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및 기념 예배 설교

요단에 들어서라(수3:7-13) 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29. 11:30

요단에 들어서라(3:7-13)

 

 

목사 주태근(종교개혁주일)

 

지금으로부터 반세기전 교회는 은혜의 복음을 잃어버리고 암울한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이 때에 그의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마르틴 루터와 깔벵 같은 이들을 불러일으켜 세우셔서 타락한 교회의 잘못을 밝히시고, 개혁의 횃불을 들게 하셨습니다.

 

루터가 개혁의 횃불을 든 날이 바로 15171031일이었으므로, 오늘 그 날을 기념하는 주일을 맞이한 것입니다. 1510년 로마에 성라테란 교회는 저 멀리 예루살렘에 있는 빌라도 총독 관제에 있었던 싼따스칼라, 예수님이 재판을 받으실 때, 계시던 그 계단을 콜스탄트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가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 성당 안에다가 두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올라갔다 오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는 다고 하는 그런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 역시 그 곳을 기어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기어 올라가다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로마서 117절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행으로 구원받고 선행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고 죄 사함 받는 진리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 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20세기 초엽 조선은 캄캄한 밤과 같은 시대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일본에 의해 점령을 당하기 시작했고, 사회와 경제 상태는 무질서하고 어두웠습니다. 그 때 윌리암 블래어 선교사는 1910년에 저술한 한국의 오순절이란 저서에서 19세기 초엽 조선의 어두운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건장한 남자들이 망국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때 참으로 동정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내게 와서 이렇게 물었다. ‘우리 같이 가난하고 비참한 민족이 또 있습니까?’그러나 이 말은 그들의 눈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의 심령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수년 동안 그들은 재 가운데 앉아 지난날 불행과 죄악을 슬퍼하고 있었다. 그토록 처참한 민족 위에 하나님은 때때로 축복의 손을 펴신다.” 그러나 이러한 조선에 처참한 어두움을 밝히는 영적 각성 운동이 1903년경부터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하다가, 1907년에 평양에서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각성 운동의 주역은 평양 장대현교회의 길선주 목사입니다. 온 나라가 민족적 비통에 사무쳐 있던 1905, 영국의 웨일즈 지방에서 성령의 불길이 일어나서, 서방 교회를 부흥시켰다는 소식은 길선주 목사의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길선주 목사는 신학교 시절부터 기도와 금식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1906년부터 평안도 곳곳에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19071월 첫 주 평양 장대현 교회 사경회에서 길선주 목사가 설교하는 기간 중에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는데 2,200여명의 결신자가 생겼습니다.

 

수요일 저녁 집회 때의 일이었습니다. 예배당은 만원을 이루었고 장내의 분위기는 곧 무엇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때 길선주 목사는 마음의 문을 열고 성신을 받으라는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길선주 목사의 설교는 흐르는 시내 같았고 회중은 감격에 사로잡혔습니다.

 

다음 날 저녁 길선주 목사는 이상한 귀빈과 괴이한 주인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는데 설교 도중에, 여기저기서 통회의 외침과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블래어 선교사는 그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한쪽 구석에서 어떤 사람이 울기 시작했고 이어서 모든 사람이 울기 시작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일어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는 털썩 주저앉아 흐느껴 울다가 마루 위에 뒹굴면서 고뇌에 찬 모습으로 두 주먹으로 마루 바닥을 두들겼다. 모든 청중들이 한 목소리로 통성기도를 했는데 통성기도의 감화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많은 물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고 기도의 바다가 하나님의 보좌를 때리는 것 같았다.” 1907년에 일어난 조선 땅의 영적 각성 운동은 교회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생명의 불길이 되었고, 윤리적 삶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회 개혁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블래어 선교사는 각성 운동이 가져온 생활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시내 각 곳에서 사람들은 이 집 저 집 다니며 전에 피해를 주었던 사람들을 찾아가 잘못을 빌었으며 기독교인들에게 뿐 아니라 이교도들 에게도 훔친 물건과 돈을 돌려주느라 시내는 온통 술렁거렸다.

 

한 중국 상인은 어떤 기독교인이 들어와 수년 전 자기에게서 부당 이익을 취하여 모은 것이라며 거금을 주는 것을 받고 깜짝 놀랐다.” 길선주 목사는 1907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여 한국 최초 일곱 분 목사들 중의 한 분이 되었고, 그 후 목회와 전도에 헌신하며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에 종사하다가, 19351126일 평남 강서군 고창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고 마지막 폐회 축도를 마치고 쓸어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역사는 믿음으로 도전하는 사람을 통하여 발전하며 성장해 나갑니다.

 

(아랍에미리트 라스 알 콰이마 필리핀 공동체 예배 인도후 기념)

 

(아랍에미리트 사르쟈 필리핀공동체 예배 인도 후 기념)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위대한 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믿음생활은 바로 강을 건너는 일이라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가라명령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유브라데스 강을 건너갔습니다.

