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서신 설교원고

해가 지기 전에 풀어야(엡4:25-29) : 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4. 1. 17. 15:32

해가 지기 전에 풀어야(엡4:25-29)

 

이스라엘 골고다의 길 디마스쿠스 길

목사 주태근

 

《정복자 칭기즈칸이 어느 날 사냥에 나섰습니다. 그는 사냥을 할 때면 반드시 총명한 ‘매 한 마리’를 항시 데리고 다녔습니다. 하루 종일 숲을 헤매던 칭기즈칸은 심한 갈증을 느꼈는데, 마침 머리 위의 바위틈에서 맑은 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잔으로 물방울을 받아 마시려고 했습니다.그 순간 매가 날아와 주둥이로 물 잔을 치는 것입니다. 칭기즈칸은 다시 물을 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매가 쏜살같이 날아와 물을 엎질렀습니다.

칭기즈칸은 화를 삭이며 다시 물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매가 다리로 물 잔을 내리쳐 그만 잔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칭기즈칸은 극도로 화가 나서 칼로 매를 베어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칭기즈칸은 물을 마시기 위해 물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는 조그마한 웅덩이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커다란 독사가 죽어 있었습니다. 왕은 그제야 매가 독물을 못 마시게 하려고 주인의 물 잔을 엎지른 것을 깨닫고 슬피 울며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홧김에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겠노라"》

 

《나폴레옹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매우 활기차고 야심적이고 지적인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를 정복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하여는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어릴 때 친구였던 한 사령관이 술을 마시고 취하여 나폴레옹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취기에 그의 친구이자 상관인 나폴레옹을 모욕하는 말을 하게 됐습니다. 그 순간 나폴레옹은 흥분을 절제하지 못하여 옆에 있던 한 병사의 창을 빼들어 그 친구에게 던졌습니다.

그 친구는 그 자리에서 창을 맞고 곧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 후에 나폴레옹은 자신이 친구를 죽인 것이 고통스러운 나머지 후회하는 마음으로 그 친구를 죽인 창으로 자기도 자살해 죽으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곁에 있던 사병에 의해 제지당했고, 그 후 나폴레옹은 계속 친구를 죽인 양심의 고통으로 몸져누워 "나는 나의 친구를 죽인 살인자"라고 되뇌며 후회스런 인생을 보냈다고 전합니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한 연약함입니다.》

 

지난날 뉴욕 타임스 지에 보통 사람에 비해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20% 가량 높다는 듀크 의대 팀의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또 화를 내는 사람은 자신의 육체에 큰 타격을 주는데, 유명한 권투선수의 강펀치를 맞는 것 같은 심한 타격을 받는다는 보고입니다. 화는 건강에도 해가 됩니다.

 

《한 저명한 의사가 ‘분노와 수명의 상관관계’를 연구했습니다. 그는 오랜 연구를 통해 중요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분노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극약이다. 그러므로 남을 화나게 하는 것은 곧 그를 죽이는 행위다" 그는 이 사실을 의학협회에 보고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태도로 연구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한 의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논문에 대해서 신랄한 비난을 퍼붓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그 사람을 향해 고함을 질러대며 맞섰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분노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증명한 셈입니다.》

 

이렇게 분노라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영어로 ‘분노, 화’라는 말을 Anger (엥거)라고 말하는데, 그 단어 앞에 ‘D’ 자만 더 붙이면 Danger(데인저) 곧 ‘위험’이라는 단어가 됩니다. 분노를 식히지 않으면 매우 위험한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는 미주 땅 버지니아 공대에서 일어난 엄청난 총기사건을 통하여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조승희 군이 저지른 ‘다중살인’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BBC 방송은 범죄학자, 정신분석가 등의 말을 인용해 조승희가 '사회적 거부' '죽음에 대한 집착' 등 캠퍼스 살인범들이 공통으로 지닌 다섯 가지 요인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의 AP통신은 "주변의 왕따와 조롱, 학대가 조승희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종합분석결과 조승희의 범죄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에 따른 결과로 분석되었습니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는 정신질환의 한 종류로 논리와 감정 등 정신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우발적이고 충동적이기보다는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인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정상인은 폭력이나 폭언을 행사할 때 불안하거나 우울해지지만,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는 죄책감, 불안감, 우울감이 거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차갑고, 자기 잇속만 챙긴다는 믿음으로 증오심에 불타 있다"며, "따라서 우발적,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기보다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인 범죄를 저지른다."고 설명했습니다.》분노의 사회적문제입니다.

