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새로운 결심과 각오(단1:8-16) : 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3. 6. 21. 09:59

새로운 결심과 각오(1:8-16)

 

고레스 왕(이란 성지)

글-주태근

 

신년을 맞이한 신흥 신성에너지 식구들 가정위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새로운 결심과 각오란 주제로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유명한 인물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결심을 하고 실행한다는 공통성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일리노이즈 한 지방의 농장에서 흑인들이 백인들의 채찍에 매를 맞으며 혹사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그 광경을 보고 "언젠가 기회가 오면 저러한 노예 제도를 없애리라"고 하며 굳게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 소년이 바로 흑인 노예해방을 이룩한 링컨대통령입니다.

 

일제치하 때의 일입니다. 평양 대동강 모란봉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연설을 하고 있을 때 거기 한 사나이가 참예했습니다. 그 밤의 연설 속에 그 사나이는 굳게 결심을 하였고 다음 날 그는 머리를 삭발하고 도산선생을 찾아와

 

자신이 나라를 위하여 살겠노라고 결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오산학교를 창설하고 독립을 위해 서명한 33인의 민족의 대표 중 한사람인 남강 이승훈 장노님입니다.

 

이상의 역사적인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결심의 중요성과 실천성입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금 여러분들은 각기 나름대로 크고 작은 새로운 결심과 각오를 가지고한 해를 시작하고 계실줄 압니다.

 

짐승에게는 미래발전을 위한 꿈이나 자기들 세계의 향상과 보다 나은 행복을 위한 새로운 도시 예술 기계 등등의 발명을 위한 연구와 계획 그리고 결단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움직여 가는 인간존재의 한 복판에는 의지가 있고 이것이 결심을 만들면서 삶을 움직여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심은 삶의 추진력이요, 목표요, 에너지인 것입니다.

 

아프리카 흑인의 친구로 불리우는 슈바이처박사는 21세 때, 다음과 같은 결심을 했습니다. "30세 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하여 공부하자. 30세 이후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하여 바치자"라고. 청년 시절에 이렇듯 봉사의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30세가 된 그는 아프리카를 위하여 필요한 것은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때 슈바이처박사는 이미 신학교수이며 목사이며 파이프올겐의 대연주자였습니다. 그는 아프리카를 위하여 의사공부를 시작할 것을 결심합니다.

 

30세부터 6년간 정식으로 열심히 의학공부를 합니다. 물통을 발밑에 갖다놓고 발을 담궈가며 공부를 하는 그의 열심은 굉장합니다. 그는 드디어 정식 의사가 되어 마침내 아프리카로 가서 사랑의 성자가 됩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다 나름대로 여러가지 계획과 결심을 가졌겠지만, 특별히 신앙인으로서도 여러가지 결심을 하였을 것으로 믿습니다. 신앙적 결심의 구체적인 것들은 조금씩 다르다고 해도 그 본질은 아마 다 같을 것입니다.

 

미국의 한 연구소에서 인생의 실패를 경험한 2500명을 대상으로 실패의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한 서른여 가지로 예를 들어 놓고 그 중에서 나의 실패의 원인를 지적하라고 했는데, 가장 많은 사람이 대답한 것이 "결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라는 항목이었다고 합니다.

 

확실한, 그래서 흔들림이 없는 결단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는 결단이 중요합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럴 때는 이러하고 저럴 때는 저러하고 이래서는 결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결단을 내리는 데는 크게 세 가지 동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본능적 동기입니다. 본능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결정하는 일입니다. 본능에 끌리는 대로 결단하고, 순간적으로 찰나적으로 끌리는 대로 결정하고 따라갑니다. 여기에는 사람만이 가지는 가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반응, 반사하면서 살지만 인간은 한 번 더 깊이 생각하고 응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에게는 이런 깊은 응답이 없습니다. 보는 대로 느끼는 대로 결정하고 행동해버립니다. 본능적 동기의 결단입니다.

 

두 번째는 이성적 동기입니다. 본능적 충동은 있지만 그것에 그대로 따를 수 없기에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한 것인가? 이것이 옳은 것인가? 도덕성을 물은 다음 결단합니다. 이성적 판단을 무시하고 결단할 때에 인간은 비참해집니다. 술 먹는 사람 보세요.

