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및 기념 예배 설교

우리가 믿는 하나님(요16:13-15)-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3. 4. 3. 19:13

우리가 믿는 하나님(요16:13-15)

 

 

목사 주태근 ;삼위일체주일

 

성자 하나님이 아기였던 시절이 있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세계 속에 거하셨던 시절이 있었다는 증거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 엄청난 역사적 사실입니다. 성경이 그 사실을 증언할 뿐 아니라 권위 있는 역사가들이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등장하는 ‘유다복음 이야기’나 ‘다빈치 코드’는 전혀 새로운 일들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시기에도 그랬고 역시 현대와 미래에도 계속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를 인간으로만 이해시키려는 주장과 세력들입니다. 삼위일체 신관을 깨뜨리는 이단의 물결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요1서2:22-23)

 

‘댄 브라운’이 쓴 ‘다빈치 코드’라는 책과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평소에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 글을 통해 기독교가 엉터리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드러났다고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많은 신앙인들도 이 책의 글을 읽고 영화를 보고 믿음이 흔들리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지의 소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삼위일체 신앙을 가지지 못하면 이단사설들을 통해 우리들 역시 믿음이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신관은 유일신관도 아닙니다. 삼신론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신론도 아닙니다. 우리기독교신관은 삼위일체신관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신이라고 하면 막연한 어떤 절대자쯤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그 신이란 '세 인격(person)으로 존재하는 한 하나님'을 뜻합니다.

 

바로 이 신관을 기독교적 용어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통칭합니다. 삼위일체(Trinity) 신관이란 '세 하나님'(Three Gods)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한 하나님이 계신데 그 하나님은 세 인격(person)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한자어로 삼위일체(三位一體)라는 말의 뜻을 풀어보면 그 의미가 좀 더 명확해집니다. 이 삼위일체라는 한자어에서 위(位)는 '자리 위'가 아니라 '분 위'이며, 체(體)는 '몸 체'가 아니라 '본체 체'입니다. 그래서 한자어로도 이 말의 뜻은 "한 신성의 본체에 세 인격"이란 뜻을 지니게 됩니다.

 

세 인격이란 바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서로 구분되는 이 세 인격은 모두 다 그 무한한 영광과 능력과 권능에 있어 똑같이 동등합니다. 그 세 인격 중 어떤 인격도 다른 인격보다 열등하거나 모자라지 않습니다.

 

이 삼위일체는 흔히들 상상하듯 몸 하나에 머리는 셋 달린 기형적인 어떤 존재를 뜻하지 않습니다. 성부는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님이며, 성자나 성령 또한 그러합니다. 성부만 있으면 3분의 1 하나님만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부 자체로 완전한 하나님입니다. 성부와 성자, 성령이 하나님의 본질을 3분의 1씩 나누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영원 전부터 성자나 성령 없이 성부만 존재했던 적이 없고, 성부나 성령 없이 성자만 존재했던 적이 없으며, 성부나 성자 없이 성령만 존재했던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이며 그 신성의 각 위(位)는 영원히 동등하고도 온전한 하나님이십니다.

 

성부는 모든 존재의 보이지 않는, 편재하는 근원으로서 성자 안에서, 성자에 의하여 계시되셨고, 성령 안에서, 성령에 의하여 체험되셨습니다. 이것은 근원으로서 존재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으로 성자 하나님에 의해 표현되고, 성령 하나님에 의해 사람들에게 체험된다고 표현될 수도 있습니다.

 

16세기의 유명한 종교개혁자 깔벵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삼위는 서로의 '안에서' 거하시고, 서로를 '통하여' 거하시고, 서로를 '향하여' 거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 인격으로 존재하시면서 한 신성의 본체를 이루시는지는 사람이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떻게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신성을 온전히 지니고서도 참 인성을 가진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실 수 있었는지를 다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신비입니다. 그러나 어떤 신도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면 다 거짓 신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자, 천하의 종교들 가운데 '기독교만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만이 유일한 절대 진리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절대 진리인 신의 구원에 이르게 해준다는 점에서 다 똑같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는 거짓입니다. 종교들은 각기 다른 사실을 주장합니다.

