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신앙 내 신앙(요한복음 20:24-29 ) ; 목사 주태근
부활 신앙 내 신앙(요한복음 20:24-29 )
목사 주태근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그 손 못 자국 만져라”는 찬송가가 있습니다. 이 찬송가 509장을 작사 작곡한 분은 미국 텍사스의 남서부 신학교에서 음악 교수로 재직하던 매킨니(B. B. Mckinney 1886-1952)라는 분입니다.
1923년 여름, 미국 알렌이란 지역에서 열린 주일학교 협의회에서 한 목사님이 짧으면서도 매우 감동적인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설교 끝에 구원의 확신을 다시 다짐하는 사람들을 단 앞으로 나오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오는 자가 없자, 그 목사님은 더욱 간곡한 마음으로 "여러분! 어서 여러분의 손을 내밀어 주님의 못 자국 난 손에 잡히도록 하시오!" 라고 외쳤는데, 그 때 매킨니는 갑자기 뜨거운 감동을 받아 ‘못 자국 난 손’이라는 찬송시의 제목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그는 폭풍우 속을 뚫고 간신히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주님의 못 박힌 손과 폭풍우 치는 상황을 연결시켜서 한 절의 시를 짓고 후에 그 시를 완성시켜 곡을 붙인 것이 바로 오늘의 찬송가 509장입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이 찬송가는, 예수님이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라고 하신 말씀을 토대로 하여 지은 가사입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마음의 질병 중의 하나가 바로“의심”이라는 병입니다. 금방 보기에는 의심이 별로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사실 미움과 증오, 살인 같은 무서운 죄가 의심에서부터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가정불화의 가장 큰 원인도 의심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의처증, 의부증이라는 정신적인 질환도 의심 때문에 생기는 고질적 질환입니다. 요즘 병원에서는 친자확인 검사가 유행한다고 합니다. 침이나 지문에서 DNA를 추출하여 간단한 방법으로 친자를 손쉽게 확인하는 유전자 감식방법이 개발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부사이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자녀를 어느 날 의심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정말 내 자식이 맞나?” 그래서 유전자 검사를 의뢰합니다. 서로 믿지 못하게 하는 불신 때문입니다. 의심은 가장 큰 인간의 질병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활절 후 한 주간을 고민과 갈등 속에 살아온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은 바로 주님의 열 두 제자 중의 하나인 디두모라하는 별명을 가진 도마입니다. 여기 '디두모'라는 말은 '쌍둥이'라는 뜻으로 '이중의' 이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비교적 심리적으로 갈등이 남달리 많이 겪는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가 바로 도마입니다. 무엇이든 쉽게 믿지 못하는 섬세하고 예리한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철저하고 확실한 사람이라는 뜻도 됩니다.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성경에 보면 '충성스럽지만 우직스런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도마의 모습을 두 번이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번은 주님께서 죽은 베다니 나사로의 집엘 갈 때 '다른 제자들을 향해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또 한번은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며 '내 가는 곳을 너희가 알리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도마가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라고 우직스럽게 묻습니다. 어찌 보면 고지식한 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충직한 인물이 바로 도마입니다.
쉽게 믿지는 못하지만 믿었다 하면 확실하게 자기 신앙고백을 따라 사는 인물, 교활하거나 처세술에 능하지 아니하고 곧이곧대로 살아가는 제자, 그가 바로 도마였습니다. '예와 아니오!'가 분명한, 자기 고백에 걸맞게 진실하게 살아가는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인물인 도마가 오늘 본문에 보면 다른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다." 제자들은 도마에게 '우리가 부활의 주를 보았노라' 라고 말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도마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났을 때 거기에 있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경험하지 않았고 다른 제자들의 이야기에 의존할 뿐입니다. 그는 목격한 증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활의 메시지를 전해 받은 자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우리가 주님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도마는 예수의 부활을 믿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솔직한 주장입니다. 사실 자기가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눈으로 그 손의 못 자국을 '보고' 자기 손으로 그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만져보기'를 원합니다.
도마는 지금 부활의 증거를 요구합니다. 과학에서 통용되는 경험적 증거와 같은 감각적인 증거를 원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 의심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란 만한 일이 아닙니다. 어찌 의심 가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무조건 믿으라는 말은 도마에게 통하지 않는 말입니다.
도마는 바로 오늘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부활하신 주님을 도마처럼 목격하지 못했고 그분의 손에 뚫린 못자국과 옆구리에 패인 창 자국을 만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정말 주님이 부활하셨을까' 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도마의 의혹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도 도마처럼 그분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에 내 손을 넣어봤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도마는 솔직합니다. 그래서 죽임당한 것으로 알았던 주님의 몸이 실로 되살아났는지에 대한 가장 분명하고 감각적인 증거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도마의 행동에 대해 주님은 어떻게 반응하실까?
놀랍게도 주님은 실증적으로 조사해 보겠다는 도마의 도전을 그대로 받아들이십니다. 주님은 부활 후 첫째 주일 그러니까 처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후 일주일이 지난 여드레 날 다시 제자 공동체 속에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도마를 향해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진정으로 주님의 부활을 믿고 싶어 하는 도마에게 그가 제시한 조건을 들어주셨습니다.
