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선교강의록

아랍선교강의록(12) : 중동지역 초기 기독교교회(글-주태근)

주 바나바 2024. 1. 18. 10:18

아랍선교강의록(13) : 중동지역 초기 기독교교회(글-주태근)

 

 

3) 중동지역 초기 기독교교회

 

이스라엘 목자들의 들판 교회

 

중동의 교회들은 초대 사도시대 이후 존재해 왔다. 이 지역은 첫 번째 사도들에 의해 복음이 전해졌다. 중동의 그리스도인은 강한 반대 속에서 그리고 혹독한 박해 속에서 몸을 숨기면서도 그들의 믿음을 보존했었다. 중동의 교회는 로마 정교회(Orthodox), 가톨릭, 개신교 배경 등 이 지역의 다양한 전통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이집트에서는 전체 인구의 15% 혹은 그 이상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콥트교회(Coptic: 이집트의 자생교회)는 이슬람의 박해에도 그리스도인들의 도피처로 사용된 수도원을 건립해 신앙을 지켜왔었다. 오늘날 중동의 몇몇 나라에서는 교회들이 성장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교파적으로, 성령님으로 인해 교회의 부흥을 가져오며 지도자로써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며, 어떤 사람들은 믿음의 조상의 영감을 뒤돌아 되새기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치료하심을 경험하며, 악한 영으로부터 건지며, 기적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여러 가지 능력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정부와 이슬람 관리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은 그리스도의 증인됨을 마비시키며, 오히려 내부적인 내분에 휩싸이고 있다. 어떤 중동의 그리스도인은 무슬림을 싫어하며, 자포자기의 열매가 세대를 넘어 배가되며 증가하고 있다. 소수인 그리스도인은 다수인 무슬림 살아 있는 한 공격적, 의기소침이 될 수밖에 없기도 한다. 따라서 많은 기도가 아직도 중동의 교회들을 위해서 필요하다. 기독교는 중동에서부터 시작되었으나 기독교는 중동의 종교, 서방의 종교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왕국은 지리적, 문화적인 배경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중동지역에서 선교활동은 아라비아반도에 영향을 끼친 고대기독교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아랍교회를 이해함으로 무슬림들에게 선교하는 전략에 유익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아랍에는 정교회, 가톨릭, 그리고 개신교 3개 파의 교단이 있어서 선교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아랍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같이 보이나 실상은 죽은 사데교회와 같은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중동의 가톨릭과 정교회는 영적으로 죽은 교회라고 말한다. 정교회와 가톨릭은 이슬람에는 똑 같은 신을 믿는다고 말하고 이슬람에게도 믿음이 있으며 다만 이슬람에서는 십자가를 모른다고 말하였다. 무슬림의 믿음이 옳은 게 있다고 보았기에 무슬림은 가톨릭과 정교회 교인을 향해 무으민(신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슬람과의 관계에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십자가 핵심과 믿음을 정확히 규정지은 복음주의 교회는 십자가 없이는 구원에 이르 수 없다고 말하여 이슬람과 더 멀리 가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전혀 없음을 말하고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y)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교세가 큰 기독교 교단으로 약 25천만 명 이상의 신자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중의 하나로 서유럽뿐만 아니라(아나톨리아를 포함한) 그리스와 동유럽, 러시아, 캅카스, 근동의 역사와 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정교회 또는 보편되고 사도적인 정교회라고도 불린다. 동방정교회에는 전통적 공교회주의를 따라 지역과 국가 간의 연합체 형태의 구조이며, 중요한 의결 사항은 공동회의를 통해 의사 결정을 내린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가 모든 정교회 주교들 사이에서 '동등한 가운데 첫 번째(Primus inter pares)'로 인정받아 공동회의 의장으로 있으며, 1054년 동서 교회의 분열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가 정교회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동방 정교회 신학은 니케아 신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동방 정교회는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에 따라 세워진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자처하며, 동방 정교회의 주교들은 사도들의 후계자들이라고 가르친다. 동방 정교회는 성전(거룩한 전승)에 따라 전승된 초기 기독교 신앙을 실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동방 정교회의 교회 조직은 크게 총대주교청(總大主敎廳)과 독립교회(獨立敎會), 자치교회(自治敎會)로 구성되어 있다. 동방 정교회는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혈성사, 고백성사, 신품성사, 결혼성사, 성유성사 등 일곱 성사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들 성사 중에서 성체성혈성사는 성사 중의 성사이자 성찬예배(거룩한 리투르기아)로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동방 정교회는 본래 로마 가톨릭교회와 하나의 기독교 교회였으나 특히 교황의 수위권을 둘러싼 교리적 분쟁 때문에 1054년 동서 교회의 분열로 갈라섰다. 또한 451년 칼케돈 공의회 때에는 그리스도론에 대한 이견으로 오리엔트 정교회와 분열하였다.

