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비유(마13:1-9)-목사 주태근
씨 뿌리는 비유/마13:1-9
목사 주태근
연어는 민물 강에서 태어나 큰 바다로 나간 뒤 3년에서 6년이면 성숙하여 산란하게 되는데, 보통 4년이면 성숙하여 산란하게 됩니다. 산란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는 데, 우리나라에 나타나는 연어는 삼척 지역 오십천에서, 또한 양양의 남대천에서 북태평양을 돌아 다시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옵니다.
연어의 이 대장정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연어는 강을 오르기 시작하면 먹이를 전혀 먹지 않고 곧장 산란장으로 향합니다. 산란역(産卵域)이 가까워지면 차츰 분산하여 암수 한 쌍을 이룹니다. 그리고 산란장에 도달하면 곧바로 산란상(産卵床)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약 1시간이면 지름 50∼100㎝, 깊이 30∼50㎝의 움푹한 산란상이 만들어집니다. 산란상이 완성되면 암수는 머리를 상류로 향하고 산란상에 몸을 가라앉혀 10∼20초 동안 방란(放卵)·방정(放精)을 하는 데 약3000개의 알을 낳습니다.
산란 후에 암컷은 상처투성이가 되고 체력도 소모되어 곧 죽어 가는데, 수컷도 1주일 이내에 곧 죽습니다. 저는 연어에 대한 TV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북태평양을 돌아 긴 여행 끝에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것도 신비스럽고, 자신의 씨앗인 알을 낳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다 바치는 헌신은 거룩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처럼 연어의 일생은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우리는 연어의 일생에서 모든 만물의 존재양식을 발견합니다. 만물은 본능적으로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의 씨앗을 세상에 뿌리는데 일생을 바칩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길가의 민들레도 그렇습니다. 논바닥에 벼도 그렇게 일생을 마감합니다. 모든 만물은 씨 뿌림을 본능적으로 수행합니다. 긴긴 여행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자신의 일생을 완성하는 연어의 일생에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만일 우리가 인생의 종착역에 이르면 과연 어떤 씨앗을 어떻게 얼마나 뿌리고 떠날 것인가? 연어처럼 생명의 씨앗을 낳고 마지막을 화려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하는 내용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삶과 연관을 지닌 교훈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마치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씨 뿌림에 대한 하나님나라의 원리를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은 오직 큰 수확을 얻으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농부의 소망은 풍성한 수확 입니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자녀에 대하여 맹목적이리만큼 헌신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나보다 더 낳은 미래를 보기 위함입니다. 자식을 통하여 많은 결과를 얻고 싶은 것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려는 소망이 있습니다. 모든 투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각자에게 생명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씨앗을 둔 것은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고 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이 소개한 달란트 비유나 므나의 비유의 관심은 얼마나 열심히 하여 남겼는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추수에 관심이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한 농부가 씨를 뿌립니다. 씨를 뿌리는 것이 마치 우리들이 밭에다가 거름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씨앗을 손에 잡고 훌훌 뿌립니다. 떨어진 씨앗들이 다 좋은 땅에 떨어졌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떤 씨앗은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딱딱한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새들이 날아 와서 곧 쪼아 먹어 버립니다. 어떤 씨앗은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싹이 났습니다. 잘 자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딱딱한 돌밭에 뿌리를 내릴 수 없었고, 뜨거운 햇살에 그냥 말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씨앗은 가시떨기 밭에 떨어졌습니다. 싹이 났습니다. 뿌리를 땅 속 깊이 내렸습니다.
줄기와 가지도 잘 자랐습니다. 그러나 가시덩굴의 기운에 눌려서 더 이상 자랄 수가 없습니다. 뿌리도 잘 내리고, 줄기와 가지도 잘 자랐지만 열매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씨앗은 좋은 땅, 기름진 땅에 떨어졌습니다. 씨앗이 싹이 났습니다. 줄기와 가지가 잘 자랐습니다. 잎이 무성합니다. 그리고 열매도 많이 맺혔습니다. 적어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이 말씀은 천국 복음 전파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뿌려지는 씨앗은 복음의 씨앗, 즉 말씀의 씨앗을 의미합니다. 또한 씨앗을 뿌리는 농부는 전도자인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밭은 바로 인간들의 마음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부리다 보면 인간들의 심령이 여러 가지인 것을 알게 됩니다. 본문에 의하면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은 크게 4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딱딱한 길가 마음을 가진 사람, 심지가 깊지 못한 돌밭 마음을 가진 사람, 세상의 걱정으로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가시밭 마음을 가진 사람 그리고 좋은 옥토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 등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갈릴리에서, 사마리아에서, 유다와 예루살렘 곳곳을 다니면서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12제자로부터 시작한 열매가 3천명, 5천명, 1만 명으로 기아급수로 늘어나면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열매가 맺혀지어 지구상 최고의 기독교인구로 열매가 맺혀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역시 계속해서 예수님이 뿌리신 씨앗이 자라나 열매가 맺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계속되는 열매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번식되어 열매가 맺혀지는 원리입니다. 주님께서는 2000년 전에 씨를 뿌리시고 그 열매가 맺혀지어 초대교회를 이루었으며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시 복음의 시앗을 부려 점점 번식함으로 우리나리에 까지 복음의 열매가 맺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 복음의 씨앗을 뿌릴 것을 명령하십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많은 말을 합니다. 많은 말 가운데 마지막 하는 말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지막에 속에 생각하고 있던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마지막으로 하는 유언을 귀히 여깁니다.
