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 왔다(막1:14-20)-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10. 23. 18:40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 왔다(1:14-20)

 

 

목사 주태근

 

12월 가장 추울 때 군입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이 펑펑 쏟아지면 어머니는 아들 걱정을 합니다. 아들이 추위를 잘 타는데 이 추운 겨울에 어떻게 지낼 까 염려합니다. 온통 어머니의 마음은 아들에게 가 있습니다.

 

아들이 어머니의 마음을 느끼는 가 못 느끼는가에 관계없이 어머니의 마음은 "이미" 아들에게 가 있습니다. 아들 편에서 볼 때는 어머니의 마음은 이미아들에게 가까이 와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아직"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직 아니"의 상황에서 "이미"의 마음을 읽을 때 아들은 이미 와 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비로소 깨칠 수가 있습니다. 천국의 이해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미 와 있는 천국을 아직도 맛보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는데도 아직 이 진리의 말씀에 가까이 가지 못한 이들, 아직 그 진리를 알지 못하여 깨닫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미 와 있는 천국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야할 천국이며, 이미 와 있는 천국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천국에 간다는 말이 올바른 표현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와 있는 천국과 아직 가야할 천국 사이에 긴장 속에 삽니다. 이 긴장은 천국이 이미 와 있음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해소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아버지 나라가 오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아버지 나라, 하나님 나라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와 있는 하나님 나라를 체험으로 알게 해 주시고 그 체험 속에 살게 해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오소서" 기도하는 마음은 오실 우주적 종말의 주님의 재림도 기다리는 것이며, 아울러 이 땅에서 복음이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가 천국임을 고백하며 사는 길입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의 시간관념은 하루 24시간, 1365일입니다.

 

그런데 신약 성경이 기록된 문자였던 헬라인들의 시간관념은 크게 2가지로 나눕니다. "크로노스" 개념과 "카이로스" 개념입니다. 크로노스는 하루 24시간이 반복되는 시간관입니다. 이것은 불교적인 시관관념과 비슷합니다. 불교는 인생을 윤회로 생각합니다.반면에 기독교인들의 시간관념은 "카이로스"입니다. 일직선이므로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비전교회(구 두바이제일교회)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이는 카이로스적 시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때가 찼다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 때가 꽉 찬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될 구속사업이 실현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점차 성장하고 완전해지는 것으로 헬라어 엥기조라는 말을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온 인류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복음을 믿도록 촉구하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임박했음을 강조한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망적인 상태에 처한 이 땅에 하나님 나라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 지역은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 있었습니다. 로마는 거대 제국으로서 지중해 계 전체를 석권하고 있었으며, 그 세력에 맞설 수 있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에게 있어서 로마는 압제 세력이었습니다. 과중한 세금과 부역으로 백성들의 허리가 휠 지경이었고, 총독들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자존심을 짓밟았습니다. 곳곳에서 유민이 발생했고, 사회는

극도로 불안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전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로마와 적절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들의 안위에 힘썼을 뿐이며, 백성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했습니다. 백성들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지도자들에게도 착취를 당해야 했습니다. 바로 이런 시점에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세례자 요한의 사역에 뒤이어 이루어졌습니다. 본문의 내용이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메시아로서의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한 나라가 가고 새 나라가 세워지는 시기처럼 급변하는 시기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마 제국을 대체할 영원한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엄청난 변혁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와 함께 예수님은 그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맞추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사람들을 모집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역군이 될 제자들을 부르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본문이 그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로마 제국을 대체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은 당대 최고의 나라였습니다. 그 힘과 기세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그 어떤 나라와도 다릅니다. 우선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시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이 세상에서 시작되어 영원한 세상으로 연결되는 특별한 나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을 때, 이미 그 나라는 막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가까웠다는 말씀은 단순한 미래형이 아니라, 이미 시작되어 앞으로 계속될 상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는 제아무리 로마 제국이 강대하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막을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야흐로 하나님의 나라가 도도한 강물처럼 역사 위를 흐르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나라가 도래한다는 것은 급격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한 나라가 멸망하고 새 나라가 세워질 때의 변화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게 바뀔 것입니다.