 

동방정교회라는 용어는 고대 에큐메니칼 7개의 공의회들에서 정의된 신조와 예배의식을 지켜오는 기독교회를 지칭하는 말이다. '올바른 믿음/가르침' 혹은 '올바른 예배'라는 의미의 "오르쏘독씨아"는 희랍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세계에서 이미 언급한 바 7개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들에 의하여 정의된 참 신앙을 보존한 공동체나 개인을 가리키는데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동방 정교회의 전례서나 미사경본에 나와 있는 그들의 공식 명칭은 "정통 가톨릭교회"이다. 하지만 이 동방 정교회가 콘스탄티누스 로마제국의 황제가 330년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이후 동 로마제국 및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과 맺고 있는 역사적 관계로 해서 영어로는 관례상 이 교회를 가리켜 "동방 교회(Eastern Church)" 혹은 희랍 문화유산과 맺고 있는 관계로 해서 "희랍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라고도 부른다.

 

오늘날 동방정교회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상황들 속에서 존재한다. 첫째로, 이슬람교도가 우세한 지중해 동쪽 지역 안에서 소수로서 살아가는 동방 정교회인들이 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디옥, 예루살렘으로 이루어진 4개의 고대 총대주교관구들의 상황이다(이것은 물론 최종적으로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요르단에서 이슬람의 지배아래 존재한다). 두 번째로, 비록 희미해진 형태이지만, 비잔틴 유형의 교회-국가 연합이 여전히 존재하는 키프로스와 그리스, 두 동방정교회가 있다. 세 번째로 동유럽에 있는 동방 정교회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다소 엄격한 성격의 종교적 박해에 직면해 있으며, 최근까지 공산주의 지배 아래 살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게오르기아, 폴란드, 알바니아,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의 교회들을 포함하며 5개의 동방정교회 그룹들 중 가장 크다. 그리고 이들은 오늘날 동방 정교회의 전 회원의 8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네 번째로 주로 이주자 망명자 그리고 그들의 후손으로 구성되었고, 또한 일부 서방의 회심자들을 포함하고 있는 서방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있다. 다섯째와 마지막으로 동 아프리카 일본, 중국, 한국 그리고 그 외 지역들 안에 있는 공동체들과 더불어, 동방 정교회 내에 몇몇의 작은 선교 운동들이 있다. 모두 이 다섯 개 그룹은 대략 1-14천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그중 아마 5-8천만 명은 그들의 신앙을 특별한 기준 아래 활동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중동지역에 있는 희랍정교회, 네스토리우스 교회, 시리아 정통교회, 콥트 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등으로 분포되어 있다. 정교회는 정통교회의 줄임말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이다. 이탈리아 로마를 중심으로 하여 지리적으로 동쪽에 있다하여 동방정교회라 부르기도 하고, 미사예전과 주요 교리서적들이 희랍어로 되어 있다하여 희랍정교회라고도 부른다. 중동에서 정교라 함은 콥트(아끄바트)교회, 야곱(야아끼바)교회, 마론(마라위나)교회, 아르메니아교회, 네스토리아(나싸띠라)교회 등을 말한다. 왜냐하면 정교회라 하면 이들 모두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리엔탈 정교회라는 말은 아르메니아교회, 콥트교회, 이디오피아교회, 시리아정교회를 지칭한다.

