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론 강의록

교회론 강의록(12) : 세례에 대한 이해(글-주태근)

주 바나바 2023. 5. 31. 14:50

교회론 강의록(12) : 세례에 대한 이해(글-주태근)
 
3. 세례에 대한 이해
 
개신교의 전통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구원을 우리에게 전하는 성령의 은혜는 말씀과 세례와 성찬을 통해 전달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객관적으로 일어난 구원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관적으로 일어나며, 그리스도가 구원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면 성령의 능력 속에서 집행되는 세례는 도구적 원인이다. 그러나 굳이 따진다면 구원을 전하는 순서에 있어서 세례가 성찬에 앞선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세례는 시작의 성례전이며 은혜의 문이고, 성찬은 완성의 성례전이며 은혜의 길이다. 세례를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성찬을 통하여 인간의 피조물의 존재가 유지되고 완성되어 간다.

 
1) 세례의 이해
 
웨슬레는 세례를 교회 또는 천국에 들어가는 유일한 수단으로 생각했으며, 그런 의미에서 입회성례전이라고 생각했다. 세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씻음을 받고 교회 공동체의 회원이 되는 의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개념은 영적 기름부음과 정결이다. 가톨릭과 루터교회에서는 대체로 구원하는 은혜의 방편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개혁교회는 주로 계약의 표징과 보증으로 보는 견해를 가진다.
 
① 가톨릭교회
 
로마 가톨릭교회는 구원을 위해서는 반드시 세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이교도들은 지옥으로, 세례 받지 못한 아이들은 유아 림보(limbus infantum)로 간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트렌트공의회는 성례전이 상황에 따라 구원을 위하여 없어도 된다고 하는 주장을 정죄하였다.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칭의의 은혜가 수세자에게 부여된다. 중세교회에서는 세례를 통해 원죄가 씻어지고 본래의 의가 회복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수세자에게 남아있기 때문에, 수세자는 다시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죄를 짓고 은혜를 잃어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은혜를 지키기 위해 고해성사가 필요하다.
 
② 루터교회(루터)
 
루터에 의하면, 세례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가복음16:16)라는 약속이 세례의 근거이며 너무나 중요하다. 세례가 구원의 근거가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즉 비록 모든 구원의 근거가 세례에 있는 것이 아니라하더라도 세례는 분명히 주님의 약속에 있기 때문에 만약 수세자가 세례를 받고도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는 것은 세례 의식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에 대한 불신으로 루터는 규정하며, 따라서 모든 범죄 중에 가장 큰 죄라고 말한다.
세례는 인간의 행동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집행되는 인간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이 세례의 사건 속에서 행동한다. 세례는 하나님 자신의 사역이며, 하나님은 세례를 통하여 죄인을 받아들이고 죄를 용서하고 영원한 삶으로 태어나게 한다. 그런데 그에게 있어서 세례는 칭의론의 구체적 형태에 불과하다. 즉, 세례의 사건을 통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칭의를 얻지만, 우리는 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다. 세례로 인해 어떤 특별한 자질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세례와 함께 성령의 능력으로 죄와 싸우며 마지막 죽을 때에 죄인을 그의 죄로부터 구원하실 것을 약속한다. 고해성사는 필요치 않으며 한번 받은 세례는 유효하다. 그러나 세례의 물 자체가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효력을 가지며, 말씀에 대한 신앙이 있을 때 효력을 가진다.
 
③ 개혁교회(칼빈)
 
칼빈은 개혁주의 신학의 대표적인 신학자이다. 그의 세례이해는 개혁주의의 세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의 세례 이해는 하나님 은총에 근거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강조하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 위에 서 있음을 말해준다. 칼빈은 세례에 대하여 이같이 정의를 내리고 있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 접붙임을 받은 자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인정함을 받기위하여 교회 공동체 안으로 영접되어짐을 시작하는 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은 2차적이다. 칼빈에 있어서 세례의 첫째 목적은, 우리의 신앙을 위해 봉사하는 데 있다. 세례는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증거함으로서 우리의 신앙을 돕는다. 따라서 세례는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는 약속과 함께 받아야 한다. 그러나 칼빈에게 있어서 비록 세례가 구원의 대한 지식과 획실성을 제공해주지만 그것이 구원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세례는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함으로서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구원을 인쳐준다.
 
