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갱신론 강의록(2) : 교수 - 주태근
Ⅱ. 교회와 조직
A. 교회에 대한 이해
1. 명칭에 대한 이해
구약성서에서 「교회」라는 용어는 몇 가지로 사용되었다. 먼저 교회라는 그 말의 어원을 두 가지 용어에서 찾을 수 있다. 구약에서는 히브리말로 「예다」(עֵדָה)와 「카할」(להק)로 사용되었다. 내용은 서로 비슷하나 「카할」이라는 말이 구약에서는 훨씬 더 많이 사용되었다. 그 뜻은 「하나님께서 불러 주셔서 그 부르심에 의해서 모인 무리」라는 뜻이다. 이 말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로 역술되었고, 「70인 역」에도 그렇게 썼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쓸 때에는 구약에서 사용된 「카알」과 그 의미가 다른 면으로 강조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이 인류역사에 역사하시는데 그 시간이 차서 메시아 왕국을 건설해야 하는 데 그것을 기다리는 무리(이를 종말론적인 공동체라 함) 또는 모임으로 그 의미가 사용되었다.
또한 구약에서 하나님의 회중이라고 할 때는 “택함을 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 앞에 회집된 단체”를 말한다. 즉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모인 회중”을 가리켜 교회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에클레시아」 라는 말에는 언제든지 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의미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하여 모인 무리”라고 해야 옳은 것이다.
신학자들의 교회의 해석은 나름대로 차이가 있다. 한스 큉(Hans küng)은 교회를 종말론적 구속 공동체로 특정지우면서 그 기본적 구조를 (1)하나님의 백성 (2)성령의 피조물 (3)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정의하며, 아울러 교회의 차원은 (1)교회는 하나이다 (2)보편적이다 (3)거룩하다 (4)사도적이다라고 정의한다. 밀러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지으면서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이라고 그 근본과 본질을 밝히고 있다. 뻘콥(L. Berkhof)은 우리가 사용하는 「교회」라는 말은 「주께 속한다」는 의미의 말에서 유래 되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2. 본질에 대한 이해
교회에 대한 신약성서의 정의는 세상 안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모여들고 흩어지는 ‘에클레시아’와 ‘디아스포라’로서의 몸의 개념 안에 집중되어 있다. 이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일성을 구조 짓는데 영구적인 것이며 역사 안에서 이것을 다른 것으로 변경하거나 고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종교개혁의 중심원리 중의 하나였으며 루터에 의해서 재발견된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상징은 교회의 높은 윤리적인 소명을 가리킨다. 이 소명은 사랑의 새 공동체가 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자각이며, 회중의 사귐은 모든 인간과 교회들의 장벽을 깨트리고 화해하게 하시는 사귐이다. 여기에 교회의 첫째 되고 기본적인 구조가 되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새계약으로서의 백성이다. 새계약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계속적인 주권에 의해서 창조되고 다시 창조된다. 이 새 계약의 연속적인 위대한 사건에 의해서 제자들과 개종자들의 새공동체가 형성되며 성령에 의해서 새공동체의 삶이 이루어진다. 이리하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산지식과 그가 의미하는 모든 것에 의해서 구성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공동체 구성원들의 계속적인 재인식과 이 지식에 대한 신앙의 응답에 의해서 구성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게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과 사도의 공동체 안에서 또 공동체에 의해서 선포된 복음이 교회의 본질구조요 원천이며 그 원인이다.
교회의 본질이 존재하되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 가능한 역사적 "형태"로만 나타난다. 이렇게 ‘정태적, 고정적’이 아니고 ‘동태적, 현상적’이면서도 동시에 ‘근원적·영속적’인 “본질”이므로 이런 “본질”을 발견하기 위해서야말로 계속 변하는 역사적 “형태”를 주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일·연속·불변한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가변적·일시적인 것과 혼동하지 않기 위해서야말로 교회상이 내포하는 시간제약적 변화요소를 처음부터 고려하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본질과 형태는 불가분이다. 교회의 본질과 형태는 따로 나누어서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 보아야 한다. 교회의 본질을 역사적 양상의 뒤에서나 위에서 보지 않고 그 안에서 볼 때 비로소 현실교회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본질의 형태는 같지 않다. 교회의 본질과 형태는 동일시 할 것이 아니라 구별해야 한다, 본질과 형태는 개념적이기는 하나 필요할 때 구별 없이 어떻게 변하는 교회의 양상 속에서 항존하는 요소를 가려낼 수 있는가? 교회의 본질은 언제나 역사적 형태 안에서 보아야 하고 역사적 형태는 언제나 본질을 출발점과 목표로 해서 이해해야 한다.