 

 

희랍 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

 

동 로마 제국의 국교이자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발전한 기독교의 한 교파로서 동방 정교회의 10대 독립교회 중 하나이다. 사도시대로부터 지중해 세계에 기독교가 확장되기 시작하여, A. D. 500년 이전까지 지중해 세계의 교회들의 교구를 대표하는 5교구 즉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로마 등이 생겼다. 당시 희랍의 교회는 콘스탄티노플 교구에 속해 있었다. 사도 바울에 의해 그리스 지방에 처음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 후 이 지방은 콘스탄티누스 때 마케도니아에 통합되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 분열(5세기)때 로마에서 분열되었다. 이때 그리스 지방 정교회는 성화상 논쟁에서 그 공경에 대해 옹호하기 시작하였다. 성화상 논쟁이란 성화상의 숭배를 둘러싼 논쟁이다. 78세기 동로마에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극소화시키려는 단성론자, 마니교, 이슬람 등의 영향으로 성상숭배가 반대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황제 레오 3세는 726, 우상 파괴령을 내리고 성상 공경자, 수도자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교황 그레고리오 3세는 이를 단죄하였다. 그러나 레오 3세의 후계자 콘스탄티누스는 753년 성화상이 우상임을 선언하고 파괴령을 내렸다. 이때 수많은 수도자들이 순교하였다. 레오 4세 때 박해가 완화되자 교황 하드리아노 1세는 787, 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상의 공경을 법령으로 허용하였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지지자들에 의해 한때 박해는 계속되었다. 결국 흠숭과 공경이라는 라틴어 표현이 생기게 되었고 10세기경에 막을 내렸다. 이러한 논쟁이 있은 후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 그리스도교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 따라 소원화(疎遠化) 되고, 여러 가지 정치적 사건과 신학논쟁을 겪은 결과 1054년 서방은 로마가톨릭교회, 동방은 동방정교회로 분열되었다. 동방정교회는 서방 그리스도교에 비하여 의()보다는 사랑, 십자가보다는 부활, 죄보다는 구원을 중요하게 여긴다. 또 로마가톨릭교가 정교분리(正敎分離) 경향이 있으며 사변적·체계적인 데 비하여, 동방정교회는 정교일치라는 특징이 있으며 신학보다는 신앙체험을 우선시한다. 교회의 조직도 서방교회보다는 덜 권위주의적으로, 주교나 사제는 개인적 권위를 지니지 않으며 일반 신도를 평신도라고 부르지 않는다. 1453년 오스만 터키제국이 동로마를 멸망시키자 희랍 정교회는 그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이 쇠퇴함에 따라 그리스가 독립하게 되었고,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 총주교에게서 독립하였다. 그 후 그리스는 1852, 희랍 정교회를 국교로 정하고 아테네 대주교를 중심으로 주교회의(Holy Synod)를 설치하였다. 신자 수는 15,00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분포는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 등에 약간의 정통 가톨릭교도(라틴교도)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네스토리우스교회(Nestorius Church)

 

5세기에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 안에 신격(神格)과 인격(人格)의 두 가지 위격(位格, persona)이 있다는 설을 주장하다가 에베소 공의회(431)에서 단죄되고 추방되었다. 네스토리우스의 제자들은 페르시아지방으로 피신하여 그곳에 자파의 교회를 세웠다. 그 뒤 네스토리우스파는 인도와 중국에까지 전파되었으나 타멜란(1380)의 박해로 위축되었고, 16세기에 일부는 가톨릭으로 귀의하였고, 일부는 오늘에까지 이란, 이라크, 시리아, 인도, 미국 등지에 10여만 명이 있다. 네스토리우스설에 반대하는 에우티케스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완전히 그리스도의 신성에 흡수해 버리는 단성설(monophysitism)을 주장하여 칼케돈 공의회(451)에서 단죄되었으나 이집트, 시리아 그리고 에티오피아와 아르메니아에서 단성설을 추종하는 이교가 생겨나, 그들을 큐트파, 야곱파라 불렀다. 그 뒤에 이슬람교가 이 지역을 휩쓸어서 그리스도교는 아주 소수가 되어 버렸다.