당신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 국을 보여주십니다. 부활의 주님이심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은 부활할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마의 정확한 주장은 그분께서 못 박히시고 창에 찔리신 자국을 확인하고서 그리고 나서 믿겠다는 것입니다. 무조건불신이 아니라 확증을 통한 믿음을 갖겠다는 진지한 도전입니다.
처음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실 때 도마도 그 자리에 있었었다면 그래도 그가 의심을 품었을까? 그래도 굳이 손과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고야 믿겠다고 고집을 부렸을까? 아마도 그 역시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제자들 중 누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동료들의 말만 믿고 과연 예수님의 부활을 선뜻 믿을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고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도마는 마치 불신자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그가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자기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는 태도는 '부활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부활에 대한 확신을 얻고자 하는 적극적인 행위'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알려 하고, 신앙이 약하기 때문에 더욱 파고드는 자세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모르면서 아는 체, 믿지 못하면서도 잘 믿는 체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도마가 만약 잔뜩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믿는 척 했다면 그건 올바른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 말을 안 하는 것 보다 의심을 터놓고 그 의심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아름답고 진지한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의심을 극복하고 나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는 진정한 신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기꺼이 도마의 희망사항을 들어주신 것입니다.
'도마야, 네 손을 내밀어 내 손의 못 자국, 내 옆구리의 창 자국을 만져 보아라, 그리고 믿지 않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러나 도마는 그 기회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도마는 자신이 요구한 바대로 허락을 받았지만 끝내 자기 손으로 그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확인하질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부활의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도마가 자신의 생각대로 실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도 다른 제자들과 같이 예수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따라서 도마는 다른 제자들의 경험 이상의 것을 경험하지 않은 셈입니다. 단지 그 정도로 충분했습니다.
참 신앙은 주님의 말씀처럼 이렇게 만지거나 손을 넣어보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도마는 주님을 그냥 봄으로서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 이어서 놀라운 신앙고백을 주님께 드립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부활신앙에 대한 도마 자신의 신앙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베드로의 고백보다 더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확인함으로서 부활신앙으로 태어난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체험했던 제자들의 부활신앙이 바로 도마 자신의 부활신앙이 된 것입니다.
도마는 그 이후 철저하게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갔었음을 교회 전승은 전하고 있습니다. 도마는 페르시아로 건너가서 선교하고 제자 중 가장 멀리 인도에까지 가서 선교했습니다. 인도의 칼라미나에서 선교할 때 체포되어 순교 했습니다. 무릎 꿇고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께 순교자가 됨을 감사하고 영혼을 의탁하며 창에 찔려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습니다.
오늘 날 마드라스에는 그의 무덤과 기념교회가 있습니다. 인도에는 성 토마스(도마)의 전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이름을 사모하는 만큼 도마의 이름을 사모 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신앙으로 순교의 영광을 찾이 하게 된 것입니다. 도마는 자기 고백에 충실했습니다.
그에겐 오직 부활의 주님만이 주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을 따라 평안을 증거하고 죄를 사해주며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회의하고 갈등하는 도마의 이야기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즉 믿음의 반대는 의심이 아니라 무관심한 태도라는 것입니다.
흔히들 신앙을 무조건 믿는 것, 덮어놓고 믿는 것, 따지지 말고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신앙은 언젠가는 넘어지고 맙니다. 오히려 도마처럼 따지고, 의심하고, 회의하면서 이룩된 신앙이야말로 참으로 값진 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얻어진 결과보다 뼈를 깎는 아픔을 겪고서 얻어진 결과가 더 아름다운 것처럼 신앙도 의심과 회의와 갈등을 겪고서 얻어질 때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반대는 의심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는지에 대해서 전혀 관심 없는 태도라 하겠습니다. 신앙은 적극적 관심입니다.
일본의 최고 기업인 ‘가네보’ 제약회사의 경영자 ‘미타니 야스토’는 예수님을 만나 부활신앙으로 인생이 역전이 되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원래 그 회사의 인사과장이었는데, 회사에서도 항상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타니 야스토의 이런 사실을 알고 상부에서 절대로 회사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 왔습니다. 그때 미타니 야스토는 회사에서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겠습니다.” 하고 상사에게 선언을 하였습니다.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일 후에 그의 마음속에서 “네가 나를 배반하는구나.” 하는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구절을 읽으며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자책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겠다고 기도하며, 직장을 잃어버리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자 불안한 마음에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계속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며 회사의 동료들과 선, 후배들에게 열심히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 되는대로 일본 전역을 순회하면서 이백 여회의 전도 집회를 하고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가 회사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성실함과 정직함, 실력을 인정받아 급격히 승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심으로 회사를 일본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고 인정을 받아 그 회사를 이끄는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예수님의 부활 신앙 체험으로 제 인생이 역전되었습니다.” 라고 간증하게 된 것입니다. 부활신앙을 삶으로 승화시켜 승리한 것입니다.
부활신앙이 내 신앙이 되어야합니다. 부활신앙은 우리의 삶 자체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롬6:10-11)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