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서 설교원고

승전에의 기원(시 60:1-12)-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3. 6. 7. 10:51

승전에의 기원(60:1-12)

 

목사 주태근

 

본시는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임(삼상 17:47)을 철저히 인식한 시인이 진군에 앞서 승리를 간구한 기원시로서 아군의 위기와 도움 호소(9-12)로 전개됩니다. 대승을 거둔 에돔과의 전투(삼하 8:13; 왕상 11:15, 16)를 시사하는 표제어와는 달리 패전 상황이 묘사된 것은 본시가 전황이 호전되기 전의 일시적인 패배를 경험한 직후에 작시되었기 때문입니다.

 

60:1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하나님이여 : 본 시편은 다윗이 쓴 것으로 에돔과의 전쟁에서 초반에 패배할 지경에 이르자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승리를 호소하는 사실을 그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결국 다윗은 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다(삼하 8:13;대상 18:12). 한편 '하나님이여'는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구하는 문맥에서 흔히 나타나는 부르짖음이다(51:1; 54:1; 55:1; 56:1; 57:1; 59:1).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 다윗이 에돔에 원정을 갔으나 도리어 많은 군사를 잃는 등 패배한 사실을 가리킨다(왕상 11:15, 16). 여기의 '흩으셨고'(, 파라츠)'깨뜨리다' 혹은 '부수다'의 뜻으로서, 구조물(構造物)의 경우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시킬 만큼 파괴하는 것을(대하 32:5; 25:28), 대열(隊列)의 경우는 적의 일격을 받아 갈팡질팡 혼잡케 된 상태(삼하 5:20)를 가리킨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적의 공격으로 다윗의 군대가 사방으로 도망쳤던 사실을 뜻함이 분명하다.

 

분노하셨사오나 : 이것은 다윗이 패전(敗戰)을 죄의 결과로 보았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떤 죄가 하나님을 분노케 하셔서 다윗으로 하여금 패전케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성도에게 있어 하나님의 손길로부터 멀어지는 일은, 비록 짧은 기간이라 할지라도, 엄청난 재난을 의미한다(44:9, 23; 74:1; 77:7; 89:38).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 에돔 군대에 의해서 쫓기는 신세에서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 상황으로의 반전(反轉)에 대한 간구이다.

 

60:2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요동함이니이다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 '땅을 진동시키사', 하나님께서 에돔 백성을 통해 다윗과 그 군대를 패배시키신 사실(Calvin)과 더불어 그로 인한 극도의 두려움을 가리킨다(Rawlinson). 아무튼 이 문구를 여자적(如子的)으로 보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여기서 '진동시키사'(, 라아쉬)는 동사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하는데 주로 사용된다는 점(5:4;10:10) 때문이다. 한편 '갈라지게 하였사오니'는 다윗의 군대가 에돔의 반격에 의하여 지리 멸렬(支離滅裂), 그대오(隊伍)를 이탈한 채 사방으로 흩어진데 대한 은유적 묘사이다(1).

 

그 틈을 기우소서 : 본문의 '기우소서'(, 라파)'풀다', '약하게 하다' 그리고 '거두다'의 뜻이며 본질적으로 1절의 '회복시키소서'와 동일한 의미라 하겠다.

 

땅이 요동함이니이다 : '요동함이니이다'(, 모트)는 신뢰하기 힘든 불안정성을 강조할 때 주로 사용되는 동사이다(대상 16:30; 41:23; 40:20). 이는 다윗이 어느 곳으로 도망을 하더라도 안전치 못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러한 암시를 통하여,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간곡히 알리고 있는 것이다.

 

60:3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움을 보이시고 비척거리게 하는 포도주로 우리에게 마시우셨나이다 : '포도주'는 즐거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9:7), 문맥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비유이기도 하다(75:8; 51:17; 25:15-18; 51:7).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의 진노(1)에 의한 이스라엘의 참상을 보여준다. 다윗과 그의 군대는 에돔군의 공격을 당하여 마치 술취한듯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던 것이다.

 