 

1차 한 번 가는 것도 그런데, 23차는 왜 또 갑니까? 그래 놓고 다음날 아침에 보면 속은 속대로 쓰리고 몰골도 말이 아니어서 망신당하기 십상입니다. 이렇게 되고 나서도 그 다음에 또 반복합니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이성적 판단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택과 결단이 그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성적으로 다시 생각하고 결단합니다. 선과 의와 진리와 사랑 - 이런 것들이 다 이성적 동기입니다. 사람이라면 이에 따라 선택하고 결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신앙적 동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께서 내 편에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잠시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 쪽을 택합니다. 나로서는 혹 불행이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주의 뜻인 고로 주의 뜻대로 하리이다, 하는 결단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께서 결정하신 것과 같은, 선택과 결단입니다. 이러한 신앙적 동기의 결단이야말로 가장 결정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애가 여기서 결정되고, 영원한 행복과 불행이 여기서 판가름납니다. 1월은 미래를 기대하면서 과거를 생각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달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뜻을 세운다는 것은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요,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요, 인생의 설계도를 그리는 것입니다. 뜻을 세우는 것은 인생의 기초요, 기본입니다.

 

뜻을 세우지 않고 출발하는 자는 목표 없이 달리는 경주자와 같고 뜻을 잘못 세우고 달리는 자도 그 결과는 뻔합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실천하는 인생으로 승리한 신앙인입니다.

 

다니엘은 지금 포로된 자로서 바벨론에 예속된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방 왕에게 발탁되어 특별한 혜택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의 미래를 위한 인재양성에 일원이 되어 교육중에 있습니다. 아들에게는 특별 음식에 제공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음식을 거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왕이 하사하는 음식들은 먼저 바벨론 신에게 바치는 예식을 행하고 나서 나누어주는 음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벨론 왕은 바벨론 신의 은총과 축복으로 전쟁에 승리하고 잘 사는 줄 알고 그 신에게 감사를 드린 후에 음식을 나누어 먹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음식들은 우상에게 바치는 제물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에 다니엘은 율법적으로 금한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뜻을 정했습니다. 경건하게 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이러한 행동은 일종의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행위로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다니엘이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이제 죽어도 좋다는 순교의 각오가 들어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믿음의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다니엘은 혼자 마음속으로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모든 사람에게 알렸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함께 포로된 친구들과 환관장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때로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결심을 했더라도 마음속으로만 해서는 안됩니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실천에 옮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뜻을 정하고 결심을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자신의 속에 묻어두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혹시 자신의 생각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 괜한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사단의 시험을 받아 의심이 들거나 약간의 어려움이 생기면 없었던 일로 해버립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경험을 많이 했을 줄 믿습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열심을 품고 결정합니다. 결심한대로 당장 실천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룻밤 자고 나면 이상하게도 어제의 열심이 반으로 줄어든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할까말까하는 망설임 속에 한 달쯤 지나면 처음 결심이 3분의 1로 줄어들게 됩니다.

 

더구나 말로 공표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흐지부지 되어 자신에게 없었던 일로 자신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결심이나 좋은 생각, 내 생애 축복을 가져오는 결심은 하자마자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결심, 좋은 계획, 좋은 생각은 마음속에만 두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공표해야 실천에 옮기기도 쉽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결심을 환관장에게 말했을 뿐만 아니라 열흘동안 시험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후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과 자신들을 비교해 본후 처분대로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다니엘의 결단을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과연 열흘 후에 이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 보다 열 배나 나았으며, 영감을 주셔서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로 발탁되어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강대국이었던 바벨론을 다스리게 되었으며,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보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총리로 재직하며 여러 왕을 거치는 동안 바사왕 고레스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축하는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다니엘은 그 시대 역사를 끌고 가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먹지 않고, 경건하게 살겠다고 결심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이런 사람을 사랑하실 줄 믿습니다.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높이 들어 쓰실 줄 믿습니다. 책임지실 줄 믿습니다.

 

금년에도 여러분이 무엇인가 결심하고 다짐하여 출발할 때 조금이나마 목표를 이루숫 있습니다. 뜻을 정하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믿음의 결심과 다짐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뜻을 정하여 실천하는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금년 한 해 다니엘처럼 목표가 달성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받는 해가 도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