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기 식량대로 거두라(출16:12-18)/추석/ 목사 주태근
각기 식량대로 거두라(출16:12-18)
목사 주태근(추석)
【유대의 랍비들의 비유 이야기입니다. 어떤 나라에 임금님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결혼을 했습니다. 이 왕은 아들에게 1년 동안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매년 한번씩 충분한 돈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1년에 단 한번만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를 찾아오는 날은 아버지 생일날이 아니라 1년 동안의 생활비를 받아가는 날입니다. 1년 치 생활비를 받아 가면 1년 동안 결코 부모 앞에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지면 아버지에게 손 내밀려고 찾아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방법을 바꾸기로 작정 합니다. 1년 치 생활비를 한꺼번에 다 주지 않고 하루치씩만 아들에게 주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이 매일 아버지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만큼 아들을 사랑했기에 그 아들을 매일 보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1년 치 생활비를 한꺼번에 다 주지 않고 매일 조금씩 그날 것만 공급해 준 것입니다. 물질이 행복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 행복이란 비유입니다.】
오늘 읽은 출애굽기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서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에 아주 괴로웠던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 지역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출애굽한 지 꼭 한 달이 되었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온 지 한 달 만에 식량이 모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식량이 떨어졌다는 말은 아마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는 뜻일 겁니다. 백성들은 술렁대기 시작했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합니다.
당시 그들이 머문 땅은 신광야로서 불모의 땅입니다. 양식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라리 지난 날 이집트 종살이 할 때가 좋았습니다. 그때는 배고픈 적은 없었는데, 이제는 여기서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한 사회나 한 민족이 완전히 식량이 고갈되어서, 아사지경에 처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그 혼란은 상상 이상일 겁니다. 식량을 구할 곳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사 기적을 일으켜서 식량을 공급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서 고기를 먹게 하시고,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서 빵을 만들어 먹게 하셨습니다.
광야 생활 40년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이 농사지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기대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광야는 농사지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또한 지을 여건과 환경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으로 40년을 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은 하루살이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굶주리지 않는 생활이었습니다.【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친구 존 브렌츠 라는 분은 용감한 종교개혁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에 반대하여 수많은 성직자들을 죽이고자 했던 스페인 왕 찰스 5세의 미움을 받게 되어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이 내렸습니다. 어느 날, 스페인의 기병들이 그를 체포하기 위하여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구원의 음성이 그에게 들려왔습니다.
"존! 빨리 빵 한 조각을 갖고 아랫마을로 내려가거라. 거기서 문이 열려진 집을 발견하면, 그 집 지붕 밑으로 숨어라." 그래서 존은 지시한 대로 마을로 내려가 문이 열려진 집을 발견하고 그 집 다락에 몸을 숨겼습니다. 이후 수색이 계속되는 동안 그는 다락방에서 약 14년간 숨어 지냈습니다.
사실 존에게 빵 한 조각은 결코 14년간의 양식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존은 그 곳에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존 브렌츠가 다락에 숨어 지내는 동안 날마다 암탉이 한 마리씩 다락방에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그 닭은 올라와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달걀을 하나씩 낳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14년간 한 번도 그치지 않고 계속 되었고, 그는 이 달걀을 먹고 살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14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는 닭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기이하게 여긴 그는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이다가 자신이 비로소 자유를 찾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존이 14년 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14년간 한 번도 그치지 않고 말없이 알을 낳아 주었던 암탉 때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 닭이 대대로 올라 왔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다른 것을 닭으로 변신하게 했는지는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하루살이의 양식으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일용할 양식을 약속하십니다.
“하루살이”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성서 말씀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끊임없이 만나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만나는 여러 날 쌓아두고 먹을 수 있는 양식이 아니었습니다. 만나는 하루 먹을 수 있는 분량만 거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루 먹을 것 이상 거두어 쌓아둔 것은 전부 썩어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유화의 금지입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루살이, 하루를 중심으로 사는 백성!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삶이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생활방식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가 없으면 당장 굶어야 하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을 향해 사는 백성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알았고, 하나님은 매일 같이 자기 백성에게 만나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지금도 계속되는 ‘하루살이’의 전례를 갖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장례절차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죽으면 3일장이나 5일장, 경우에 따라서 4일장을 치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죽은 때부터 24시간 이내에 장례를 마칩니다. 하루분의 만나를 먹고 살았듯이, 주검을 처리하는 것도 24시간 안에! 완벽한 하루의 종말입니다.
인간은 흙에서 왔으므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장례식 때는 석관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고 관을 안 쓰든가 아니면 나무 관을 씁니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는 하루 동안 집안의 모든 거울을 천으로 가립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니,
살아 있는 인간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서 자신의 형상을 비춰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운구를 할 때 일곱 걸음 걷고 한 번 쉬면서 갑니다. 그 이유란 인생은 헛된 것이라는 뜻에서입니다. 구약성서 전도서에서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말로 헛되다는 단어는 ‘헤벨’로서 이 말이 일곱 번 나옵니다. 그래서 일곱 번 가다가 쉬고 하면서 인생이 헛되다는 것을 상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하루에 다 끝납니다. 이 하루는 365일 중의 하루가 아니라, 인생의 온 역사를 총괄하는 통전적인 하루입니다.
