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이 성전을 헐라(요2:13-22)-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11. 6. 11:00

이 성전을 헐라(2:13-22)

 

 

목사 주태근

 

미국 버지니아 주에 윌리암스버그 라는 유서 깊은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에 미국 건국 당시의 도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민속촌과 같은 곳입니다. 도시 한 중앙에 교회가 우뚝 서 있습니다. 교회 앞에 광장이 있고 그 광장에서 대로가 곧게 뻗어 있고 그 대로 주변에 법원, 관공서, 우체국, 기차역 등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외곽으로 가면서 시장과 주거 지역이 펼쳐져있습니다. 교회가 그 도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교회 건물이 제일 먼저 지어졌습니다. 교회 건물이 가장 웅장했습니다. 교회를 중심하여 도시가 건설된 것입니다.

 

미국 보스턴에 가면 하버드 대학이 있습니다. 이 대학 캠퍼스는 하도 크고 광범위해서 지금은 도시와 뒤섞여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학 캠퍼스의 한 가운데 커다란 교회 건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교회 주변에 많은 강의실들, 많은 부속 시설들, 사무실들, 그리고 개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여름수련회 산상집회

 

이스라엘은 성전 중심의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성전의 전신인 성막을 주셨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40년 광야 생활하는 동안 광야에서 진을 치고 있었는데 12지파가 동서남북 세 지파씩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때 성막은 항상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이 눈만 뜨면 그들 앞에 성막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성막은 모두에게 가장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 성막이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어주었고, 그들의 광야생활을 인도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더욱 그랬습니다. 성막 대신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절기 때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성전에 모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모든 제사와 종교적 예식은 이 성전에서만 거행되었습니다. 심지어 멀리 출타하게 되면 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이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 되게 해 주는 존재 근거역할을 했습니다.

 

주일날 어느 가족이 바쁜 걸음으로 교회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엄마 아빠의 손을 잡은 어린아이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이야기합니다. "엄마, 아빠! 오늘은 예배 시간에 졸지 마. 나 창피하단 말이야. 알았지?"

 

이런 어린아이의 간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두 부부는 그날도 지난 주일과 다름없이 설교 시간에 졸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한쪽 귀로는 설교를 듣고, 눈으로는 주보를 군데군데 훑어보았습니다.

 

교회소식을 낱낱이 읽고 주보의 오자를 잡아내며 교정까지 끝냈지만, 설교는 그때까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시작한지 십 오 분쯤 지났을 때, 이 들 부부의 몸이 좌우로 약간씩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한 주간의 피로가 엄습하는 것을 느끼며 무거운 몸으로 간간이 졸고 있었습니다.

 

가끔 목사님의 어조가 상승할 때는 졸음에 겨운 눈을 치켜뜨기 위해 애를 써보지만 눈꺼풀에 무거운 추가 달린 것처럼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이전보다는 더 큰 무게를 느끼며 눈을 감았습니다.

 

졸음을 쫓기 위해 가끔 고개를 흔들어보고, 또 졸다가 떨어뜨린 성경책이나 주보를 다시 주워보기도 하지만, 설교를 듣는 다기보다는 졸음과의 싸움이 힘겹게만 느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지루한지 이따금 몸을 좌우로 흔들며 심하게 조는 엄마의 옆구리를 손으로 툭 쳐보기도 하고, 순서지 주보로 비행기를 접어보기도 하지만, 두 부부는 지긋이 고개를 숙인 채 묵상에 잠긴 듯 졸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에 이 어린아이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칭얼대며 부모에게 졸랐다. "엄마, 아빠! 졸지 말고 빨리 요금 내고 집에 가자!" 아마 이 아이는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을 요금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우리들의 예배는 어떠한지요? 형식화 되지 아니했는지요?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 마당에서 소와 양을 팔고, 돈바 꾸는 자들을 채찍으로 몰아내신 성전 청결의 기사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 네가 만일 하나의 명령으로 이런 일을 한다면 그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이 거대한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 그러면 내가 삼일 만에 다시 일으키리라"말하셨습니다.

 

그 성전은 헤롯이 46년에 걸쳐 지은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날 다윗 왕국의 기세가 천하를 떨칠 때 준비하여 솔로몬 왕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 유린되고 파괴되었습니다. 또한 이 성전은 스룹바벨과 에스라에 의하여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헬라의 에피파네스에 의해 또다시 유린되었고 마카비 전쟁 때 파괴되었습니다. 헤롯 대왕은 유대인들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자존심인 성전을 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46년에 걸쳐서 거대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이 성전이 제3의 성전인 헤롯의 성전입니다.

 

유대인들은 헤롯 왕가를 미워하면서도 그가 지은 성전은 그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자존심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말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라. 이 성전은 46년에 걸쳐 지은 것인데 네가 삼일동안에 다시 짓겠다니 미친 소리가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본문에 이르기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미를 바로 알아야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를 많이 갔다 옵니다. 다녀와서 하는 말이 예루살렘에서 뭘 봤고,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에 세운 교회를 보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많은 깨달음과 은혜를 입고서 신앙생활에 큰 유익을 얻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것은 못 보고 사람의 눈에 들어오는 것만 보고 올 때가 많다는 점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제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이 예수님의 눈에는 있으나 마나한 성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계시지 않는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성도님들이 경복궁, 덕수궁 같은 고궁을 방문하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중국 북경에 있는 자금성도 방문하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여러 번 이런 고공을 방문할지라도 이젠 더 이상 고궁에서 예전의 왕들이나 황제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저 지난날을 회상할 뿐입니다. 성전이 이런 고궁과 같다면 이 땅에 존재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성전, 하느님을 만날 수 없는 성전이 있어야 할 본질적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실재이며, 하느님의 임재여야 합니다. 성전에 하나님이 계셔야 성전입니다.

