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강의록(12) :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시작(글-주태근)
선교학 강의록(12) :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시작(글-주태근)
5.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시작: A.D. 1600-1800
혹자는 종교개혁의 영적능력이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부추겨 1500년 이후 시작된 탐험과 식민 활동 기간 중에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하는 힘이 되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 시기 로마 카톨릭 교회는 유럽에서 프로테스탄트에 빼앗긴 인원보다 더 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그 요인은 무엇인가?
첫째,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소는 종교개혁자들의 신학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상명령이 오직 예수의 열두 사도에게만 주어졌다고 생각하여 사도들이 당시 알려진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완수했다고 가르쳤다. 만약 후대인들이 복음을 받지 못했다면 그들 자신의 잘못으로서 그들의 불신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또 사도직은 직접적인 소명을 받은 것으로서 특수한 기능과 기적을 행하는 힘 등은 소멸되었기 때문에 후세대의 교회는 선교사들을 세상 끝까지 파견할 권위도 책임도 없다고 가르쳤다.
둘째, 16-17세기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슬픈 곤경에서 발견된다. 로마가톨릭 교회와 비교해 볼 때 그들은 숫자와 세력 면에서 극단적으로 약했으며 가톨릭교회가 반종교개혁을 시작하여 잃은 것을 다시 되찾기 시작하였다. 30년 전쟁으로 독일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혼란스럽게 되어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시기에 세계선교는 신경 쓰지도 못했다. 또한 루터파 교회와 개혁파 교회들 간의 서로 물고 뜯는 상황은 더욱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셋째, 아시아, 아프리카, 신대륙 등지로부터 프로테스탄트 유럽이 고립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톨릭 국가였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1세기 이상 해상 세력을 잡고 있었기에 프로테스탄트 선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톨릭 선교사들만이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넷째, 프로테스탄트 교회 안에는 가톨릭 신앙을 세계에 보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종교단이 없었다는 것이다. 2세기 후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선교를 시작했을 때 가톨릭과는 비교할 수 없었고 군대식의 예수회와도 상대할 수도 없었다.
1) 대륙에서의 선교활동의 시작
근대적 선교활동이 유럽 대륙에서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여러 가지 미성숙한 일들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시도는 1555년 칼빈이 리오데자네이로 만에서 박해 받는 프로테스탄트 신도들을 위해 식민지를 건설하고자 하여 네 명의 선교사들과 일단의 위그노 교도들을 보냈던 브라질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곳은 지도자 빌레가느논이 변절하여 이 지역을 포르투갈에 넘겨주고 생존자들은 예수회에 의해 살해 되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주동이 되어 1622년에 리이든 대학에 신학교가 설립되어 동인도 지역에 선교를 시작하였으며 최초의 루터파 선교사인 오스트리아 사람 저스티니안 폰 벨츠 남작으로 기아나(수리남)에 가서 선교하였다.
2) 독일의 경건주의
근대 선교활동은 1648년 베스트팔리아 평화조약으로 종결된 30년 전쟁 후 독일에서 시작된 경건주의 운동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경건주의 운동은 유럽의 프로테스탄트 국가 교회들의 열매 없는 정통주의와 형식주의에 대항한 운동이었다.
경건주의의 아버지는 필립 스패너(1635~1705)였다. 초기 스트라스부르크와 프랑크푸르트에서 루터교 목사였던 스패너는 영성개발을 조직적으로 추진함으로써 그의 양떼들의 영적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였다. 복음전도의 열정 없이 선교의 비전이 있을 수 없고, 개인적인 경건한 삶이 없이 복음전도의 열정이 있을 수 없고, 친밀한 회심의 경험 없이 개인의 경건이 있을 수 없다. 경건주의자들의 진실한 종교는 머리가 아닌 가슴의 문제였다.
경건주의자들은 그들의 대학을 1694년 할레에 개설하였고 스패너는 10년간 그 학교를 건축하였다. 할레는 경건주의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18세기 선교활동의 샘터가 되었다.
