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을 예비하라(말3:1-6) : 목사-주태근
그 날을 예비하라(말3:1-6)
목사 주태근
미국 워싱턴대학의 토머스 홈스 교수가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에 변화를 가져오는 때를 조사했습니다. 그 조사 결과가 다음과 같습니다. 가장 큰 변화가 오는 때는 배우자가 죽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이 경우를 100으로 정하고, 그 밖의 다른 경우들을 점수로 환산했습니다.
이혼의 경우가 두 번째로 73점이고, 임신했을 때가 40점이며, 집을 옮기거나 수리했을 때가 25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크리스마스가 무려 12점이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성탄절 절기가 무엇인가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조사입니다.
대강절 즉 대림절은 성탄절에서 거슬러 올라가 네 번째 주일부터 시작하여 크리스마스이브까지 계속됩니다. 이 절기는 글자그대로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며, 그 오심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우리 삶을 정리하여보는 절기입니다. 대림절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대림절은 신앙의 중요한 요소에는 기다림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배우는 절기입니다.
‘고도(Godot)를 기다리며’라는 문학작품이 있습니다. 1953년에 발표한 사무엘 베케트의 유명한 희곡입니다. 기다림은 이 작품의 중요한 흐름입니다. 1960년대에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공연됐을 때, 모두들 고도(Godot)는 ‘러시아로부터 얻을 자유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알제리에서 공연 되자, 농부들은 고도(Godot)는 ‘토지개혁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산 퀜틴(San Quentin) 교도소에서 공연되자, 고도(Godot)는 ‘죄수들의 석방을 뜻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이 기다리는‘고도’는 무엇일까?
선지자 말라기가 활동하던 시기는 지도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돌아 왔을 때였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된 동포들은 무너진 성전만 완성되면 이전의 영광스러운 솔로몬 시대가 역사 안에서 재현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완성되었어도 그런 날은 쉽사리 오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옛 영광이 없었으며, 오히려 그 본래의 빛을 잃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정신적 지주가 되어 백성을 지도해야 할 제사장들은 제단에는 가장 값싼 물건이 아니면 흠 있는 물건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형식적 제사에 지나지 않았으며, 무당이 성하였고, 백성들은 향락에 빠졌습니다.
종교가와 지식인들은 깊은 회의주의에 빠져 ‘여호와를 섬기는 일도 헛된 일이요, 의인이 악인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 심판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하며 불평합니다(2:17).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제사행위를 통해서 죄를 가중시켰으며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방탕과 호화생활로 낭비하고 있으면서도 십일조를 내지 않아 성전 안 여호와의 창고는 항상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지자 말라기는 그들의 이런 생활을 책망하면서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곧 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정말 그의 예언자적인 목소리가 채 사라지기 전에 예수님은 이 땅에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아주 가까운 마을입니다. 수시로 오고가는 사람들이 있었고 왕래가 빈번한 곳이었습니다. 걸어서도 하루 길이면 충분한 곳입니다. 예루살렘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베들레헴을 갈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소식이 하루면 베들레헴에서 알려졌고 또 베들레헴의 소식도 다음날이면 예루살렘에 알려질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 구세주가 베들레헴에 나실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단 한 사람도 ‘오시는 메시야’를 영접하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혀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귀하고 복된 분이 찾아오신다 하여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렇게 기회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한 사람들은 다릅니다. 특히 마태복음을 읽어보면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알고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느 날 이상한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별의 나타남이 분명 놀라운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별이 인도하는 대로 이 세상의 구세주로 오시는 위대한 왕을 영접하기 위하여 먼 길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귀중한 예물을 준비하였습니다. 황금, 유향, 몰약 등 당시로서는 최고의 선물을 예비하고 오시는 주님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들이 찾아 온 길은 너무 멀어 3개월 이상 걸렸을 것이라는 설명하는 이도 있고 심지어는 1년이 넘는 먼 거리였다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렇게 먼 거리에 사는 사람들이었으나 그들은 준비하고 사모하며 찾아 왔습니다. 마태복음 2장 9-11절은 당시 상황을 전합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준비된 그들은 먼 곳이었지만, 그리고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였지만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를 영접하는 기쁨과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준비한 사람들만이 오시는 구세주 메시야를 만날 수 있고 영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인 말라기 3장 1절에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구세주 메시야가 오실 때에 준비할 자를 보내어 준비하게 하시고 준비하는 자들이 영접하는 은혜를 받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시는 메시야를 영접할 준비가 이루어 질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특별히 이사야 40장 3-4절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라고 하여 오시는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었습니다.
