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 다운 동역자(빌2:25-30)-목사 주태근
동역자 다운 동역자(빌2:25-30)
목사 주태근/남선교회 헌신예배
오래전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산골에 지미라는 10살짜리 남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지미에겐 6살짜리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지미는 그 여동생을 너무 너무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놀던 그 여동생이 그만 그 자전거에서 떨어져서 동맥이 끊어져 피를 많이 흘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지게 되었고, 이내 의식을 잃어 버렸습니다.
잠시 후 달려온 의사는 당장에 수혈을 하지 않으면 그 동생이 죽는다고 했는데,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엔 오빠 지미만이 같은 혈액형이었습니다.
일분일초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의사는 "지미야! 넌 네 동생을 살리기 위해 네 피를 뽑아 줄 수 있겠니?" 그때 지미는 잠시 생각하더니 굳게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제 지미의 헌혈로 그 여동생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년 지미는 식탁에 누워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하도 이상해서 "지미! 넌, 왜 그러고 있어" 그때 지미는 겁먹은 표정으로 "선생님, 난 언제 죽나요?" 그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지미는 자기 피를 뽑아서 동생에게 주면 동생은 살지만 자기는 죽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희생적인 사랑 그야말로 생명도 아까워하지 않고 동생을 사랑한 형제의식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끼리는 끈끈한 그 무엇이 있습니다. 진실로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해 줍니다. 그 마음속에 형제, 자매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제의식이 필요합니다. 형제의식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완성되어집니다.
사도바울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사도바울 만큼 많은 교회를 세운 사람이 없고 또한 많이 전도한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신약성경 13권을 썼던 그는 자기의 목숨을 하나님 앞에 순교의 제물로 드린 위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가 그렇게 큰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곁에는 형제의식을 가진 신실한 협력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든 사람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역사를 이끌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기 위해서 위대한 사도 바울 같은 인물을 만나서 세계 선교 역사의 장을 열었습니다.
그런 사도바울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선교 동역자들입니다.
동역자는 “어떤 일에 동일 한 목적을 가지고 한 마음을 가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 많은 동역자들 중에 한사람인 에바브로디도를 만나게 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사도바울을 사도바울 되게 한 아주 위대한 조력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시 빌립보교회의 집사입니다. 본문의 상황이 이러합니다.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을 위하여 헌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헌금을 어떻게 바울에게 전할 것인가를 생각하였는데 사실 그 당시로서는 빌립보에서 로마까지 여행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될 만큼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는 그 일을 자청한 인물입니다. 그는 먼 길을 여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다 구속된 바울을 생각하면 자신의 헌신은 너무나 하찮은 일 이었기 때문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 헌금을 전달한 후에도 로마에 남아서 바울의 옥바라지를 자원합니다.
그는 먼 길의 여행으로 피곤하여 지친 가운데서도 바울을 위하여 일하다가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병이 들어 눕게 되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됩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빌립보 교인들은 근심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에바브로디도를 치료하사 건강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이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고향으로 보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로 보내면서 그를 칭찬하며 격려합니다. 그리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부탁합니다. 이런 내용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에바브로디도라는 이름의 뜻은 ‘잘생긴 혹은 사랑스러운’이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그는 과연 자기 이름에 걸 맞는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 있어서나 교회에 참으로 사랑스러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신앙과 수고와 영적인 싸움에서 바울과 연합한 자였고,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였습니다.
본문에 바울을 그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의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자라.”
본문의 연결어“함께 한다” “뜻을 같이 한다”는 헬라어의 뜻을 살펴보면 “동일한 정신을 가지다”라는 말입니다. 교회를 위하는 일에 같은 마음과 같은 정신을 가지고 함께 수고하며 함께 일하는 것을 뜻합니다. 동역자 다운 동역자였습니다.
본문에서 ‘사자’라고 하는 말은 ‘보내심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선교사도 ‘보내심을 받았다’고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 교회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사람,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돕는 자’라고 하는 말은 '자기를 재물로 드린다'는 뜻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기를 하나님 앞에 재물로 드린 사람입니다.
