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고 담대하라(수1:1-9)
성격이 예민한 직장인 강모(53·서울 강서구)씨는 회사 일로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몇 주 동안은 가족, 직장동료 걱정, 집안생계 걱정 등을 하느라 잠을 못 이뤘습니다. 그는 일을 못할 정도로 불안감에 시달리고 어지럼증까지 느껴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강씨는 의사에게서 '범불안장애' 증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범불안장애란 크게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도 불안함을 느끼는 불안장애의 일종입니다. 의사는 “강씨가 자기 증상을 성격 탓으로 돌리고 방치했다가 합병증 즉 우울증도 생겼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한국 보건복지부가 18세~74세 6022명을 대상으로 한 주요 정신질환 유병률을 발표했습니다. 강씨처럼 불안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이 8.7%로 우울증 6.7%보다 높은 통계입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5년 사이 불안장애 환자 비율의 증가율도 26.1%로 우울증 19.6%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영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천은진 교수는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미래를 걱정하는 불안장애 유병률이 전세계적으로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문필가 카알라일에 대하여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항상 생각하고 글을 쓰는 분이며, 자연히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입니다. 그런데 그 옆집에서 닭을 몇 마리 기르는데 새벽마다 우는 소리로 잠을 잘 자지 못하다가 한번은 그 주인을 만나 사정을 말합니다. 그때 그 주인이 “하룻밤에 세 번밖에 울지 않는 것을 뭐 그러시오”라고 대답합니다.
그 때 카알라일이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닭 우는 소리를 기다리느라고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얼른 납득이 가지 않지만 이런 삶의 모습이 현대인간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일을 흔히 염려하는 때가 많습니다. 나도 모르게 염려병이 생겼습니다.
코넬 대학교의 관절염 전문의 러셀 L. 세실 박사는 ‘관절염’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네 가지 원인을 들었습니다. “불행한 결혼생활, 재정적 난관이나 고민, 외로움과 걱정 그리고 오래 묵은 원한 등”입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네 가지 원인 모두가 감정적인 요인이라는 점입니다.
세실 박사는 관절염에는 물론 이보다 더 많은 원인이 있고, 물리적인원인도 포함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네 가지 원인이 관절염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습니다. 삶의 모든 관계가 바르지 않을 때, 주변 환경의 문제와 다른 사람의 평가에 평정을 지키지 못할 때 우리 삶은 크게 영향을 받게 됩니다.
지난 날 구약시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 장군이 가진 범불안장애를 소개합니다. 그는 전쟁에서 항상 승리한 대장군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남모르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여호수아를 선택해서 놀라운 지도자로 우뚝 세우셨습니다.
지난날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생활로 인도하였지만 가나안 땅을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죽고 말았습니다. 지도자 모세가 죽자 이제는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암담했습니다.
정복해야 할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은 강하고 포악했으며,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걸핏하면, 지도자 모세를 죽이겠다고 반항했던 사람들이었으며, 툭하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나님과 지도자에게 불평했던 불신앙의 사람들이었으며,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아주 형편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였기 때문에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여호수아는 위대한 모세를 곁에서 보좌할 때, 모세가 엄청난 일들을 행한 일들을 직접 목격한 자였습니다.
모세가 했던 이 놀라운 일들을 과연 나도 할 수 있을까? 그는 고민했고 불안했고 두려웠고 그리고 고독했습니다. 그리고 과연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난안을 정복할 수 있을까? 범불안장애현상입니다. 사실 이런 장애현상은 지도자만 겪는 현상이 아닙니다.
보통사람들도 삶의 과정에서 충분히 겪는 장애현상입니다. 인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장애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왜 불안, 초조, 근심, 염려들이 우리들에게 밀려올까요? 그렇게 만드는 요소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로, “나는 혼자다 생각될 때”입니다. 나 홀로 인생이란 생각이 삶을 외롭게 만듭니다. 지금 나는 혼자다 생각될 때가 약해지고 불안해 지는 때입니다.
둘째로, “미래가 불확실할 때”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때로 장래가 막연할 때가 있습니다. 장래가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앞날에 잘되리라는 확신이 없음으로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셋째로,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입니다. 창 3:10을 보면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시니 아담이 두려워서 숨었다고 답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엄히 명하신 것을 어겼습니다. 일이 저질러지고 난 후에 하나님을 만나니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전에는 이것이 그렇게 무서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나무 사이에 숨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경험한 첫 두려움입니다.
원초적 두려움이요 두려움의 뿌리입니다. 바로 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은 하나님 앞에서만 심각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바로 이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이 두려움이 비로소 심각하게 밀려들어왔습니다.
넷째로, “영적으로 무력해질 때”입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원인입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무력증에 빠지면 세상이 재미가 없고 의욕이 없고 기쁨이 없고 감격이 없어집니다. 두려움의 영적무력증을 갖도록 만듭니다. 이 영적 무력증이 가장 무서운 병입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마차를 몰고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가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길가에서 제발 태워 달라고 애걸을 합니다. 그래서 마차에 태워 한참 가다가 그 할머니를 자세히 보니 어찌나 무섭고 흉측하게 생겼는지 보통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도대체 누구요?' 하고 물었습니다.