 

성경에는 성전을 표시하는 두 낱말이 있습니다. <히에론>이란 단어와 <나오스>라는 단어입니다. <히에론>이란 단어는 성전 뜰과 건물 전체를 표시하는 단어이고, <나오스>라는 단어는 비유적으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의 상징으로 상용되고 있습니다.

 

분문에서 주님이 허물라고 하신 성전은 바로 <나오스>성전입니다. 주님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고 하신 의미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강도의 굴혈을 만들어 버린 그들의 마음의 성전 즉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헐라는 뜻입니다. 성전을 더럽힌 너희 심령을 헐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야합니다. 옛사람 그대로 우리의 몸이 성전 될 수 없습니다. 새성전이 되기 위해 우리의 옛사람을 헐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듭나야합니다. 요한복음 3:5을 보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나를 포기하는 것, 나를 버리는 것, 그리고 예수님으로 빈 곳을 채우는 것을 뜻합니다. 나를 포기하고 버리지 못하면 "새로운 나"가 되지 못합니다. 새로운 나가 되는 일은 수술실에 들어가서 수술 받는 환자와 같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실에 들어갈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수술실에 들어가는 날 아침 코에는 호스를 꼽고 팔에는 링거주사를 꽂습니다. 몸은 완전히 알몸이고 환자가운만 하나 걸치고 수술실로 들어갑니다. 늘 몸에 지니고 있던 시계도 풀어 놓아야 하고, 안경도 입원실에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술실에 들어가 마취가 된 이후의 사건은 환자가 전혀 모릅니다.

수술대 위에 누운 채 수술 팀에게 완전히 그의 몸을 맞깁니다. 수술 팀은 환자의 복부를 절개하고 위를 절제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은 살기 위한 방법이고 살리기 위한 시도입니다. 환자가 다시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의사에게 맡기는 모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죽지 않고 살기 위해 다 집어 던지고 수술대 위에 누웠던 환자처럼 내 영혼이 죽지 않고 살려면 하나님 앞에 그렇게 서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포기 할 것은 포기하고 끊을 것은 끊고 자를 것은 잘라야 합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회개입니다. 철저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죄를 버리고 악습을 포기하고 나쁜 습관을 끊고 불의를 잘라 버려야 합니다. 회개의 원리가 있습니다. 나부터 회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욕하거나 손가락질 할 때 흔히 둘째손가락을 펴서 상대방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때 엄지손가락, 가장 굵고 큰 손가락의 방향은 나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손가락의 방향도 나를 향하고 있습니다. 나부터, 내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지은 죄라도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이유는 용서하시고 속죄하시는 권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나부터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 받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유명한 가수 팀 스펜서는 인기인이었습니다. 그는 술을 많이 마시는 습관이 있어서 아주 중독이 되어버렸고, 돈과 명성은 있었으나 자기 삶에 대해 심한 권태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더 나가서는 영적인 만족은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세상에 대한 심한 염증 때문에, 하루는 권총을 가지고 호텔에 들어가 자살하려고 머리를 겨누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나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일어나 무릎을 조아렸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이 부르짖기를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이 술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옵소서. 나의 길을 인도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아무 탈 없이 평안히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항상 마시던 술도 마시지 않아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이상하게 술 마시기가 싫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 기도를 들으신 줄 믿고 의식적으로 죄의 자리를 피하고 이전 생활을 과감히 끊어 버렸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기 동료들을 열심히 전도해서 80명이 신자가 되게 함으로 헐리우드 크리스챤 클럽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또한 배우생활을 청산하고 기독교 영화만 제작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어도 죄의 자리, 구습의 자리에 갔다면 얼마나 안 가서 다시 타락으로 빠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옛사람을 버려야합니다.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야합니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성전, 하느님을 만날 수 없는 성전은 무너져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성전 삼으신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옛사람으로는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새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로버트 멍어 박사가 쓴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주님, 저의 이 마음이 주님의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주께서 이 곳에 정착하셔서 온전히 안주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집의 모든 것을 당신의 것처럼 사용하시기를 원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으로 고백합니다. "주여 당신은 손님이었고, 제가 주인이었습니다. 이제 후로는 제가 하인이 되려 합니다. 당신이 저와 이 집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여기에 제 존재와 소유의 모든 것이 있습니다. 이제 당신이 집을 운영해주십시오. 저는 단지 심부름꾼과 친구로서 당신 곁에 있겠습니다."라고 끝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나의 명의로 되어 있는 모든 것을 주님의 명의로 바꾸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인으로 사시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옛사람의 성전이 무너지고 새사람으로 지음 받는 성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사순절입니다. 부흥성회가 있습니다. 옛사람을 헐어버리고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