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 설교원고

생명을 살리는 교회(요10:10)-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12. 09:40

 

 

 

 목사 주태근

 

어느 아버지 한 분이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아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날따라 목사님의 말씀은 어려웠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설교 내용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아들의 모습은 오늘 따라 너무나 진지해 보였습니다. 강단을 똑바로 쳐다보고 목사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드린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묻습니다.

 

"오늘 목사님께서 무슨 설교를 하셨는지 말해봐라", "아버지! 목사님 말씀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어요." "뭐야! 그런데 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강단을 쳐다보고 있었니." "강단 뒤에 플러스표가 있잖아요. 목사님의 설교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라고 생각했어요."

 

강단 중앙에 부착되어 있는 십자가를 보고 플러스 표시로 아이는 이해했던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들은 아이의 아빠는 무릎을 치면서 "그래 맞아 ! 예수님 믿는 것은 플러스 인생을 사는 것이고, 안 믿는 것은 마이너스 인생을 사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믿음 안에서 사는 인생은 오직 플러스인생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삶 속에는 마이너스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모든 것을 지으셨을 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지어놓고 보시기에 좋았고, 육지가 생겨나고 산천초목이 생겨나는 것을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공중의 새와 물고기를 보시고 기뻐하셨고, 짐승과 사람을 만드시고 심히 좋아하셨습니다.

 

 

 

플러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이너스 의지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플러스 의지로 우주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마이너스 의지를 가져온 존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뱀으로 위장한 마귀입니다. 마이너스 존재인 마귀가 아담과 하와를 꾀어 타락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독립해 인본주의로 인생을 살라고 유혹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꾐에 빠져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인본주의적인 주권을 가지고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반역한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그때로부터 시작해 그들의 인생은 처참하게 마이너스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밝은 빛 대신에 어두움이 그들의 삶을 점령했습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마음속에 삶의 의미와 가치, 목적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인본주의적 무질서가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그 후 그들은 탐욕으로 말미암아 서로 물고 찢고 싸우며 양육강식의 원리로 살면서, 미움과 투쟁과 살생과 전쟁이 그치지 않는 마이너스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더러워졌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더러워졌습니다.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풍요로움 대신 가난과 궁핍이 다가왔습니다. 마이너스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는 풍요로움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난을 만드신 적이 없습니다. 플러스의 인생입니다.

 

 

 

오늘날 온 인류의 가장 중심적인 관심사는 경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겠느냐는 데 있습니다. 지금 북한 사회의 가장 큰 문제도 경제 문제입니다. 지구 곳곳에서 헐벗고 굶주린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등진 인생들이 경험하는 풍요가 마이너스된 삶의 모습입니다.

 

 

 

마이너스 인생으로 인간에게 생명 대신에 사망이 다가왔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의 원천인데 생명의 원천을 포기하자, 영은 죽어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졌고, 육체도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죽음의 마이너스가 인생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원수 마귀는 그 자체가 강렬한 마이너스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난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귀는 강렬한 마이너스를 가지고 사람들 속에 들어와 좋은 것은 다 빼앗아 버립니다. 영혼을 죽게 만들고 범사를 망하게 합니다. 건강과 내일의 소망 또한 도둑질해 갑니다. 결국 마귀는 인간을 멸망시키려는 궤계를 끊임없이 펼쳐갑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이 세상 풍속을 좇아 사는 사람은 영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마이너스 인생을 살고, 현실 속에서도 마이너스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들이 지불하는 무서운 대가입니다. 그러나 기쁘고 복된 소식이 인류에게 임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이너스인생으로 전락한 삶을 플러스 인생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입니다. 그 구원계획은 2천 년 전 하나님의 외아들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회복입니다. 구세주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은 마이너스세계 속에서 방황하는 인생들과 이 세상을, 플러스 인생으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는 주현절절기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내시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예수님 안에서 보인 그 날을 기념하는 기독교절기입니다. 이 절기 안에 포함된 주님의 수세주일은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공증 받았음을 알리는 첫 번째 신호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관문이 이때부터 열리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교회가 교회창립주일에 이 절기를 지킴은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적생애를 시작하셨듯이 우리교회 역시 이 절기에 창립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금년도 우리교회 표어를 생명을 살리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이 표어의 주제 성구가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금년에 우리교회 목회가 설정되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목회의 비전입니다. 오늘날 생명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되고 있습니다. 생명을 파멸하는 요인들이 사회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테러로 인한 사망도 점차적으로 늘어만 갑니다. 자살도 중요한 사망의 요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42명 이상이 자살합니다. 2009년 한해만 해도 1,500여명이 자살했습니다. 그 외에도 살인 통계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매일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생명복제에 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이것도 생명에 관심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배아줄기세포 복제는 질병치료라는 현실적 명분과 생명 불가침이라는 신학적 도덕적 원칙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일이란 항상 이중적임을 보게 됩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공존합니다. 사람들은 좋은 의미에서 만들어 놓지만 나쁘게 악용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대입니다. 어느 교수가 비타민 C가 좋다고 하니 비타민 C를 먹기 시작합니다. 토마토가 좋다고 하면 토마토를 먹고, 올리브 오일이 좋다고 하면 올리브 오일을 먹고, 콩이 좋다고 하면 콩을 먹고, 요구르트가 좋다고 하면 요구르트를 먹습니다.

 

 

 

이렇게 웰빙은 생명 문제가 되었습니다. 장수하기 위해서는 물과 공기가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과 공기는 생명입니다. 결국 모든 현대인의 과제는 생명의 관심입니다. 생명의 과제를 해결하려는 데 있습니다. 건강과 장수란 결국 생명과제를 해결해야 가능한 문제입니다. 이런 물결은 생명의 소중함을 말합니다. 교회 역시 생명을 살리는 교회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회복시키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생명을 잉태할 수 있고, 잉태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런 생명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본문 요한복음10:10에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생명은 신약성경 요한복음의 대표적 주제입니다.