개혁교회 신학에 있어서 세례는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는 예전이라고 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와 그의 제사로 주어진 은사다. 그리고 성령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 성별되게 새롭게 되게 하기 위한 예전이다. 그리고 세례가 구원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하여 칼빈이나 개혁교회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으로 말한다.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이 물속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세례는 하나님이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일으키는 것을 증명하는 표징이다. 그것은 말씀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봉인과 같다. 세례는 하나님이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영적으로 이루시는 일에 대한 외적, 물체적 표징이다. 그러므로 칼빈에 의하면 세례가 원죄를 씻고 본래의 의를 회복시켜준다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리는 잘못된 것이다.
 
 
2) 세례의 의미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집행되는 세례의 의미는 어떤 것인가. 다음은 김균진 교수의 견해이다.
 
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의 참여
 
롬 6: 3~5, 골 2: 12.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한다. 원래의 세례였던 온몸을 물에 잠그는 것은 인간의 죄된 존재가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물에서 일어서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새로운 삶으로 부활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성령의 능력 가운데에서 시간차를 넘어서 우리에게 역사하신다.
 
② 죄의 고백, 회개, 죄의 용서, 씻음
 
세례는 죄의 고백과 죄의 용서와 깨끗하게 씻음을 그 속에 포괄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와 함께 씻음(고전 6: 11)을 받았다. 히 10: 22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마음뿐 아니라 몸도 세례와 함께 깨끗이 씻음을 받았다.
 
③ 다시 태어남
 
세례는 인간의 죄 된 존재가 죽고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뜻한다. 죄의 몸이 죽고(롬 6: 6)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능력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롬 6:8) 세례를 받는 자는 세례와 함께 그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 요 3: 5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여기에서 물 자체가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기보다 세례의 말씀과 행위 속에서 활동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다시 태어남이 일어난다.
 
④ 칭의와 해방
 
세례는 하나님의 의롭다하심, 곧 칭의를 받으며 죄의 노예상태로부터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세례와 함께 그리스도인은 죄와 죽음이 다스리는 삶의 질서로부터 하나님의 의와 사랑이 다스리는 새로운 삶의 질서로 해방된다.
 
⑤ 주권의 교체
 
세례와 더불어 수세자는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그리스도에 귀속하며 그리스도의 주권 안에 있게 된다. 세례는 자기 스스로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받게 된다. 주인은 자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에게로다.
 
⑥ 그리스도의 몸에 소속됨
 
그리스도와 연합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백성과 결합하며 그의 몸된 교회에 소속된다는 것을 뜻한다. 수세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한 몸을 이루며 한 믿음과 한 성령과 한 희망 속에서 한 하나님을 모시게 된다. (엡 4: 4)
 
⑦ 성령의 능력 안에 있게 됨
 
세례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활동 영역 안에 있게 됨을 뜻한다. (고전 6: 11) 세례와 함께 성령은 세례받은 사람을 이 세계로부터 불러내어 그리스도에게로 귀속시키며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과 삶과 영광에 참여하게 한다. 그는 세례 받는 사람에게 활동할 뿐 아니라 그 사람 안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 안에 거하며 그를 감화시키며 변화시키고 성령 안에서 살게 한다.
 
⑧ 하나님 나라의 선취
 
기독교의 세례는 요한의 세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에서 묵시사상적, 종말론적 요소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수정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능력 가운데에서 베푸는 세례는 종말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푸는 세례는 단순히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선취를 뜻한다. 세례는 수세자를 그리스도의 과거와 결합시키는 동시에 부활의 미래와 결합시킨다.(세례의 이중구조) 세례는 보통 과거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회상 및 입교의식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를 넘어서서 세례는 하나님 나라를 앞당겨오는 선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⑨ 복종과 희망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구원의 사건을 시인하는 행위이며, 이에 응답하고 이 사건이 가리키는 미래에 상응하여 살게 되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세례는 단순한 과거의 회상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의 완료형 속에 포함되어 있는 미래완료에 대한 기다림과 희망을 뜻한다.
 
⑩ 부르심과 파송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으며 구원의 미래를 희망하게 된다. 세례는 수세자가 자기의 삶의 길을 하나님에게 내어 맡기며 하나님의 더 큰 구원의 미래를 향하여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는 사건이다.
 
제의적 신비의 상실은 계몽기 이래의 개신교회의 말씀주의와 성례의 결핍과 관계되어 있다. 인간은 모든 것을 오성의 틈을 통해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원형적, 무의식적 차원에서 산다.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성례전에 대해서 지나치게 경시했던 지금까지의 역사를 생각해볼 때 우리는 성례전의 중요성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성례전에의 강조는 다변화된 사회에서 모이기를 폐하는 교회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도 해답을 제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