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예언서 설교원고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단 3:13-18)-목사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7. 24. 12:21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에게 비신앙적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여깁니다.

 

나 자신과 어떤 것을 요구해도 언제나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만 구하고, 자기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 옵니다. 진정한 신앙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신뢰하고 믿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뜻대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계획과 섭리에 따라 항상 일하십니다. 이것을 일컬어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나의 행동과 태도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를 해도 세세하게 열심히 기도하면 더 잘 들어주신다고 믿습니다. 교회 일에 소홀히 하면 하나님은 화를 내시고, 헌금을 안 하면 물질에 손해가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신실하시다 는 것은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해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진행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변함이 없으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릅니다.

 

성경 속에 대표적인 신앙유형의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이라는 인물입니다. ''은 동방의 의인이었고 큰 부자였습니다. 어느 날 하루아침에 자녀 열 명이 모두 죽고 재산과 건강마저도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 아내는 그의 남편에게 충고합니다.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느뇨?.. 그래도 순전을 지키겠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라!이러한 아내의 충고에 남편 ''은 대답합니다.하나님께 복을 받았은 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은 신실한 하나님을 변함없이 의지하였습니다.

 

또 다른 인물이 있습니다. '야곱'이라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지능이 뛰어나고 어떤 면에서는 간교한 사람입니다. 야곱의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많아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맏아들 '에서'에게 "들에 나가 사냥을 하여 좋은 음식을 가져 오라! 그것을 내가 먹고 너에게 축복을 하겠다"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동생 야곱이 알게 되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의 요청대로 사냥을 나갔지만, 집에 있는 '야곱'과 그의 어머니 '리브가'는 계략을 좇아 양을 잡아 별미를 준비하고, 야곱을 '에서'로 분장시켜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여, 차자인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대신 받았습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장남 '에서'는 심히 분노하였고 '야곱'은 살의에 가득 찬 형 '에서'를 떠나 멀리 도피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집을 떠난 야곱은 얼마쯤 가다가 해가 지자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돌을 베개로 삼고 누워 잠을 자던 중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본 꿈의 내용은 큰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았고 천사들이 사다리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는 꿈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야곱은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께 서원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그리스도인 가운데에는 두 종류의 신자가 있습니다. 욥과 같은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자와 야곱과 같은그리 하시오면의 신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게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나는 하나님을 섬기겠나이다 하는 신앙의 가치관을 가진 성도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주실 뿐 아니라 복을 주시면 그 분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나는 하나님을 잘 섬기겠나이다하는 그리 하시오면의 조건부 신앙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앙으로 승리한 인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사드락과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 이 세 사람은 현대를 사는 신앙인 들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이 세 사람은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지만 그곳에서도 인정을 받아 바벨론의 높은 관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에게 사랑을 받아 늘 가까이서 그 나라 정치에 꼭 필요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이 자신의 왕권의 위대함을 과시하고자 거대한 금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풍악소리에 맞추어 이 거대한 금우상 앞에 엎드려 절하도록 명하였습니다.

 

만약에 이 일에 순종치 않는 사람은 왕권에 도전하는 것으로 여겨 극한 풀무불 구덩이에 산채로 던져 넣겠다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사드락과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는 왕의 그 어떤 것도 순종할 수 있었지만 이것만은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결코 따를 수 없는 왕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방 땅에 끌려와서 그들이 포로로 살아가는 신분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오직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태도는 신앙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왕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같은 사실이 고발되어 느브갓네살왕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세 젊은이를 아끼고 사랑하였던 왕은 그들을 한편으로는 달래고 한편으로는 순종치 아니하면 극렬히 타는 불구덩이 속에 던져 넣겠다고 위협을 하였습니다.

 

그때에 이 세 젊은이들은 자신의 생사를 주관할 수 있는 왕 앞에서 자신들의 왕을 향한 충성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 일은 왕께 대한 충성과는 관계가 없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신앙에 위배됨으로 순종할 수 없음을 분명히 고백했습니다.

 

첫째, 어떤 우상에게도 절할 수 없습니다. 둘째, 어떠한 풀무불 속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셋째,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우리의 믿음을 절대로 버릴 수 없습니다의 고백입니다.

 

왕은 노발대발하여 이들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한 풀무 불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던져진 그 풀무불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하심을 받게 되었고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은 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놀라운 기적의 사건으로 느브갓네살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게 되었고 바벨론 온 백성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 세 젊은이는 그 어려운 지경에서 구원을 받고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까? 무엇이 이들을 그 죽음의 자리에서도 굳굳하게 서게 했으며 신앙인 다운 기질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까? 그들은 하나같이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앙은 비록 하나님께서 풀무불 가운데서 우리의 육신을 구해주지 않을지라도믿음입니다. “우리가 풀무 불에 생명이 끝난다 할지라도주님을 포기하지 않는 굳건한 신앙입니다.

 

복음송가 찬미예수 39장에는 오늘의 본문을 말씀을 가지고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라는 찬양곡이 작곡되어 있습니다. 가사의 내용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합니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감사해요 주님 뜻을 믿기 때문이죠,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사랑해요 합력 하여 선을 이루어요, 언제나 나를 향한 신실한 사랑 우리를 향한 그 크신 사랑, 우리가 함께 높이며 주를 찬양해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아멘.

