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역사서 설교원고

아이성 재공략(수8:10-17)

주 바나바 2019. 10. 25. 19:34


아이성 재공략(8:10-17)

 


주 바나바 목사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5월 대한민국 국군은 역사상 씻을 수 없는 치욕적인 패배를 경험합니다. 중공군 1개 대대의 포위작전으로 인해 중무장한 1개 군단이 궤멸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역사가들이 현리참극이라고 부르게 된 이 전투는 당시 군단장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이 발단이 됐습니다.


아군의 주요 교통로인 오마치 고개를 적군에게 점령당했다는 보고를 접한 군단장은 부대를 내팽개치고 도주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군단장이 도망갔다는 소식은 산불보다 빨리 퍼졌고, 군단은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둘 탈영병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군단 전체가 지휘체계를 무시한 채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사들은 물론 장교까지 계급장과 무기를 버리고 도주했습니다. 결국 한국군 3군단은 병력의 30%, 보유장비의 70%를 잃었고 부대가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미군 사령관인 밴 플리트는 한국군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한국군 1군단을 제외한 모든 부대는 미군 사령부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도록 했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짓을 저지른 L장군은 미군의 잘못 때문에 패배했다고 핑계했습니다. 미군 작전지역으로 중공군 특수부대가 침투해 군단이 포위됐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전쟁에는 한 사람의 지휘와 리더십으로 이기는 전쟁도 있지만 한 사람의 실수로 패배하는 전쟁이 있습니다. 아이성 1차 공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아간의 죄로 인하여 아이성 1차 공략에 패배한 이스라엘 공동체는 낙심과 절망감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패배의 원인을 발견한 즉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의 물건을 취한 아간을 아골 골짜기에서 처형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다시 한 번 그를 격려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를 거두시고 그들에게 처음과 같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찾아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다시 군사를 이끌고 아이로 올라가라 아이 왕과 그의 백성을 네 손에 넘겨주었노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언제나 변함없이 처음같이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영원히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한번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영원히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언제든지 주님의 은혜의 자리에 나아가 회개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처음처럼 새로운 은혜를 준비하시고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부끄러워 마십시오. 과거에 죄를 지었다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주께 나와 회개하면 다시 일어서고 회복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장면은 이스라엘이 1차 아이 성 전투에서 맛본 치욕스런 패배를 깨끗이 설욕하는 장면의 기록입니다.

 

하나님은 1차 공격 때와는 달리 이번 공격에는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아이 성을 점령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아이 성을 점령하기 위해서 성 뒤에 군사를 숨겨 놓고 매복 작전을 사용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 전쟁에서는 성 주위를 돌게 하여 기적적으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이 성 전쟁에서는 매복, 유인, 그리고 협공작전을 사용해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3만 명의 군사들을 동원해서 전투에 임하게 하셨습니다. 마치 손자병법을 기억하도록 만듭니다. 손자병법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쟁이란 속이는 수단을 써야만 한다. 그러므로 능력이 있으면서도 없는 듯이 보이며 사용할 것인데도 사용하지 않을 것처럼 보여 준다. 가까운 것인 데도 먼 것처럼 보이며, 먼 것인데도 가까운 것처럼 보여 준다그리고 말하기를 적이 유리한 입장이면 딴 곳으로 그들을 유도하고, 적이 혼란하면 공격하여 정복하라. 그리고 적이 강하면 이들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아이성 점령이 제 2의 작전에서 사용된 적의 유인 전술이 바로 이 손자병법의 적응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위장전략을 사용하시는 가입니다. 그러나 장로교 창시자 칼빈(Calvin)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모든 전쟁은 반드시 공격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군사력보다는 지략으로써 승리를 거두는 장군이야말로 진정 최고의 지휘관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 전쟁이 조약이나 휴전 및 동맹의 파기 등과 같은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가 아니라면, 전쟁시 전략. 전술을 활용하는 일은 결코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섭리에는 두 가지가 있음을 말합니다. 하나는 여리고성이 쉽게 무너져 전투에 승리하는 기적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특별은총의 분야입니다. 다른 하나는 전술과 전략으로 싸워서 이기는 아이성 전투는 바로 일반은총의 분야입니다.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한 가지 이야기를 주목합니다. 병원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응급실로 20대 여자가 진료 받으러 급하게 달려 왔습니다. 아침부터 눈이 갑자기 보이지 않아 동네 안과에서 망막박리라는 진단을 받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온 것입니다.

