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샘이 넘치는 교회(요4:13-14)-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10. 9. 11:06

샘이 넘치는 교회(4:13-14)

 

 

목사 주태근 : 신년주일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북 아프리카의 엘 알라맹 (El Alamein)이라는 곳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엘 알라맹을 지키고 있던 영국군의 병력과 독일군의 병력은 서로가 최선을 다하는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 진영이 모두 다 사막에서의 전투를 수행하는 중에 식수가 고갈 되어 괴로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영국군은 전통적인 자신들의 방식대로 물을 발견하고서는 진지까지 파이프를 연결하고 그 안에다 바닷물을 채워 넣었습니다. 파이프의 이상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아까운 식수를 허비하기보다는 이렇게 하여 바닷물로 시험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침 정찰을 나섰던 독일 병사들에 의해 이 파이프라인이 발견되어졌고, 이 사실은 즉시 독일 진영에 알려져 전 병력이 달콤한 물을 기대하며 곡괭이로 파이프 중간을 끊어 내었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물을 본 순간 앞뒤 가릴 것 없이 사병 모두 물을 들이켰습니다. 얼마나 급하고 정신이 없었던지 이들은 얼마 안 있어서 통증이 오기까지는 그것이 소금물인 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의 갈증보다 더 심한 고통에 못 이겨 마침내 항복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엘 알라맹에 있던 영국 군대는 적의 중대 병력 전원이 고통스런 숨을 내쉬며 손을 머리 위로 똑바로 들고서 어정어정 걸어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투항한 독일군이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영국군이 가진 물을 얻어 활활 타오르는 목구멍 속으로 들이키는 일이었습니다.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사막 한 가운데 자리한 호텔

 

물은 생명의 대명사입니다. 우리 몸의 피의 90%가 물입니다. 뇌의 80%, 살의75%, 심지어 뼈의 25%는 물입니다. 또한 물은 체온을 조절하고, 비타민 등 영양분을 운반하고 배설물을 처리합니다.

 

이처럼 물은 인간의 육체에도 생명의 근원입니다. 굶어서는 여러 날은 살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으면 일찍 죽습니다.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9개월 동안 물속에서 성장합니다. 그러다가 세상에 태어나 약 65백 갤런의 물을 마시다가 죽습니다. 인간은 물에서 태어나 물의 덕분으로 살다가 죽습니다.

 

이처럼 물은 생명의 대명사입니다. 물이 없는 곳은 곧 광야입니다. 물이 없는 곳은 사람이 떠나게 되고 짐승이 죽고 식물이 죽어서 황무지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물이 많이 있는 곳은 도시가 형성되고 문화가 발달되고 번영과 풍요와 기쁨이 있습니다.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했었다는 우주과학자들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 근거로서 물이 있었던 호수의 흔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체의 존재 여부는 물과 절대적인 관계입니다. 물이 있었다면 반드시 생명체가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별스런 생물체의 모습의 있는 것 같아도 물이 없었다면 생명체의 존재를 부정하게 됩니다.

 

비행기를 타고 중동지역을 지나면서 보면 사우디아라비아 사막 지역에 바둑판에 바둑알을 올려놓은 것처럼 둥글고 파란지역이 눈에 띱니다. 멀리 공중에서 보니 무엇인지 잘 몰라서 비행기 승무원에게 물어보았더니 사막에 수도관을 묻어서 스프링클러로 물을 뿌려

밀을 경작하고 있으며 많은 밀을 수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사막이라도 스프링클러가 돌아가면서 물을 뿌린 곳은 파랗게 곡식이 자라고 그렇지 못한 곳은 황무지 그대로입니다. 같은 세상에 살아도 생수의 단비를 맞으며 사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고 만족이 있고 열매와 축복이 있습니다.

 

생명에는 생물학적 생명과 영생과 같은 생명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생명을 살리는 종교입니다. 생명 살리기 운동은 인간생명 구원뿐 아니라 억압과 빈곤 장애와 고난에 처한 모든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피조물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구 생명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 자체입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요일 512)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오셨다(1010)고 말씀했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생명 샘이 되십니다. 생명 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그 교회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교회가 바로 생명을 주는 샘이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우리 교회가 생명수 되시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생명의 샘이 되어 백성을 구원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7장 말씀에 보면,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 이른 것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올 것 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가서 그를 마시는 자, 그를 먹는 자, 그를 믿는 자들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약속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배()란 인격 혹은 우리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생수(生水)는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받게 될 성령님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 입니다. 예수님께로 나가는 자는 성령님을 받게 되어 그 삶이 메마르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풍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늘 푸르고 때를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생수의 강으로 비유된 성령님은 바로 우리의 생명을 풍요롭게 하시는 분임을 지칭한 것입니다. 뜨거운 사막에서 목이 타는 사람들에게 생수는 곧 생명을 뜻합니다.

 

여러해 전에 미국 서부 사막 지대에 사는 아메리칸 인디언이 뉴욕으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뉴욕시에서는 원주민 인디언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며칠동안 뉴욕시 당국의 안내를 받으며 세계적인 관광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난후 그를 안내한 시 직원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뉴욕에 오셔서 며칠동안 지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그때 이 원주민 인디언이 수도꼭지 옆으로 가서 수도를 틀면서 하는 말이 "제가 세계적인 도시 뉴욕에 와서 며칠을 지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언제나 마시고 싶으면 얻을 수 있는 물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늘을 찌를 것처럼 우뚝 서있는 고층 빌딩이 아니고, 거리를 가득 메운 자동차가 아니고, 호화찬란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아니고, 평생 먹어보지 못하다가 처음 맛본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언제나 원하면 구할 수 있는 물이 풍족하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것은 목마름을 뼈저리게 당하는 사람만이 절실하게 느끼는 갈증입니다. 유대 땅은 일년에 두세 차례 비가 오는 그들의 표현대로 하면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오는 그리고 거의 비가 오지 않는 메마른 땅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나 이삭 그리고 야곱이 우물을 찾기 위해서 가축을 이끌고 여기 저기 헤매며 다녀야만 했습니다.

