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사람(창37:1-11) 목사 주태근
꿈꾸는 사람(창37:1-11)
목사 주태근
인간에게 있어서 꿈이란 대단히 중요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인생을 값지게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꿈이 없으면 매사에 소극적이 되고 매사에 실망과 좌절 속에 인생을 살게 되어 실패한 사람으로 전락합니다. 우리에게 꿈이 있기에 삶의 소망을 갖게 됩니다. 온갖 고난 속에서도 오뚜기 처럼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꿈이란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합니다.
평범과 비범의 차이는 오직 꿈의 차이입니다. 꿈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삶의 내용입니다. 꿈은 단순한 야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포함된 하나님의 소원을 우리 마음에 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꿈은 우리의 생애 속에서 놀라운 능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전라도의 조그만 섬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중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머슴의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언제까지 이 조그만 섬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나도 이 세계를 향해 뜻을 펴리라”하고 꿈을 품고 도시로 상경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미 있는 책을 발견합니다.
그는 류달영 박사가 덴마크 국민운동과 역사에 관해 쓴 ‘새 역사를 위하여’라는 책을 읽고 민족의 지도자로 자신을 써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0여년 후에 그는 엉뚱하게도 덴마크의 왕에게 이런 서신을 보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서 농사를 배워 한국 농촌을 부흥시키고 싶다”는 내용의 글입니다. 그런데 2주 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덴마크의 외무성으로부터 답신이 온 것입니다. 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당신이 원하는 기간, 당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당신이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비행기표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는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는 덴마크에서 유학을 마치고,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선진 농업을 공부하고 돌아와 이 나라의 근대화에 큰 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건국대학교 ‘류태영’ 박사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에브라함 링컨은 어려서 노예상들이 자기 집 앞으로 노예들을 끌고 가는 것을 보고, 꿈을 가졌습니다. 나는 커서 노예를 해방시키리라. 그는 이러한 꿈의 성취를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며 미국역사상 아니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골프의 황제 타이거우즈는 다섯 살 때 아버지와 TV를 보다가 에티오피아에 가난하여 굶주리고 질병으로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 아파 생각했다고 고백합니다. 아버지 친구가 에티오피아에서 그들을 위하여 봉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저금통을 들고 나와 아버지 친구에게 보내주어 저 불쌍한 자들을 도와주게 하라고 하며 자기는 커서 돈을 많이 벌어 저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지금 타이거우즈는 골프를 하여 많은 돈을 버는데 3분의 1을 구제사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꿈은 미래를 창조하는 재료입니다. 꿈은 미래를 향해 가는 원동력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꾸는 자는 위대합니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야곱에게는 12명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입니다. 야곱은 이 열 두 아들 가운데 자기가 가장 사랑한 아내인 라헬을 통하여 낳은 요셉을 가장 사랑하였습니다.
요셉이 열일곱 살 될 때 그 아버지 야곱은 요셉에게 그 당시 가장 귀한 옷인 채색 옷을 지어 입히며 다른 형제들 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나타내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라던 요셉에게 하나님은 큰 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 형제들이 모두 요셉에게 절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둘째는 그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에게 절하게 될 것 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신 꿈은 장차 그가 큰 인물이 될 것임을 미리 보여 주신 약속의 꿈입니다. 요셉은 그 꿈을 그 형제들과 그 부모님에게 말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그때부터 꿈을 품고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꿈을 주셨고, 요셉은 마음속에 그 꿈을 품고 삶을 시작했으나 그에게는 행복보다는 고난의 날이 계속되기 시작합니다. 요셉이 당한 고난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연속 이었습니다. 꿈이 있다고 해서 그 꿈이 곧바로 행복과 성공으로 연결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반드시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과해야 그 꿈이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그 아버지가 요셉만 편애 하는 것이 늘 못 마땅했는데 거기다가 자기의 꿈을 말하며 그 형들이 요셉에게 모두 절하게 될 것이 라는 꿈 얘기를 듣고 더더욱 미워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요즈음 유행하는 말처럼 왕 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늘 외로웠습니다. 형제들이 자기를 상대해 주지 않고 따돌림만 당하였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의 미움 속에 따돌림을 당하고 외로움 속에 살았지만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꿈을 품고 참고 견디어 냈습니다.
요셉에게 닥친 더 큰 고난은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된 순간입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형제들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이 양을 치고 있는 들에 나갔을 때 형들은 요셉을 보자 즉시 미움이 치솟기 시작하여 마침내 죽이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살아 계심으로 요셉을 지켜주십니다.
형제들이 다 요셉을 죽이고자 음모를 꾸밀 때 하나님은 그 형제 가운데 장자인 르우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 하셨습니다. 맏형 르우벤의 선한 마음에 따라 요셉을 죽이지 않고 물 없는 구덩이에 던져 가두기로 결정합니다. 이런 죽음의 고비가 지나자 다시 요셉에게는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입니다.
하나님은 꿈이 큰 자 일수록 더욱 많이 연단을 시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시고 그의 꿈을 성취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구덩이에 갇혔을 때에 이집트로 가는 사막의 대상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들은 그를 아예 볼 수 없는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버리자고 제안합니다.
결국 은 20냥에 요셉은 그 대상들에게 팔려, 이집트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요셉의 고난은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습니다. 부모형제가 전혀 없는 낯선 이집트 땅에 홀로 있다는 것처럼 외롭고 고통스런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평소에 아버지의 사랑만 받고 자라서 모든 일은 형들이 다하고 그는 일도 한번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요셉 입니다.