 

637년에 아랍인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뒤 아랍의 통치자인 칼리프들은 동방의 교회를 밀레트, 즉 독립된 종교 단체로 인정하고 법적으로 보호해주었다. 네스토리우스파 학자들은 아랍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총대주교는 때로 통치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3세기 동안 페르시아 교회는 칼리프의 보호를 받으며 번영을 누렸지만, 차츰 세속에 물들면서 문화적인 면에서도 지도력을 잃어버렸다. 10세기말에는 칼리프가 지배하는 지역에 15개의 수도대주교 관구가 있었고,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도 5개의 대주교 관구가 있었다. 네스토리우스교는 이집트까지 퍼졌다. 그곳의 그리스도교 교파는 단성론자들로서 그리스도의 1가지 본성만을 인정했다. 중국에서는 7~10세기에 네스토리우스 교단이 번창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일부 타타르 부족이 거의 완전히 개종하여 그리스도교는 시베리아 동부의 바이칼 호 근처까지 퍼졌다. 몽골 영토를 여행한 서양인들은 그곳에 있는 네스토리우스 교회의 성직자들이 무식하고 미신적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네스토리우스교도들이 상당히 많고, 심지어는 황제의 궁전에도 있는 것을 발견했다. 14세기에 터키 지도자 티무르의 기습으로 동방의 교회가 사실상 전멸하자 네스토리우스 교단은 메소포타미아 지역, 특히 티그리스 강과 반 호 및 우르미아 호 사이의 쿠르디스탄 지역 몇몇 마을에 남아서 겨우 명맥을 유지했고 일부는 터키와 페르시아로 들어가기도 했다.

일부 네스토리우스교도들은 1551년에 로마 가톨릭 교회와 재결합하여 칼데아교도라고 하게 되었고, 원래의 네스토리우스교도는 아시리아교도라고 했다. 토마의 그리스도교로 알려진 일부 인도의 네스토리우스교파는 1599년에 로마 가톨릭과 합쳤다가 다시 분열했고, 이들의 절반은 시리아 야곱파 안디옥 총대주교(단성론자)에게 충성을 바쳤다(1653). 1898년 이란의 우르미아에서는 한 주교가 이끄는 일단의 네스토리우스교도가 러시아 정교회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네스토리우스 교회는 페르시아에서 인도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중국에까지 이른 교회이다. 지금은 주로 이란, 이라크, 시리아에 분포되어 자리 잡고 있다. 소위 아시리아 교회라고 칭한다. 아시리아 동방교회는 아시리아 교회, 아시리아 정교회, 아시리아 사도교회, 동방 아시리아 교회, 네스토리우스 교회라고도 불린다.

 

 

시리아 정통교회(Syrian Orthodox)

 

451년 칼케돈 공의회 이후 분리된 시리아를 중심한 오리엔탈 정교회의 교파이다. 시리아 정교회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의 공식 명칭은 안티오키아와 전 중근동의 총대주교이며, 총대주교의 명칭과 달리 실제 총대주교청은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있다. 비칼케돈파 교회인 오리엔트 정교회를 이루고 있는 시리아 정교회, 콥트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는 모두 완벽한 성사교류와 교회일치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지체(Communion)을 이루고 있어, 동방 정교회와 거의 비슷한 체제를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론'을 위시로 신앙의 일치를 이룬 네 개의 교회는 서로간의 활발한 교류가 벌어지고 있으며 교회 수장 착좌식에 서로 대표단을 파견하여 주교 안수 때 참석하기도 한다.