 

로마 제국이 유대를 점령함으로써 유대가 멸망하고, 로마의 세상이 왔을 때, 그 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한 사람들은 로마의 문화와 통치를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로마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를 폐하시고, 그 대신 당신의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 전적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왕으로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급변의 시대에 필요한 태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열렬히 영접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하여 새 가죽 부대를 준비해야 하는 원리를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영접하는 태도, 하나님 나라를 담기 위해 새 가죽부대를 준비하는 마음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먼저 예수님은 믿을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회개를 포함하는 믿음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호적 하는 자격 조건입니다.

 

요한복음 112절은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그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되는 은총이 주어집니다.

 

이런 은총을 입은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강도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죽어가는 그 순간 예수님께 자신을 의탁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23:42).

그는당신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강도는 태어난 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름대로자신의 나라를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재물로 세우는 나라, 권력으로 세우는 나라, 지식의 나라, 명예의 나라…… 그런 나라들을 세우기 위해 그는 온갖 악을 서슴지 않고 자행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의 나라는 세워지지 못했습니다. 애초부터 그 나라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오해한 것입니다. 자신이 노력하면 자신의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나라를 포기하고 '예수의 나라를 의지했을 때, 왕이신 예수님은 즉각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

 

예수님은 나중에 봐서 결정하겠다고 유보하지 않으셨습니다. 즉석에서 그를 당신 나라의 백성으로 윤허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바로 그 나라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강도는 특별한 선행이나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을 그 나라에 맡기는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비록 때늦기는 했지만, 자신의 나라를 포기하고 믿음으로 의지했을 때,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발급하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뿐만 아니라, 그 나라를 위해 일할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때까지도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갈릴리 바다의 살아 있는 물고기를 잡아 죽게 하여 내다 파는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죽이는 어부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죽은 영혼을 살게 하는 생명의 어부로 그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로마 제국을 비롯한 세상의 나라들은 죽음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생명의 나라입니다.

 

우리가 미국에서 미국 국적을 가지고 살려면 미국에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영어를 배워야 하고, 미국 법을 알아야 하며, 여러 사회 제도를 배워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로마의 백성으로만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려면 하나님 나라의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모두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배우는 자를제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 안드레 등을 불러 생명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어부로 만드시기 위하여 복음의 그물로 영혼을 건지는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는 배우는 사람입니다. 배우지 않는 사람은 제자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제자로 하나님 나라를 배우게 되길 원합니다.

 

그 나라의 법과 질서, 그 나라의 능력과 생명력을 체험하게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따라감에는이동의 의미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동한다는 것에는 두 가지 차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머물던 곳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학생이 군대에 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군인이 되려면 군복을 입어야 합니다. 군복을 입으려면 학생의 옷을 먼저 벗어야 합니다. 바로 여기서버림이 필요하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배와 그물 등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버렸기에 새로운 것으로 입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어거스틴은 그의신의 도성에서하나님의 나라지상의 나라에 관해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 지상의 나라는 이기적인 자기 사랑이 주장하는 곳이요, 반면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움직이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려면 자기 사랑은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기에 대한 이기적 사랑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악의 문화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미 그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상 초창기의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님이 6.25동란 무렵에 목포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다가 공산당에 붙잡혔습니다.

 

끌려가서 심한 고문과 조롱을 당하며 나날을 보내었는데 어느 날 한 공산당원이 이 목사님을 끌고 가서 또 고문을 하다가 아주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영감, 내한테 천국 좀 보여 줄 수 있어? " 하고는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이 목사님은 발길에 채이면서도 ", 보여드리지요."하고 말했습니다.

 

", 죽어서 가는 천당 말고 지금 당장 보여주란 말야."하고는 또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 지금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라는 이 목사님의 말에 공산당원은, "어떻게 보여 주냐?"고 하며 또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그 때 이 목사님은 ", 천국 본점이야 내 소관이 아니니까 보여 드릴 수 없지만 지점이야 내가 보여 드릴 수 있지요. 그 천국 지점이 바로 제 마음입니다. 내 마음에 천국이 있습니다."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앞으로 들어갈 미래의 나라이지만 천국백성인 우리들의 모습은 보여 줄 수가 있습니다. 특별히 주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미 천국은 너희 안에 들어 왔기 때문에 귀신들이 항복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귀신을 이기며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결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촉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 회개하고 믿고 배우고 따르라! 그리하여 새 나라의 새 백성이 되라!”우리 모두 로마로 상징되는 죄악의 나라에서 허덕이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준비되길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고통의 나라에서 살지 말고, 생명의 은총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17:20-2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