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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되기 원합니다(막8:31-38)-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11. 6. 10:51

제자 되기 원합니다(8:31-38)

 

 

목사 주태근

 

K B S 역사 드라마에 칭기즈칸을 연속적으로 방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12-13세기경에 칭기즈칸이 정복한 땅은 도합 777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릅니다. 그 땅은 정복자들 알렉산더대왕의 348만 평방킬로미터와 나폴레옹의 115만 평방킬로미터 그리고 히틀러의 219만 평방킬로미터를 합한 땅 보다 훨씬 넓은 땅을 차지한 땅입니다.

 

그의 손자이자 원나라 시조인 쿠빌라이칸에 이르러 정복한 면적은 훨씬 더 늘어납니다. 동쪽으로 고려에서부터 서쪽 헝가리까지, 북쪽 시베리아로부터 남쪽 베트남 근방까지 쿠빌라이칸은 만주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인류역사상 첫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출현입니다.

 

당시 몽골고원 인구는 100-200만 명이었습니다. 이 적은 숫자가 중국, 이슬람, 유럽사람 약 1억에서-2억 명을 정복하고 거느린 것입니다. 이러한 정복을 이루기까지는 칭기즈칸과 그 시대 유목민인 몽골 인들은 수많은 시대를 앞서가는 놀라운 장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목민들의 장점과 희대의 영웅인 칭기즈칸이 있었다하더라도 그 혼자서 인류역사를 개척해 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와 함께 제국건설의 열망을 품고서 온 몸을 불사른 동지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몽골유목민들은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려면 사람과 사람사이에 강한 믿음과 결속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맺은 관계를안다너커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말로 치면너커르는 평생 동지, ‘안다는 평생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칭기즈칸에겐 유달리 너커르와 안다가 주변에 많았습니다. 오갈 데 없는 사람, 어려운 사람, 꿈을 품고 있지만 뜻을 펴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제국건설의 주역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칭기즈칸 곁에는‘4명의 준마’‘4명의 맹견이 포진해 있었습니다. ‘4명의 준마는 칭기즈칸의 참모이거나 정책 쪽에서 활동했습니다. ‘4명의 맹견은 주로 전투에서 지휘관 역할을 했습니다. 칭기즈칸과 여덟 명은 하나같이 결속을 중시하고 배신을 혐오하는 공통점을 지녔습니다.

 

이들은 칸에게 생명을 다해서 헌신함으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시대의 영웅에게는 반드시 헌신된 동역자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경인제일교회 여름성경학교 : 설교-목사 주태근(1987년)

 

우리 주님께서도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동역자들인 제자를 두시기를 소원하셨습니다. 그래서 12제자를 선택하여 부르셨습니다.

 

또한 당시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저마다 부푼 꿈을 안고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열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무리들에게 주님은 진정 제자가 되는 길이 무엇인가를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를 무리와 제자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중심에 의해 둘로 나누어집니다. 무리들은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신의 이익이 있기에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께서도 무리를 향하여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요6:26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철저히 예수 중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주님이 말하는 제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제자도의 정신을 발견합니다. 즉 예수님을 지는 사람이 주님이 말하는 제자임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동역자는 바로 예수님을 지는 사람들입니다. 즉 헌신의 사람을 말합니다.

 

권위 있는 갤럽조사의 통계를 보면 교회생활에 깊이 헌신하며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서 큰 차이가 있었다는 통계보고를 본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네 가지 면에서 크게 차이가 있었는데, 첫째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일수록 행복지수가 높았다는 것입니다.

 

둘째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원만했고, 이혼률 역시 상당히 낮았습니다. 셋째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비교적 원만했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관용하는 폭이 넓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활동이나 봉사활동 면에 있어서도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면에서도 적극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짊어지고 사는 것이 무거운 짐과 같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이 아닌 오히려 무거운 짐을 가볍게 만드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많은 무리들을 앞에 놓고 한번 다짐을 받고자 하십니다. 저들의 마음을 한번 흔들어서 왜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지, 그리고 끝까지 따를 수 있을 것인지 다짐을 받고자 합니다. 예수 믿는 동기와 목적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게 함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은 제자입니다. 진정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제자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은 만나고 내일을 헤어지고, 병 고침을 받고는 그 은혜를 곧 잊어버리고, 무엇을 좀 배우고는 다시 돌아가는, 그런 식의 만남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단지 교인이나 성도만이 아닌 예수님의 제자를 원하셨습니다. 나의 제자가 되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제자는 지식으로만 배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몸으로 배우고 삶으로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스승의 죽음의 길도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개와 고양이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나 다 애완용 동물입니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런데 개는 말하기를 '주인이시여,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고양이는 어떻습니까? '주인이시여,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나를 하나님처럼 받드소서!'