 

A. D. 578년에 죽은 초기의 선교사 야곱 바르데우스’(Jacob Bardaeus)의 이름을 따라 야곱파라 알려져 있다. 이 교회는 예수의 단성론을 주장하여 비잔틴 제국의 주류 정통교회에 반대 하였다. 중동지역에는 약 20만 명, 유럽, 남미, 북미 지역에 약 10만 명이 흩어져 있다. 예전 언어는 시리아 아람어 이다. 또한 시리아 정교회는 안디옥 교회를 계승한 교회이다. 이 교회는 중동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교회의 전통 가운데 하나는 지금까지도 시리아어를 예배 의식과 기도서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언어는 서부 아람어에 해당된다. 그들의 파트리아크는 다마스커스에 체류한다. 793년 이후로 시리아 정교회 감독이 예루살렘에 있었으며 1471년 정착하였다. 오늘날에는 대수도원장이 관할하며 예루살렘에 7세기경에 세워진 성 마가 수도원에 거류하고 있다. 교세는 약 1,000여명으로 추산되고 거의 대부분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 살고 있다.

 

 

콥트교회(Coptic Church)

 

콥트교회는 자기들의 교회 원년을 서기 284년으로 한다. 이 해는 디오클레시안(Diocletian)이 로마 황제로 즉위한 해다. 교회 역사에서는 이 황제의 통치 기간을 순교자의 시대라고 부른다. 극심한 교회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콥트교회는 수도원 운동이 시작된 교회다. 또 그들이 콥트어로 번역한 신약성경은 오늘날 성경사본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콥트교회는 세계교회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서기 451년 칼케돈(오늘날 터키지역)에서 개최된 종교회의에서 콥트교회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되어 나갔기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 두 가지를 다 주장했던 반면, 콥트교회는 신성만을 고집한 결과다. 이로 인해 콥트교회는 세계교회의 주류에서 멀어지고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콥트교회는 서기 641년 이집트가 이슬람교도들인 아랍인들에게 정복당한 후 이슬람교 밑에서 많은 역사의 풍상을 겪어오면서도 오늘날까지 그들의 신앙을 굳게 지켜오고 있다.

 

오리엔탈 정교회의 하나인 콥트교회는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마가복음을 쓴 마가가 세운 교회라 한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옥 그리고 로마와 더불어 초대교회의 주요 관구가 되었다. 콥트교회는 17세기말까지는 몇 지역에서 생존하다가 이제는 콥트교회의 예전 언어로 남아 있다. 4개의 주요 방언(사히드, 보하아르, 파윰, 아크밈)이 있는데 신약이 이들 방언으로 번역 되었다.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마가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로서 이집트의 옛 국교회이다. 중동의 모든 고대 교회 가운데서 가장 큰 교회이다. 현재 약 400만의 교인을 가지고 있다. 이 교회도 예수의 교리 가운데 예수의 단성론을 주장하였다.

 

콥트란 아랍어 낍트에서 온 말이다. 콥트어는 일반적으로 콥트인들이 쓰는 언어를 말한다. 이 언어는 3세기부터 10세기까지 이집트 토착민들이 썼던 언어로서 10세기 이후부터 점차 자리를 아랍어에 내주고 말았다. 이집트는 아랍어권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 인구를 가진 나라로 그 수가 1,359만 명에 달한다. 이는 전 인구의 12%에 이른다. 하지만 프랑스 학자 필립 파르지스는 기독인들은 전 인구의 5%에 해당하는 350만 명이라고 추정한다. 기독인들의 90% 이상은 콥트교도들이다. 그밖에 로마가톨릭과 소수의 개신교가 있다.

