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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업그레이드(느8:1-6)-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12. 21. 10:35

영성 업그레이드(느8:1-6)

 

목사 주태근

 

오래 전 우연히 CNN 방송의 ‘래리 킹 라이브’에 나온 미국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 부자의 모습을 잠깐 본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50년 넘게 미국 수정교회를 이끌어온 아버지 슐러 목사가 아들 로버트 슐러 2세 목사에게 교회의 담임 권을 물려주는 장면입니다.

 

자기의 목에 걸렸던 펜던트를 아들에게 전해주는 부자의 모습은, 교회의 목사들이라기보다는 왕위를 세습하거나 경영권을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받는 세속의 모양을 연상시켰습니다.

 

명물이 되다시피 한 미국의 수정교회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시에는 주일이 되면 약 1만 명 이상이 교회에 출석하며 교회 1년 예산만도 7천2백만 달러 이상이 됩니다.

 

제가 오래 전에 미국을 방문시 그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회의 건축은 물론 부활절이나 성탄절과 같은 큰 기독교 절기마다 벌이는 예배와 행사는 ‘쇼’에 가까운 행사 등으로도 유명합니다.

 

또 슐러 목사의 ‘적극적 사고방식’은 한때 미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도 사로잡은 바 있습니다.

 

또한 미국방송 체널 TV 설교시간에 잘생긴 외모와 부드러운 말씨로 믿음 좋은 친구처럼 느껴지는 미국의 조엘 오스틴 목사를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존 오스틴 목사가 돌아가신 후 레이크우드 교회를 계승해서 담임목사가 되었고, 그 후 이 교회는 매주 3만 명 이상이 찾아오고 1만6,000석의 좌석을 가진 초대형 교회로,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긍정의 힘’이라는 그의 책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어 더 유명해졌고, 한국은 물론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21세기에 영향력을 주는 교회들 가운데 이 두(2)교회의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합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목적은 소위 잘 나가는 두 교회를 흠 잡으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단지 우리 현대 기독교인의 연약해지는 영성을 심히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1988년 3월 주태근 선교사 파송식(파송장 수여 : 예장 총회 전도부 류시홍 총무) : 주안장로교회에서

 

 

 

A.W. 토저 라는 분의 지적처럼 혹 현대 대형교회가 예배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많은 뭇 사람들을 위한 ‘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복음은 위대한 포장일 뿐 목사들의 메시지가 자칫 ‘적극적 사고방식’ 또는 ‘긍정의 힘’이 상징하는 자기 개발이나 심리 치료에 가까운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한참 유행이 되던 때에 국내 서점가에서 슈퍼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조엘 오스틴 목사의 책만 해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자긍심과 건강한 자아상을 강조하여 자기 개발을 독려하고 ‘믿는 대로 된다’는 자기 암시와 심리 치료 효과로 가득할 뿐 단 한마디, “회개하라”는 일침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 책의 소개용 글귀에는 “그는 죄인더러 회개하고 닦달하거나 소리치지 않는다.”라고 자랑스레 씌어있을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교회, 맘모스화 된 대형교회, 사람들이 흐르는 파도처럼 모이는 교회들 정말 과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이 충만한 때문일까?

 

아니면 하나님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변질된 부끄러운 영성, 즉 참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필연적인 회개는 없고 자기 개발과 성공신화만 가득한 인문주의로 가공된 복음 때문은 아닌지, 성경적으로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학자 마이클 호톤 교수의 지적을 기억나게 합니다. 그는 이렇게 충고합니다.

 

“현대 복음주의에서는 복음이 실용주의와 자아도취주의에 가위 눌려, 자칫 십자가 신학을 기피하고 영광의 신학만을 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면서 부와 번영의 복음, 긍정적 사고방식의 복음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을 믿으라고, 그래서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말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잃어버린 영성을 회복시키며 부족한 영성을 충전시켜 올바른 영성을 세우는 영성 업그레이드 내용입니다.

 

본문 성경을 기록한 저자 느헤미야는 불운한 시대에 태어나 바사 왕국의 포로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왕이었던 아닥사스다 1세의 술잔을 받드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즉 왕의 술잔에 독이 들어있는가의 여부를 확인하는 일이었는데 이는 왕의 최대의 신임을 받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느헤미야는 왕의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불행한 환경에서도 출세가도를 달리는 행운아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수산 성에 있었는데 갑자기 하나니라는 형제를 통하여 소식을 전하여 들었습니다. 내용인즉 예루살렘 성벽이 파괴되었다는 비보였습니다.

 

참으로 충격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배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자기의 조국이 황폐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성전이 다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기 혼자 수산 궁에서 편하게 지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슬픔에 빠지기 시작하여 하루가 다르게 그 몸이 수척해 가는 것을 눈치 챈 왕이 느헤미야에게 왜 그렇게 근심과 수심에 가득 차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느헤미야는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 땅이 황폐 되었고 특별히 하나님의 성전이 파괴되었으나 그 누구도 그 전을 수축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고 영적인 부흥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전개된 글이 느헤미야서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느헤미야가 성전재건을 성공리에 마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문 앞 광장에 모이는 영성집회를 보여줍니다.

