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학 강의록(4) : 교수 주태근
6. 전통적인 선교 개념에 대한 도전
교회역사를 통해볼 때 선교의 주된 강조점은 교회설립이었다. 초기교부시대의 문서로서 『디다케』는 교회의 세례와 성찬예식에 관한 지침을 내리면서 순회 전도자에 대해서 언급하며 어떻게 저들을 분별하고 영접할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다. 1세기 말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고린도에 있는 교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저들의 착한 행실과 인내함으로 복음의 빛을 모든 사람들에게 비춰서 많은 사람들을 주께 돌아오게 해야 된다고 말하면서 교회 공동체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언급한다.
3세기의 역사학자로서 교부시대의 교회역사를 추적한 최초의 교회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는 유세비우스는 순회전도자들의 활동을 통해서 로마 제국 산하의 모든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고 그 결과로서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 선교에 있어서 교회설립의 중요성을 강조함은 로마교회의 교회관과 병행하여 더욱 강조되고 강화되었다. 특히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에 반동종교개혁운동인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예수회 선교 운동은 복음전파를 통한 교회설립과 교회의 확장을 제일 중요한 선교의 목표로 세웠다. 당시의 예수회에 속한 선교지도자들 가운데 개신교를 비판하여 말할 때 선교를 수행하지 않는 교회는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는 말을 하였다. 화란의 제 2의 종교개혁운동 지도자이며 영국의 청교도 선교사라고 할 수 있는 에임스에게 영향을 받은 보에티우스는 당대의 예수회 선교학자들의 신학적인 도전에 상당한 자극을 받았고, 그는 교회의 선교를 정의하기를 이교도 개종과 교회 설립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라 하였다. 로마교회는 소위 베드로의 후계자로 불리는 교황을 중심으로 한 가시적이고 제도적인 교회 중심의 선교를 주장했으나, 개신교회는 구원받은 택자가 중심이 된 가시적인 교회 안의 불가시적 교회를 우선하는 교회설립의 선교를 주장하였다. 어쨌든 양자는 교회설립이 선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이러한 교회설립을 중심으로 한 선교는 하나님 나라의 신학이 선교의 목표를 단순히 교회설립으로만 머물지 않게 하고 교회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하나님의 통치권과 주재권을 증거하고 회복하는 차원에까지 선교영역을 확장시켰으나 교회설립의 목표는 조금도 희미해지거나 부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인 선교개념이 1925년 스톡홀름에서 열린 ‘생활과 사역’(Life and Work)회의에서 당시 유행하던 사회복음주의의 영향에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그 회의에서 전통적인 선교 개념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교회설립과 영혼구원의 선교는 경제와 산업 문제 그리고 사회윤리와 교육 분야에 이르기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교회설립의 선교가 부정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전통적인 선교 개념으로 당시의 산업화와 기술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자각과 선교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러한 선교 개념의 주장은 1928년 예수살렘에서 열린 국제선교협의회 대회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전도와 사회적 행동의 구분이 아닌 통합으로서의 포괄적인 선교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1938년 인도의 마드라스에서 열린 국제선교협의회 대회에서 존 모트는 확대전도(Larger Evangelism)개념을 소개하였는데, 이것은 선교란 단순히 영혼구원이나 교회설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부조리, 문화의 낙후성, 정치적인 불의에 대항하는 총체적인 복음증거 운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트의 이런 주장은 신학적으로 복음의 본질을 부인하거나 회심을 지향하는 교회 중심의 선교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선교의 범위와 목표를 상당히 넓혔고 만일 영혼구원과 교회설립의 내용이 빠진다면 이것은 단지 인본주의적 사상에 불과할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었다.
국제선교협의회의 올드햄과 같은 일부 지도자들과 세계교회협의회의 맥케이 같은 지도자들은 당시 유행하던 사회복음주의 신학과 도드의 실현된 종말론의 신학에서 나오는 윤리신학의 케리그마 그리고 후기 바르트의 종교사회학적 신학에 깊이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1952년 윌링겐에서 열린 국제선교협의회 대회에서 화란의 선교학자인 호켄다이크에 의해서 “왜 전통적인 선교이냐?”(Why Missions?)라는 주제 강연 속에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새로운 선교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하나님의 선교 개념에서 호켄다이크는 전통적인 선교의 과정으로서 하나님께서 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대리인으로 삼아서 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 세상 속에서 그의 나라를 확산시켜 나간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그에 의하면 교회는 사도적인 교회로서 세상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살롬을 성취하는 도구로서 그 존재 의의가 있다. 즉 교회는 세상보다 앞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살롬의 역사에 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세상을 변혁하는데 헌신하는 인본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 목적을 가진 제 사회기구나 심지어는 타종교에도 하나님의 살롬의 역사는 내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선교의 목표로서 회심이나 교회설립을 불필요하게 만들었고, 인간의 삶의 현장에서 소위 인간애적이고 사회구조 변혁을 추구하는 제 행동들을 하나님의 살롬의 역사로 보게 했다. 이는 결국 선교무용론을 낳았고, 선교가 보편구원설의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했다. 당시에는 이런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온건한 복음주의 입장을 가진 레슬리 뉴비긴이나 칼 하텐스타인에 의해서 비판되고 거부되었으나 1963년 멕시코 시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의 세계전도와 전도 분과대회에서 호켄다이크의 하나님의 선교개념으로 완전히 기울어졌고, 이것은 대회가 끝난 이후에 발행된 『타자를 위한 교회: 회중의 선교적 구조』(The Church for Others: The Missionary Structure of the Congregation)라는 책 속에 잘 반영되었다. 이 책에서 호켄다이크는 전통적인 교회의 회중 구조를 조악한 근본주의 개념의 산물로 보고, 교회는 세상을 향해 가는 구조가 되어 세상 속에서 도시갱생 프로그램이나 지역 사회 개발 등 세속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여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결국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1968년 스웨덴의 웁살라에서 선교를 정의하기를 그리스도를 모델로 한 새로운 인간성에의 참여인데 실상 그리스도의 모델의 신학적 내용이 하나님의 선교 사상과 부합됨으로 곧 선교는 인간화(Humani zation)가 되고 말았다. 1973년 태국의 방콕에서 열린 세계선교협의회 산하 세계선교와 전도 분과대회는 선교를 정의하기를 하나님의 선교사상에 입각해서 여기에다가 해방의 주제를 포함시켜 선교를 경제 정의구현과 정치적인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인간소외에 대한 결속 등으로 규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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