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막2:1-12)-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10. 23. 18:55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2:1-12)

 

 

목사 주태근

 

어떤 마을에 잘 웃지 않는 대단히 거룩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가벼운 농담도 전혀 할 줄 모르는 매우 경건한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 큰 홍수가 났습니다. 교회도 대부분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교회의 지붕으로 간신히 피신한 목사님은 다급한 어조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홍수 가운데서 저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이때에 어디에선가 119 보트 2대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헬리콥터도 날아왔습니다. 구조대원들이 목사님을 향해서 외칩니다. “목사님, 어서 보토를 타시든지 아니면 헬리콥터에 달려 있는 밧줄을 잡고서 올라오십시오!”

 

그러나 이 거룩하고 경건한 목사님은 태연히 성경책을 들고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인간적인 도움을 받지 않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를 구조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하늘을 향해서 두 손을 높이 들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결국 목사님은 그만 불어난 물에 의해서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이 목사님이 천국 문 앞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천국 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만난 이 경건한 목사님은 너무 화가 나서 불평과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아니,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열심히 기도를 하였는데 왜 나를 구조하지 못한 거요?”라고 따지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이 화가 난 목사님을 향해서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 거 이상한데요? 당신이 기도한 것이 천국에서 접수가 되어서 우리가 보트 2대하고 헬리콥터 1대를 보냈는데 도착을 안 했습니까?”

 

검증되지 않은 풍자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의미를 줍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도 때로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진리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까? 누가 여러분을 예수님께로 인도해 주셨습니까? 아마도 누군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비전교회(구 두바이제일교회)

 

 

오늘 본문의 중풍병자는 스스로 걷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예수님께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4명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 병자를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방법으로 도와주어 예수님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스스로 예수님께 올 수 없는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두 죄의 중풍 병에 걸려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는 하나님께 갈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인간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죄성 때문에 영적으로 죽은 우리는 스스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공부는 할 수 있어도, 스스로 하나님께 갈 수는 없는 존재임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도해주려는 사람들을 거부하고 때로는 핍박까지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성이요, 영적으로 죽은 자의 모습입니다.

 

이 병자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날 때부터 이런 불행한 모습이어서 자기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예수를 찾아가 만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를 만나고 싶어도 그 앞을 막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집 안에 들어가고자 했으나 문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옆에도 못 오게 하고 저 사람은 구박하고, 또 이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주고 저 사람은 무시하는 가운데, 모든 사람들이 그가 예수님 만나는 것을 막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신앙생활에 온갖 방해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힘들게 하고 하나님께 가는 길을 막는 육체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 정서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 대인관계의 문제, 질병의 문제 등 많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이 병자를 고쳐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떤 의사도, 어떤 방법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인생의 가장 심각한 문제에 대해 도움 받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구의 도움이 없이는 나아갈 수 없는 연약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무명의 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올 수 없는 친구를 돕기로 결정하고 협력하여 마침내 예수님께 그 병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친구들이 스스로는 해결해줄 수 없지만 옆에서 예수님을 만나도록 기회는 만들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중풍병자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준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귀찮은 일이 있으면 회피합니다. 내 인생 하나도 고달픈데 남을 돌볼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네 사람은 자원해서 도와주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건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가슴속에 살아계시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건강합니다.

 

먼저 예수님을 만나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인생의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있으니 건강한 사람들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병든 사람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고 예수가 누군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은 병든 사람을 도와주고 싶어도 힘이 없습니다. 죄와 삶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 영적 생명과 건강이 있는 사람들이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영원한 아버지이신 것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써 내 죄를 사하셨으므로, 그분이 내 인생의 유일한 소망, 유일한 반석, 유일한 생명, 유일한 진리이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누군가 우리를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일수도 있고, 형제일수도 있고, 직장 동료일수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소개해주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깨달았고, 인생이 변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영적 중풍병자와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자기 발로 예수님께 걸어 나오지 못하는 분들을 도와주는 친구가 되어주시길 바랍니다.

