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뜨리시는 주님(창32:22-32) 목사 주태근
깨뜨리시는 주님(창32:22-32)
목사 주태근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낱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깨뜨림”이라는 말입니다. 물론 낱말 자체의 의미는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독특한 분위기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축구선수가 “오늘, 나 깨졌어!”하면, 그것은 “오늘 게임에서 형편없이 졌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사업가가 “이번에 깨졌어!”라고 말하면, 그것은 “이번 사업에 큰 손해를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경우만 보더라도 깨졌다는 말은 즐거운 말이 아닌 고통스럽고 수치스런 의미가 담겨진 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이 낱말을 은혜롭게 사용합니다. 어떤 분이 간증을 하면서 그리스도를 만난 절정에 이르러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깨뜨렸습니다. 저는 주님을 만남으로 깨졌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전 아직 덜 깨졌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깨져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인사를 나누기도 합니다. “우리 다같이 깨집시다!”하나님은 인간의 육성이 깨어진 만큼 은혜를 주십니다. 깨어진 만큼 귀히 사용하십니다.
한국에서 쌀농사 하면 최고로 치는 김용복 영농농장 회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전남 강진 지역에서 70만평 간척지에 선진 공법으로 성공을 한 대표적 신인간입니다. 그는 3살 때 어머니를 여이고 가난 때문에 중학교 2학년을 끝으로 학업을 중단하게 되어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취직했습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야간대학도 나오고 나중에는 결혼도 했습니다. 월남전 당시 외국인 회사 지원해서 취직하여 5년 간 번 돈으로 강남 지역에 땅을 샀는데 그 땅값이 올라 일시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 돈으로 수출 포장 회사를 차려서 잘 나가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다가 그만 회사의 직원이 불의의 사고로 3명이나 죽는 바람에 보상비로 회사를 다 정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건을 처리 후 남은 돈으로 고향 땅에 내려가서 양식 사업을 시작했으나 그 사업마저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이후로는 완전히 좌절하고 절망해서 술에 젖어 미친 사람처럼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전도자를 만나 어느 교회에 나가게 되어 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받는데 놀라운 일은 그때 성령님이 그에게 충만히 임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 인생을 회개합니다.
그가 깨어졌습니다. 그때로부터 순종과 믿음의 사람이 되었는데 완전히 새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깨달았습니다. 인간적인 오기나 꾀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기도 중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중동 사막지대에 노무자들이 먹는 김치용 배추를 사막에서 재배해 보자는 꿈이 생겼습니다. 모래땅과 섭시 50도의 뜨거운 햇빛아래서 채소를 가꾼다는 것은 모두다 불가능 하다가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도 거기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땅을 찾아 빌리고 농부들을 데려다 배추를 심고 키우는데 도전합니다. 실패를 거듭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는 나의 백성이니 너의 일은 모두 나에게 맡겨라 이런 음성이 마음에 다가와 자신감에 미친 사람이 되어 하루 2-3시간 밖에 자지 않고 일하며 채소를 가꾸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우디 현지 농장에서 무와 배추가 생산되자 엄청난 주문이 밀려들었고 사업은 확장되어 엄청난 재산을 모아 들였습니다. 사우디 대 지주들이 수십만 평의 땅을 개발해 달라는 주문을 합니다.
농장 네 개를 더 개발해 주자 사우디 정부에서는 녹색혁명 기수란 칭호를 그에게 주었고, 당시 개인 외화 송금액 1위로써 우리 한국에서는 산업 훈장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사막 농사에서 당시 1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성공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번 돈으로 120명의 학생을 지원해 주고, 주님 만난 가치 있는 감사 생활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고백하고 그는 전남 강진에 돌아와서 큰 농장에 많은 쌀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역시 성공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옛사람이었을 때는 그가 성공하는 것 같았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 깨어지면서 하나님께 의지하고 새인생이 되었을 때는 하나님이 주신 아이디어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가지고 성공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신 결과입니다.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의 중요한 원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깨어짐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깨어지고 바스러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귀한 그릇으로 쓰임 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큰 축복도 받을 수가 없는 깨달음진리입니다. 교회에만 출석한다고 깨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옛사람의 육성이 깨어지지 않고 옛사람의 고집과 교만과 아집이 깨어지지 않으면 평생 고생만 하고 진정한 축복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열매가 없고 사업을 해도 축복이 없습니다. 겉 사람의 육성이 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깨어짐의 원리를 모르면 귀한 그릇도 되지 못하고 진정한 축복도 못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큰 섭리와 섬세한 사랑을 알지 못한 채 낙심하거나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큰 복을 받을 사람일수록 깨뜨리는 작업을 하십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육성을 깨뜨리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 깨뜨리는 도구가 바로 고난과 고통입니다. 고통의 채찍을 사용하시는데 각 사람의 성질과 고집의 강도에 따라 다릅니다.