 

모인 회중들은 학사 에스라를 초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 앞에 부복하여 회개하며 저들의 심령이 새롭게 하며 위로부터 내리시는 새 힘을 얻어 영적인 부흥의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기사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성 업그레이드 운동입니다. 현대말로 재충전의 기회를 위한 부흥성회입니다.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는데 가장 우선적인 것은 어떤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사람'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의 개혁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무너진 성벽이 완전하게 세워졌습니다. 적절한 파수군도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함을 가집니다. 성벽만 가지고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52일만 에 세워진 기적적인 성벽 가지고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스라엘 백성답게 살수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바른 영성 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된 영성입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본문 1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엘룰월 6월 25일에 성벽 재건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이 엿새를 지나 칠월 첫날을 맞았습니다. 성벽 재건을 마친지 겨우 6일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들었습니다.

 

모인 회중들은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하나님의 율법책을 가져오도록 요청합니다. 이스라엘은 지난 날 70여 년 동안 '믿음의 영성'만으로 지탱해 왔습니다. 그러나 역 부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말씀의 영성'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그들은 목말라 있습니다. 말씀의 기근에 그들은 굶주려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목마름, 이것은 성벽 재건의 개혁보다 훨씬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아름다운 성전, 성벽에의 갈급함보다 더 소중하고 귀중한 것은 바로 말씀에 대한 배고픔이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는 분문 3절을 보시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 여자, 무릇 알아들을 만한 자의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그들은 새벽부터 나와 있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정오까지 꿈쩍하지 않고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장식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습니다. 어지럽혀진 삶을 정돈하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심령을 찔러 쪼개어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 인생을 새롭게 갱신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능력입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영국에서 몹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플래쳐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바운티'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가족은 남태평양 핏컨이라는 섬에 가서 많은 인디언들을 교화하여 작은 자유의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9년 만에 그 집단 사회는 실패해 버렸습니다. 보통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 작은 섬에도 발생했습니다. 살인, 폭력, 성도덕의 문란, 알콜 중독자등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중 한 큰 사건이 발생했는데 지도자였던 플래쳐가 자살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일이 그곳에서 일어났습니다. 바운티의 다른 지도자중 한 사람이었던 쟌 아담스가 어느 날 창고를 정리하고 영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다가 성경 한권을 발견했습니다.

 

9년 동안 아무도 읽지 않았던 책이었습니다. 그는 배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2개월간 발견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는 가운데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의 삶에 거룩한 변화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배를 타기를 포기하고 다시 핏컨 섬의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당시의 형편을 기록한 글을 하나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핏컨 섬사람들은 문명한 영국인들의 영향으로 불과 구년 만에 술주정꾼이 되었고, 폭행자와 성적인 문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쟌 애덤스가 발견한 한 권의 책으로 애덤스뿐만 아니라 섬 전체가 소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삶을 소생시킵니다. 인간을 변화시킵니다. 새로운 능력으로 인생을 복되게 하십니다.

 

다니엘 웹스터 라는 분의 말이 정확합니다. "현대 문명의 가장 확고한 기반은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세상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원리를 좇아가기만 한다면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다."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현대문명의 엄청난 발전으로 우리 인간이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 말씀은 그저 그렇게 들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간의 영과 육을 구원하십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거대한 나라입니다. 14억5천만의 인구가 있는 잠자는 사자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는 굶주림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떡만 해결하면 나라가 강성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거의 받아들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사회의 부패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93년경에 중국에서 한국의 자동차는 수입금지 품목입니다. 그런데 5만대 가량이 그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시계나 보석처럼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닌 커다란 차가 중국 땅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관 사람들을 매수하면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사회가 썩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부패는 인간의 문명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먹는 문제를 해결한다고 사회가 정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경제의 힘으로 인간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어느 것 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인간의 영성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영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영성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성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업그레이드라는 의미는 발전 진보 성숙, 아래 단계부터 위의 단계까지 상승시킨다는 개념을 말합니다. 우리 믿음이 계속해서 전진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업그레이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업그레이드는 영성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슈입니다.

 

성경은 어린아이가 젖을 사모하는 것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젖을 먹어야 삽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순전하고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삽니다. 믿음의 영성에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의 능력입니다.

 

수년전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극장에서는 “턱시도를 입은 예수”라는 제목의 기독교를 조롱하는 반신적인 연극이 상영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주인공 예수역으로 출연한 사람이 알렉산더 로스톱제브(Alexander Rostovzev)라는 미남배우였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교회 나가본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 그가 주인공으로 결정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연극의 절정에서 그는 예수의 산상수훈 두 구절을 낭독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5:3-4)

 

연극상영에서 이 말씀을 읽던 그 배우는 두 차례 더 반복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연극을 지휘하는 스태프들은 다음을 진행하라고 무대 뒤에서 사인을 주고 있었지만 그는 무대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무대의 막은 내려졌고 연극은 엉망이 되었지만 그날 그는 예수를 모독하는 역할대신 예수 앞에 돌아와 예수를 증거 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가져온 승리요 부흥입니다. 말씀이 회복되면 영과 삶이 회복됩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인간문제는 말씀의 상실로 인한 인간의 타락입니다. 따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위에 영성 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영성입니다.

 

우리는 이번 주간 부흥성회를 가집니다. 영성 업그레이드의 시간으로 맞이합니다. 말씀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면 우리의 삶은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면서 승리합니다. 영적부흥은 말씀의 회복으로부터 옵니다.

 

시편기자는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는 도다(시19:7-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