 

환자를 맞이한 응급실 담당 의사는 아직 초기 상태라 응급수술을 하면 시력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어 급히 안과 당직 의사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환자가 자기와 함께 온 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병원의 지시에 따라 응급수술을 받자고 하는데 교회 청년부 임원이라는 환자는 수술을 받지 않고 목사님께 안수기도를 받겠다며 버티고 있었습니다. 상당 시간 실랑이를 벌인 후 결국 청년이 설득되어 응급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청년에게 있어서 기도로 고치는 방법이 특별은총이고 의사와 아버지의 수술 방법은 일반은총의 방법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특별은총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내린 은총을 말합니다. 믿음을 통한 초자연적인 질병 치유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 많이 나타나 있습니다.

 

반면 일반은총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내린 은혜를 일컫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에게도 공통적으로 내린 은혜로, 현대 과학의 발전을 비롯한 의학의 발전 역시 일반은총의 영역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이해가 있습니다.

 

기도나 기적을 통해 병 고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의학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사람들의 노력이기에 비신앙적인 방법으로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이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현대의학이라는 방법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바로 일반은총의 분야입니다.

 

어찌 하나님 은혜 없이 페니실린과 아스피린을 개발해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고 새로운 수술 방법을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 은혜 가운데 발전한 현대의학을 통해 병고침 받는 것을 비신앙적이거나 믿음이 약한 행위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 일부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쪽으로 사용되는 예가 없지 않지만, 과학의 발전 자체는 하나님의 일반은총 아래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은총의 분야인 자동차를 이용해 먼 거리를 효과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처럼 의학을 이용해 병이 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약을 의지해 병을 치료하는 것이 믿음과 정신력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약을 의지하지 않고 믿음으로 이기겠다고 말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은총을 특별은총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현대 의학의 산물인 약을 의지해서 병을 치료하는 것 역시 일반은총의 분야이기에 하나님 은총의 분야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병고침 사역은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사역과 더불어 그분의 메시아 되심을 드러내는 중요한 사역이었지만, 예수님이 병고침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셨지만, 예수님이 살아계신 당시에도 모든 믿는 사람들의 병이 기적을 통해 치유함 받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별은총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방법으로 병고침 받은 경우가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특별은총의 신유 역사와 일반은총의 의료를 통한 치유는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기적을 체험하는 것이 좋은 믿음을 대표하는 것도 아닙니다. 피조물인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법칙과 질서를 존중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특별한 것을 좋아합니다. 신앙도 특별해야 믿음을 가집니다. 그래서 신유나 기적 등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것은 일상화시키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숙이란 특별에서 보통으로 가고, 기적에서 일상으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특별에만 머문다면 향상이 없습니다.

 

여리고성의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에 의한 특별은총의 사건입니다. 일종의 기적을 통한 특별한 승리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전투 아이성에서는 매복과 유인, 그리고 협공 전략 등에 의해서 승리하게 됩니다. 일반은총의 결과입니다. 기적에서 일상의 전략으로 바뀌었습니다.

 

믿음 생활을 처음 할 때에는 많은 기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신앙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씨를 위해서 기도해도 응답되는 예가 많습니다. 유치해 보이는 기도를 해도 응답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이 어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특별하게 다루십니다.

