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예언서 설교원고

부흥을 원합니다(하박국3:1-3)-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8. 2. 11:09

부흥을 원합니다(하박국3:1-2)

 

 

설교; 주태근 목사

 

환자의 정신 건강 측정법이 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정성껏 치료한 다음에 환자가 어느 정도 건강하게 되면 퇴원을 시켜 집으로 돌려보내게 됩니다.

 

이 때 "이 사람을 돌려보내도 되는 것일까?" 혹은 "아무래도 미흡한데 아직은 돌려보내지 말까?" 하고 망설여질 때에 환자의 정신 건강 정도를 가늠하는 시험 방법을 개발한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개발한 정신 건강 측정방법은 이렇습니다.

 

그 환자가 있는 방에 수도 장치를 해놓고 수돗물 꼭지를 적당히 열어놓습니다. 수돗물이 졸졸졸 흘러내립니다. 물이 흘러 넘쳐서 방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괴면 환자에게 걸레를 주고 물을 닦으라고 시킵니다.

 

그때에 만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면 수도꼭지부터 먼저 잠근 다음에야 엎드려서 물을 닦게 됩니다. 환자가 이렇게 행동을 취하면 퇴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미흡한 환자라면 수도꼭지는 돌아보지 않고 방바닥에 괴어 있는 물만 열심히 닦는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판단입니다. 놀라운 진단요법입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지금 내가 당한 현실만 가지고 잘 됐느니 안됐느니, 살겠느니 죽겠느니 하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깊이 추적하고 찾아냅니다.

 

흔히 대한민국의 지난 60년대와 70년대를 일컬어 '부흥시대'라고 말합니다. 급속한 경제도약이 이루어졌고, 이에 발맞추어 교회도 수직 상승할 정도로 부흥되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부흥'이란 말이 주는 의미는 매우 단순했습니다. 그것은 곧 수()적인 증가를 의미했습니다.

 

국민소득이 증가했고 교회숫자나 교인 수가 불어났습니다이런 수적인 증가 현상은 90년대를 맞이하면서 주춤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둔화(鈍化)상태에 빠져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부흥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단순한 수적증가를 나타내는 것에서 나아가, '회복'(recover) '되살아난다'(revival), 또는 '각성한다'(awakening)의 본질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영어로 부흥(revival)이란 단어는 라틴어의 두 단어에서 온 복합어입니다. 하나는, '다시'라는 의미이며, 또 하나는 '산다'라는 두 단어로 되어 있어서. '다시 한번 살아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부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활동하심으로써 쇠퇴하던 것이 다시 한번 소성하게 되고,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산 것 같지 않은 그가 참으로 살아있는 존재로 소성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역사를 운행하시고 자연의 모든 질서를 차질 없이 주관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이 살고 있는 세속 역사는 끊임없이 타락하고 더욱 강팍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 의하여 환경 오염은 날로 심각해져가고 있으며, 인간들은 점점 그 창조의 모습을 상실해 버리고 하나님과 더욱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이 발달하고 생활의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누구나 불안을 느끼며 만족하지 않으며 이기주의로 인해 무엇이든지 자기 멋대로 하려는 독선에 빠져 있습니다.

 

생각하면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때 예수님 오시기전 약 600여년 전 말할 수 없이 타락한 유다국을 향하여 경고의 나팔을 불렀던 하박국 선지자의 그 타는 듯한 외침을 듣는 것이 부흥을 갈망하는 성도들의 도리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박국 선지자의 외침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외침이 담고 있는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재건이니, 개혁이니, 혁명이니 하는 말은 많이 써도 부흥이라는 말은 별로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는 기도할 때, 특별히 이 부흥’, ‘Revival’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부흥케 하옵소서라는 말은 다시 크게 번창케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하시고 주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학사전은 "종교적 문제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이 주어지고 현저하게 신적인 능력과 은혜가 나타나 신자들을 일깨우고 낙심자들을 돌아오게 하며 중생하지 못한 자를 일깨워 믿게 하고 확신을 갖게 하며 회심하게 하는 기독교공동체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명칭"이라고 신학적인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유다왕국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의를 행함으로 물질적인 번영과 영적인 부흥이 점점 쇠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드려진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입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유다 백성들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로 수년 내에 부흥케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우리의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말씀입니다. 본문 2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문에 나타난 '부흥케 하옵소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예후'라는 동사가 쓰였습니다. 이 말은 문법적으로 '하야'라는 동사의 명령형입니다.

 

여기서 하야라는 동사는 '살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미 생명이 주어졌는데 이것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상태에서 다시 이 생명이 활발하게 일어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장작불이 꺼져가고 있을 때 기름을 부어 그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부흥케 하옵소서라는 기도문은 꺼져 가는 등불과 같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다시 부강한 나라로 일으켜 달라는 간구의 내용입니다.

 

아마도 하박국 선지자는 다윗의 시대를 기억하면서 다윗 시대의 그 영화를 회복시켜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보면 < 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일이 부흥하기를 소리 높여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일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구원 사역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 깊게 이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하박국의 외침의 핵심이 주의 일이 되살아나게 해달라는 것이란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주의 일 부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란 의미입니다. 주의 일만 부흥하면 다른 문제는 다 해결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유다왕국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 타락과 강포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다가오는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주의 일이 부흥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하박국은 저토록 애타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박국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던 그 밑바탕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부흥을 원하시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고 지금도 이스라엘 부흥을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이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본문1:2를 보면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니이까. 내가 강포를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본문1:13을 보면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외면하셨을 줄 알고 자기들을 버리셨을 줄 알고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세 번의 하나님과의 대화를 통해 믿음의 눈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기도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부흥케 해 달라고 기도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영적으로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의 부흥, 우리 가정의 부흥, 우리 교회의 부흥을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변의 상황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대적들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뒤에서 우리를 돕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염려하고 그래서 불안해합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을 때 다른 사람들은 골리앗만 보았습니다. 그 거대한 모습, 그 놀라운 힘, 그 호령하는 소리 이런 것만 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영적비전입니다.

