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막 9 : 14-29) ; 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12. 22. 11:18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막 9: 14-29)

 

 

목사 주 태 근 

 

선진사회로 발전하면서 '약속'이 중시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현대는 신용사회입니다. 약속을 잘 지킨다는 것은 인간보증수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부도수표와도 같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약속에 신실한 하나님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이 바로 약속의 말씀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겠다, 땅을 주겠다. 복의 통로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분명히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한 가지 대표적인 약속을 들자면 우리에게 메시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직후에 창세기 3장15절에는 이미 메시야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의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며, 그의 약속은 신실하게 이루어집니다.

 

 

 

어떤 성도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고, 우리의 앉고 일어섬도 아신다고 하는데, 이렇게 다 아시는 하나님께 굳이 '이것 해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라고 할 필요가 있습니까? 알아서 다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럴듯한 논리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기도하지 않아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지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능력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하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엔 특이한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이름 하여 ‘암반교회’라고 부릅니다. 지금은 헬싱키 제일의 명물이 되었지만, 이 교회는 사실 생겨날 수 없는 교회였습니다. 왜냐하면 시 조례상 도심 한복판에는 교회를 짓지 못하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루터교회 임원들은 헬싱키 도심에 반드시 교회를 세워야 겠다 작정하고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건축가인 티모와 투오모 수오말라이넨 형제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아무런 쓸모없이 방치된 거대한 바위를 이용하자는 의견이었습니다. 바위를 그대로 둔 채 그 속을 파서 교회를 만들겠다는데, 시당국으로서도 반대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1969년 그 유명한 ‘템펠리아우키오 키루코 성전’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기도응답의 결과입니다. 기도는 무엇이든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기도 앞에 시 조례는 휴지조각에 불과합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어느 날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 달라며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예수님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와 함께 산에 올라가 계셨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와 산 아래 있는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이 묻습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낯선 아이의 아빠가 대답합니다. "제 자식 때문에 왔습니다. 제 자식이 귀신이 들렸는데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고, 파리해 갑니다만 고칠 길이 없어 대려 왔습니다. 제 자식을 고쳐 주옵소서." “그래요” 대답하면서 그 동안 배웠던 제자들은 귀신을 추방키 위해 온갖 노력을 동원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남아 있던 제자들은 발작하는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아빠는 실망합니다. 그러나 아이의 아빠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예수님이 내려오시면 해결될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지푸라기를 붙잡는 심정입니다. 아이를 생명처럼 사랑하는 부모의 애정입니다.

 

예수님은 자주 산에 오르셨습니다. 이유는 기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산에 오르실 때마다 제자들에게도 기도하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 날도 예수님은 세 제자와 함께 산으로 가시면서 남아 있는 제자들에게 기도하고 있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남아있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는커녕 불평과 원망하는 말들을 주고받습니다.

 

"우린 뭐야! 왜 걸핏하면 선생님은 세 제자만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는 거야. 이건 말도 안돼. 편 가르자는 거야! 뭐야!"하며 불평을 쏟아 내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평스런 마음을 먹는 순간 기도의 문은 막힙니다. 기도의 문이 막히면 은혜도, 능력도, 응답도 막히고 맙니다.

 

그 날 제자들은 꼭 필요한 일은 제쳐놓고 불평스런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기도하지 않다가 귀신에게 농락당했습니다. 귀신에게 조롱당하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세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십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주님께 그 아이의 아버지가 하소연했습니다.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제 아이를 고치지 못하더이다." 얼마나 부끄러운 말입니까? 스승을 수치스럽게 만든 일이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지 못하고 쩔쩔 매고 있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한탄하셨습니다.

 

체면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습니까?” 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두 가지로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고 말하셨고, 둘째는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라고 말하셨습니다. 위의 두 구절을 합하면 믿음이 적었기 때문이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주님과 그 아이의 아버지 사이에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어릴 때부터입니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물과 불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이렇게 답하는 아이의 아빠에게 주님은 대답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러한 대답에 아이의 아빠는 응답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그때 주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습니다.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그 순간 아이가 경련을 일으키며 귀신이 아이에게서 나가니 아이가 죽은 자와 같이 되어 있다가 정상적인 아이로 깨어나 치유의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치유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느냐고 예수님께 물었을 때 주님은 대답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우리의 믿음에 기도가 더해졌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영성에 기도의 영성이 있어야합니다.

 

제자들은 기술로 귀신을 쫓으려 했지만 예수님은 영성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뿌리 깊은 영성이 주님께는 있었고 제자들에게는 그 영성이 없었습니다. 뿌리 깊은 영성은 기도하지 않고는 솟아 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영성이 깊은 예수님은 기회가 있는 대로 영성을 발전시키려고 한적한 곳을 찾아 열심히 기도했으나 영성이 없는 제자들은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고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니 귀신이 그들을 알아보고 무시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는 귀신의 역사가 범람한 시대입니다.