 

간혹 보면 얄팍한 자기의 계산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축복을 받겠지!. 예수 믿으면 좋은 것이 일어나겠지!. 예수 믿으면 이런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겠지!.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우리는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우리는 하나님을 믿겠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비록 나의 건강이 회복되지 아니해도 나는 그리스도만 믿노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비록 나의 가정에 문제가 온다 할지라도 나는 그리스도만 믿겠노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나의 사업에 내가 원하는 것만큼의 복이 없다고 할 지라도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 되겠다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심지어 나의 미래가 그렇게 보장된 미래가 아니라 할지라도 나는 오직 그리스도만 믿겠노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참 믿음이요 동기 없는 믿음입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비서 새가 있다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하늘을 곧잘 날고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벌레를 잡기도 하고 또 노래를 합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위기를 만나게 되면 날개가 꽁꽁 얼어붙고 온몸이 마비가 되어 다른 짐승들의 밥이 된다고 합니다.

 

믿음 생활하는데 꼭 비서 새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감사도 하고 찬양도 하고 곧잘 예배도 합니다. 그러나 생의 위기를 만나게 되면 신앙생활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 신앙을 지키기가 어려운 때를 만나곤 합니다. 우선 삶이 너무 평안할 때, 우리는 영적인 무관심과 영성 마비의 때를 만날 수 있습니다. 반면 삶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도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련한 등반 가의 진가는 야산을 오를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험산 계곡을 지날 때에 비로소 발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뱃사공이 능숙한 사공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고요한 바다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 흉흉할 때 비로소 알 수가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평탄할 때는 그 신앙의 진위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극심한 환란과 시련 그리고 도전에 부딪혀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드락과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는 환란중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난 신앙을 가진 분들입니다.

 

한국 코미디 계의 대부이며, SBS 방송초기 코미디 전망대 진행자 였던 김경태 장로님은 말년에 간암으로 투병생활을 하셨습니다. 죽기 전날 가족예배를 드렸던 기도의 내용이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하나님, 제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터인데 죽음을 두려워 하리이까? 하오나 이 고통이 너무나 극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입술로 범죄 할까 두렵습니다. 못나도 장로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까 두렵습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시간마다 찾아오는 고통 때문에 몸부림을 치면서 살아왔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가릴까 두렵사오니 이 고통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이 고통 가운데도 당당히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고 사랑스런 내 자녀들에게 우리 아버지는 그토록 처절한 고통 가운데서도 당당히 아버지의 영광을 찬송하며 갈 수 있었다는 기억을 남기게 해 주옵소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고통이 제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나는 주님 앞에 감사하며 눈을 감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저는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세 청년을 풀무불 속에서 끄집어 내지 아니하였더라면 과연 그들이 어떻게 응답했을까? 그 대답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틀림없이 풀무불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며 기쁘게 순종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물어 보십시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참으로 당신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당신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당신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까?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까?

 

한 병실에 중환자 둘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창가에 자리잡았고 하나는 문 쪽에 자리잡았습니다. 창가에 자리잡은 환자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서 창 밖을 쳐다보는 것이 하루의 최고의 일과였습니다.

 

창 밖을 볼 때마다 미소를 지으며, 하나님이 오늘도 좋은 날씨를 주셨군요. 지금 아이들이 놀고 있어요, 분수대에서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하늘은 푸르고, 사람들이 밝게 지나갑니다, 하고 늘 말하면서 하루를 복되게 보냅니다. 오늘은 어땠습니다. 오늘은 이렇습니다. 하면서 계속해서 재미있게 밖의 모습을 다른 환자에게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 옆의 환자에게 매일같이 밖의 일을 설명하면서 이르기를, 빨리 회복이 되어 이 광경을 꼭 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때마다 그 문쪽 침대에 있는 또 다른 중병환자는 그 창가의 사람이 부럽기만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일어나지 못하는 중병환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문 쪽에 있는 환자는 '언제 나도 저 창가에 앉아 저 밖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나. 아마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그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 동안에 그 창가에 있는 분이 많이 좋아지더니 병원을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문 쪽에 누워 있던 중병환자는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해서 이제 침대에서 일어나 앉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간호사가 소원대로 창가로 침대를 옮겨 주었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서 나도 밖을 바라볼 수 있구나 하며 자리를 옮기었습니다. 그러나 그 환자는 깜작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이런!" 밖에는 뜻밖의 딱딱한 콘크리트 빌딩 벽만 보이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늘도 볼 수 없고, 분수는 물론 없고, 아이들, 사람들 아무도 없는 병원 뒤쪽 벽만 있는 꽉 막힌 벽이었습니다.

 

그 때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원래 여기 있던 그분 요, 얼마 살지 못해 죽을 사람인데 저렇게 살아서 나갔으니 기적이에요.” 그 말을 듣자 이 환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아요, 저 사람은 자기도 살고 나도 살린 사람입니다. 저 콘크리트 벽을 쳐다보면서도 그는 분수를 보았고, 사람들을 보았고, 웃음을 잃지 않았으니까요. 그 덕분에 나에게도 이렇게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준거 에요.”

 

그렇습니다. 환경이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대로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렇게 이미 해주신 것처럼 믿는 신앙, 이것이 바로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앙입니다. 눈앞에 이익에 복된 장래를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항상 말씀 안에 굳게 서시기 바랍니다. 불신앙과 부정적인 생각으로 인생을 승리하는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작은 일에 낙심하고 주저앉는 나약함과 깊은 열등감들도 풀무불 속에 던져 버리기 바랍니다. 언제나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의 신앙으로 일어서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오늘도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로마서 8:31-3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