60:4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기를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셀라) :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 군대를 구원하셔야 할(5) 이유를 말하고 있다. 한편 본문 '()를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에 대하여 많은 학자들은 '진리'(, 코쉐트)를 히브리어 '케쉐트'의 아람어 형으로 보고 ''을 뜻한다고 주장한다(NIV, RSV, A.A. Anderson, Ewald, Hitzig, Hupfeld, Vangemeren, Weiser). 그러면서 개역 성경에서 '위하여'로 번역된 단어 '미페네''-에 대하여' 혹은 '-로부터'로 번역한다. 이처럼 '코쉐트''', '에돔 군대의 활'로 주장하는 까닭은, 본절의 ''가 에돔 군대의 공격으로부터 퇴각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표지(標識)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가 퇴각을 위한 표지처럼 언급된 증거도 있다(4:6). 그러나 승리를 보장해 주는 혹은 약속해 주는 ''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17:15). 여기의 ''는 바로 후자와 같은 것으로서, 적에 의해서 일시 패배한 이스라엘 군대를 재차 소집하는 표지 역할을 할 만한 것이었다고 본다(a banner to rally to, LB). 더구나 여기의 '진리'는 잠 22:21에서 '진리'로 번역된 '코쉐트'와 동족의 단어이다. 한편 본절의 '진리'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 곧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일찍이 약속하셨던 승리의 보장을 뜻하는 것 같다(박윤선). 따라서 하나님께서 실제로 다윗에게 가시적인 ''를 주셨다고 보기보다는 승리의 보장 혹은 약속을 주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윗은 바로 이 같은 약속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에돔으로부터 구출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이기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60:5 주의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 본절에서 '주의 사랑하시는 자'3절의 '주의 백성' 4절의 '주를 경외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다윗과 그 군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오른손'(, 예미네카)은 문자적으로 '주의 오른손'이며 '하나님의 권능'을 의미한다(41:10).

 

60:6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리라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 '그 거룩하심으로'(, 베카드쇼)'그분의 거룩하심 가운데서'의 뜻이다. 따라서 본 문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성품을 담보로 하여 다윗에게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였음을 가리킨다(89:35).

 

내가 뛰놀리라 : 본문에서 '내가'는 다윗 자신을 가리킨다. '뛰놀리라'(, 엘로자)'알라즈'의 미완료형으로서 미래 시제이다. 이 단어는 승리에 따른 기쁨의 행동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 동사이다(94:3; 삼하 1:20; 23:12).

 

내가 세겜을 나누며 : '나누며'(, 할라크)는 기업의 분배와 관련하여 사용된 단어이다(14:5; 22:8). 따라서 본 문구는 다윗이 '세겜' 지역을 차지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이다. '세겜''등성이' 혹은 '비탈'의 뜻이며, 예루살렘 북쪽 약 64Km 지점에 위치한 요단 골짜기의 서쪽 정상(頂上)이다. 요단강으로부터는 약 25Km 떨어져 있었다(13:27).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리라 : '척량하리라'(, 마다드), 본문이 앞 문구의 대구(對句)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앞의 '나누며'와 동일한 뜻임이 분명하다. '숙곳''오두막'이란 뜻이며, 요단 강 동쪽 약 5.5Km 지점의 '골짜기' 지역에 위치했다.

 

60:7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이며

 

길르앗이 내 것이요 : '길르앗'은 미솔 평야 북쯔 산기슭에 위치했다. 서쪽으로는 요단 강에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야르묵 강 근처까지 이르며, 동쪽으로는 얍복 강 남북의 두 지류와 남쪽으로는 아르논강과 각각 접해 있었다. 이 지역에 속한 주요성읍으로는 길르앗 야베스와 마하나임, 그리고 미스바 및 길르앗 라못 등이 있었다. '숙곳'도 바로 이 지역의 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 지역은 풀이 많고 숲이 울창한 산악 지대로서(삼하 18:9), 많은 유실수와 좋은 목초(牧草)로고 유명하다.

 

므낫세도 내 것이며 : '므낫세'는 갈릴리 호수의 북동쪽과 갈릴리 호수의 남서쪽의 양쪽 땅 혹은 거기에 사는 지파를 가리키나 여기서는 요단 동쪽 지역만을 가리킨다.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 '에브라임' 족속은 대단히 많은 인구를 가졌기 때문에 다윗 왕국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본 문구가 의미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유다는 나의 홀이며 : 이것은 '유다' 지파가 다윗의 통치를 가능케 한 족속이라는 뜻이다. 사실 다윗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유다 지파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49:8-10; 33:7; 삼상 16:1), 또한 그가 이스라엘 왕에 오르는 데는 유다 지파의 역할이 매우 컸었다(삼하 2:1-4).

