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학 강의록

설교신학의 기초 / 설교의 다양성-교수 주태근

주 바나바 2022. 7. 21. 09:40

설교학 강의록(2) : 교수 - 주태근

 

3. 설교신학의 기초

 

신학은 교회의 복음선포 사역에 봉사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칼 바르트(Karl bar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설교는 오류가 많은 인간의 일이기에 신학이 필요하다. 신학은 설교가 진리와 순수함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 설교를 섬기고 있다. 신학은 설교의 케리그마가 정통성이 있는지를 검사한다.” 바르트는 신학의 책임은 교회의 복음선포 사역을 성찰하고 비평적으로 논평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즉 신학은 교회의 설교가 성서의 증언에 신실한가를 검토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죤 스토트(John R. W. Stott)현대교회와 설교(The Art of Preaching in the Twentieth Century Between Two Worlds)란 책에서 설교자의 신학이 설교의 방법론에 앞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설교에 대한 신학이 없이, 설교 방법에만 치중하면 설교자는 연설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성경을 잘 풀어내는 설교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와 설교자가 설교를 포기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에 따르면, 설교자가 설교에 대한 분명한 신학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설교자가 왜 설교를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죤 스토트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을 위해 성경적인 설교를 할 수 있기 위한 다섯 가지 확신을 설교신학으로 제시한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신념이다. 설교에 대한 행위 이면에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 즉 그의 존재, 그의 행위, 그리고 그의 목적에 대한 어떤 신념이 있다. 우리가 믿는 신관에 따라 우리가 전하는 설교의 본질이 결정된다. 죤 스토트는 현대 신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역사적 활동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역사적인 행위뿐 아니라 설명적인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확신하지 못한 설교자라면 입을 다무는 편이 더 낫다고 한다.

 

둘째, 성경에 대한 확신이다. 죤 스토트는 성경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은 여전히 그가 말씀하신 것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함을 말한다. 설교자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심을 확신하지 않는다면, 그가 전하는 하나님은 죽은 존재나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수세기 전에 말씀하신 하나님이 오늘날에는 침묵하고 계신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셋째, 교회에 대한 확신이다. 그는 또한, 교회가 말씀에 관한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죤 스토트에 따르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교회를 지으시고 지금도 말씀으로 교회를 유지시키시며 지도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개혁하시며 새롭게 하신다. 설교자의 임무는 말씀을 통해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넷째, 목사 직분에 대한 확신이다. 죤 스토트는 목사직이 하나님께서 교회에 세우신 영구적인 특수 직분임을 강조한다. 목사는 가르침과 설교를 통해, 주님의 성도들을 주님의 몸으로 온전히 세워가는 주님께서 세우신 특별한 직분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설교에 대한 확신이다. 죤 스토트는 모든 설교자들은 해설적설교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해설이란 무엇인가? 본문의 내용을 끌어내어 그것을 볼 수 있도록 노출시키는 것이다. 본문이 길든지 짧든지, 성경 해설자인 설교자는 가감 없이 본문의 메시지를 확실하고 명확하며 정확하고 적절하게 전달하도록 본문을 개방하라고 주문한다. 해설적 설교는 설교자로 하여금 성경 본문으로 설교를 한정하게 하고, 정확한 성경적 설교를 하도록 성실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 또한 설교자가 본문의 의미를 벗어날 부주의와 본문의 의미를 왜곡할 함정을 줄일 수 있게 해 준다.

이상의 것들이 설교의 사역을 위한 신학적 기초이다. 하나님과 성경, 교회, 목사의 직무, 그리고 성경의 해설에 관한 이러한 진리들은 분명히 설교자의 흔들리는 우리의 확신을 보강하여 줄 것이다.

 

4. 설교의 다양성

 

설교사역에서는 자연적으로 설교의 형태가 어느 고정된 틀에 머물지 않아야 함을 느끼게 되었고 여러 형태를 개발하게 되었다. 설교 사역에 임하는 설교자들은 최소한 기본적인 설교의 형태를 익히고 그 형태를 준수하는 훈련을 우선적으로 쌓아야 한다.