《23세의 김모씨는 초등학생 때부터 ‘학교 짱’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야단치는 선생님께 고함을 지르며 욕을 해 퇴학당한 학생입니다. 성인이 돼서는 일정한 직업은 없었지만 잘생긴 외모와 현란한 말솜씨로 주위에 여자들이 곧 잘 따라다닙니다.

그래서 여자 친구들의 카드를 빌려 쓰며 방탕한 생활을 하다 맘에 안 들면 여자 친구들을 때리기가 일쑤입니다. 어느 때는 어머니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합니다. 김 씨는 삼촌들에게 이끌려 강제로 정신병원에 들어갑니다. 진찰결과 그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요즘 우리사회에 김 씨처럼 폭력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점점 늘어 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멀쩡해 보이던 이웃 남자가 갑자기 부모를 폭행하거나, 별 말썽 없이 지내던 자녀가 어느 날 동급생을 집단 폭행합니다.

부부 싸움을 하다가 임신한 아내가 유산할 정도로 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직장에서 성과급을 안 준다는 이유로 사장을 폭행하는 노조원들도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이런 사람들은 ‘패륜아’로 치부됐습니다.

사소한 이유로 극단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단순히 성격이 과격한 문제일까? 성격 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 중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는 분노의 사회입니다. 분통이 터지고 분노가 치밉니다. 정치, 사회, 종교 등등으로 인하여 불평과 불만을 심어 가는 사회병리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납니다. 어떤 형태이든 지나친 분노는 인생을 불행하게 합니다.

화를 잘 내고 습관적으로 신경질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50세 이내에 죽을 확률이 5배나 더 높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헬라어에 ‘화’를 낸다는 표현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두모스’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오르게’라는 용어입니다.

‘두모스’는 가랑잎이 활활 타다가도 금방 꺼지는 것처럼 기분이 나쁠 때 감정이 폭발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불끈 화를 냈다가 자기도 모르게 금방 그 화가 식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성격입니다. 예수님이 분노를 버리라고 교훈하십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화’는 ‘두모스’가 아닌 ‘오르게’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오르게’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한번 화를 냈다 하면 그 화를 마음에 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두고두고 쌓아가는 것입니다. 분노를 마음에 쌓아가면서 그 분노가 증오로 발전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분노가 증오로 바뀌면 언젠가 폭팔 하게 됩니다. 분노를 다스려야합니다.

심리학자들의 말을 들으면 오늘날 약 80% 정도의 부부가, 마음에 숨겨놓고 쌓아놓고 있는 분노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미국의 어느 상담가는 자기를 찾아와서 상담을 하는 부부나 개인을 놓고 한참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도대체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고 감을 잡을 수 없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면 마음속에 가만히 숨겨 놓고 있는 분노가 있는지를 한번 체크해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80%가 적중을 한다는 연구결과입니다. 모든 문제의 뿌리가 그 분노 속에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향해서 삭이지 못하는 분노가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볼 때마다 가끔 치밀어 오르는 화가 있습니다. 자식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한다면, 우리들이 하루에 몇 번씩 아내를 죽이는 것인지 모릅니다. 몇 번씩 남편과 자녀를 죽이는 것인지 모릅니다. 마음에 쌓여 있는 분노가 나중에 증오의 감정과 뒤섞여서 결국은 어떤 사람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서운 감정, 마치 시한폭탄과 같은 분노는 남만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남도 죽이고 자기도 함께 죽입니다.

 

《1983년 죠지아주 클레이턴 카운티에서 재판이 열렸습니다. 기소된 범인은 캘빈 존슨이라고 하는 흑인 남자였습니다. 백인 여자를 성폭행했다는 죄로 기소를 당했습니다. 미국 재판에는 배심원 제도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그 배심원들의 평결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날도 그 재판소에는 배심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배심원들 전부가 백인이었습니다. 한 40분 정도 서로 의논을 하더니 이 기소된 흑인 남자가 진범이라고 단정을 했습니다.