 

 

 

특히 생명에 해당되는 헬라어 조에라는 단어는 복음서에 52회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그 중 36회가 요한복음에 기록되어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오신 것은 생명을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나는...이다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의 자기를 증명하는 말씀입니다. “나는...이다란 말이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 “양의 문이다”, “선한 목자이다”, “부활이요 생명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참 포도나무이다” “생명의 떡이다등등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일곱 번의 자기 증명 가운데 생명이란 말이 세 번이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자기 증명은 바로 생명입니다. 그 외에도 요한복음에는 생명의 빛, 생수, 살아 있는 떡, 영이요 생명, 영생의 말씀등의 용어들이 나옵니다. 요한복음은 온통 생명으로 가득한 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의 거짓 스승들이 종종 교회로 들어올 것을 미리 경고하신 교훈입니다. 교회에 나타나는 도둑은 거짓 교훈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양을 귀히 여기지 않고 자신의 사욕을 위해 양을 죽입니다.

 

도둑은 생명을 훔치는 지도자를 일컫습니다. 기독교 사이비 집단과 이단들의 집단자살을 우리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오대양 사건이 그 한 예입니다. 1987년에 32명의 무고한 교인을 죽게 하였습니다. 영생교 사건도 그렇습니다. 1999년 강원도 남대천에서 7명의 교인이 승합차에 불이 난 채 죽어 있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인민사원 사건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1978년 짐 존스라는 교주가 914명의 추종자들을 집단 자살하게 하였습니다. 그 외에 크고 작은 자살이 있었습니다. 이 모두가 생명을 훔쳐가는 도둑의 짓입니다. 최근 이단들의 교회 침투가 심각합니다. 그 중에서 신천지라는 이단집단이 있습니다.

 

 

 

이만희라는 교주가 오래 전 장막성전이란 이단의 분파를 만들어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종말의 현장이 장막성전이 있던 청계산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도요한적 사명자를 만나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자신이 재림예수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24장과 계시록만이 새 언약이며 신약과 구약은 모두 무효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만약 신천지에서 탈퇴하면 3대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전하는 내용들이 전형적 이단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각 교회에 침투하여 위장 등록을 하고 교인들을 현혹하고, 교회를 깨어지도록 만듭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생명을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한 순진한 양 도둑입니다. 이들의 정체를 밝혀내고 찾아내어 축출해야합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참 목자이시며 선한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양들의 진정한 유익을 구하십니다.

 

 

 

예수님은 양들에게 영적 생명을 주시며, 또한 그 생명을 풍성케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은 내 것이다라고 선포하십니다. 생명의 근거가 하나님이십니다. 시편36:9에는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말합니다. 생명의 근거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교회는 생명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나무, 생명 샘, 생명 강이 있습니다. 이 풍경은 바로 하늘나라를 말합니다. 하늘나라에는 죽음이 없으니 생명밖에 있을 것이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생명으로 가득 찬 나라입니다. 잠언8:35에는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말합니다.

 

 

 

잠언서의 주제는 지혜입니다. 그런데 잠언서는 지혜는 생명이라고 전합니다. 잠언서에는 생명이란 단어가 41회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혜라는 말은 거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혜는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잠언3:18에는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고 합니다. ‘생명나무는 히브리어로 에츠 하임이란 언어입니다. ‘영생과 참 평안의 원천이란 뜻입니다.

 

 

 

이 말은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연관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생명나무 대신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에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인간은 지혜가 없기 때문에 금단의 과실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생명나무는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교회는 이 지혜를 알게 해야 합니다.

 

 

 

분별력은 살게 하는 것인지, 죽게 하는 것인지를 구별하는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지혜를 우리에게 주셔서 삶을 풍성케 하십니다. 요즘은 좀 적어졌습니다만 스스로 죽으려고 농약을 마시는 사람이 간혹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참 안타까운 일이 흔히 있었습니다. 마시는 알코올인 에틸 알코올인 줄 알고 맛과 빛이 비슷한 먹으면 안 되는 메틸 알코올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전에는 심심찮게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영적 분별력을 지혜라고 합니다. 죽는 건지 사는 건지 알아야지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명을 얻는 영성이든 아니면 생명을 파괴하는 영성이든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적인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생명을 파괴하는 영성생명 얻는 영성으로 전환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 힘든 공격적인 사명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반드시 건전한 생명을 잉태해야 하고, 생명 없는 사람에게 생명을 살려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언14:27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으면 사망에서 벗어나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예수님을 얻으면 생명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생명이고 생명을 잉태하고 또 다른 생명을 낳아야 합니다. 이미 죽은 생명도 살려야 합니다. 교회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이유는 관계적 영성 때문입니다. 생명은 본질적으로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15:4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의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잉태될 수 있습니다. 잉태란 산모의 태를 벗어나서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야 잉태의 힘이 나타납니다. 생명을 잉태하다는 말은 원래 생명인데 잃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찬송가에서 잃었던 생명 찾았고라고 찬양합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영인데 타락하여 죽었습니다. 죽어서 생명을 상실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으로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생명으로 다시 잉태하여 죽은 생명으로 다시 살게 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이너스 인생을 플러스 인생이 되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교회가 마이너스 인생을 플러스 인생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생명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전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생명임을 알게 해야 합니다. 교회가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생명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립니다. 교회의 사명은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를 따르는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