길을 예비하라고 하시면서 먼저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길을 예비하라"는 말씀과 "첩경을 평탄케 하라"는 말씀이 이어져 나오는데, 뒤에 나오는 "첩경을 평탄케 하라"는 말씀은 앞의 "길을 예비하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길을 예비해야 하는데 어떻게 예비해야 하느냐? 평탄한 길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성서는 이 말씀을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길을 잘 닦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고대 근동에서 군주가 행차할 때 백성들에게 군주를 맞이할 여러 가지 준비를 했던 일들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선 마차를 타고 오니까 길을 평탄하게 닦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 나라의 높은 벼슬을 가진 분이 오시면 길을 닦아 준비하였습니다. 오시는 메시아를 영접하기 위하여 길을 닦고 고르게 하기 위하여 먼저 골짜기는 솟아오르게 해야 하고 웅덩이는 메워야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것은 인간의 마음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절망으로 꺼진 마음을 솟아오르게 하고 좌절과 낙심 속에 있는 사람들의 심령에는 희망과 기대로 고르게 하여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골짜기는 깊게 파진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상처가 있는 마음입니다.
편하지 않는 불편한 마음입니다. 상처 때문에, 경제적인 일 때문에, 가정의 불편한 일 때문에, 친구관계 때문에 불편해진 마음들이 바로 깊게 파인 마음입니다. 여러 가지 고난 때문에 낙심하고 좌절된 마음, 감당하기 어려움으로 인하여 절망 가운데 있는 어두운 마음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에서는 그렇게 상처로 인해 깊게 패인 절망적인 마음들을 메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저기 깊게 패인 구덩이가 있는 길을 자동차가 달려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차는 도중에 사고가 나든지 시동이 꺼지든지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불편해서 짜증을 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로 오시는데 우리 마음들이 여러 가지 상처로 인해 깊게 패여서 절망과 낙심 속에 있다면 주님은 우리 마음의 길로 오시는데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골짜기 같은 우리의 마음들을 바꿔야 합니다. 삶에 시달려 낙심하고 있습니까? 너무 괴롭고 힘들어 절망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들까지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소망을 가지십시오. 그래서 낮은 골짜기 같고 어두운 계곡 같은 심령에 구원의 소망으로, 메시야를 기다리는 희망으로 채우십시오. 그러면 찾아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준비하여 주님 영접하는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사야는 계속해서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라고 하여 산마다 낮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높이 솟은 산은 교만한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주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나라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헤롯은 교만함으로 예수를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많은 병자들과 환자들을 치료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높은 산을 깎아 내려야 합니다. 우리의 교만의 산을 깎아 내려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석은 교만을 없애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방자하게 행하던 어리석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아도 모든 일이 잘만 되어 간다고 믿는 우매함을 깎아 내려야 합니다. 스미스 라는 분은 말했습니다.
"교만으로 인해 느부갓네살 왕은 인간사회에서 쫓겨났으며 교만으로 인해 사울 왕은 왕국에서 쫓겨났고 교만으로 인해 아담은 낙원에서 추방되었으며 교만으로 인해 하만은 궁중에서 쫓겨났고 교만으로 인해 루시퍼는 하늘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멀리하는 마음입니다.
이사야는 계속해서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라고 하여 험한 곳이 평지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큰 돌들이 굴러다니고 수렁 같은 곳이 있어 사람들이 쉽게 다닐 수 없는 험한 곳이라도 잘 다듬어져 평지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화를 내며 분노하여 언제나 거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사카 의과대학에서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제출한 바가 있습니다. 개 한 마리를 네 시간동안 결박하여 때리면서 잔뜩 성이 나게 만든 후 그 개의 뇌수가운데서 액을 취하여 검사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시안"이라는 독소가 다량 검출되었습니다. 그 양은 개 80마리를 능히 죽일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우리 사람들도 성을 낼 때 피가 독소를 냅니다.
그리고 신체조직과 기관에 좋지 못한 병적 영향을 끼칩니다. 이런 분노하는 마음, 버럭 버럭 화를 내는 마음, 시기, 질투, 원망 등으로 독이 가득한 마음에는 우리 주님이 오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험한 곳이 평지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평탄케 하라"는 말은 단순히 물리적 측면에서 길을 곧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회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예수님 보다 먼저 온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라고 하여 회개를 전하였음을 말씀하였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새 행실로 돌아온다"는 히브리어 "슈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백성들로 여호와와 맺은 언약에로 돌아오라는 예언자의 외침입니다.
이 말은 머리로서만 계획을 수정하고 감정적으로만 후회하는 정도가 아니라 죄와 죄책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는 전인격적인 참회인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메시야를 영접하는 마음과 행위의 철두철미한 변화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26절입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항상 준비된 시므온이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37절에도 말씀합니다.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라고 하여 잘 준비된 분들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들이 예수를 만나는 기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 40장 5절에서도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고 하여 준비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분 말라기서의 말씀을 다시 기억해 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준비된 마음이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고 영접함으로 새롭게 된 사람들만이 하나님이 받으시게 합당한 제물을 드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항상 준비하는 자로서 성탄의 복이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아멘.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