날마다 노예로서 죽도록 일하고 밤에는 외로움과 싸우며 온몸의 쑤시고 아픈 고통을 안고 긴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이기에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것이 노예입니다. 이렇듯 고생하는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인간이 고난의 한계에 다다르면 그다음부터는 하나님의 손길로 다시 고삐를 풀어 주십니다. 노예로 일하던 집 주인인 보디발을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여 요셉을 신임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은 요셉을 그 집의 가정총무로 세워 잠시나마 고통을 멈추게 하십니다.
요셉은 이런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여 주신 꿈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꿈이 있기에 이 모든 고난을 잘 참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에게 꿈이 없었다면 그는 일지기 인생을 포기 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자신의 꿈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고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꿈이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요셉에게 편안함도 잠시였습니다. 또다시 그에게 더 큰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요셉의 주인 보디발의 아내가 그의 건장함과 용모가 준수함을 보고 날마다 동침하자고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사는 동안 이성의 유혹을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은 그의 인생에 한 가지 오점을 여자의 유혹 때문에 남겼으며 삼손이라는 사사도 여자의 유혹에 언약을 깨드리어 머리를 깎이므로 사사로서의 사명을 끝내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오늘 요셉도 그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이 보디발의 아내를 통하여 끈질기게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녀의 유혹을 뿌리치고 승리합니다. 그러나 보디발 부인의 거짓고소로 누명을 써 결국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마지막 고난 이었습니다. 우리의 고난이 끝이 없어 보이나 반드시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이 닥칠 때 우리 마음속에 꿈을 품고 이겨내야만 합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으며 그 뜻과 섭리대로 잘 지혜롭게 움직여야 합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에 왕의 신하 가운데 두 사람이 함께 갇히게 되었습니다.
한사람은 술 맡은 관원장이고, 다른 한사람은 떡 굽는 관원장입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꾼 꿈이 각각 달랐습니다. 그들은 상심이 되어 그 꿈이 무엇인가 궁금하였습니다. 그때 요셉이 그 두 사람의 꿈 얘기를 듣고 술 맡은 관원장은 다시 복직이 되며, 떡 굽는 관원장은 사흘 후에 죽을 것이라는 해석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사흘 뒤 왕의 생일에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그 뒤 얼마가 지났을 때 왕이 이상한 꿈을 꾸고 그 꿈을 해석할 수 없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술 맡은 관원장이 전에 자기가 꿈을 꾸었을 때 요셉이라는 청년이 그 꿈을 해석하여 준대로 복직이 되었음을 왕께 말하며 그의 총명함을 왕께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왕의 앞에 나가게 되었고 왕의 꿈을 해석하여 주고 그 대책도 말해 주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의 바로왕은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세워 앞으로 7년 동안 있을 풍년과 7년 동안 있을 흉년을 대비하게 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보여 주신대로 요셉은 이집트나라의 총리가 되는 꿈을 성취하였고 그 후에 가나안땅에 심한 흉년이 들어 야곱의 온 식구들이 이집트에 내려와 요셉 앞에 절하는 일이 성취되어 하나님이 주신 꿈이 모두 성취가 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꿈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모진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꿈이 있는 자만이 살아남게 되고 결국은 그러한 고난을 이겨낸 성도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꿈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잡지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CF모델 박용진이라는 청년이야기입니다. 그의 얼굴만 보면 위로가 됩니다. 016CF ‘아버지 난 누구예요?’로 뜬 청년입니다. 그의 얼굴은 소망이 없는 자입니다. 그가 잠실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선생님이 물었습니다.
‘너 왜 학교 빠지고 지각도 많이 하니’ 박용진이가 모델인줄 몰랐던 때었던 모양입니다. ‘저 CF모델이에요’라고 대답하자 선생님 왈 네가 CF모델이면 난 배우다 어디서 거짓말하느냐고 하며 몇 대 쥐어박았습니다.
나중에 016CF가 뜨니까 ‘네가 훌륭한 모델이구나’ 하고 대우가 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어렸을 때에는 자기의 얼굴의 실체를 잘 몰랐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얼굴의 실체를 알게 되었는데 여자아이들이 자기얼굴만 보면 슬슬 피한다는 것입니다.
슈퍼를 가면 아저씨가 자기만 째려보고 감시하는 눈치입니다. 이때부터 내 얼굴에 문제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고 실의에 빠지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가출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박용진에게는 굉장히 잘생긴 형이 있는데 그 형에게는 가출한 동생을 찾는 데는 은사가 있습니다.
가출하면 하루도 안 되어 찾아 죽지 않을 만큼 때립니다. 그리하여 가출을 포기하고 성형외과를 서성대고 기웃거립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에 난 연기학원 광고를 보고 20만원을 들고 찾아가 도전장을 냈습니다. 꿈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때 만들어낸 표어가 ‘나는 내 얼굴로 승부한다!’ 입니다. 결국 그는 승부에서 이겼습니다. 그런 얼굴을 가지고 CF모델을 꿈꾸다니? 그러나 꿈은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삶을 역전시켜 놓았습니다. 그 인생을 역전시켰던 것은 바로 그의 꿈입니다.
꿈꾸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꿈꾸는 자만이 자기 핸디캡을 극복하고 인생을 역전시켜 승리합니다. 우리 모두 꿈꾸는 자가 됩시다. 신앙인은 꿈꾸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