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영성(호6:1-3)
낯선 곳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이정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정표가 부정확하거나 뒤바뀐 경우에는 고생을 하거나 아니면 엉뚱한 곳을 가게 됩니다. 길도 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는 나침반이나 레이더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약 나침반이나 레이더가 고장이 나면 그 배는 허송세월 후에 결국은 실망의 항구에 닻을 내립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의 인생길에 있어서는 '영성(영성Spirituality)'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영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믿음의 길이 바른가를 확인할 수 있는 이정표요 나침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잃어버린 영성의 회복이 중요합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대표작인 「레미제라블」(一名 장발장)의 탄생 배경입니다. 그는 본래 사생활이 문란하고 방탕한 문인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도 횡포가 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딸이 센느 강에서 익사체로 발견됩니다. 그는 딸의 시신 앞에서 오열합니다.
“내가 천하의 큰 죄인인데 네가 죽다니 ... 아아, 죽은 것은 내 딸이 아니다! 죄인 중에 괴수인 나의 죽음이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깊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방탕한 생활도 정리하고, 경건 생활에 열심을 냈습니다. 영성의 회복입니다. 그 후 그의 작품 세계가 완전히 달라졌고, 불후의 명작 「레미제라블」이 탄생했습니다.
체육학박사인 원정혜씨는 글 가운데서“분노가 심하면 간이 상하고 우울이 심하면 폐가 상하게 되고 공포가 심하면 신장이 상하게 되고 지나치게 골똘히 생각하면 비장이 상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평상심을 유지할 것, 스스로 돌아보는 여유를 가질 것, 늘 감사하고 작은 것에 행복해할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건강은 평범한 것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분노, 공포, 우울, 집착, 이런 것들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겪는 세상살이는 분노, 두려움, 우울 등이 겹겹이 싸여 있습니다. 결과는 신경성 질환이 날로 늘어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육체의 질병보다 영혼의 질병입니다.
하나님 섬기던 사람이 하나님 떠나는 것, 예수 믿던 사람이 다른 것을 믿는 것, 교회 나오던 사람이 교회 안 나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하는 것, 열심이던 사람이 게을러지는 것,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 쉬는 것, 교회봉사에 헌신을 다하던 분이 열정이 죽은 것 등 이런 것들이 바로 영혼이 병들었다는 증상들입니다.
그러나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상처를 입었든지 하나님은 우리들을 싸매 주십니다. 언제 어떻게 맞았든지 하나님은 고쳐 주십니다. 그것이 본문의 강조점입니다. 현대인은 상처가 많고 큽니다.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일하다가 상처받고 돈 벌다가 상처받고 여행하다가 상처받고 함께 살다가 상처받습니다.
그 상처를 달래고 고치기 위해 이불 뒤집어쓰고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도 있고 상담 전문가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약을 복용하는 사람도 있고 훌쩍 현장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내가 상처를 싸매주겠다. 내가 고쳐주겠다. 내가 책임져 주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고치리라 내가 싸매리라 내가 온전케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고치고 싸매시기 위해 예수님 자신이 찢기시고 상처 받으시고 아파하시고 마지막에는 죽기까지 하신일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까? 나를 싸매시고 고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신한은행에 민씨라는 지점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한은행 설립위원으로서, 실력이 뛰어난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오사카 지점으로 발령을 받아 해외근무를 하는 동안 실적이 부진하여 철저히 실패합니다. 다시 서울에 돌아와서 지점장을 맡게 되었지만, 그곳에서도 여전히 실적이 부진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그 은행에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는 징계의 의미로 금융연수원 파견연수 명령을 받게 됩니다. 철저히 밑바닥에 떨어지게 된 상황입니다. 그 동안 자기가 제일 잘나고 능력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 실패하고 연수원까지 떨어지자 그는 비로소 하나님 앞에 엎드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나는 인생의 밑바닥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교회에 나가서 성경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신한은행 명동 지점장 자리가 나오게 되어, 그는 명동 지점장으로 가게 됩니다. 그는 책상에 앉는 순간 먼저 두 손을 모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지점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이 은행의 지점장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모든 일이 주님 뜻대로 되게 하옵소서.』 그는 날마다 새벽 기도를 드린 후에 출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결정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뒤부터 영업 실적이 올라가서 신한은행 전체 300개 지점 중에서 1등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은행에 근무한지 30년 만에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어 은행장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시련과 연단 속에서 영성을 회복한 결과입니다. 한번 만에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서 한번쯤 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영성의 회복입니다.
회복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원래 좋은 상태로 되돌리거나 원래의 상태로 되찾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회복하면 건강의 회복, 경제의 회복, 관계의 회복, 사랑의 회복, 피로의 회복 등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분야는 영성입니다. 영성의 회복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본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 약 750년 전에 북쪽 이스라엘 나라에서 태어나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당시 팔레스틴 지방은 북쪽은 이스라엘 나라로 남쪽은 유다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남쪽이나 북쪽이나 도덕적으로 다 부패하여져서 퇴폐를 일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상거래는 극도로 문란한 상태였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있어서 심각하였던 것은 그들의 생활이 타락하기 시작하여 하나님을 떠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물질적인 풍요에 현혹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교만해졌으며 자기 편리주의에 맞춰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치시고 찢으실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못하고 범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치셨다가도 싸매어 주시고 우리를 찢으셨다가도 도로 낫게 해주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분야는 영성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때로는 징계하십니다. 징계 받을 때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문 1절에서 선포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이스라엘은 죄짓고 불의하고 방탕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저희들 삶 속에 큰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육신의 질병도 다가오고 환경의 저주로 말미암아 가난도 다가오고 많은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되는데 우리 인간이 얼마나 완악한지 죄를 짓고 또 지으면서도 돌아서지 않습니다. 그 죄의 구렁텅이 속에서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돌아오지 않습니다.