말을 듣지 않던 청개구리도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을 소중히 여겨 어머니를 개울가에 묻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예전 왕이 숨을 거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을 고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명에 의하여 장차 누가 용상에 앉게 되는가가 결정되었습니다. 다 왕이 되고 싶어 하지만 왕의 자리는 하나입니다.
고명을 받들어 왕이 되는 자와 그의 측근들 부귀영화가 보장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왕의 정적으로 생명을 부지하기도 힘들어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왕의 마지막 말 한 마디에 국가와 자신의 운명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고명을 들은 신하를 고명대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고명대신은 무척이나 당당하였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께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때에,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에, 아쉬움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주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가복음에서 주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누가복음에서 주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은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마지막 말씀은 복음을 전파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가 마땅히 하여야 하는 말씀은 오늘 말씀처럼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생활입니다. 우리 모두는 왕이신 주님의 고명대신입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받들고 실천하여야 하는 예수님의 고명의 말씀은 바로 복음을 전파하는 생활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주님의 마지막 유언에 따른 복음전파의 삶을 올바르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의 마지막 말씀인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을 굳게 붙잡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믿음이 부족해서, 아니 열정이 없어서, 살기에 바빠서, 관심이 없어서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전한다고 될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나 같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 전한다고 누가 믿기나 하겠어? 남 예수 믿으라고 하기 전에 나라도 잘 믿어야 하는데! 우선 내가 먼저 복을 받아야지! 그러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복음을 전파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안일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부족한 우리에게 복음의 씨를 뿌리라는 사명을 맡기실 때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지, 믿음이 좋은 사람만의 나의 증인이 되라! 가슴이 뜨거운 사람만 나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딤후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꼭 실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전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복음을 뿌리는 것은 우리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징계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 할 때에 내 말을 들을까? 나 같은 사람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돌아오겠어? 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께서 하신 씨 뿌리는 말씀을 보면, 농부가 길가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돌밭, 가시밭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씨를 뿌립니까? 아닙니다. 전도를 하면들은 척도 안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민망합니다. 전도를 하면 듣는 것 같지만 듣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약이 오릅니다.
전도를 하여 교회에 나오지만 잘 나오는 듯하다가 금방 주저앉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민망해도, 약이 올라도, 안타까워도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아시아, 지금의 터기 지방에서 복음을 증거하는데 루스드라 라는 도시에서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능력으로 함께 하셔서 평생 걸어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본 루스드라 사람들은 위대한 제우스 신이 하늘에 내려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실라를 제우스신이 인간의 모습을 한 것으로, 바울을 말을 잘 하기에 제우스신의 대변인인 헤르메스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소를 끌고 와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그들을 억지로 말렸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참 신이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예배하지 말고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드리십시오. 그의 아들 예수를 믿으십시오.” 하고 복음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 뒤에 금방 어려움을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만납니다.
유대인들이 몰려 왔습니다. 예수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복음 증거 하는 것을 훼방하는 유대인들은 바울을 끌고 가 즉결 재판을 통하여 사형 판결을 합니다. 사형을 집행합니다. 유대인들이 던진 돌에 맞고 쓰러집니다.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기절한 바울을 질질 끌어다 성밖에 내다 버렸습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죽을 줄로 알았던 바울이 꿈틀거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바울은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습니다. 먼지를 털고 일어나 더베라는 도시로 갔습니다. 루스드라에서 사도 바울이 만난 사람들, 오늘 말씀에 의하면 그들은 길가 마음, 돌밭 마음, 가시밭 마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게 보입니다. 마치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루스드라에 길가, 돌밭 그리고 가시밭 마음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거기에 옥토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쓰레기 통 같은 그 곳에 보석이 숨어 있었습니다. 황무지 같은 그 곳에 아름다운 백합이 있었습니다. 바로 디모데입니다. 바울이 복음의 씨앗을 뿌릴 때에 아무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거기에 귀한 믿음의 사람, 사도 바울의 복음의 후계자요, 바울이 아들처럼 여기는 귀한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졌고, 자랐고, 열매 맺었습니다. 30배, 60배, 100배가 아니라 천 배, 만 배의 열매가 맺힌 것입니다. 이런 열매가 맺히는데 어찌 복음의 씨앗을 뿌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복음의 씨앗을 뿌린 곳마다 길가, 돌밭 마음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방해를 받고, 어려움도 겪습니다. 그러나 어디에나 옥토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있었습니다.