 

사단이 득세하는 시대입니다. 사단은 세상의 타락한 문화를 통해서 인간들을 어두움에 빠뜨리려고 쉴 새 없이 공격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단은 그 졸개 귀신들을 통하여 인간을 공격합니다. 인간들에게 많은 질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에 미움과 시기와 음란과 원망 같은 부정적 감정을 심어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어떤 사람의 인격을 지배하고 파멸로 몰고 가기도합니다. 질병을 통하여 인생을 절망의 늪으로 빠지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악한 영의 세력들의 틈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판단할일이 아닙니다. 믿음 역시 대충 믿어서도 안 됩니다.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보통으로 믿는 믿음 그것으로 사단을 이길 수 없습니다. 믿음의 영성위에 기도의 영성이 있어야 삽니다.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만이 영적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세상은 교회를 향하여 기대감을 가집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빠처럼 세상은 능력을 소유한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고 기다립니다. "누가 와서 우리 가정을 곤경에서 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능력 있는 말씀으로 사단을 물리쳐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우리들을 향하여 손짓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먼저 구원받은 자들로서 기도의 능력이 있어야 세상을 구원합니다. 특히 지도자나 교사같이 소중한 영혼들을 맡은 이들은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따로 기도시간을 갖고 맡겨진 영혼들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사단이 저들을 시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시험 들게 하려고 온갖 더러운 말로 속삭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도록 유혹하는 일에 온힘을 쏟고 있습니다. 교회와 교인들로부터 마음이 멀어지도록 간교하게 이간을 시킵니다.

 

믿음을 약화시키려고 화평을 깨뜨립니다. 신앙인을 무력하게 만들려고 교란시킵니다. 그러나 지도자나 교사가 양들을 위해 기도하면 시험에 들다가도 정신을 차립니다.

 

유혹에 빠지다가도 마음을 바꾸어 돌아옵니다. 저들의 안에서 역사하던 악한 사단의 권세가 힘을 잃고 쫓겨 갑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우리에게 영성업그레이드가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승리하기 원하십니까? 받은 은혜를 계속 유지하면서 더 풍성하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의 영성위에 기도의 영성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 믿음이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19세기에 독일에서 가장 학문이 많고 경건했던 한 사람은 저 유명한 불름할트(Blumhardt)였습니다. 그는 튜빙겐대학에서 물리학, 천문학, 세계역사, 철학을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의 경건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주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불름할트가 나가던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 교회에 마귀가 들려 20년 동안 고생하던 드후스라고 하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여자를 위해서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기도하였습니다. 하루 이틀 여러 달을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나가지를 않습니다. 그 해 12월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 여성을 괴롭히던 귀신이 그 여성에게서 완전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귀신 들렸던 여성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기도영성의 결과입니다. 기도로 영적전투를 하게 될 때 악한 마귀의 역사를 물리쳐 승리하게 됩니다.

 

미국의 대형교회 수정교회를 담임했던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처남 프랑크 밴더 마아틴 이란 분이 있습니다. 그는 18세 때 벌써 아이오와주 수카운티에서 제일가는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을 정도로 우수한 연주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대장간에 찾아 갔다가 그만 빨갛게 단 쇠가 그의 왼손에 떨어져 바이올린을 짚던 손이 잘리어 엄지손가락만 남게 되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 난 일입니다. 연주자로서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기도의 영성으로 불행의 삶을 극복합니다. 그는 기도하는 중에 다시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일어섰습니다. 그는 엄지손가락만 남은 왼손으로 바이올린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 바이올린 4줄을 잡고 피나는 연습을 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수도 없이 낙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기도하면서 위대한 연주자의 모습을 그리고 바라보면서 다시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그는 아이오와주 수카운티 교향악단의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백하기를 "내가 불구자라고 생각하기까지는 결코 불구자가 아닙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불구를 바라보지 않고 믿음으로 위대한 연주자상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믿음과 함께한 기도의 영성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기도로 승리합니다. 기도는 인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은 기도하면서 끝없이 의심을 바라봅니다. 안 되는 모습, 병들어 가는 모습, 사업이 망하는 모습, 직장인으로 실패하는 모습만 바라봅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사단의 교란입니다. 성령님은 믿음을 가지고 기도로 축복을 그리도록 만듭니다. 일어나서 전진하게 만듭니다. 믿음과 기도, 기도와 믿음은 항상 따라 다닙니다.

 

딸만 여섯 낳았다가 그 다음 아들을 얻은 월남 피난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지옥엽으로 키우던 이 아들이 세 살 나던 해 소아마비에 걸려 걷지 못하고 기어 다녀야 했습니다. 부모 마음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 이었던 이 어머니는 절망 속에서 기도로 일어섭니다.

 

동네에서 [짐승] 취급을 받던 이 아이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 시작 후 7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아이는 일어나 걸었습니다. 기도영성의 결과입니다. 그로부터 30년 후인 1993년 4월 20일 이 아이는 성장하여 장애인들을 돌본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영예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바로 장애인을 돌보는 임마누엘집 김경식 목사 이야기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는 믿음은 이런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냅니다. 믿음과 함께 기도가 움직였습니다. 기도가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들이 생활에서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기도하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주님은 응답하십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5-1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