3) 덴마크 할레 선교회(1705)
할레 대학에서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선교 기구인 덴마크 할레 선교회(The Danish-Halle Misson)가 시작되었다. 선교사들과 대부분의 지원은 할레에서 이루어 졌고 초기 기동력은 덴마크에서 시작되었다. 1620년에 덴마크는 인도 동해안에 무역을 위한 식민지를 건설하였고 1705년 코펜하겐의 궁정 목사인 프란쯔 루트겐이 황제에 의해 동인도에 선교사를 모집하도록 임명되어 2명의 선교사가 파송되었다. 그러나 이들 선교사들은 황제의 신임장이 있었음에도 그 덴마크 총독으로부터 적대를 받았으나 플뤼챠우는 5년, 지겐발크는 15년간 사역하였으며 나중에 할레에서 훗날 모라비안 선교운동의 아버지인 진젠도르프를 만나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4) 모라비안 선교
모라비안 교회(the Moravian Church)의 기원은 핍박을 받으며 존 후스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발덴파와 모라비안파 사람들과 연합하여 연합형제단을 형성했던 14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니콜라스 루드비히 진젠도르프(1700~1760)는 스패너의 대자(代子)이며 할레대학에서 교육 받았고 젊은 시절에 그의 전 생애를 주님께 헌신하기로 작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곧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었으며 종교활동을 위한 단체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그는 1737년에 모라비아 교회의 주교가 되었다. 30년 동안 그는 세계적인 선교활동을 격려하고 지도하였다. 그들의 최초의 선교는 서인도 제도의 덴마크령 섬에 사는 흑인들을 위한 것이었고 1734년 그린랜드와 또 다른 섬에서 진행되었다. 그 이후 수리남 , 자메이카, 북아메리카 등지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1732년부터 1760년까지 226명의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10개의 선교지에서 활동하였다.
덴마크 할레와 모라비안의 두 선교기관들은 18세기 전체를 통틀어 선교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18세기 말엽(1797)에는 네덜란드 선교회가 활동을 개시하였다. 19세기 동안에 약 15개의 대륙 선교회가 조직되었으나 제 1, 2차 세계대전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고 현재 독일 선교사들의 숫자는 1,300 여명(1978년)에 이른다.
5) 복음주의적 부흥운동
대륙에서의 선교활동이 17세기 경건주의 운동에서 시작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18세기의 요한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 지도하에 일어난 영국 선교활동의 기원과 복음주의 운동을 살펴봐야 한다. 경건주의 운동의 중심인물은 스패너, 프랑케, 진젠도르프 였다. 위대한 각성운동의 설교자들은 영국의 웨슬리와 휫필드, 미국의 조나단 에드워드 였다. 이 두 부흥운동 연결된 것은 웨슬리가 개인적으로 진젠도르프와 모라비안 교회와 접촉한 것, 그리고 휫필드가 프랑케의 업적을 연구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웨슬리는 미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모라비안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순전한 신앙과 경건함을 보고 많은 감명을 받게 된다.
영국에 돌아온 후에도 웨슬리는 모라비안 교회와 관계를 계속 유지하였으며 그들을 더 알기 위해 헤른후트를 방문하여 진젠도르프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웨슬리는 설교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전도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하루에 세 번 이상의 설교를 하며 40년간 전도활동을 하였고 그 열정으로 감리교를 조직하게 된다. 그가 영국을 도덕적, 종교적으로 구출하여 캐리에 의해 시작된 근대 선교운동의 초석을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6) 영국의 초기 선교활동
일반적으로 영국의 선교활동은 윌리엄 캐리에 의해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 아니다. 이 시기에 이미 세 개의 선교 단체가 존재하였고 이들은 모두 북아메리카 선교를 위해 창설되었다.
첫번째의 것은 1649년에 창설된 뉴잉글랜드 복음전도회(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in New England ; SPGN)였다. 그 명칭대로 이들은 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선교를 위해 조직되었고 최초의 선교사는 존 엘리오트 였는데 그는 1631년 이래 메사추세스 주에서 지내며 50년간 이 지역 인디언을 위한 선교활동을 하였다.
기독교 지식 증진협회(Society for Promotion Christian Knowledge ; SPCK)는 성공회 내 독립 선교 단체로 1698년에 조직되었다. 이 단체 설립의 중심인물은 토마스 브래이 목사였다. 이들은 신대륙의 백인 식민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기 위함 이었으며 기독교 문서의 보급과 식민지 성직자의 도서실을 확장시켜 주고 돕는 일을 하였다.
외국 복음선교회(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in Foreign Parts ; SPG)는 가장 오래된 단체로서 거의 1세기 동안이나 영국 교회의 선교기관이었다. 1701년 왕실의 허가에 의해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창설되는데 하나는 신앙지도의 부족 때문에 이교도의 관습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는 해외에 사는 영국 식민자들의 신앙지도를 위함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교도들인 토착민을 선교하려는 이유였다. 이들은 미국 식민지들과 서인도제도에 활동 지역이 국한되어 있었음에도 아메리카 식민지의 목사들과 선교사들을 위해 최선의 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