상처를 받고 있으면서 절망에 처해 울부짖고 있으면서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들을 징계하십니다. 사랑의 채찍을 때리십니다. 호세아 5장 14절에 보면 그들에게 마치 사자처럼 나타나셔서 징계하십니다.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께서 북왕국 이스라엘에게 먹을 것을 움켜쥐는 사자처럼 저들을 심판하시고, 남왕국 유다에게 원기 왕성하여서 그 갈기가 휘날리는 젊은 사자처럼 저들을 움켜잡고 저들을 찢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원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품으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치료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목자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경고하고 또 경고하고 또 경고해도 결국 돌아서지 아니 하면 그들을 심판하시고 그들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죄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첫 메시지가 무엇입니까?“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한 세례요한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길에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야 됩니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회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세 가지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첫째, 하나님께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 둘째,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경외하는 것. 셋째, 육신의 정욕을 죽이고 영을 살리는 것, 이것이 회개라고 말했습니다.
우린 연약하기 때문에 실수 할 수 있습니다. 범죄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빨리 빨리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회개하고 돌아옵니까? 회개하는 자의 올바른 믿음의 자세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에 온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셨던 로이 햇숀(Dr. Roy Hession) 목사님이 『갈보리 언덕』이라는 책에서 이와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죄를 회개하기 위하여 죄와의 투쟁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은 주님의 기준을 맞출 수 없습니다. 회개는 자신의 노력과 애씀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으신 어린양의 보혈의 피를 온전히 바라볼 때 가능합니다. 거기에는 아무 자격 조건 없이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시선을 자기와 세상에 두지 말고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바라보며 죄를 고백할 때 주님은 우리를 무조건 용서하시고 받아 주십니다. 죄를 진심으로 회개할 때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해서 주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이렇게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 주십니다. 우리를 치유해 주십니다.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에게 새 힘을 부여해 주십니다. 본문 1절 하반절부터 2절까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주님이 다시 우리를 일으켜 주십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회복시켜 주십니다. 주님 앞에 고침 받지 못할 질병이 없고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면 마음의 병을 치료해 주시고 육신의 병을 치료 해주시고 환경의 저주와 절망을 치료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 다시금 새로운 주님의 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셔서 믿음으로 전진하게 만들어 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 이십니다. 욥기서 5장 18절~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기근 때에 죽음에서, 전쟁 때에 칼의 위협에서 너를 구원하실 터인즉. 네가 혀의 채찍을 피하여 숨을 수도 있고 멸망이 올 때에도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가수였던 토니 폰테인이란 분이 계십니다. 그는 타고난 연예인으로서의 천부적 재능 때문에 부와 명예를 한 몸에 지녔던 사람입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세상 영화에 푹 빠져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뜻밖에 죽음에 이르는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갈빗대 일곱 개와 두 다리가 부러지고, 두개골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어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부인이 병상 곁에서 무릎을 꿇고, 울고 소리치며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이전에는 당신이 필요 없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남편을 살려주십시오. 이제부터는 주님을 열심히 섬기겠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노스 다코다에서 목사로서 구급선교회를 운영하던 그의 아버지가 달려왔습니다. 그도 그 아들의 회복을 위해서 3시간 반을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 아들에게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폰테인은 사경에서 의식을 되찾게 되고, 수술과 치료행위에 하나님이 회복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어간에 지난 어릴 때의 일들을 회상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토니야, 하나님이 너를 지켜 주실 거야."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라든지, 주일학교에서 열심히 성가를 불렀던 자신의 모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는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자신의 명예와 재산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서,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등졌던 허물들 때문에 울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생명을 한 번만 더 연장해 주신다면, 남은 생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회복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는 덤으로 주어진 자기 생명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성가만을 부르기로 결심하고, '하나님이 이끄시는 자녀들'이라는 성가를 불러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징계를 통하여 새 사람, 새 일, 새 목적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대체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모든 경우 아프고 상하는 일들로 가득 찬 곳입니다. 그 어느 환경, 그 어느 사건 하나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적으로 아프지 않고 상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세상 자체가 사실상 우리에게는 아픈 곳이고, 상처를 내는 곳입니다.
거기에다가 인생 된 우리 자신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가 있습니다. 성도의 연단을 위한 징계가 있고, 선민 구원운동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적 징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닌 하나님의 산물입니다. 심판과 진노의 산물이 아닌 축복의 산물입니다. 전화위복을 목적하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산물입니다.
우리는 확실히 압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줄을 확신합니다. 결국 30배, 60배, 100배를 계획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는 섭리적 수단임을 확신합니다. 바로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고, 상하게 하시다가 고쳐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 안에 있는 행복 말입니다.
상처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치유의 길이 있습니다. 회복의 영성입니다. 주님은 상처를 잃고 실족한 이들을 향하여 오늘도 이렇게 축복하며 권고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 살리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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