 

물은 언제나 유대인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중동 지역 같이 물이 부족한 곳에서 생수가 강처럼 흐른다는 것은 곧 풍요로운 삶을 뜻합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이 시들은 세계 속에 성령님의 오심은 곧 생수가 솟는 샘을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음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우리에게 직접 가져오시는 분이기에 그가 곧 생수가 솟는 샘이요, 강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이루시는 역사는 바로 죽었던 생명을 살리시는 일이요, 그 생명을 풍성케 하는 일인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업적을 통해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은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시고 그 십자가와 부활을 믿게 하시므로, 우리 속에 죽었던 영이 살아나게 하시고, 우리로 영생에 이르게 하십니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던 지역에 흡족한 단비가 내리므로 죽었던 들판에 꽃이 피어나고 사라졌던 들짐승들이 돌아온 것과 같이, 죄 때문에 시들었던 땅에 성령의 단비가 내리므로 생명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고 생명력이 넘치는 풍요로운 세계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선교하는 한국 선교사가 있습니다. 모 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선교를 하는데 북한에서 온 유학생들도 같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 경계하고 멀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핏줄인지라 서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사이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북한 사람들이 선교사에게 "형님. 남한 유행가 하나 가르쳐 주시라요"라며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청했습니다. 선교사로서는 마땅히 가르쳐줄 유행가도 없었지만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그들을 모아놓고 남한 유행가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강같은 평화 넘치네.." "내게 샘솟는 기쁨~~" "내게 바다 같은 사랑~~" 그런데 문제는 "할렐루야"부분이었습니다. 북한 유학생들도 지성인이기 때문에 할렐루야가 무엇인지는 알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할렐루야 대신 "닐리리야"로 바꿔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멋진 노래, 멋진 가사라며 박수를 치며 부르고 또 불렸고 하나님의 성령은 그들 속에 감동감화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는 곳에 새생명이 약동하게 됩니다. 생수의 강 같은 성령님은 우리의 생명을 회복시켜 줄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생수의 강이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4장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 (14)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면 막혔던 샘이 터져 나오듯, 성령의 단비가 내리면 우리 속에서도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이 터지면서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줄 수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가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면서 그는 끊임없이 생명의 샘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솟아나게 하십니다. 우리로 그리스도를 잊지 않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게 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여,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헌신하게 하십니다. 결국 우리는 성령님을 통해서 생수와 같은 존재로 거듭나게 되므로, 항상 사랑이 풍성하고 늘 넉넉하여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샘은 맑은 물을 냅니다.

 

아무리 양이 많아도 오염된 물은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물도 그 맑음을 유지한다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맑음을 유지하는 것이 샘의 생명입니다. 샘이 맑음을 유지함은 끊임없이 자신의 물을 내어주고 쏟아내고 자신을 비울 때 가능합니다.

 

샘은 샘물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샘이 샘물을 소유하는 순간 샘은 죽고 맙니다. 이것이 생명의 신비이며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갖듯이 밥도 물도 홀로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샘물이 되어 이웃에게 세상에 흘러넘치게 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의 사명은 샘이 솟는 샘이 되어 물을 끊임없이 필요한 곳에 나누어주는 일입니다. 나누고 퍼 주는 것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길 때 계속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입니다. 맑은 물을 내는 샘이 될 것입니다. 움켜쥐면 쥘수록 물은 썩고 마침내 샘도 쓸모없게 됩니다.

 

당신은 샘입니다. 우리들 모두가 예수님 안에 거하여 예수님의 생명으로 샘물이 넘치는 샘이 됩시다. 말씀과 성령과 은혜가 펑펑 솟아나는 샘물 같은 신앙은 교회를 부흥시키고 우리 영혼을 만족하게 합니다.

 

낙타는 사막 길을 며칠 동안 여행해도 갈증 때문에 물을 찾는 일이 없습니다. 몸 안에 물주머니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을 먹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 물이 올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물 때문에 사막 여행 중에 갈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슴은 항상 물을 찾아다닙니다. 금방 물을 먹고 조금 있으면 또 찾아다닙니다. 몸 안에 물주머니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슴과 같습니다. 생수의 근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낙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신 성도에게는 이런 갈증이 없게 됩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불순종을 하니 물주머니가 없는 사슴처럼 항상 목이 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가 이것입니다. 신자는 늘 생수를 마시기 때문에 풍성합니다. 불신자들은 이것이 없기 때문에 겉으로 보면 화려하고 다 가진 것 같지만 속에 들어가 보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 가슴으로 갈급해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입니다.

 

금년도 우리교회 표어가 샘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하심이 필요합니다. 성령님으로 움직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샘이 흘러넘치는 능력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능합니다. 목말라하는 이 시대에 생수의 샘이 됩시다. 우리 샘을 물댄 동산 같게 만듭시다.

 

우리 교회가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같게 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가 풍성해야합니다. 우리의 숨결에 들이쉼과 내쉼이 필요하듯 들이쉼의 말씀과 내쉼의 기도가 살아야 합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샘물이 됩니다. 그래서 세상과 인류를 변화시키는 샘물이 됩시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값없이 와서 사라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55:1-3) 아멘

 

 

생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