 

즉 신관만 해도 불교는 무신론이며, 힌두교는 범신론, 이슬람교는 일신론, 유교는 불가지론 등으로 다 각각 다릅니다. 그 주장들을 동시에 진리인 것으로 인정해준다면 그것은 참된 절대 진리이신 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억측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브라이언 맥라렌 목사가 자신의 책 '믿음 찾기'(Finding Faith)에서 조목조목 예를 들어 지적한 말은 이 사실을 정확히 잘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모든 종교가 똑같은 진리라면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고 계시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호메트에게는 모든 사람이 메카로 성지순례를 다녀와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면서 예수님에게는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을 예배하여도 괜찮다고 말씀하신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힌두교도들에게는 무슨 고기든지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 후 유대교도들에게는 돼지고기는 먹으면 안 되지만 쇠고기와 닭고기를 먹는 것은 괜찮다고 말씀하신다면 하나님께선 공정하지 않으시거나 기억력이 나쁘신 분일 것이다.“

 

그렇습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입니다. 삼위일체 신관이 바로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요 올바른 신관입니다. 지난 날 우리는 삼위일체에 관한 설명을 이렇게 들었던 일이 있습니다. 즉 “삼위일체란, 저 자신을 비유해서 교회에서는 목사이지만, 자녀들에게는 아버지이며, 아내에게는 남편인 것과 같다”것입니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이러한 설명에는 적잖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주전 2, 3세기에 양태론적군주신론이라는 이단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 인물 사벨리우스는 주장하기를, 성부, 성자, 성령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다른 가면으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다른 양태에 불과하다고 말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는 아버지로서 창조하시고 율법을 주셨으며, 예수의 성육신부터 승천까지의 기간에는 아들로서 구속의 사역을 감당하셨으며, 그 이후는 성령으로서 영감과 은총을 주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인간에게 현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각각의 가면을 벗게 되면 성부, 성자, 성령은 없고,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교회역사는 이 이단을 일컬어 <성부수난설>이라고 말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가면에 불과하다면, 십자가에서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분은 곧 성부 하나님이라고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삼위일체를 잘못 이해하게 되면 이미 언급한 <양태론적 군주신론>의 사상에 흡사한 것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 존재만을 말할 뿐, 세 존재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사, 아버지, 남편은 <나>라는 한 존재의 각기 다른 역할 즉 가면에 해당에 불과할 뿐, 각각 독립된 인격이 아니므로, 결국 <나>라는 한 존재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올바른 비유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교회는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으로서의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예수를 사람이면서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안에서는 이 문제로 많은 논란이 계속되어 교회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의 교부들은 주후 325년에 니케아에서 모여,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질상 같다. 하나님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한 분이시고 그분의 위격에 있어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나타나신다고 교리상으로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381년 지금의 터키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재확인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교회는 삼위일체신앙을 우리의 정통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이하에 보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모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또 그는 나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그가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신 것은 다 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령이 나의 것을 받아서,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시면서 '그'라는 삼인칭을 사용하셨고, 성부를 아버지라고 부르시면서 그가 가지신 것은 다 내 것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각각 독립된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을 뜻합니다. 이 본문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지신 것이 성자의 것이고, 성자의 것을 성령이 받아서 우리에게 알려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한 하나님이 어떤 때는 성자가 되고 어떤 때는 성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 우편에 성자가 계시고 성령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본문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뜻을 가지고 역사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것을 아들이 받으셨고, 그것을 성령이 또한 받으셔서 우리에게 전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 다르고, 성자가 자기 뜻대로 따로 행동하고, 성령이 마음대로 역사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뜻이 통일적으로 그대로 실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십니다. 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삼위일체라고 말합니다. 셋이지만 하나처럼 역사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0절 이하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네가 믿지 않느냐 ?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성부께서 성자 안에 계시고 성자께서 성부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부와 성자는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성자께서 행하시는 일은 성부께서 성자 안에서 자신의 일을 행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존재양식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의 존재방법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오셔서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일들이 자기 마음대로 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받아서 행하신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둘이지만 완전히 하나가 된 것입니다. 또한 성자 예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성령이 예수에게만 함께 하셔서 그를 광야로 인도하여 시험을 받게도 하셨고, 병을 고치게도 하셨으며, 그리고 그를 골고다 십자가로 인도하셨습니다.

 

결국 예수께서 이 땅에서 활동하시는 동안 성부와 성령이 예수 안에 들어오셔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완전히 하나가 되어 만유 구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셨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임무를 마치고 하나님 우편으로 가신 다음 성령이 오셔서 행하시는 모든 역사도 아버지의 뜻과 그 뜻을 받아서 이루신 아들의 역사를 그대로 우리에게 믿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성령께서 처음부터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가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아주 분명하게 알고 계신 분입니다. 그런 성령께서 오늘 우리 가운데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 안에 성부와 성자가 계신 것이며, 따라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영"(롬 9:8)이라고도 하며, "하나님의 영"(롬 9:8)이라고도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은 그가 총괄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깨닫게 하며, 거기에 참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이루시는 창조와 구원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로 그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삼위일체론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성서에 기초해야 되는 교리입니다. 그것은 또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신 하나님 상호 간에 일어나는 신비한 구원의 역사를 바르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교리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삼위일체하나님을 믿는 신앙입니다. 삼위일체신관이 우리의 신관입니다. 분별력과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1서4:1-3) 아멘.

 

 

삼위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