미국국민이 존경하는 교육자 가운데 <케드린 드레크셀> 여사가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을 몽땅 바쳐 서부로 가서 인디언 아이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는 100여 년 전에 거친 서부를 마차를 타고 다니며 가난과 차별 속에 사는 인디언 아이들을 위하여 모진 고생과 위험을 겪으며 50개의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남부로 이동하여 흑인학교를 건설하고 최초로 흑인 대학인 '자비엘 대학'을 창설하였습니다. 그녀가 1955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는 인디언과 흑인들을 위하여 70개의 학교를 설립을 했습니다. 후에 케드린 여사에게 기자들이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여자의 몸으로 위대한 교육사업을 해 낼 수가 있었습니까?”물으니 “나는 내가 위대한 일을 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셨고 인디언 아이들과 흑인 아이들을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단지 나는 이 일을 위한 작은 불씨에 불과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불씨가 된 인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자신을 동역자로 드리는 불씨가 필요합니다.
본문 30절에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비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되 돌려보내면서 그가 빌립보 교회의 사자로 사도를 위해 얼마나 충성스럽게 섬겼는가? 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주의 일, 그리스도의 일을 수행하던 중 병들어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사도 바울을 섬기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섬겼습니다.
이는 사명완수를 위해,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의 약속과 신의를 지키기 위해, 주의 일을 완성키 위해 생명 바치는 자세로 섬겼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
사회나 교회나 어느 단체든지 부족한 점을 보충하는 '해결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든든한 해결사가 있을 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참된 일꾼은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바로 아는 자입니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쏟아 최선을 다함으로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는 자입니다. 이러한 자는 모든 사람 앞에 소중한 사람이 됩니다. 그 진가가 발휘됩니다. 언제나 그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환영을 받고 존경을 받게 됩니다.
지난 날 벤처 기업의 사장인 정문수씨가 Bio 산업 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그 동안 벌어 놓은 돈 300억 원을 Kaist에 희사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회사를 대물림하지 않고 경영진에 맡겨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분입니다. 그런데 생명공학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섬기는 지도자의 참 모습입니다. 우리도 섬기는 지도자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우리의 생명을 바치며, 부족을 보충하는 주님의 동역자들이 될 수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느님의 동역자란 '하나님과 함께 일을 하는 자'란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되 우리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철저하게 되새겨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127편에 보면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되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잠언 말씀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16:9)이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주님의 인도하심과 그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여 함께 행하며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교회 일이나 사회 일이나, 개인의 일이나 단체의 일이나 하나님과 함께 일을 할 때 그 일이 성공될 수 있습니다.
찰스 셀돈이 쓴 실화 소설인 『주의 발자취를 따라』란 책에 보면 미국 레이몬드라는 한 도시에 있는 교회에서 헤니 막스웰이라는 목사를 중심으로 일어난 변화가 그 도시에 어떻게 파급되어갔는가를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레이먼드 메일리 뉴스’라는 신문의 발행인 겸 편집자인 에드워드 노만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그 신문을 제작하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만약 이 신문사의 편집인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고 스스로 물으면서 매일 아침 기도로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처음에 그 도시의 화젯거리였던 프로권투 기사를 한 줄도 다루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광고란에서 술과 담배의 광고를 모두 빼어 버렸습니다. 그 회사들이 내는 광고료가 그 신문사의 주 수입원이어서 그 타격은 막대했습니다. 그러나 노만씨는 계속 밀고 나갔습니다.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일요판 신문 제작을 중단했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일요일 하루를 집안에서 빈둥거리며 신문이나 뒤적거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구독자들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신문이 지향하는 건전한 뉴스와 사설과 해설들은 레이먼드 사회에 새로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전보다 더 많은 구독자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일을 한다면 우리의 사회는 곧 밝은 사회가 될 것입니다.