 

1) 설교의 기본유형

 

유명한 수사학자였던 어거스틴이 말씀의 종으로 변화되어 펴낸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는 최초의 설교학 교재였다. 그 책에서 설교이론이 수사학적으로 접근하였음을 보게 된다. 실질적으로 설교는 어떤 수사학적 이론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4세기의 크리소스톰, 13세기의 아시스의 프란시스, 그리고 16세기의 루터, 칼빈, 츠빙글리와 같은 설교가들을 비롯하여 그 이후의 설교의 거성들이 수사학적 이론이나 규칙을 가지고 설교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설교학이 발전을 하면서 역사적인 설교들을 모아 연구 분석을 거듭한 결과 설교 유형들을 본문설교, 강해설교, 주제설교 등으로 구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문설교(Textual Sermon)

 

본문설교(Textual Sermon)는 어떤 유형의 설교보다도 본문의 정황(context)을 비롯하여 핵심단어와 문맥의 분석을 철저히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의 길이를 5절 이내로 한다. 이러한 본문연구 과정을 거쳐 설교의 주제와 주안점(대지)들이 본문에서 발췌되도록 한다. 따라서 메시지의 핵심이 본문에서 나와 회중들이 본문과의 만남을 가져오도록 한다. 이 유형의 설교가 가져온 장점은 무엇보다도 설교자가 자신의 개인적인 사상이나 경험 위주를 벗어나 본문 위주로 설교를 구성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산만하고 잡다한 수식들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회중은 정확한 메시지를 받을 뿐만 아니라 성경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추게 된다.

본문설교는 이러한 좋은 장점들이 풍부하지만 주의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그것은 설교자가 임의로 취향에 맞는 본문만을 찾게 됨으로 인해 66권의 말씀을 골고루 먹도록 해야 하는 균형을 지키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때로는 자신의 주장과 생각을 펼치는데 적당한 본문만을 찾아 자기 합리화를 위한 설교로 전락하기 쉽다. 그러나 설교자가 이러한 모순을 범하지 않고 본문설교를 활용한다면 설교는 더욱 분명한 하나님 말씀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설교자는 성경에 대한 깊은 지식을 축적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강해설교(Expository Sermon)

 

'주해설교'라고도 일컫는 본 설교는 많은 설교자들에 의하여 이어진 설교의 유형이다. 밀러(D. Miller)모든 참된 설교는 강해설교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마이어(F. B. Meyer)는 강해설교를 성경 가운데서 한권이나 또는 어느 일정한 부분을 본문으로 하여 그것을 연속적으로 주석해 나가는 설교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 유형은 많은 분량의 본문을 가지고 석의적(Commentary) 접근보다 주해적(Explanation)접근을 더 강조한다. 여기서 진리의 현재성을 밝히고 그 진리를 회중들의 삶에 조명해준다. 이 설교는 어떤 유형의 설교보다 설교자의 맑은 영성이 요구되며 메시지에 민감한 반응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말씀 앞에 있는 설교자 자신이 주어진 메시지와 우선적으로 깊은 만남을 가져와야 한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설교자의 단순한 감성으로 진리를 받아드려 말씀의 본뜻과 상반된 설교를 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강해설교의 원리와 실제를 펴낸 로빈슨(Haddon Robinson)은 강해설교는 본문설교에서 요구하는 역사적, 문법적, 문학적 연구들을 철저히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강해설교 또한 안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일정한 성경을 택하여 한 장씩 강해하는 경우 사회가 직면한 현장의 문제들을 외면하기 쉬운 함정이 있다.

 

주제설교(Topical Sermon)

 

주제설교(제목설교)는 주제와 본문의 선정을 설교자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유형이다. 현장이 필요로 하는 주제를 가지고 자료를 수집하여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설교이다. 주로 인간 세상의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회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그래서 현대의 설교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설교의 유형이다. 그러나 이 설교에는 설교자의 특별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 많다. 그것은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깊은 뜻을 전달하여 말씀의 주인이 보이도록 해야 하는 설교의 원칙이 흔들린다. 설교자의 경험과 세상의 예화와 지식과 판단, 주장이 주종을 이루어 설교자가 말씀의 주인자리에 앉게 되는 큰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 결과 비성경적인 설교로 전락하게 된다. 자칫 본문이 자신의 말을 입증시키는 하나의 각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설교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설교가 종교수필로 전락하기 쉽다. 주제설교의 진정한 성공은 설교자가 본문의 봉사자로서 본문에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앞에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설교자는 자신의 주관적 주제와 자료는 그 말씀을 돋보이게 하는 부수적 자료가 되도록 하는 기본 수칙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