뿌린 씨앗이 자라나 열매 맺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고,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게 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도 완전히 실패한 곳이 있습니다. 아덴, 그리이스의 아테네에서의 전도입니다. 아클로폴리스 광장에서 스토아 학파, 에피크루스 학파의 사람들과 신앙의 논쟁을 벌였습니다.
논리학, 수사학을 배운 철학자들이라 말을 잘 합니다. 그러나 바울도 말로 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에 대하여 열심히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러나 철학적 신념으로 굳어지고,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바위와 같은 길가, 돌밭의 마음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바울의 전도는 실패로 끝이 납니다.
실패로 끝이 났다는 것은 바울이 복음을 증거 한 곳에는 다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는데 아테네에는 교회가 세워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테네에 옥토 마음을 가진 몇 사람이 있어서 그들에게 복음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행 17:34에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많지는 않지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몇 사람이라면 엄청난 일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 몇 사람이지만 이들을 위하여 사도 바울이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것은 잘한 일입니다. 꼭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참으로 여러 사람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삽니다. 어디에나 잘 생긴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고, 어디에는 똑똑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고, 어디에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일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어디에나 땀을 흘리고 수고하는 사람이 있고,
가만 앉아 있는 사람이 있고 어디에는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있고,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있고, 운동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찬가지고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 이웃에는 길가 마음도 있고, 돌밭 마음도 있고, 가시밭 마음도 있고 그리고 옥토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가 씨앗을 뿌릴 때에 알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뿌리고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점입니다. 농부가 하는 일은 씨앗을 뿌리는 것이고, 김을 매고, 거름을 주는 일 뿐입니다. 자라고 열매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의사가 하는 일은 째고, 짜르고, 꿰메고, 약을 바르는 일입니다. 상처가 아물고 치유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자라게 하는 일, 열매 맺게 하는 일은 하나님 몫입니다. 고전3장에서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느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씨뿌리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씨만 뿌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씨만 뿌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매 맺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교회를 크게 부흥케 하여 주옵소서, 앉을 자리가 없도록 채워주시고, 차고 넘치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해서는 안 됩니다. 씨앗을 뿌리는 것은 우리가 하고 하나님께서 자라나 열매 맺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씨앗도 뿌리지 않으면서 열매 맺게 해 달라는 것은 우리의 욕심입니다. 이런 기도는 허공을 울리는 메아리, 중언부언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씨를 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지 아니할까 걱정하지 말고 씨를 뿌리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씨를 뿌리면 내가 열매 맺게 하겠다 말씀하십니다.
한 청년이 암에 걸렸는데, 암에 걸린 이 청년이 암에 걸린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고 희망을 남겨주고 싶어서 계획한 일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아메리카 대륙 동쪽에서 서쪽까지 달리기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 달리기를 할 텐데, 내가 달리기를 할 때마다 여러분은 저에게 성금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캐나다암협회에 이 성금을 내도록 부탁했습니다. 이 청년은 자기의 목숨을 내놓고, 남에게 용기를 주고,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죽어서라도 좋은 일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달리다가 끝까지 달리지를 못하고 한 1,000마일쯤 가서는 그만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이 뉴스로 보도된 것입니다. 그런데 빅 마우스 란 분이 이 소식을 듣고 `바로 이것이다 내가 이 병든 나의 몸을 이곳에다가 사용해야 하겠다. 하나님 나를 써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암에 걸린 빅 마우스가 달리다가 청년이 죽은 그 자리에서 달리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완주를 했는데 그가 달린 거리가 21,000마일, 킬로로 따지면 34,000킬로미터를 달려갔습니다. 이 거리를 달리는 데 사용된 운동화 수가 무려 다섯 켤레나 됩니다. 그 마른 사람이 더 마를 때도 없을 텐데, 몸무게가 14킬로가 줄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의 건강이 더 좋아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그 건강보다 더 감사하고 자랑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 받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이 악한 이 병이 변화의 축복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에서 나를 도와주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더니 응답을 받았습니다.
나는 나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용기를 주고 도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제 나는 믿습니다. 내 장래가 어떻게 되는지 나는 만족 합니다. 나는 암이 낫지는 않았지만 내 죽음의 공포는 나았습니다. 의심도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암은 내 안에 있지만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전할 노래를 주셨습니다. 나는 남을 날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찬송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발견한 인생은 예수님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의 씨앗을 공급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 안에 심겨진 씨앗이 열매가 맺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씨앗은 빛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씨앗은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는 살아 움직이며 번식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좋은 땅에 심겨진 씨앗처럼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도록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연적으로 확장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씨 뿌리는 열정과 헌신을 통해 확장되는 나라입니다.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동참하는 천국농사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