 못하셨습니까? 아직 거룩해지지 않았습니까?"

 

노인 수도사는 웃으면서 말합니다. "자네가 물으니 대답해 주지. 아니! 나는 아직 거룩해지지 않았어. 뭐 깨달음은 아직 없었냐고? 글쎄 잘 모르겠네. 솔직히 말해서 하루하루 은혜롭게 사는 것마저 아직도 매우 힘드네. 지혜를 깨달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수도사가 또 묻습니다.

 

"그러면 왜 여기에 머무르세요? 수년 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셨다면 더 머무르실 필요는 없잖아요?" 이러한 질문에 노인 수도사는 정색을 하면서 대답합니다. “사실 내가 한 가지 하나님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어. 언제나 깨어 있어야한다는 것. 우리는 언제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실지 몰라!”

 

노인 수도사가 오랜 시간 수도생활을 하면서 확실히 깨달은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감쪽같이 사모하는 자에게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보다 더 많은 자손을 약속 받았던 아브라함이 세월이 지나도 아들이 생기질 않습니다. 이젠 아내 사라도 경도가 다 끊어진 때였습니다. 어느 무더운 날 아브라함이 천막 문 앞에 앉아 있는데 지나가던 세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들을 보자마자 천막 문에서 뛰어나와 맞으면서 나그네들에게 청합니다. "손님네들 괜찮으시다면 소인 곁을 그냥 지나쳐가지 마십시오. 물을 길어 올 터이니 잡수시고 피곤을 푸신 뒤에 길을 떠나십시오. 모처럼 소인한테 오셨는데 어찌 그냥 가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떡을 만들라고 하고는 종에게 송아지를 잡아 요리하도록 시킵니다. 최고로 정성껏 요리한 것을 손님들 앞에 차려놓고는 본인이 손수 옆에서 시중을 듭니다. 그 때 손님들이 아브라함에게 "부인은 어디 계시오?"하고 정중하게 묻습니다. 아브라함은 천막에 있다고 대답합니다.

 

이때 갑자기 손님의 말투가 바뀝니다. 아니 창세기 기자는 더 이상 손님이란 단어를 쓰지 않습니다.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이르시기를 기한이 되면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아브라함은 나그네로 가정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다시 찾아오신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곧 임하는 축복의 신호입니다. 응답이 문 앞에 다가 왔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잉태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림의 사람입니다. 기다림으로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실망하지 않고 기다리는 믿음은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합니다.

 

오랜 전 하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은 자손을 주리라는 약속을 받고 10년이란 세월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준다 하신 약속의 아들은 수태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다른 방법으로 주시는가 보다 판단하고 부인 사라의 판단대로 사라의 여종을 통하여 자식을 얻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시 나타나 약속의 자녀를 거듭 확인시키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또 다시 기다리는 일에 도전하였지만 14년의 세월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도 없었습니다. 희망이 상실된 삶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역시 3차로 약속의 메시지를 받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림에 지쳤고 결국 포기하는 심정에까지 이르고 맙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기쁜 소식을 주어도 덤덤할 뿐입니다. 이제는 허탈한 마음으로 그저 "허허"하고 웃습니다. 아내 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흔히 '나 같으면 믿고 기다렸을 텐데...'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우리보다 믿음이 적어서 그랬던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시간의 힘 앞에서 연약할 수밖에 없는 한 평범한 인간이었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시간은 흘렀고

 

세월은 물처럼 멈출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기에게 허락된 세월의 끝을 그는 희미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웃음과 사라의 웃음은 이 때문입니다. 희망을 가져볼 시간은 이미 지났습니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난날을 그리워하고 혹은 탓하며 초등학교 동창들 부음 소식이나 듣는 것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했습니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도 다 되어 갑니다. 그들은 늙었고 사라의 생리는 끝난 지 한참입니다. 이것이 시간의 한계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때를 놓치면,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희망도 사라집니다. 기다리며 살아온 지난 세월이 야속할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에 하나님은 새로운 삶의 시작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로 찾아오십니다.

 

희망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포르투칼의 수도가 되어 있습니다마는 한때 스페인영에 속해 있던 리스본이라는 항구도시가 있었습니다. 그 항구도시의 해안이 끝나는 곳에 큰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이 바위에 다음과 같은 말이 씌어져 있었습니다. "여기가 끝입니다. 이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1492년에 한 사나이가 이 항구에서 자그마한 배에 오르면서 함께 한 무리들과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바위에 새겨진 글은 사실이 아닙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이 너머에는 위대한 희망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 사나이가 바로 그 유명한 탐험가 콜롬부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15세기말에 유럽남부는 두 차례에 걸친 커다란 지진을 겪었고 콜레라와 페스트가 휩쓸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깊은 절망 속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나 이때 절망을 거부하고 희망의 항해를 출범시킨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신대륙을 발견한 콜롬부스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기다림이 없이 절망하면 모든 것이 끝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런 절망과 좌절을 거부하고 기다림의 희망을 가진 사람은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희망의 세계를 봅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독자 이삭을 얻어 노년기에 새로운 삶의 시작이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일백년의 기다림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행복의 연속입니다.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의 능력을 더 풍성히 체험하는 축복의 세월입니다.

 

스미스 위글리스 성도의 간증입니다. 목에 혹이 있어 매우 불편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부흥회에 참석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데 하나님이 고쳐 주셨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병이 낫다'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혹은 치유되지 않고 목에 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3년 동안 계속하여 하나님이 나의 목에 생긴 혹을 고쳐주셨다고 간증하며 고백했는데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위글리스는 실망하지 않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는 성도들 앞에서 목에 혹이 치유됐다고 당당하게 간증하였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응답 받은 것이 거짓이라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나는 변치 않고 믿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혹을 없애 주옵소서"

 

간절히 기도하고 그날 밤 자고 일어나니 목에 있었던 혹이 그만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기다림의 응답입니다. 희망의 승리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인내하는 자에게 반드시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급한 성질이나 믿음 없음이나 짧은 기도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과 계획이 망쳐질 상황 가운데 놓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언제가 반드시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믿음의 사람은 기다림을 통하여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응답의 하나님입니다. 축복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자손대대로 살아 계셔서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시대에 안 되면 다음 세대에라도 반드시 이루십니다. 성경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6: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