 

스스로 주님께로 올 수 없는 사람들, 영적으로 중풍병자가 된 사람들, 인생의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하나님께 오는 것을 방해받는 사람들, 주위에 아무도 도울 사람이 없는 분들에게 여러분의 손을 펴서 그 분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인도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 친구들은 친구를 예수님 만나게 하기 위해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네 친구가 침상의 한 쪽씩 잡고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와보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끈으로 침상을 매달아서 예수님에게로 내려 주었던 것입니다. 아주 파격적인 방법입니다. 성령님의 지혜와 능력이 이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하나님을 아는 건강한 사람들에게 성령의 지혜가 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창의적인 방법으로 주위 사람들을 돕겠습니까?

 

생각이 잘 안 나면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성령님께서 알려주실 것입니다. 영혼구원의 열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구원받을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창의적 방법을 사용해야합니다. 예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친절을 베풀든지, 선물을 주든지, 아기를 봐주든지, 음식을 나눠주든지, 심부름을 해 주든지 간에, 여러분들의 수고로 그 분들이 예수님과 일대일로 만나 예수가 누군지 깨닫고 영원한 소망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사람을 보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7).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까?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의 죄성으로 인해 일평생 크고 작은 죄를 범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은 어려서부터 쌓인 죄의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으로 살면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완전히 용서하신 예수님을 일생에 한 번은 만나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죄 사함의 선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천국이 보이고 구원의 은총이 나타나고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때에야 예수님이 선언하시는 죄 사함을 듣습니다.

 

저도 청소년 시절에 네 죄를 영원히 다 용서하였다고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제 마음에는 하나님의 평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아야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때문에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과 일대일로 만나기만 하면 네 죄가 사함을 받았느니라.”는 죄 사함의 선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들이 다 이 선언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평화가 필요합니다. 죄 사함 받아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미 이 일을 성취하셨고 이루신 구원의 은총을 우리들 모두에게 선물로 허락해 주십니다. 그런데 죄는 아무나 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6절에 보니까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에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말하였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줄 수는 있어도 그 죄를 없애주지는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영원히 덮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신 것이었습니까?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 주심으로써 자기가 누구신지를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신성을 가진 죄의 대속자이심을 죄 사함의 선포를 통해 드러내신 것입니다. 이 중풍병자는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만났습니다. 죄 사함과 더불어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서기관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어떤 것이 더 쉬운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는 둘 다 쉬운 것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죄도 사하실 수 있고 중풍병자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둘 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죄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는 죄 사함을 주시고, 인생의 문제로 방황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생의 대답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마침내 선언하십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예수님은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첫째는 영적인 문제요 둘째는 육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문제를 예수님을 통하여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겪는 수많은 고통과 질고와 아픔과 슬픔과 절망,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을 통해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죄 사함과 치유의 선언, 이 두 마디만 들으면 우리는 인생을 넉넉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이 가족, 친척, 이웃, 직장동료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데려오는 분들에게 예수님이 이 두 가지 선언을 해주고 싶어 하십니다. 네 친구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만난 중풍병자는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몸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12) 나감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힘 있게 드러내었습니다.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는 영적 문제와 육적 문제가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반드시 해결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귀며 예수님 앞에 나와서 이 음성을 들은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영적 육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는 친구의 역할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 저희가 다 놀라고 영광을 하나님께돌렸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영적 중풍병자들, 혼자서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들,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중풍병자의 친구와 같은 역할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사랑하는 분들이 죄 사함을 받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중풍병자를 돕는 저들의 행위를 믿음으로 보시고 그 믿음에 따라 응답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보면 주님께서는 "저희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주시고 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야고보 장로가 말한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만이 주님에게 인정되는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이 보신 믿음은 환자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침상에 메고 온 친구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지붕을 뜯고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내려 보낸 그 사람들의 믿음을 주님이 보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주님 앞에 인정받는 믿음이 된다면 우리의 믿음 때문에 중풍병자와 같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믿음을 보시고 구원하시는 이런 역사는 얼마든지 우리들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우리의 믿음 때문에 구원에 이르는 사람들도 나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믿음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 생명력은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게 될 것입니다. 살아있는 믿음은 하늘 보좌도 흔들어 놓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역사가 천사들의 활동으로 현실이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건강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믿음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만난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10:36-3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