 

예수 믿는 신앙인 가운데도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 내 뜻대로 다 이루어지게 보살펴 주세요!' 이렇게 고양이처럼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에 힘쓰겠습니다.' 고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신앙의 태도로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때때로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오는 무리들에게 기분 좋고 듣기 좋은 말만 하시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무겁고 고된 삶의 길을 이야기하시면서 자기를 따르는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길인지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제자 됨의 길입니다.

 

35절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도 자기에 대한 사랑과 애착심은 버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자기 사랑까지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자기사랑과 인간관계의 모든 사랑을 파괴하는 분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사랑과 인간관계의 사랑을 뛰어넘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말씀하십니다. 자기사랑의 포기 속에 자기가 사는 은혜가 있다는 역설적 진리입니다.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반드시 하나님은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을, 내가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은 더욱 나에게 더 크신 사랑을 부어주실 것을, 내가 주님을 위해 살면 주님은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을

 

요즈음 저는 가끔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 얼굴이 까맣게 타고 갑자기 머리가 희어지며 초조하고 지친 얼굴을 하고 계시는 분을 대하게 됩니다. 아마도 세상이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업이나 가정 일에 참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닥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 마음이 참 무겁고 안타깝습니다.

 

한편 이런 생각도 떠오릅니다. "과연 저 성도님은 내 가정, 내 직장, 내 회사를 위해서는 잠을 못 이루고 고민하면서도 과연 하나님을 위해서는, 교회를 위해서는 얼마나 고민을 해 보셨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세상살이에는 돈, , 돈합니다. 이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사랑의 신앙입니다. 사실 돈을 벌어도 그 돈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돈이 쓰여 지는 많은 경우 영혼의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때가 많습니다. 그런 돈 때문에 저렇게 시달리고 피곤에 지치면서, 과연 영원과 이어지는 문제, 영생의 문제, 영원한 상급이 주어지는 문제,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 예수님은 우리를 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말씀하셨는데, 진정 나에게 주어지는 바람직한 십자가를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정녕 쉬운 길은 아닙니다.

 

지름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생동안의 과제입니다. 그러므로 상당한 값을 지불할 각오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될 참으로 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드는 귀한 물건을 살 때, 어떻게 합니까? 몇 십 만원을 주고 그 물건을 삽니다. 그러나 아깝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산 물건이 내가 낸 돈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내어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귀한 일입니다.

 

지난 10'한국의 은반요정' 16세의 김연아 양이 세계 주니어 피겨 정상에 우뚝 섰습니다. 김연아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끝난 2006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주니어 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국에 피겨 스케이팅이 소개된 지 100년 만의 쾌거입니다.

 

김연아 양의 정상 등극은 '엄마'의 피겨스케이팅에 대한 열정이 밑거름이 됐다는 보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박미희씨는 소녀 시절 피겨스케이트 선수 지망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수로서의 꿈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실내링크가 거의 없었던 데다 레슨비 등 돈이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가끔 빙상 장을 찾아 다른 선수들이 배우는 모습을 어깨너머로 보며 기본 동작을 익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박씨는 결혼을 했고, 김연아 양이 여섯 살 되던 해 딸의 손을 잡고 경기도 군포 집에서 가까운 과천실내링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동작들을 하나씩 딸에게 가르쳤습니다. 딸의 기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었습니다.

 

어머니 박씨는 "한 번 가르쳐준 동작은 두 번 다시 지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금방 따라했다"며 대견해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코치 지도를 받은 김연아 양은 2학년 때 전국 겨울체전에서 1등을 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군포 도장 중 1학년 때에는 일찌감치 국가대표로 뽑혔습니다. 어머니는 대표팀 훈련이 없는 날에는 다른 코치들에게서 배운 지상훈련 요령 등을 딸에게 가르쳤습니다.

 

딸이 꾀를 부리면 "100 바퀴 더 돌아"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훈련을 둘러싸고 모녀는 다투기도 했고, "운동을 그만두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어머니 박씨는 "힘든 훈련을 참아준 딸이 고마울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강한 훈련의 결과가 오늘의 영광을 안겨다 준 것입니다.

 

우리가 기왕 예수님을 믿으려면 제자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얼마나 되는지, 어떤 계획을 세우고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를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내 자신을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이 길은 무겁고 힘든 길이 아니라, 기쁨과 감사가 있고 보람이 있는 길입니다. 제자의 길을 걷기를 즐겨하는 자를 스승인 예수님은 그 삶을 선히 인도해 주십니다.

 

세계적인 외과 의사이자 부인과 의사인 하워드 A. 켈리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날 밤, "나는 나 자신과 시간과 재능과 야망, 그리고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복되신 주님, 주께서 쓰시도록 나를 성켤케 하소서. 주님께로 나를 가까이 이끌지 못할 것이라면, 세상적인 어떤 성공도 내게 허락하지 마옵소서."라고 일기에 기록하고 인생을 살았습니다.

 

사순절 기간입니다. 우리는 제자다운 삶을 회복해야합니다. 바울은 주님의 부름에 자신을 헌신하면서 우리들 모두가 이렇게 되기를 원하면서 담대히 고백합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