 

성령의 특별은사에는 많은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은사들 중에 방언에 대한 기사를 살펴보십시오. 고린도전서1422절입니다.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믿음 없는 자를 믿음으로 세우기 위해 특별은혜가 주어 졌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과 원리에 의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특별은총에서 일반은총으로 전환되는 은총입니다. 여호수아서를 묵상해 보십시오. 광야에서는 이스라엘에게 하늘의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특별은총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농사지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하늘의 만나는 그쳤습니다. 이제는 농사지어서 먹고 살라는 뜻입니다. 특별은총의 삶에만 안주하지 말고, 일반은총 속에서 땀 흘리며 열매를 거두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노력할 분야에는 노력하고 수고해야지 공짜인생처럼 매일 기도하면서 자기에게만 기적을 구하는 특별은총의 신앙은 큰 믿음인 것 같지만 성경적인 바른 신앙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시편기자도 말했습니다. 시편373절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에는 제법 많은 기적들이 나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독사에게 물려도 죽지 않고 옥에서 묶인 쇠줄이 풀어지는 등 특별은총의 사건들이 선교현장 곳곳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서신서에 가면 기적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말씀으로 대체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제는 말씀을 붙들고, 원리를 의지하여 살라는 뜻입니다. 특별은총만이 하나님의 은총이 아닙니다. 일반은총도 역시 하나님의 은총이기에 얼마든지 일반은총으로도 인생을 승리하며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과부들 사이에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구제 때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6:1절입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라고 말합니다. 초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구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헬라파 유대인은 각처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이들을 헬라파 유대인들이라고 말합니다. 히브리파 유대인은 말 그대로 히브리 민족,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서 자라난 본토박이들을 말합니다.

 

당시에 교회가 구제하는 일을 주로 하였는데 워낙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본의 아니게 구제 받는 사람은 더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못 받는 사람은 아주 못 받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본토박이들은 많은 혜택을 누리는데 반하여 헬라파 사람들의 과부들은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망과 시비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구제라고 하는 이름으로 교회가 헬라파와 히브리파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초대교회가 어떻게 해결해 나갑니까? 교회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처리하지 않고, 직원 즉 집사를 세우는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합니다. 특별에서 일상으로 변화입니다.

 

우리들은 여리고 전법밖에 모르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냥 여리고를 돕니다. 단순히 믿음으로 이룰 수 있다는 믿음 지상주의로 나갑니다. 물론 이런 방식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전략을 추구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특별은총의 힘에서 일반은총으로 가야 합니다.

 

기적을 맛보았으면,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일상의 능력을 기르는 데는 현장만큼 좋은 곳이 없습니다. 전략과 전술을 습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학생이 공부만 한다고 삶이 보장 된 것이 아닙니다. 사회를 알아야 합니다. 현장입니다. 사회생활은 지식만 평가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의 인격, 그의 태도, 그의 근면성, 그의 관계성이 모두 철저하게 평가받습니다. 특별은총만 바라보지 맙시다. 일반은총도 하나님은 은총의 분야입니다. 일반은총 속에 산다고 특별은총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여리고 작전도 필요하지만 아이성 작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백화점 사업에 뛰어들었던 J. C. 페니는 40대에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으로 모든 것을 잃고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빠른 성공이 되레 큰 상실감이 되어 병까지 얻어 입원을 하였는데, 백만장자가 이제 병원비까지 걱정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페니는 너무 실망한 나머지 자살을 결심했는데, 어느 날 아침 페니의 귀에 찬양이 들렸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주시리이 찬양에 감동을 받은 페니는 병원교회를 찾아가 엎드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는 기도응답을 즉시 받았습니다.


병이 치유되었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는 재기하여 유명한 기독교 CEO로 재도약할 수 있었습니다. 페니의 승리비결은 무엇입니까? 특별은총과 일반은총의 적용입니다. 기도로 특별은총을 힘입었고 최선을 다해 재기함으로 승리했습니다. 일반은총의 결과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이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잠언23:17-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