이 하루에 모든 일이 이루어지고 모든 역사가 마감합니다. 하루를 사는 사람들, 자기 인생의 역사를 하루에 통째로 묶어서 사는 사람들! 그들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 하루의 역사가 일곱 번 모아져 안식일의 역사가 되었고, 7년이 되면 안식년 역사가 되었고, 7년이 일곱 번 모이면 희년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출애굽기는 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사람 사는 땅”을 “가나안 지경”이라 말합니다. 광야는 사람 사는 곳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사람이 살 데가 못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 살 만한 곳도 못되는 척박한 곳에서 이스라엘은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은혜롭게, 풍부하게,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놀라는 경이로운 40년의 삶을 살았습니다. 신명기서는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가 이 사십년 동안을 너와 함께 하셨으므로 네게 부족함이 없었느니라.”날마다 경이로움, 신비로움, 놀라움, 새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움이 매일 계속되는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이 경이로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은총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지금도 주시는 은총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마음을 열고 생각을 가다듬어 보시길 바랍니다. 뜨는 해와 스치는 사람, 호흡하게 하시고, 먹이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경이로움과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신령한 가나안인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매일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감탄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한 영국인이 자기의 50회 생일을 맞이하여 50년 동안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표시로 50파운드의 돈을 자선 사업에 희사(喜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 이 돈은 매우 큰 돈이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희사할 방법과 대상을 모색하던 중, 10파운드를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가 경영하는 브리스톨 시의 고아원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생일날에 기부금을 보내려고 했으나 이상하게도 고아원 생각이 맴돌아 생일이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즉시 10파운드의 수표를 고아원으로 우송했습니다. 며칠 후 그는 뮬러의 고아원으로부터 기부금이 접수되었다는 영수증을 받았으며, 연말에는 고아원의 회계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독지가들의 명단과 일년간의 고아원 운영에 대한 내용이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기부금을 우송한 날짜 바로 앞에는 다음과 같은 죠지 뮬러의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돈도, 양식도 모두 바닥났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반드시 채워주실 것이다." 이렇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던 죠지 뮬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절묘한 방법으로 그의 쓸 것을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추석은 우리나라 명절 중에 제일 큰 명절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우리가 감사하면서, 하나님 은혜로 잘 익은 햅쌀과 햇과일을 추수하고, 이 햇곡식으로 송편, 인절미, 절편도 만들어 먹습니다. 성서적으로 볼 때, 추석은 추수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제일 큰 명절입니다. 일 년의 양식을 거두어들이는 축복의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금년에는 태풍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수해를 당했고, 지금도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믿음의 자녀들을 결단코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하루살이 속에서도 양식을 공급하시는 은혜가 있음을 확실히 믿습니다.
【국민일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더 이상 꽃이 필 수 없는 곳 황무지에 정결한 씨앗을 심어 꽃을 피워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보도입니다. 풍부하지는 않지만 가진 것으로 함께 나누는 온정의 손길입니다. 지난 14년 동안 소외된 이웃을 섬기고 있는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회원들의 이야기입니다.
매년 추석 명절을 앞두고 소외지역을 찾고 있는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회원들이 지난 14일 경기도 고양시 벽제 결핵 자활원을 방문했습니다. 이 원장은 한가위 달빛을 보면 더 외로워하는 환우들을 잊지 않고 찾아주는 황무지 회원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지난 14년 동안 이들이 끊이지 않고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가족처럼 염려하는 마음과 사랑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황무지가 장미꽃같이’는 1992년 기독인들의 기도모임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들이 처음 선택한 황무지는 2000여명의 빈민들이 살고 있는 영등포 ‘쪽방동네’였습니다.
매주 목요일 앞치마를 두르고 무료 점심급식을 시작하여 수많은 은혜와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들의 미담이 지인들에게 알려지자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갔습니다. 현재 30여명이 적게는 5000원, 많게는 수십만 원까지 10여 년 동안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돌보는 황무지는 장애인들이 모여 사는 경기도 광주 은혜의 집 외 열 네 곳에 달합니다.
또 황무지 지역 청소년들의 학자금을 전액 지원하고 황무지에서 사역하는 분들에게 도서와 식량 의류 등을 보내고 있습니다. 14년이란 긴 세월 동안 황무지는 놀랍게 옥토로 변해고 아름다운 장미꽃들을 피워냈습니다. 어린이가 청년이 되고 청년이 장년이 되었습니다. 또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후원자로 우뚝 서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장미꽃이 피었어요”라는 반가운 소식들이 전해집니다.】
금년 추석은 풍부한 추석은 결코 아닙니다. 국가경제나 국민경제가 바닥을 치는 어려운 시기입니다. 우리 모두 넉넉한 환경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만나와 메추라기로 하루살이 인생을 살게 하듯 우리를 일용할 양식으로 먹이신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성경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