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갱신론 강의록

교회갱신론 강의록(16) : 선교전략수립(1) 글-주태근

주 바나바 2024. 1. 28. 15:32

교회갱신론 강의록(16) : 선교전략수립(1) 글-주태근

 

 

F. 선교전략 수립(Mission Strategy)

이스라엘 막벨라 굴

 

교회의 속성에 대한 종합적인 정의는 네 가지 측면에서 구분되고 있다.

첫째, 공동체적(Communal) 측면이다.

둘째, 전인적인(Personal) 측면이다.

셋째, 영적(Spiritual) 측면이다.

넷째, 기구적인(Institutional) 측면이다.

이것은 교회선교의 제반활동을 위한 직제, 의식, 기능, 역할 등의 구체적인 선교조직을 의미한다. 이 네 가지 측면에서 기구적인 측면을 살펴보겠다.

 

 

1. 선교의 본질과 갱신

 

브루너(E. Bruner) 교수」는 “교회는 곧 선교이다. 불은 붙는 것으로 존속하는 것처럼 교회는 선교로만 존속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앤더슨(Gerald H. Anderson) 교수는 그가 편집한 책에서 “오늘날 선교사업의 근본 과제는 선교의 본질과 의미를 밝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먼저 잘못된 선교개념 몇 가지를 생각해 보겠다. 첫째로 선교를 개인의 회심과 죄의 회개, 그리고 개인의 영혼 구원이라는 용어로 이해하는 점이다. 선교를 개인의 회심에만 강조점을 둘 때 이것은 인간을 현실로부터 도피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둘째로 선교를 교회 확장의 의미에서 이해하는 점이다. 이러한 이해 개념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을 종말론적으로 좁혀 버리는 것이 된다. 셋째로는 선교를 반 세속화 운동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세속화(Secularization)와 세속주의(Secularism) 사이의 차이를 항상 유의하고 명확하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단적으로 말해서 세속화는 하나의 역사 운동이고 세속주의란 이데올로기 이다. 우리가 “하나님 자신의 선교”에 참여 한다는 것은 반세속주의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며 반세속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선교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선교는 본질적으로 종말론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것은 승천에서 최후의 성취까지의 사이에 수행되어야 할 과업이다. 따라서 “선교는 부활에서 종말의 날인 재림 때까지의 중간기의 구체적인 표징이다.” 비버(Pierce A. Beaver) 는 “기독교 세계선교의 재검토” 라는 책에서 “선교는 역사의 의미를 열어 보이는 열쇠로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종말이 표징이며 화해의 과업이요 하나님 자신이 지향하시는 궁극적인 성취의 표징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며 이 하나님의 선교는 단순히 역사 이해의 원리가 아니라 역사를 형성해 가는 하나님의 활동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선교의 본질이 하나님의 선교에 근거하고 있는 한 교회의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웹스터(Douglas Webster)는 이점에 대하여 “선교는 교회 안에서 은총론이나 사회에 대한 교리보다도 낮은 위치, 즉 교회의 어떤 한 부분 또는 파생적인 부분에서 취급할 수 없는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직접 온 것이기 때문에 신학의 중심에 두어야 할 것이다. 선교는 하나님의 명령의 결과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이며 그 표현이다. 이리하여 선교는 삼위일체 신론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교회론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파송을 계획하시는 선교적인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블라우(John-nes Blauw)가 “선교의 이유에서 신학은 교회의 신학에 불과하다”고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 잘못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교회가 좌우할 수 있는 교회의 소유물이 아니다. 선교와 교회가 아무리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교회는 다만 이 선교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한다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의 패턴을 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를 삼위일체 하나님(the trinitarian)의 구원의 역사로서 그의 선교는 세 가지 형식으로 표현된다. 첫째로 그의 창조적 활동에서 시작된다. 둘째로 자기를 배신한 인간과 화해하기 위하여 그리도 안에서 스스로 오시는 사랑이다. 셋째로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 성경을 보내심으로써 생동적으로 계속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려면 교회의 대비가 필요하다. 교회의 대비는 무엇보다도 교회학(Ecclesiology)의 연구와 검토가 없이 그리고 교회의 갱신이 없이 이 새 선교에 동참할 수 없다.

 

 

2. 선교적 구조로서의 교회

 

교회는 세계만방에 희망의 선교를 해야 할 공동체로서 조직된 것이다. 교회는 예수께서 선포하시고 또 친히 당신의 인격과 직무에서 구현하신 하나님 나라에서 기원한 것이고 또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시작부터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미래에 근거한 선교적인 구조로서 출발했다. 이것이 우리의 주제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세우심으로 일하신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선교를 실행할 때 만이다. 선교와 분리된 교회는 있을 수가 없다. 교회는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도록 보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선교적 구조로서의 교회의 기본적 과제는 그 자신의 지변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보이는 교회로부터 그들의 거리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판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부터의 그들의 거리에 의해서 판정을 받기 때문이다.

 

선교적 구조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패턴을 따라야 한다. 즉, 그 자신이 항상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관심을 쏟을 것이 아니라 누구인가를 보여주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선교는 말이나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존재의 문제이다.

 

참으로 선교는 역사의 의미에 대한 열쇠를 찾게 해주며 화해와 하나님의 목적을 궁극적으로 섭취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신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교는 본질적으로 역사 이해의 원리가 아니라 오히려 역사를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행동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교적 구조로서의 선교활동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