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학 강의록(11)-교수 주태근
Ⅴ. 성경적 설교
성경적인 설교란 무엇인가? 설교학자 해돈 로빈슨(Haddon Robinson)은 그의 책 「성경적인 설교」(Biblical Preaching)에서 “성경적인 설교는 본문의 문맥에 맞는 역사적, 문법적, 문학적 연구를 통하여 얻어지고 전달되는 성경적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다. 성령님은 그 성경적 개념을 먼저 설교자의 인격과 경험에 적용시키고, 그 다음에 그를 통하여 그의 청중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메릴 엉거(Merrill F. Unger)는 이렇게 말한다. “본문의 길이가 어떻든 간에 성경 원저자의 생각 속에 있었던 그대로 정확하고 근본적인 본문의 의미가 성경 전체의 문맥에 비추어 설명되어지고, 오늘날 청중의 필요에 적절하게 적용되어진다면, 그것은 ‘성경적 설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적 설교’는 성경에 관해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설교하는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신 것’이 성경적 설교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즉 성경으로 시작하였다가 성경에서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의 모든 것이 또한 성경으로부터 나온다.”
결국 ‘성경적 설교’는 “성경 본문의 기록자가 마음에 갖고 있었고, 또한 성경 전체의 맥락에 비추어 볼 때, 그 본문 안에 있는 본질적인 실제 의미를 밝혀내서 그것을 오늘날의 청중의 필요에 적용하는 설교”라고 할 수 있다.
1. 성경적 설교의 내용
첫째로, ‘오직 성경’(sola scriptura)과 ‘성경 전체’(tota scriptura)의 강조를 잘 따라가는 설교이다. 오직 성경을 설교한다는 것은, 흔히들 많이 오해하듯이, 설교에 성경에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은 전혀 언급되면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오직 성경’에 근거한 설교라는 것은 오히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조명하되 오직 성경이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바를 따라서 판단하여 제시하는 설교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오직 성경’은 자연히 ‘성경 전체’에 대한 관심에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성경 전체의 사상을 잘 반영하는 설교라야 하나님의 온전한 뜻(the whole counsel of God)을 전달하는 설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설교자가 성경적 사상과 성경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설교하고, 그리하여 성도들에게 성경적 사상과 성경적 세계관이 형성되게 하는 설교가 성경적 설교이다. 설교를 들은 결과로 우리의 사상이 성경적으로 변해야』한다. 우리의 세계를 보는 눈이 성경적인 것이 되어 가야 한다. 그러므로 바른 설교는 성경적 세계관을 형성하도록 하는 설교이다. 그렇게 하려면 설교자가 웅대하고도 바른 성경적 사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좋은 교회에서 그런 웅대한 사상을 가진 설교자들의 설교를 들으며 장성한 성도는 성경적 세계관이나 기독교 세계관 강의를 하나도 듣지 않아도 매우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의 설교를 듣고 성도들이 위대한 성경적 사상을 가지게 됩니까? 아니면 계속해서 좁은 세계에 사로잡혀 살면서 결국은 자신들의 유익만을 위해 하나님과 신앙을 이용하려고 합니까? 과연 성도들을 어떻게 인도하는 설교가 성경적인 설교이겠습니까?”
셋째로, 성경적 사상에 근거한 성경적 바른 실천(ortho-praxis)을 하도록 하는 설교가 성경적 설교이다. 우리의 성도들이 쯔빙글리의 설교를 듣고 그 예배당 안에 있던 상들(images)을 파괴하는 길에로 나아가던 것과 같이, 칼빈의 설교를 듣고 삶 전체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꺼이 헌신 하던 것과 같이, 청교도들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상점까지도 거룩한 곳으로 만들어 가던 것과 같이,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의 부활절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성경의 깊이를 절실히 느끼던 학생 메이쳔(Gresham Machen)과 같이 반응해갈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경적 설교는 교회를 성경이 말하는 교회로 바로 세우게 되고, 교회의 성원들이 교회의 지체 역할을 잘 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게 하는 결과를 내고야 만다.
2. 설교의 기능(function) 이해
성경적 설교는 설교의 내용이 본문이 이야기하는 것에 의하여 영향 받듯 설교의 기능도 본문이 무엇을 행하고 있는가의 의하여 영향을 받아야 한다. 본문이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는 역사적인 상황(Context)에 의해 알 수 있다. 즉 삶의 상황이다.
성경 해석을 할 때에 텍스트(Text)와 컨텍스트(Context)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텍스트는 “해석되기 이전의 원천”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책이다. 즉 설교의 원리이다. 컨텍스트는 “상황”, “맥락”을 말한다. 즉 우리의 개개인의 상황들이다. 설교는 하나님 말씀의 텍스트와 청중들의 삶의 컨텍스트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텍스트와 컨텍스트 사이의 긴장 관계를 통찰해야 하며 텍스트 중심으로 설교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현대 설교는 말씀의 깊이를 추구하는 것보다 청중 반응의 방법론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다분히 있음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의 텍스트와 컨텍스트가 균형적으로 해석되고 선포되는 설교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범이 아닐까 생각된다.
존 스타트(John Stott)는 ‘두 세계 사이에서’(Between Two Worlds)에서 “설교란 다리 놓기이다(bridge-building)이다. 참된 설교란 성경의 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에서 다리를 놓은 작업이다. 그리고 두 세계 사이에 동등하게 접지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올바른 설교란 성경의 세계에 대한 진리를 잘 석의하는 것 뿐 만아니라, 현실세계에 대한 적절한 적용이 있어야 참된 설교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자들이 알아듣도록 전하는 목회 행위인 설교는 말씀과 청중, 또는 텍스트와 컨텍스트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정통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은 말씀과 텍스트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고 현대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은 청중과 컨텍스에 무게를 두고 설교할 것이다. 어느 쪽이 옳은가, 더 중요한가 하는 문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텍스트와 컨텍스트 문제는 우리의 인식론적 편의를 위해서 구분했을 뿐이지 근본적으로 하나의 사태다. 텍스트는 늘 컨텍스트를 담고 있으면, 컨텍스트는 늘 텍스트에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호성 가운데서 접근하지 않고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설교를 하게 되면 근본이 취약해진다.
어떤 설교자는 성서 안에서 우리의 삶에 그 어떤 현실성도 없는 이야기만 전달하고 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서의 정보를 낱낱이 꿰고 있지만 이런 설교는 텍스트의 범주에 갇혀 있는 셈이다. 이런 설교는 청중들의 성서지식만 확대시키지 신앙의 성숙으로 끌어내지 못한다. 그런데 이런 텍스트 중심의 설교보다 훨씬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컨텍스트에 사로잡혀 있는 설교다. 이들은 성서 구절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요령만 모색한다. 구원, 성령, 기도, 믿음 등, 우리에게 익숙한 기독교적인 용어를 나열하면서, 실제로는 오늘의 부박한 시대정신이 자극하는 삶의 처세술을 선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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