할머니가 하는 말이 '나는 호열자 귀신이요'하고 답합니다. 그래서 당장 내리라고 말하니까 '더도 말고 꼭 다섯 사람만 죽일 것이니 좀 태워다 주시오' 하면서 내리지 않기에 하는 수 없이 태우고 갔는데 그 후부터 호열자 즉 콜레라가 그 지역에 퍼지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마차 주인은 할머니를 본 까닭에 그 할머니를 죽이려고 찾아 다녔습니다. 찾고 찾다가 드디어 어느 곳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죽이려고 하면서 '왜, 다섯 사람만 죽인다더니 5천명도 더 죽였소?' 말했더니 그 할머니가 대답하기를 '나는 사실 다섯 명 밖에 안 죽였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다 내 이름만 듣고도 무서워하다가 병이 나 죽은 사람입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이 가장 큰 질병입니다. 사람이 근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무슨 일에든지 성공할 수가 없고, 잘되는 일이 없습니다. 몸에도 건강을 잃고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리게 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1930년대 미국의 경제 공황 때 뉴스에 나쁜 소식이 나간 뒤 병원마다 신경성 질환과 소화불량 환자들로 넘쳐났다고 합니다. 두려움이 문제입니다.
욥 3:25에 보면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게 미쳤구나”라고 고백했는데 이렇게 한 말씀을 보면 욥이 당한 불행과 재난은 곧 그의 마음에 근심하고 두려워하던 그것을 결국 그가 당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을 물리쳐야합니다.
두려움이라는 질병을 어떻게 하면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먼저,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십니다. 오늘의 본문은 애굽을 탈출한 공동체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의 상황을 보여 줍니다. 젊은 시절부터 모세를 모셔왔던 여호수아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의 무게 때문에 그는 참으로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으로 위축되어 있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3~5절입니다.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그러면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세 번씩이나 당부하십니다(6,7,9).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은 스스로 자기내면의 힘을 끌어올리라는 말씀이라기보다는, ‘내가 네게 힘을 불어넣어주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힘이 여호수아에게 임함으로 치료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당신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힘을 불어넣으실까요?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읽고 또 읽어 그것을 내면화하고 또 그것을 몸으로 살아볼 때 비로소 말씀 속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9절 말씀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성경에는 한 구절이 더 있습니다. "Do not be discouraged!"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낙심은 “바라거나 계획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아니하여 실망하고 맥이 풀리는”상태입니다.
여호수아가 직면해야 했던 문제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홀로 결단해야 하는 시간도 있었을 것이고, 사람들의 몰이해로 인해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걸 아시기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치유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여호수아를 치료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치유한 후에 승리의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마음만의 위로가 아닙니다. 약속의 말씀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으로 입국할 수 있는 승리의 길을 가르쳐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역시 그것도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는 것”내용입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는 길은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담대해 지는 길은 “바로 서라”, “견고히 서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디에 견고히 서야합니까? 본문의 정황을 살펴보면 신약성경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에베소서 6장17절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성령의 무장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이기기위해서는 성령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성령님이 함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영적 싸움 가운데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리타 카베자라는 크리스천 심리학자가 동료 심리학자가 보는 가운데 귀신들린 여인을 다루는 축사 사역을 하였습니다. 이때 동료 심리학자가 귀신에게 묻습니다. “왜 하필 비그리스도인이 아닌 그리스도인 안에 들어 있는냐?”
이때 귀신은 “당신은 내 관심 밖의 인물이다. 그 이유는 당신은 이미 악의 세력 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 깊은 곳에는 이미 악이 자리잡고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귀신은 그리스도인 여인을 가르치면서 “나는 이 여자를 파괴시키고, 이 여자를 고통스럽게 함으로써 기도도 못하게 하고 하나님도 찾지 못하게 하는데 관심이 있다. 그렇게 되면 이 여자는 하나님으로 부터 멀리 떠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사단은 영적 세계에서 크리스천을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전쟁에서 담대함은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성령만이 담대한 용기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검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우리는 사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참으로 미숙합니다.
이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게 되면 우리는 왜 우리에게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는지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인생의 큰 문제를 만나 보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패닉 상태가 올 수 있습니다. 자기를 의지해서 살던 사람은 어쩔 줄을 몰라 하도록 만듭니다. 그러다가 우울증에 걸리고 불면증이 오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어집니다. 영적 세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영적 세계에서는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과 성령의 검이 아니고는 이 영적인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가 영적인 눈을 떠서 보니 마귀가 매일 우리의 마음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을 알면 준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보이는 세계, 느끼는 세계만 의식하고 사니 영적인 세계가 실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던 보이지 않는 영적싸움 가운데 있습니다.
성령의 검을 가지지 않고는 안 되는 싸움에 내가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싸움을 나가는데 검을 가지지 않고 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싸움을 나가는데 피크닉 가는 것처럼 가볍게 가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마음을 다지고 검과 방패를 가지고 결연한 마음으로 나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너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정말로 성령의 검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필요한 무기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강하고 담대해야합니다. 강한 것은 하나님의 힘으로 말씀을 통한 능력입니다. 담대함은 성령의 무장으로 이루어집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승리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무장입니다. 두려움을 극복하여 말씀과 성령으로 치료되어 강하고 담대히 승리하길 축복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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