 

'영적비전'이란 글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펼쳐갈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전'은 망상이나 공상과 다릅니다.

 

망상이나 공상은 자기의 욕망을 기초로 해서 자기의 화려한 미래를 꿈꿔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들은 현실을 보는 순간 다 날아가 버립니다. 부질없는 일장춘몽이요 백일몽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비전은 다릅니다. 현실을 보아도 날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함께 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교회의 부흥을 위해 일하고 계시고 우리를 돕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의 영적 부흥과 가정, 사업의 부흥을 위해 일하고 계시며 우리의 부흥을 원하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선민 유다왕국에 주의 일이 심히 침체되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하박국 선지자는 1:1-4절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의 묵시로 받은 경고라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 하시나이다. 어찌 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잇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 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하나님의 선민 유다왕국에 나타난 것이 무엇입니까? 하박국 선지자의 눈에 비친 유다왕국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강포와 간악, 패역과 겁탈 그리고 변론과 분쟁입니다. 그래서 본문4절에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선민 유다왕국에서 하나님의 법이 멸시를 당하고 악이 판을 치는 세상을 보게 됩니다. 실로 유다왕국에 주의 일이 침체되고 말았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선민이 이지경이 되었습니까?

 

오늘 이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 침체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 교회를 포함한 이 땅의 교회들은 침체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들의 영적상태가 침체상태는 아닌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의 삶 속에서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법이 해이해지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의 공의가 외면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박국의 외침이 하박국의 슬픔이 나의 것, 우리의 것이 아닌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박국이 부흥을 위해 기도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흥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특별히 2:4를 보면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다스리시고 앞길을 여신다는 믿음, 이 믿음이 하박국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한 것입니다.

 

유명한 독일의 음악가인 하이든을 모두가 알고 기억합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어느날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통의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증오, 경제적인 궁핍, 창작활동에 대한 무력감을 느낄때 어떤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는가?”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비법을 공개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독한 술을 마시고 잊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에게 고통을 호소합니다. 어떤 사람은 증오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내 뱉어 버립니다.

 

그런데 하이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작은 골방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은 나의 기도실입니다. 나는 고통이 닥치면 조용히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 골방에서 나올 때에는 희망의 빛을 발견합니다.”

 

그는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기도할 때마다 새로운 힘을 얻고 그의 심령은 새로워졌습니다. 기도는 그에게 있어서 어둠을 쫓고 고통의 주름살을 제거하는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기도할 때 그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이겨나갈 수 있는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령에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스미스라는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미스 목사는1800년대 활약했던 미국의 유명한 부흥가입니다. “목사님, 어떻게 해야 우리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겠습니까?

 

스미스 목사가 대답했습니다.

 

방문을 잠그고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리고 분필로 당신이 앉은 자리 둘레에 원을 그리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부터 부흥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당신이 부흥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할 때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이 일어나기를 원하시면 먼저 마음속에 부흥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여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심령이 부흥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말로만 부흥, 부흥하지 마시고 부흥을 위해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심령마다 만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게 사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망하게 되었습니다. 집을 저당 잡히고 친구의 보증을 섰는데, 친구의 사업이 잘못되는 바람에 자기 집까지 날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가깝게 지내던 친구로 인해 망하게 되어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낙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새롭게 재기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자기를 도울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평소에는 새벽 기도도 한번도 안 나가던 사람이 매일 새벽 기도를 나갔습니다. 철야 기도도 안 나가던 사람이 철야 기도도 나갔습니다.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이제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기적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미 나간 돈이 어떻게 다시 들어오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주변 사람들도 만약 이 상태에서 저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진짜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한 지 한 1년쯤 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자본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평소에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장난감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자기 집의 방 한 칸을 장난감 가게로 개조했습니다. 두 평도 안 되는 조그만 가게에서 배추머리인형이라는 아주 못생긴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대개 인형이라고 하면 예쁘게 생긴 인형을 생각하지만, 그는 아주 못생긴 인형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못생긴 인형을 사러 동네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못생긴 인형을 보고 그래도 자기는 잘 생겼다는 위안을 받으려는 심리 때문인지 아이들은 배추머리인형을 많이 사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인형의 총판권을 따냈습니다. 가게가 점점 자리가 잡히고 일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부족한 상태에서, 연약한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믿음을 주시고 다시 사업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다시 재물을 주시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박국의 부흥은 소생시키는 것과 새롭게 하는 부흥입니다. 죽은 마른 뼈도 생명을 얻는 부흥을 주님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의 심판을 베푸시기 위하여 그리고 은혜와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나타나십니다.

 

우리는 오늘의 부흥을 구하십시다. 부흥의 때는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오늘입니다. 오늘의 부흥을 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부흥의 불씨입니다. 우리의 기도로 원수 마귀를 이기고 부흥의 불을 붙입시다.

 

여러분 하나 하나의 심령에 불을 붙이고, 교회에 함께 모여서 더 큰불이 되 게 하는 것입니다. 이 불은 계속 번져 가고 커져가야 합니다. 이 부흥으로 우리와 우리 민족과 이 세계가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