 

여기서 히브리 "핫비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 말은 "강을 건넌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강을 건너갔다는데서, 히브리민족의 근원이 있고, 히브리 민족의 어원인 히브리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강을 건너가야 할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유브라데스 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강을 건너감으로 역사가 시작이 되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땅에 노예 생활을 430년 동안이나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저들을 가나안 땅으로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홍해를 건너게 했습니다. 홍해를 건너감으로 노예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민, 천국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제 최후로 건너가야 할 한 강이 저들 앞에 넘실대고 있었습니다. 바로 요단강입니다. 요단강을 건너야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을 누릴 수 있고 안식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홍해는 60만 장정이 건넜습니다. 허다한 잡 족이 따라 나섰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은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두 사람만 건너갔습니다. 이집트에서 함께 출애굽한 많은 사람들은 광야생활 40년에서 이미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요단은 믿음의 사람만 건널 수 있는 강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요단을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가나안 거인 족을 보고 두려워 떨던 부정적인 정탐꾼들은 요단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불신앙의 사람은 아무도 그 강을 건너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 시대에 믿음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거룩한 시선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요단을 건너가지 못합니다. 미래를 두려움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언제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도 약속의 땅을 쟁취할 수가 없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리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는 긍정적인 창조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미래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언제나 새 시대는 믿음의 사람, 꿈의 사람들에 의하여 펼쳐져 갔습니다. 일찍이 2차대전의 유명한 패턴 장군은 전역하는 부하 장병들을 훈시하는 말 가운데 흔히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먼 훗날 그대들의 후손들이 그토록 처절했던 전쟁 때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물을 때 그대들은 자랑스럽게 그렇게 대답해라. "나는 대 패턴 전차군단의 일원이었다."

 

역사의 대열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신앙 생활하는 사람 가운데도 패잔병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승전군인처럼 자신만만하고 긍지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예배 한번을 드리더라도 장례식에 참여한다는 기분으로 오는 사람이 있고, 결혼식에 오는 듯한 행복감에 젖어 예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는 늘 긍정적인 사람들에 의하여 창조되어 집니다. 언제나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 어두운 구석만 파헤치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역사는 한발자국도 전진해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에 들어가자마자 강물이 갈라졌습니다. 제방까지 넘실대는 요단에 발을 내어 딛자마자 갈라졌습니다. 요단강은 원래 평상시에는 쉽게 건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기 철이 되면 요단강 물이 범람하여 창일하게 되고 그것을 건넌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 이었습니다.

 

이 우기를 본문에서는 모맥 거두는 시기로 표현합니다. 이 보리 거두는 시기는 기온이 올라가는 시기로 헐몬 산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우기철의 비와 녹은 얼음물이 합세하여 요단강 물이 범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범람하는 요단강 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입니다. 천로역정을 저작한 존 번연은 이 요단강을 죽음의 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표현했는가하면, 예레미야서 12:5절을 근거로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네가 요단강 물이 창일 할 때에는 어떻게 하겠느냐?" 창일하는 요단강 물을 인간은 감당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 요단강을 건너야만 가나안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명하십니다.

 

요단에 들어서라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을 받아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강물 속으로 들어가라 명령하였습니다. 그들이 그 명령에 순종하여 물에 들어가 물이 무릎 근처에 잠기자, 놀랍게도 요단강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단강을 육지같이 건너서 드디어 가나안 땅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요단강은 단지 하나의 강을 건넌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강을 건넌 것은 곧 축복의 시작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들이 밟는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들이 밟는 땅은 사막 땅 이었습니다. 사막은 아무 쓸모없는 땅 입니다. 그러나 이제 요단강을 건너 밟는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축복의 시작입니다.

 

축복은 도전하는 자에게 임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1517103195개 조항을 비텐부르크 성당에 붙였습니다. 종교 개혁을 시도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바른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종교개혁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3년 뒤에 교황은 그에게 교서 하나를 보냈습니다. 이단 종교의 교서입니다. 이단으로 정죄되면 그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 교서를 받아 든 마르틴 루터는 비텐부르크 대학에 제자들과 교수들이 있는 가운데서 그 교서를 불태워 버리고 말았습니다.

 

조금도 위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521년 보름스 국회에 소환을 당했습니다. 찰스5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들이 사실이냐! 아니라고 말 한마디만 하면 살려 주겠노라. 용서해 주겠노라!" 살기등등한 국회 앞에서 마르틴 루터는 조금도 위축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잘못이 성경에 의해서 증명되지 않는 한, 나는 양심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주님, 나를 도와주옵소서." 이렇게 담대하게 고백을 하고 보름스 국회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명을 위하여 개혁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개혁은 이렇게 시작하여 온 유럽의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랐습니다.

 

스위스, 영국, 스코틀랜드, 프랑스, 미국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결국 청교도들이 싣고 간 그 귀한 개혁 신앙은 미국을 세웠고, 미국에서부터 이어 나온 타오른 선교의 불길에 우리 한국까지 개혁 신앙이 전파된 것입니다.

 

축복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를 통하여 성취됩니다. 성도 여러분! 주저하지 맙시다.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마르틴 루터는 믿음으로 개혁에 도전함으로 새역사를 창조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자원이 아닙니다. 부족하지만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장애물인 요단을 건너는 도전입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가로 막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도전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1: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