육성이 강하고 고집의 강도가 센 사람은 큰 방망이 큰 몽둥이를 사용하시고 겉 사람이 약하고 고집이 덜 센 사람에게는 작은 방망이와 작은 막대기로 두들겨 깨뜨리십니다. 우리 형평으로 말하면 콩은 도리깨로 두들겨 타작하고, 보리는 연자 맷돌에 굴리거나 절구에 넣고 껍질이 벗겨질 때까지 절구 공이로 찧습니다.
그러나 깨는 작은 회초리로 톡톡 치기만 해도 알곡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아무리 연자 맷돌을 굴리고 도리깨로 때려도 껍질만 벗겨지게 하지 알곡은 파괴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영성이 강해지기 위해 고난과 고통의 방망이로 두들기고 깨뜨리셔도 감당치 못할 고난과 시련은 주시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성경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때로는 사업의 실패나 물질의 방망이로 깨트리시는데 죽지 않을 만큼 고통을 당하게 하시고, 때로는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두들이기도 하시고, 때로는 국법의 무서운 철퇴로 우리의 교만과 죄 성을 깨부수시기도 하십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있는 대로 야곱은 머리도 잘 굴리고 꾀도 많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택하여 쓰기는 해야겠는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수단과 방법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수단 방법대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에서 형의 장자 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빼앗고 그러기 위해서 양의 가죽으로 목덜미와 손목에 매고 들어가 축복도 가로채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야곱을 깨뜨리기 위해 집을 떠나 황량한 벌판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기도 하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14년 동안이나 머슴살이를 하며 고생을 시켰습니다. 그래도 잘 깨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20년 전에 속여먹은 형 에서가 군인 400명을 거느리고 복수하러 오는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머리를 써서 선물도 많이 보내고 종들과 처자식들과 육축을 먼저 다 형에게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여차하면 자기 혼자서라도 살아서 도망 칠 생각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답답하여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얍복강 여울에서 밤새도록 목숨 걸고 기도하는데 야곱에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꽉 붙잡고 놓지를 않습니다. 살려 주지 않으면 놓지 않겠다고 떼를 씁니다. 천사는 놓으라고 하고 야곱은 놓지를 않습니다. 마침내 천사는 야곱의 가장 힘센 부분인 환도 뼈를 칩니다. 그의 환도 뼈가 위골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완전히 항복합니다. 그러나 천사인줄 안 야곱은 죽을힘을 다하여 매달립니다. 축복을 소원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야곱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의 육성이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네 이름이 뭐냐?" 하니까 "야곱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때에 새 이름을 주었는데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힘이 없어 졌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새롭게 한 후 져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육성이 깨어지며 완전히 항복하며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매어 달릴 때 하나님은 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항복함으로 하나님을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더 크게 쓰시고 더 큰 복을 주시기 위해 어떤 이에게는 물질의 환도 뼈를 치십니다.
그래서 사업이 파산 당하고 부도가 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의 환도 뼈를 치기도 합니다. 도저히 살 가망이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아넣기도 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자식의 환도 뼈로 치기도 합니다. 자식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의 환도 뼈를 쳐서 수치를 당하게 하고 납작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하시거나 저주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육성과 교만과 아집과 욕심을 깨뜨리셔서 더 귀하고 더 큰 그릇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모세도 하나님이 귀한 그릇으로 쓰시기 전에 깨드리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바로의 왕궁에서 40년 동안 살면서 가진 자존심과 교만과 혈기를 깨뜨리시기 위해 살인범의 신세가 되어 버렸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고생하며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면서 완전히 바스러지고 녹아져서 보들보들해진 다음에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야 하겠다"하고 부르십니다. 깨어지기 전 같으면 "하나님! 이제야 부르십니까? 예, 제가 가지요" 그렇게 응답 했겠지만 모세는 이재 80세, 나이도 많고 그의 육성인 교만, 아집도 다 바스러진 다음이라 모세는 전혀 다른 인간의 모습으로 갈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러 가지 가사와 표적을 보인 뒤에도 역시 그는 겸손히 사절합니다.
"주여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자니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그래도 모세는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하고 못한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노를 발하시기까지 하시면서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모세는 워낙 고집이 세고 육성이 강한 사람이라 40년 동안이나 고난의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후에야 육성이 깨어지고 영에 속한 사람이 되고 천추에 빛나는 하나님의 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양치는 목자들에게는 이런 행습이 있습니다. 양이 낭떠러지를 가다가 밑에 맛있는 풀이 있으면 1m정도는 폴짝 뛰어내립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더 큰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문제는 풀을 다 뜯어 먹고 난 뒤에 뛰어 내린 1m를 다시 기어오르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 목자가 잡고 올라오라는 의미에서 로프를 던지면 자신을 잡으려는 줄 알고 오히려 낭떠러지로 뛰어 내려버립니다. 때문에 목자는 이런 상황이 생기면 양이 배가 고파 힘을 다 소진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기진맥진할 때 로프를 던져 양의 몸을 감아 건져 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방법은 자아가 깨지고 부서진 후에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우리를 깨드리어 새사람이 되게 하셔서 축복의 사람으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때로는 깨드리어 사용하십니다. 옛사람의 기질로는 인생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깨드릴 때 주님께 항복하여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아오리라”(욥 23: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