3. 그리스도의 몸
바울의 사상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의미는 구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으로서의 기능을 뜻한다. 또한 바울의 유일한 관심은 크리스천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살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 안에서 그리스도가 일하고 계심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로빈슨(J.A.T. Robinson)은 바울의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이해를 연구하면서 이점을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언급하였다. 바울이 의도한 몸은 인카네이션의 몸처럼 구체적이고 단일한 몸이다. 그가 강조하는 개념은 초인간적인 집합체가 아닌 특정한 인격적 유기체의 개념이다. 바울은 교회를 공동생활을 하고 지도자를 모시고 있는 사회라는 식의 연약한 개념으로 말하지 않고 교회의 일치(unity)는 단일한 물리적 실체의 일치이며, 불일치(disonion)는 곧 해체(disnemberment)를 의미한다고 강력한 개념으로 말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해는 우리를 다음과 같은 단계로 이끌어 주는데 적어도 세 가지 사실을 창조하는데 도움을 준다. (1)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몸이 지금도 교회 안에서 축복과 결단을 일으킨다. (2)족장의 패턴은 그의 모든 백성을 그리스도 자신 안에 포함 시킨다. (3)한 “몸”(σώμα)이라는 헬라어 용법은 다양한 구성원들을 하나의 종합체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근원적으로 또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며 개인 구성원은 단지 이차적인 의미이다. 그 중심적인 실재는 오직 한 분이신 그리스도의 “몸”이다.
구성원의 개성은 다만 한 몸의 이차적인 성격일 따름이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일치는 물리적 합체가 아니다. 신자 개개인의 인격이 그리스도의 몸에 흡수되어 물리적으로 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윤리적 일치도 아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일치는 전통적으로 “신비적”이라고 표현하는 독특한 양식의 일치이다. 그리스도와 신자들은 각자의 본체에 있어서는 개개의 인격이지만 공동 목표의 추구 이상의 하나의 영적 생명에 참여하여 개체는 여럿이지만 생명은 하나이라는 신비로운 일치가 실현된다. 따라서 신비체의 일치는 신성과 인성이 결합하여 한 위격(位格, persona)을 이루는 강생의 신비에서 그 모형을 찾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성부 성자 성령의 고유한 위격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체(體, substantia)를 이루는 성삼위의 신비에서 그 모형을 찾을 수 있다.
“몸”이라는 개념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인체의 몸과 머리는 자연적으로 생래적(生來的)으로 하나를 이루지만 신비체의 머리와 몸은 은총에 의한 초자연적 결합이요, 머리의 부르심에 대하여 지체의 자유로운 신앙에 의한 선택으로 이루어진 결합이므로 생래적으로 하나가 아니다. 따라서 아무리 신비스러운 한 몸 안에서도 그리스도 자신과 신자인 우리들과의 구별은 뚜렷하다. 그러므로 그 용어는 신중한 변증법을 내포한다. 그리스도는 교회와 동일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몸의 머리이고, 그 지체들은 그의 안에서 성장한다(골로새서 1:18-20, 2:19). 우리의 육신을 벗어 버리고 부활의 몸을 입는 세례는 날마다 죽음의 필요성을 의미한다(고린도전서 10:16-17).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영위되는 우리의 생활이 연속적인 갱신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주지시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약속)의 연속성과 그의 약속의 상징(성례전)의 연속성이 있으나 신도의 친교로서의 교회생활은 항시적(恒時的) 갱신에 의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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