 

 

아르메니아(그레고리)교회(Armenian Apostolic Church)

 

사도 바돌로메와 다대오가 아르메니아에 복음을 전했다는 믿음에 근거하여 사도 교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르메니아교회는 3, 4세기 무렵 카에사리아(가이사리아)의 그레고리우스가 창시한 것으로, 그레고리 교회라고도 한다. 이들은 527년 드빈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그리스도 단성설을 채택하였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단자로서 로마가톨릭교회로부터 떨어져나갔는데, 1198년 로마공의회에서 복귀를 선언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하고 1373년에 로마가톨릭교회를 완전히 이탈하였다. 교의는 대체로 동방정교회와 비슷한데,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이나 지옥의 개념 및 성사의 해석에서 로마가톨릭교회와 차이를 보여, 이혼을 인정하고 사제나 부제의 결혼을 허락하였다. 총주교가 전 교회를 관장한다. 발칸·소아시아·이집트·유럽, 그리고 미국에 약간의 신자가 있으며, 고립적이고 민족적인 교회이다.

 

이 교회는 아르메니아의 국교회이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된 최초의 국민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들은 갑바도기아에 비숍으로 임명된 그레고리에 의해서 개종되었다. 교리적으로는 예수의 단성론을 주장한다. 성경과 예전은 아르메니아어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터키인의 대학살이후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으나, 이란을 비롯하여 중동 전역에 걸쳐서 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전세계의 신자 수는 약 900만 명이다.

 

각주 :

1) 인터넷자료, http://islammission.org, 200569.

2) 사데교회는 소아시아 7곱 교회중 하나이다(요한계시록31~6).

3) 주태근, 아랍을 살리는 중동선교, pp. 203-204.

4) 공일주, 아랍교회에 부흥있으라(서울: 예루살렘, 2000), pp. 224-225.

5) 주태근, 아랍을 살리는 중동선교, pp. 204-205.

6) Adherents (20051028). “Christianity”. Major Branches of Religions Ranked by Number of Adherents. 20161218일에 확인함. Mary Fairchild. “Orthodox Affiliation”. About. 20141025일에 확인함.

7) Lewis Patsavos. The Primacy of the See of Constantinople in Theory and Practice, “Territorial Jurisdiction According to Orthodox Canon Law. The Phenomenon of Ethnophyletism in Recent Years - Theological and Other Studies - The Ecumenical Patriarchate”. www.patriarchate.org

8) 성경책, 28:1620; 16:1418; 24:4449.

9) 동방정교회, https://ko.wikipedia.org/wiki/

10) 인터넷자료, http://galilee.co.kr, 200569.

11) 인터넷자료, http://cafe.naver.com, 200569.

12) 공일주, 아랍교회에 부흥있으라, p. 228.

13) Ibid.

14) 주태근, 아랍을 살리는 중동선교, pp. 206-207.

15)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8XXXXXX2432

16) 인터넷자료, http://www.catholic.to, 200569.

17) 주태근, op. cit., 207-209.

18) 인터넷자료, http://kin.naver.com, 200569.

19) 인터넷자료, http://blog.naver.com, 200569.

20) 아시리아 동방교회, https://ko.wikipedia.org/wiki/

21) 주태근, op. cit., pp. 209-210. 시리아 정통교회는 야곱교회로 칭한다.

22) 공일주, 아랍교회에 부흥있으라, p. 232.

23) 시리아 정교회, https://ko.wikipedia.org/wiki/

24) 인터넷자료, http://myhome.hanafos.com, 200569.

25) 주태근, op. cit., pp. 210-211.

26) 인터넷자료, http://blog.naver.com, 200569.

27) 공일주, 아랍교회에 부흥있으라, p. 233.

28) Ibid.

29) 주태근, op. cit., pp. 210-211.

30) 인터넷자료, http://blog.naver.com, 200569.

31) 공일주, 아랍교회에 부흥있으라, p. 233.

32) Ibid.

33) 주태근, op. cit., pp. 211-212.

34) http://www.armenianchurch.org/index.jsp?sid=1&id=16769&pid=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