흑인 여자 네 사람이 찾아와서 그 피고의 알리바이를 제시를 했는데도 배심원들은 묵살 시켜버렸습니다. 그리고 캘빈 존슨이 진범이라고 단정을 했습니다. 재판관은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무기징역을 선고한 재판관 앞에서 캘빈 존슨은 마지막 진술을 이렇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증인입니다. 나는 잘못 기소되었습니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감옥에서 나의 억울함을 하나님이 벗겨 주시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날마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는 감옥으로 갔습니다. 그 후 16년이 흘렀습니다. 캘빈 존슨은 다시 재판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를 무죄 석방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DNA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이 사람이 진범이 아니라는 것이 16년 만에 밝혀진 것입니다. 재판관이 그를 이제 석방시켰습니다.

그 시간 그는 손에 조그마한 신약 성경을 꼭 쥐고 서 있었습니다. 무죄석방이라는 재판관의 말을 듣고 묵묵히 재판장을 나오고 있는데 기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막 붙들고 질문했습니다.

"존슨 씨, 당신을 16년간이나 감옥에 집어넣어 썩게 만든 그 판사와 배심원들을 증오하지 않습니까? 보복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리고 모순이 많은 이 미국의 사법 제도에 대해서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없습니까?"

그 때 존슨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아니요. 내 마음에 타오르는 분노와 증오를 담고 있으면 그것은 나를 죽이고 맙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사는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금 나가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가슴 속에 증오를 담고 있고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남도 죽일 수 있습니다. 총을 들고 나가서 맘대로 재판정 안에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남도 죽이지만 동시에 자기가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형제에 대하여 분노를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은 그 분노를 하루 빨리 처리하라고 말입니다. 내일까지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25절 말씀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이 말씀의 배경이 무엇입니까?

잘 아는 친구들이 서로가 어떤 문제로 인해 미워하고 분노하고 대적하는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마 그래서 서로가 소송을 한 것 같습니다. 어쩌다가 재판 날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길에서 만났다고 합시다.

그러면 재판하는 자리까지 가기 전에 먼저 사화하고 화해하라는 말입니다. 마음에 있는 분을 삭이고 서로 용납하라는 말입니다. 재판할 때까지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형제를 향한 분노를 담고 있고 증오를 담고 있으면 이것 자체가 살인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미워하는 살인죄를 가슴에 품고 오래오래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제일 먼저 분노를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분노의 처리는 시간이 빠르면 빠를수록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한폭탄과 같은 그런 위험한 것은 빨리 내관을 제거해서 자기도 살고 남도 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맏아들이 아버지의 집에서 책망을 받고 쫓겨났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해 점점 더 마음이 굳어졌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항상 고대했습니다. 아들도 프라이드가 있어서 아버지가 돌아오라고 하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는 아들이 보고 싶어 병이 났습니다. 어머니의 병은 더 악화되어 드디어 죽음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마지막 소원이니 아들을 좀 불러달라고 남편에게 간청했고 남편은 아들을 불러오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아들은 첫차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죽어 가는 아내와 어머니 앞에서 서 있었습니다. 부인이 남편과 아들의 손을 서로 잡게 하면서 화해를 시도했지만 둘 다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여인이 마지막 안간힘을 써서 아들의 손을 아버지의 손에 올려놓고 숨을 거두어버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내를 본 다음 아들을 보고 눈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제야 서로의 목을 안고 숨진 아내와 어머니의 침상에서 통곡했습니다. 늦게 해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가 너무 늦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해야 할 대상은 여럿일 수 있습니다. 부모를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하고, 배우자인 남편과 아내를 용서하고, 직장의 상사나 동료를 용서하고, 기타 다른 모든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용서한다는 표현 자체가 어색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면 그것 역시 해결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특히 나를 비난하고 비평하는 사람에 대해서 진실로 자유할 수 있어야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미국의 성공학자 데일 카네기는 한 가지만 철저하게 지켜도 반드시 인생에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한 가지란 절대로 비난, 비판,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남을 비판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신에 대해 불평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잘못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으며 그 잘못을 고치는 출발도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 달려 있다는 것을 시인해야 합니다.

 

특히 과거의 실수나 실패 혹은 상처에 매달려서 사는 일을 버려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좋은 환경을 가지게 되었으면서도 과거의 불행했던 일을 되새기며 그 불행의 원인자였던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불행하게 사는지 모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내, 자식 그리고 그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4:26-32)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