 

60:8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 하셨도다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 7절에서 팔레스틴 땅이 자신에 의해서 완전히 평정될 것에 대해 예언적으로 확신한다윗은, 이제 본절에서는 팔레스틴 주변 땅도 그같이 정복될 것에 대하여 말한다. 한편 본문의 '목욕통'은 발을 씻는 데 사용되는 그릇이다(Calvin). 그런데 발을 씻기는 일은 종이하는 것이었으므로(18:4; 13:4, 5), 여기의 '목용통'은 종의 지위에 대한 상징임이 분명하다(박윤선). 따라서 본 문구는 모압이 다윗에 의해서 정복되어(24:17; 삼하 8:2), 종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을 말한다.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 '에돔' 족속이 다윗에 의해 정벌되어(24:18), 다윗의 신발을 닦는 것과 같은 위치에 처해지게 되리라는 예언이다(Rawlinson). 그런데 (1) 일반적으로 신발은 부정(不淨)하게 간주되었고(3:5; 5:15), (2) 고대 중근동 사람들은 신발을 던지는 행위를 상대에 대한 지배 의지의 표시로 간주했었으며(Keil), (3) 신발과 관계되는 일은 으레 천한 계층의 담당이었다(3:11; 1:7)는 점 등에서 볼 때, 본 문구가 의미하는 바는 '에돔''모압'처럼 이스라엘의 종이 되리라는 것임이 분명하다.

 

블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 하셨도다 : 블레셋이 다윗의 공격을 받아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르짖으며(삼상 5:12; 15:4) 탄식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Keil, Ewald). 실제로 다윗은 즉위 직후 블레셋을 패퇴시켰고(삼하 5:17-25), 나중에는 그들을 완전 항복시켰다(삼하 8:1).

 

60:9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 : 다윗은 자신의 에돔에 대한 승리를 말씀에 근거해서 확신하고 있었지만(6-8), 그러한 예언적 확신을 성취할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믿었다. 본문에서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는 자신의 무력함으로 인한 탄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11) 자신을 결국 도우실 것이라는 일종의 확신이다(Calvin).

 

한편, '견고한 성'(, 이르 마초르) '견고한''포위하다' 혹은 '공격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추르'에서 나온 명사로서 '요새'를 가리킨다. 그런데 '견고한 성'은 구체적으로 바위를 뜻하는 '겔라' 곧 오늘날의 '페트라'이다. '셀라'라는 도성의 이름의 뜻이 시사하듯, 이 도성은 쉽사리 공략되지 않을 만큼의 지리적 호조건(49:16, 17)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 도성도 다윗 휘하의 요압(왕상 11:14-16)과 아마샤 왕(왕하 14:7)에 의해서 정복되었었다. 특히 그 도성은, 아마샤에 의해서 '셀라'라는 이름에서 '하나님에 의하여 정복된'을 뜻하는 '욕드엘'로 바뀌는 수모를 당하였다.

 

60: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 본절은 그 당시 다윗이 처해 있던 상황(1)에 대한 진술이다. 다윗은 자신의 비참상을 하나님께 알림으로써, 하나님의 도움이 신속히 나타나야 함을 강력히 호소한다. 한편 본문의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시는 것(삼상 14:6; 삼하 5:24)을 가리킨다.

 

60:11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 본문은 문자적으로 '대적에 대항할 도움을 주옵소서'(Give us aid against the enemy, NIV)이다.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 다윗이 전쟁의 승패가 완전히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고 믿었음을 보여준다(삼상 17:47). 물론, 실제에 있어서 에돔의 공격에 의해 위기에 처했던 다윗을 구출했을 뿐만 아니라, 에돔의 '견고한 성'을 격파한 것은 요압이었다(왕상 11:15, 16). 그러나 요압의 이러한 활동상은, 요압이 하나님에 의해서 보내진 그분의 도구라는 점에서 이는 '사람의 구원'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이었다.

 

60: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 본문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벨로힘)'하나님 안에서' 혹은 '하나님과 함께' 혹은 '하나님에 의하여' 등의 뜻이다. 한편 '용감히 행하리니'(, 나아세하일)라는 말 중 '나아세''행하다'의 뜻을 갖는 '아사'의 미래형이며 '하일''능력' 혹은 '군대' 그리고 '용맹'의 뜻이다. 따라서 본 문구는 다윗이 용맹하게 군사적인 반격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 : 히브리 원문에는 ''에 해당되는 인칭 대명사 ''가 있다. '밟으실 자심이로다'(, 야부스)'그분이 밟으실 것이다'로 번역될 수 있다. 이처럼 다윗은, 이미 동사에 주어 어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어 인칭 대명사를 별도로 사용함으로써, 본 문구와 같은 행위의 주체가 철저하게 하나님이심을 강조한다.

 

한편, 히브리 원문상 본 문구 초두에 있는 접속사 '''그렇게 하면'의 뜻으로 이해하여, 본 문구가 앞 문구의 결과로 간주해야 한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무기력하게 가만히 앉아 있는 자들을 위해서는 일하지 아니하신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을 위해 대신 싸워주시리라는 믿음을 갖고 애써 최선을 다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밟으신다'라는 말은, 상대를 완전히 파멸시키거나 정복하는 것을 뜻한다(16:20). 사실 다윗의 이 같은 예언적 믿음은 하나님의 도구, 요압에 의해서 성취되었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