가정주부는 가정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이 밝아질 것입니다. 의사가 하나님과 함께 일을 하면 그의 수술은 성공적일 것입니다. 수술은 의사가 하지만 고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하나님과 함께 일을 한다면 아마도 그는 훌륭한 업적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처럼 말입니다. 그는 새벽이면 한 시간씩 기도하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과 함께 대통령의 직책을 감당해간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노예 해방이라는 어려운 과업을 성공적으로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는 철저한 의식을 갖기 위하여 내가 앉아 일하는 자리 옆에다가 빈 의자를 하나씩 더 놓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특별히 많은 사람의 삶을 책임지는 사람일수록 이것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통령, 국회의장, 그리고 판사들이 자기 의자 옆에 또 하나의 의자를 의식한다면 아마도 이 나라 정치 풍토는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사장은 사장대로, 교장은 교장대로 목사는 목사대로 또 하나의 의자를 자기 옆에 두어 거기에 예수님이 앉으셨다고 믿고 일을 한다면 거기에 결코 실패나 잘못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가 어려울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십시오.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하루 일과를 반드시 기도로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우는 집은 반석 위에 세워질 것이며, 여러분이 지키는 성은 안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나도 너도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경쟁하고 비방하고 시기할 것이 아니라 서로 돕고 이해하며 사랑하여야 할 관계입니다. 서로의 약점을 발견하는 대신 서로의 장점을 찾아내어 협력하여 이해와 관용으로 서로를 용납하기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같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나 직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여러 가지로 부딪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해도 많이 생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같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역자들입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은사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협력하여 보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연이나 학연 때문에 서로 나뉘어 갈등하며 서로 미워하면서 상대방을 비방하고 헐뜯느라 막상 수행하여야 할 국민을 위한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조차 그런 지역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모두가 하느님께 함께 부름 받은 동역자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역적 특성을 살리면서 서로 협력할 때 우리 사회가 보다 밝은 사회로 발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제 각기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 함께 모여 화음을 만들 때 거기에 웅장한 관현악이 울려 퍼지게 됩니다.
각기 자기 고유의 소리를 내면서도 지휘자의 지휘를 따라 연주하면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의 악기와 같아서 다 고유한 소리를 내지만 지휘자 되시는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일하면 아름다운 사랑의 화음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교회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관현악단입니다. 제 각기 소리를 내되 하느님의 뜻이라는 악보를 보고 그리스도의 지휘를 따라 연주를 한다면 창조와 구원의 아름다운 교향곡이 연주될 것입니다. 소리가 다르다고 싸울 것이 아니라 협력하여 보다 좋은 소리를 내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스펄젼 목사님은 유명한 설교자로 교회를 많이 부흥시킨 역사적인 분이십니다.
한 제자가 그에게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그런 영력있는 설교를 하시며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습니까?" 그때 목사님은 아무말없이 그를 데리고 교회 지하실로 안내해서 그 곳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두 권사님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이 할머니들께서 교회와 저를 위하여 기도하므로 그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이 분들은 교회를 위하는 소원 이 외에는 아무런 소원이 없는 분들이십니다. 이름도 명예도 없이 드리는 이 기도 때문에 교회가 건재 합니다"
또 다른 실화입니다. 어느 오케스트라 지휘자에게... "모든 연주자 중에서 어떤 분이 가장 중요합니까?"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는 서슴없이 '세컨드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대답했습니다.
누구나 다 알 듯이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는 오른쪽에 앉은 퍼스트 바이올리니스트입니다. 그래서 많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그 자리만을 원하므로... 세컨드 바이올리니스트는 구하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이름 없이 뒤에서 협력하는 사람이 아쉽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도 주의 사명을 감당할 때.... 내가 처해 있는 위치가 전방이든 후방이든...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하여...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하여 협력하고 동참함으로.... 큰 역사를 이루는 숨은 일꾼들... 주님의 동역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 곁에는 자기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이런 동역자들이 바울 곁에 있었기에 바울의 세계 선교가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1세기 교회가 그 당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도 바울 혼자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뒤에 있었던 수많은 평신도 지도자들의 절대적인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당당하게 세계를 향해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일군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를 주님께서는 부르시고 계십니다. 헌신하시는 남성도 여러분 아니 이 자리에 참석하신 성도님들 동역자 다운 동역자가 되시기를 사모합시다.
주님은 바울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심는 이나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 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